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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1014화 (1,012/1,050)

1014화

김소희가 송편 반죽이 있는 곳 으로 다가오자 귀신들이 자리를 비켜 주었다.

“내 자네들 일을 방해하려는 것 이 아니니 편히들 하게나.”

그러고는 김소희가 손을 내밀자 어느새 다가온 이지선이 비닐장 갑을 씌워 주었다.

“뭘 그렇게까지 하나. 그냥 주 면 될 것을.”

“아닙니다. 제가 하겠습니다.”

한쪽 손에 비닐장갑을 끼워 준 이지선이 다른 손에도 끼워 주자 김소희가 그녀를 지그시 보다가 말했다.

“자네와 나도 거의 백 년이 니…… 편히 하게나.”

“저는 이것이 편합니다. 마음 쓰지 마십시오.”

공손히 비닐장갑을 끼워 주고 물러나는 이지선을 보며 고개를 저은 김소희가 이미 만들어진 송

편을 보다가 재차 고개를 저었 다.

“쯔쯔쯔! 모양이 이래서야…… 이건 주먹 떡인가?”

조금 뭉툭한 모양의 송편을 가 리키자, 최호철이 어색하게 웃으 며 말했다.

“제가 송편을 만든 것이 몇 번 안 되어서요.”

“이렇게 두툼하게 만들어서야 안까지 익겠는가?’’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이런 건 호철 형이 알아서 다 먹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그럼 이걸 형수님 먹이게요?”

강진이 이혜미를 보자,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자기도 저렇게 못생긴 송편은 먹기 싫은 듯했다. 그에 최호철 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그래도 안에 깨 많이 들어가서

맛은 있을 텐데……

“쯔쯔쯔! 보기 좋은 떡이 먹기 도 좋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닐세.”

최호철의 말에 작게 혀를 찬 김 소희가 반죽을 적당히 떼어내고 는 말했다.

“밀대는 어디에 있는가?”

“밀대를 일일이 사기 힘들어서 소주병으로 밀고 있습니다.”

이혜미가 웃으며 먼저 소주병으 로 반죽을 밀어 시범을 보이자,

김소희가 그것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송편은 두께가 적당해야 하네. 너무 두꺼우면 속이 안 익고, 얇 으면 속이 터지니 만두와 비슷하 다 할 수 있지.”

김소희가 반죽을 식탁에 두고는 소주병으로 부드럽게 밀었다.

그 모습을 보던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단아하시네.’

쌀 반죽을 소주병으로 미는 모

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단아했 다. 물론 외모 자체는 피를 뚝뚝 흘리는 상태라 무척 무서웠지만 말이다.

스윽! 스윽!

김소희의 손에서 반죽이 조금씩 모양이 잡혔다. 어느 정도 펼쳐 진 반죽을 든 김소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정도 두께가 아주 좋지.”

김소희는 꿀과 깨를 섞은 소를 수저로 떴다. 그것을 반죽 안에

넣은 뒤 끄트머리를 손가락으로 주름을 만들며 접었다.

그렇게 깔끔하게 송편 하나를 만든 김소희가 그것을 손바닥 위 에 올렸다.

“어떤가?”

“어쩜 너무 예쁘게 만드셨어 요.”

“너무 잘 만드셨습니다.”

귀신들의 말에 김소희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 어릴 적 어머님께서 송편을 만드실 때 나도 옆에서 자주 만 들었지. 우리 어머니께서는 음식 솜씨가 아주 좋으셨네.”

미소를 지으며 송편을 보던 김 소희가 손을 내밀어 반죽을 쥐고 는 소주병으로 밀기 시작했다.

스윽! 스윽!

반죽을 밀던 김소희가 문득 다 른 귀신들을 보았다. 처녀귀신들 과 한끼식당 귀신들이 자신을 보 고 있는 것에 김소희가 말했다.

“손이 놀면 송편은 누가 만드 나?”

“아, 알겠습니다.”

“손은 움직이면서 눈으론 내가 하는 걸 보게나.”

김소희의 말에 귀신들이 웃으며 송편을 만들기 시작했다.

귀신들이 조용히 송편을 만들고 있자, 김소희가 입을 열었다.

“나 신경 쓰지 말고 이야기라도 하면서 하게나.”

“괜찮습니다.”

“아니야. 이런 일 하면서 이야 기도 없으면 몸이 힘든 법이네.”

물론 귀신이 몸이 힘들 일은 없 지만 말이다.

“그러니 편하게 하게나.”

“그럼 아가씨께 말을 걸어도 되 겠습니까?”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그를 보 았다.

“나에게?”

“네.”

김소희는 강진을 잠시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하게.”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하라고 했는데 말 걸지 말라고 하는 것 도 이상해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 였다.

김소희의 허락에 강진이 웃으며 말을 걸었다.

“아가씨께서 검을 배우실 때 어 머니께서 싫어하지 않으시던가

요?”

송편을 만들다 보니 김소희의 어머니에 대한 궁금함이 생긴 것 이다.

뜬금없는 물음에 김소희가 그를 보다가 피식 웃었다. 아주 오래 전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 것이 다.

물론…… 오백 년도 더 전이라 이제는 얼굴이 떠오르지 않을 정 도로 많이 흐리지만 말이다.

“좋아하지 않으셨지. 그때 검을

수련하는 여인은 거의 없었으 니……

“하긴, 조선시대는 그런 여인이 없었겠네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작게 고 개를 저었다.

“검을 익힌 여자 무인이 없었던 건 아니야. 반가 규수를 호위하 는 무인 중에는 여인들도 꽤 있 었으니까. 다만……

김소희의 얼굴에 자부심이 어렸 다.

“반가의 규수가 검을 익힌 경우 는 없었지.”

“그럼 아버님은요? 아버님도 싫 어하셨어요?”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웃었 다. 그 웃음에 강진과 처녀귀신 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어렸다.

김소희가 사람들 앞에서 웃는 경우는 무척 드물었다.

투희의 앞에서나 무장 해제가 되어서 웃음을 많이 보이지, 평 소에는 늘 무표정을 유지했다.

그런 그녀가 이렇게 웃음을 보인 다는 건 무척 기분이 좋다는 증 거였다.

송편을 손에 쥔 채 잠시 미소를 짓던 김소희가 입을 열었다.

“아버님께서는 내가 연무장에 드나드는 것을 싫어하셨지.”

“싫어하셨어요?”

“그럼. 싫어하셨지. 내가 연무장 에 오고 가면 어머니에게 잔소리 를 하셨으니까.”

미소를 지으며 김소희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무척 좋아하 신 듯해.”

“그러셨어요?”

“그러니 나에게 몰래 검을 가르 쳐 주신 게 아니겠는가.”

“아버님에게 무술을 배우셨어 요?”

“정확히는…… 아니네.”

김소희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검을 가르쳐 준 것은 오라버니

였네.”

“아……

오라버니라는 말에 강진이 탄식 을 내뱉었다.

김소희와 전생의 황민성은 애증 관계이니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고 존경하던 오라버니를 자신의 손으로 죽였으니…….

“내가 검을 가르쳐 달라고 하 니, 오라버니가 어쩔 수 없이 나 에게 검을 가르쳐 줬지. 하지만 아버님께서 하지 말라 하셨으면

오라버니는 가르쳐 주지 않으셨 을 것이야.”

말을 하던 김소희가 미소를 지 었다.

“그러니 겉으로는 반대하셨지만 속으로는 반대를 하지 않으신 것 이지. 후! 게다가 나중에는 아버 님께서 오라버니를 통해 가르침 을 주시기도 하셨네.”

“아가씨께서 수련하시는 것을 좋아하셨나 보네요.”

내가 검을 꽤 잘 다뤘거든.”

김소희가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 지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어느 날 내 목검이 바 뀌었네.”

“목검요?”

김소희가 손을 내밀어 귀검을 잡았다.

우우웅!

주인의 손길에 귀검이 작게 울 었다. 그런 귀검을 쓰다듬은 김 소희가 입을 열었다.

“사람에게는 그에 맞는 검이 있 네. 그 사람의 손 크기나 팔 길 이 같은 신체의 크기에 따라 검 의 크기도, 날의 두께도 다 변하 지.”

“맞춤 정장처럼요?”

이혜미의 물음에 김소희가 고개 를 끄덕였다.

“그렇다 봐야겠지.”

김소희는 반죽을 떼어 소주병으 로 천천히 밀며 말했다.

“내가 사용하던 목검은 오라버

니가 사용하던 것이었네. 그런데 어느 날 오라버니가 나에게 새 목검을 주었네.”

“혹시 아버님께서?”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미소를 지었다.

“오라버니가 슬며시 이야기를 해 주었지. 아버님께서 내가 오 라버니 목검으로 연습하는 것을 보시고 자신이 직접 나무를 고르 고 다듬어서 만드셨다고.”

웃으며 김소희가 귀검의 손잡이

를 가리켰다.

“손잡이에는 소가죽 끈도 꼼꼼 하게 묶여 있어 땀으로 미끄러지 지 않도록 되어 있었지. 정말 좋 은 목검이었어. 무게도, 균형도, 길이도…… 딱 나를 위해 맞춰져 있었으니까.”

우웅! 우웅!

김소희의 말에 귀검이 작게 울 었다. 마치 나는 마음에 안 드느 냐는 듯 말이다.

그런 귀검의 모습에 김소희가

웃으며 검을 손으로 홅었다.

스으윽!

김소희의 손길에 기분이 좋은 듯 다시 귀검이 울었다. 그것으 로 답을 대신한 김소희가 귀검을 놓았다.

스르륵!

그러자 귀검이 알아서 두둥실 떠서는 그녀의 옆에 마치 호위무 사처럼 떠다녔다.

다시 송편을 빚기 시작하는 김 소희를 보던 강진이 피식 웃었

다.

‘꿀 송편만 만드시네.’

꿀 송편을 좋아하는지 김소희는 꿀만 송편에 넣고 있었다.

‘취향 참 확실하셔.’

웃으며 고개를 저은 강진이 만 든 송편을 내려놓고는 말했다.

“그럼 송편은 아가씨께 맡기고 저는 전을 준비하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전 만드

는 곳으로 가자, 강한나와 조명 희가 슬며시 다가왔다.

“저희도 전 만드는 거 할래요.”

“그러세요.”

말을 하던 강진이 김소희를 힐 끗 보고는 웃었다.

“아가씨가 동그랑땡을 먹고 싶 어 하는 듯하시니 그것부터 만들 게요.”

“네.”

강진이 한쪽에 놓인 동그랑땡

반죽을 뚝 떼어 손바닥 안에서 굴리며 말했다.

“팬 좀 켜 주실래요?”

강진의 말에 강한나가 팬에 전 기를 켜고는 온도를 올렸다.

그리고 조명희가 기름을 두르는 사이, 강진은 동그랑땡에 밀가루 를 입히고 계란 옷을 입혔다.

“이제 온도 올라온 것 같아요.”

강한나가 계란을 살짝 비닐장갑 에 묻히고 팬에 툭 하고 떨어뜨 리자 계란이 익어갔다.

그에 강진이 온도 적당하다 생 각을 하고는 동그랑땡을 올리자, 조명희가 뒤집개로 하나씩 뒤집 으며 살짝살짝 눌렀다.

이렇게 해야 모양이 잡히니 말 이다.

“잘 하시네요.”

“명절에 전 한 번 안 만들어 본 사람이 있나요.”

조명희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은 남자 여자 안 가리고 전 정도는 같이 만드니

말이다.

강진은 반죽을 적당히 집어서는 모양을 잡고 팬 위에 올렸다.

촤아악!

기분 좋은 기름 튀는 소리를 들 으며 강진이 뒤집개로 슬며시 모 양을 잡자, 조명희가 웃으며 말 했다.

“그건 누구 주시려고요?”

“누구겠어요.”

강진이 웃으며 김소희를 한 번

보자, 조명희가 웃으며 강진이 넣은 동그랑땡을 보았다.

동그랑땡은 조금 어설픈 하트 모양이었다. 틀에 찍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서 하트 모양을 잘 만들기는 어려웠다.

그래도 이 정도면 누가 봐도 하 트 모양이라 할 정도는 되어서 강진은 만족스러웠다.

동그랑땡이 익어가며 특유의 맛 있는 냄새가 퍼지자 귀신들이 웃 으며 이쪽을 보았다.

“역시 명절에는 전 만드는 냄새 지.”

“맞아. 이 고소한 기름 냄새.”

“빨리 저승식당 오픈 시간 됐으 면 좋겠다.”

처녀귀신들도 웃으며 말을 하 자, 배용수가 웃으며 말했다.

“드시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하 나씩 드셔 보시지 그러세요. 전 만들 때 바로 옆에서 하나씩 집 어먹는 것이 맛있는데.”

배용수의 말에 처녀귀신들이 시

간을 확인하고는 웃으며 말했다.

“조금 기다렸다가 현신해서 먹 을래요. 그게 더 맛있어요.”

“하긴, 먹고 싶은 거 기다렸다 가 먹으면 더 맛있기도 하죠.”

하지만 그렇지 않은 귀신도 있 었다. 바로 김소희였다.

김소희는 기름 냄새와 고기 익 는 냄새에 작게 입맛을 다셨다.

그렇지 않아도 동그랑땡이 먹고 싶었는데 바로 옆에서 익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김소희는 만들던 송편을 마지막 으로 꾸욱 눌러 완성을 하고는 접시에 내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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