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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1015화 (1,013/1,050)

1015화

송편을 내려놓은 김소희가 비닐 장갑을 벗었다.

“내 보일 만큼 보인 것 같으니 잘들 만들어 보게나.”

“잘 보여 주셔서 만들기가 쉬울 듯합니다.’’

이혜미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보았다.

“송편을 예쁘게 빚으면 예쁜 딸

을 낳는다고 하더군.”

“아…… 그러면 안 되는데.”

이혜미가 최호철을 한 번 보고 는 슬쩍 그가 만든 송편을 보았 다.

그러자 최호철이 슬며시 자신이 만든 송편을 옆으로 밀었다. 그 모습에 김소희가 말했다.

“엄마가 만든 송편처럼 예쁜 딸 을 낳고, 아빠가 만든 송편처럼 듬직한 아들을 낳으시게.”

김소희의 덕담에 이혜미가 미소

를 지었다. 하지만 속은 좀 아팠 다.

귀신이 무슨 아들과 딸이란 말 인가.

속상해하는 이혜미의 모습에 김 소희가 말했다.

“지금의 삶이 끝이 아니라네. 돌고 도는 것이 인생이니, 자네 들도 언젠가는 다시 연을 맺을 수 있을 것이네. 그때는 행복한 가정 꾸리고 다산하게나.”

김소희의 말에 이혜미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덕담 감사합니다.”

“명절 아니겠나.”

고개를 끄덕인 김소희가 몸을 돌려 강진의 옆으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동그랑땡을 보며 미소 를 지었다.

“참 맛있게 만들었군.”

“하나 드릴까요?”

“그럼 맛이나 한 번 보지.”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작은 접

시에 동그랑땡을 하나 올려서는 내밀었다.

“여기 있습니다.”

접시에 담긴 동그랑땡을 보던 김소희가 눈을 찡그렸다. 모양이 동그랗지가 않았다.

“이건 뭔가?”

“하트 모양입니다. 아가씨에 대 한 제 마음입니다.”

강진이 웃으며 손가락 하트를 만들어 보이자, 김소희가 그를 보았다.

“나에게 농을 거는 것인가?”

눈을 더 찌푸리는 김소희의 모 습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명절 아니겠습니까.”

명절이라는 말에 김소희가 그를 보다가 작게 고개를 저으며 의자 에 앉았다.

“음식 가지고 장난치면 저승 가 서 벌받네.”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그녀의 앞에 젓가락을 놓았다.

“그거야 음식으로 장난치고 버 리면 그렇죠. 저희야 장난을 쳐 도 다 먹으니 괜찮을 겁니다.”

강진의 말에 김소희는 신경을 쓰지 않고 젓가락을 들었다. 그 러고는 젓가락으로 동그랑땡을 반으로 잘라냈다.

“허억!”

갑자기 신음을 토하는 강진의 모습에 김소희가 그를 보았다.

“왜 그러나? 어디 불편한 것인 가?”

“제 하트가 쪼개지는 느낌이라 서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그를 보 다가 작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한국 땅의 모든 인간과 귀신을 통틀어 나를 이리 대하는 자는 딱 자네 한 명뿐이네.”

“그래서 심심하지 않으시잖아 요.”

김소희가 뭐라 할 것 같자 강진 이 잽싸게 말했다.

“사이다 드릴까요?”

사이다라는 말에 김소희가 하려 던 말을 머금었다. 기름진 음식 에는 역시 시원한 사이다였다.

“그리하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강진은 주방으로 들어가서는 JS 에서 사’ 온 사이다를 가지고 나 왔다.

탓! 쏴아악!

이슬이 튀는 듯한 청아한 탄산

소리를 들으며 사이다를 잔에 따 른 강진이 김소희를 보았다.

그녀는 이미 반으로 쪼개진 하 트 동그랑땡 한 쪽을 먹고 있었 다. 그런 김소희에게 강진이 슬 며시 말했다.

“음식 버리면 안 되니 이건 제 가 먹겠습니다.”

김소희가 먹었다 해도 동그랑땡 이 사라지는 건 아니니 말이다.

“버리는 것보다는 낫겠지. 드시 게.”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동그랑땡 을 집어 입에 넣었다.

고소한 기름과 고기 육즙이 입 안에 퍼지자 강진이 고개를 끄덕 였다.

“오늘은 작년보다 더 맛있게 된 것 같은데, 어떠세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네. 올해는 작년보다 더 맛 있게 잘 됐군.”

입안에 퍼지는 육즙과 야채의

맛을 느끼려는 듯 입을 오물거리 는 김소희의 모습에 강진이 웃다 가 문득 물었다.

“요즘도 꽃 피어나다 촬영장 가 시죠?”

“가고 있네.”

“촬영은 어떻게 잘 진행되고 있 나요?”

강진의 물음에 김소희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귀찮은 일이 좀 있기는 하지만 잘 되고 있네.”

“귀찮은 일요?”

“바람이라든가 햇살이라든가.”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의아한 듯 그녀를 보았다.

“바람하고 햇살이 무슨?”

“장면에 어울리는 바람이 불어 야 하는데 바람이 불지 않거나, 햇살이 너무 약할 때가 있네.”

“그거야 자연 현상이니 어쩔 수 없지 않나요?”

“그러니 귀찮은 일이지. 바람을

불게도 해야 하고, 바람을 멈추 게도 해야 하고…… 햇살을 모으 기도 해야 하고.”

정말 귀찮다는 듯 김소희가 고 개를 젓는 것에 강진이 그녀를 멍하니 보았다.

‘바람을 부르고, 햇살을 모은다 고?’

놀란 눈으로 김소희를 보던 강 진이 물었다.

“그런 것도 하실 수 있으세요?”

“비를 내리거나 멈추는 건 좀

힘이 많이 들지만, 바람이나 햇 살 정도는 그리 어렵지 않지.”

김소희가 우물거리며 하는 말에 강진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대, 대단하세요.”

“그런가?”

“그럼요. 근데 정말 비도 내리 게 하실 수 있으세요?”

방금 전에 좀 힘이 많이 들어도 비를 내리거나 멈추게 할 수 있 다고 했으니 말이다.

“할 수는 있지만 잘 안 하지.”

“왜요? 가뭄이 든 곳에 비를 내 리고, 홍수 난 곳에 비를 멈추면 참 좋을 텐데?”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저었다.

“비는 하늘의 흐름이네. 내가 비를 어디에 내리면 원래 내려야 할 곳의 비가 없어지는 것이고, 내가 비를 멈추면 다른 곳에서 더 많은 비가 내릴 수 있어. 그 것이 어떠한 인과가 될 지는 아 무도 모르는 일이니…… 할 수

있다 해서 함부로 그리하면 안 되는 것이네.”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그녀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것도 그러네요. 그럼 바람과 햇살은요?”

“내가 태풍급 바람을 만들어 내 거나, 태풍을 잠재우는 건 문제 가 되겠지만…… 고작 머릿결을 휘날리거나 나뭇잎들이 날리는 정도는 그런 인과의 문제가 생기 지는 않지. 또한 햇살도 잠시 빌 려 오는 것 정도는 괜찮네.”

“그렇군요.”

재차 고개를 끄덕이던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어쨌든 아가씨 덕에 촬영 현장 이 잘 돌아가겠네요.”

“귀찮은 일이기는 하지만 좋은 작품이 나오기를 바라는 마음에 한 손 거드는 것이지.”

“혜원이는 어떻게 잘 하던가 요?”

“잘 하고 있네. 곧 있으면 촬영 끝날 듯해.”

“벌써요?”

강진이 알기로는 2회까지는 박 혜원 촬영 장면이 있었다. 그런 데 벌써 끝난다 하니 의아한 것 이다.

“아역 촬영부터 일단 다 찍는 것 같더군.”

“그렇군요.”

말을 하던 김소희가 미소를 지 었다.

“혜원이가 연기를 참 잘 해.”

“다행이 네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동그랑땡 을 보다가 말했다.

“혜원이 집에도 좀 보내 주게 나.”

“당연히 그래야죠.”

“한창 클 나이야.”

김소희가 동그랑땡 반쪽을 마저 먹고는 팬을 보자, 강한나가 노 릇노릇하게 잘 익은 동그랑땡을 그녀의 그릇에 올려주었다.

그에 김소희가 젓가락으로 동그 랑땡을 집어서는 베어 물었다.

맛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는 김 소희를 보며 강진이 계란 옷을 입은 동그랑땡을 팬 위에 올렸 다.

촤아악!

기분 좋은 기름 냄새와 소리에 강진이 미소 짓는 사이, 귀신들 이 하나둘씩 가게 안으로 들어왔 다.

“냄새 좋네요.”

“우리도 도우려고 왔습니다.”

“도울 거면 좀 일찍 와야죠.”

강선영의 면박에 도우러 왔다고 한 귀신이 머리를 긁다가 급히 김소희에게 다가갔다.

“아가씨 안녕하세요.”

면박을 받느니 무서운 김소희에 게 인사를 하려는 것이다. 그 귀 신을 시작으로, 다른 귀신들도 김소희에게 고개를 숙였다.

“아가씨, 추석에 복 많이 받으 세요.”

“아가씨, 추석에 복 많이 받으 세요.”

귀신들의 말에 강선영이 고개를 저었다. 그들이 왜 김소희에게 우르르 가서 인사를 하는지 안 것이다.

한편, 동그랑땡을 입에 넣고 있 던 김소희는 귀신들의 인사에 그 들을 보다가 슬며시 동그랑땡을 내려놓았다.

그와 동시에 입안에 있던 것을 천천히 씹어 삼켰다. 그런 김소 희 앞에 공손히 고개를 숙인 채

귀신들이 기다렸다.

얌전히 기다리고 있는 귀신들을 보며 김소희가 몸을 바로하고는 옷을 정리했다.

“아직 추석은 아니지만, 언제 또 볼지 모르니 지금 인사 나누 는 것도 좋겠지.”

김소희가 귀신들을 하나씩 보다 가 청년 귀신을 보았다.

“자네는 여기에 드나든 지 몇 년이나 되었는가?”

김소희가 말을 걸자, 청년 귀신

이 공손히 말했다.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오 년 쯤 된 것 같습니다.”

“오 년이라…… 오래되었군.”

고개를 끄덕인 김소희가 다른 귀신들을 보았다. 그 시선에 귀 신들이 이곳에 온 햇수를 이야기 했다.

대답들을 들으며 작게 고개를 끄덕이던 김소희가 입을 열었다.

“적당히 날 좋고 바람 좋은 날 승천들 하시게나. 저승도 어차피

우리 귀신들 가는 곳이니 그곳도 살 만할 것이네.”

김소희의 말에 귀신들이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말씀 감사합니다.”

“아가씨도 날 좋을 때 승천하십 시오.”

“고맙네. 그럼 가서 일들 거들 게나. 늦은 만큼 바쁘게 움직여 야 할 게야.”

“알겠습니다.”

귀신들이 뒤로 물러나자, 이혜 미와 강선영이 그들에게 비닐장 갑을 내밀었다.

“송편 만들어 보신 분은 이쪽으 로 오셔서 송편 만드시고요, 해 본 적 없는 분들은 여기 와서 꼬 치 꽂으세요.”

이혜미의 말에 귀신들이 송편과 꼬치 쪽으로 갈라졌다.

그 모습을 보던 김소희가 동그 랑땡을 입에 넣고는 다시 우물거 리기 시작했다.

맛있게 동그랑땡을 먹는 김소희 를 보던 강진이 말했다.

“송편 맛 좀 보시겠습니까?”

“만들어 놓은 것이 있나?”

“아가씨 오시기 전에 찜통에 넣 어둔 것이 있습니다. 지금 딱 맛 있게 익었을 시간입니다.”

“그럼 맛 좀 보지.”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몸을 돌 린 순간이었다.

“깨로 가져오게나.”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몸을 다 시 돌리며 말했다.

“저기 그게 표시를 해 놓지 않 아서요. 깨인지 콩인지 알 수 없 습니다.”

“알겠네. 그냥 가져오게나.”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주방에 들어가서는 찜통을 열었다.

화아악!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고 그 안에 맛있게 쪄진 송편들이 보였 다.

‘쫄깃쫄깃하겠다.’

막 쪄낸 떡만큼 먹음직스러운

것이 없다. 게다가 그 식감

강진이 입맛을 다시며 송편을 접시에 담았다. 바닥에 깔아 놓 은 솔잎이 붙었지만, 상관없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먹어도 상관이 없고, 이 정도야 먹는 사람들이 하나씩 떼어내는 것도 재미니 말 이다.

송편을 챙긴 강진이 접시를 들

고는 김소희에게 다가갔다.

“아가씨.”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먹던 동 그랑땡을 내려놓고는 송편을 지 그시 보았다. 그러고는 무엇을 골라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입술을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 며 송편을 보는 것이 정말 중요 한 선택을 하는 것 같았다.

잘 골라야 꿀, 깨가 들어 있는 송편을 고를 수 있으니 말이다.

심각한 얼굴로 송편을 보고 있 던 김소희가 결심을 했는지 그중 하나를 집었다.

스륵! 화아악!

불투명한 송편을 집어 든 김소 희가 눈을 찡그렸다. 겉으로는 모르지만, 들어서 만져 보니 안 에 뭐가 들었는지 감이 온 것이 다.

김소희가 송편을 도로 내려놓으 려 하자, 강진이 슬며시 쟁반을 옆으로 옮겼다.

“음식 들었다가 놓는 건 좀 아 닌 것 같은데요.”

강진의 말에 김소희의 눈가가 찡그려졌다.

그녀는 한숨을 쉬고는 송편을 입에 넣었다. 그 모습에 강진이 웃으며 김소희가 들은 송편을 집 어 한 입 베어 물었다.

‘콩이네.’

김소희가 집은 건 그녀가 원하 는 꿀 송편이 아니라 담백하고 고소한 맛의 콩 송편이었다.

‘맛있네.’

하지만 김소희는 강진과는 생각 이 다른 듯, 눈을 찡그리며 송편 을 조금씩 베어 먹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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