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6화
저승식당 영업시간, 황민성과 강상식도 가게에서 같이 송편을 만들고 있었다.
늦은 시간에 부른 게 미안했지 만, 음식이란 게 만들어서 바로 먹는 게 좋으니 올 수 있으면 오 라고 했는데 두 사람이 좋다고 온 것이다.
송편을 만들던 강상식이 강진에 게 웃으며 말했다.
“나 갈 때 이 반죽하고 속에 들 어가는 것 좀 싸 줘.”
“왜요? 완성된 거 가져가시지?”
“지나하고 같이 만들려고. 둘이 하면 재밌을 것 같아.”
강상식의 말에 황민성이 그를 보았다.
“그러지 말고 우리 집에 와.”
“형 집요?”
“우리 집도 추석 전날에 음식 할 거야. 그때 와서 전도 하고
송편도 하고 해. 일손이야 많으 면 좋으니까.”
“그래도 돼요?”
“당연히 되지.”
강상식은 본가와 거의 연을 끊 고 살고, 문지나는 가족이 없다. 그러니 추석이라고 해도 딱히 어 디를 갈 일도 없었다.
그런 사정을 알고 있는 황민성 은 일부러 둘을 자신의 집으로 부른 것이다. 이렇게라도 추석 명절 기분을 느끼라고 말이다.
“대신......"
황민성이 송편을 하나 집어 들 었다.
“네가 만든 건 네가 다 가져가 야 한다.”
황민성의 말에 강상식이 입맛을 다시며 그의 손에 들린 송편을 보았다.
그건 강상식이 만든 송편이었는 데, 좀 많이 못생겼다. 게다가 어 떻게 반죽을 밀었는지 옆구리도 좀 터져서 속이 나와 있기도 했
다.
“제가 이런 건 처음 해 봐 서……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반죽을 밀며 웃었다.
‘하긴, 상식 형이 송편을 만들어 봤을 일이 없지.’
요즘은 일반 가정집에서도 명절 에 송편을 잘 만들지 않는다. 그 냥 전통 생각하고 그런 것을 즐 기는 집에서나 송편을 만든다.
강상식네 같은 집은 더더욱 그
럴 리가 없었다. 오성그룹 회장 님과 사장님들이 모여서 송편을 만들고 전을 만들 일은 없을 테 니 말이다.
그러다 보니 강상식은 이렇게 송편을 만들고 전을 만드는 것이 처음이었다.
“송편을 예쁘게 만들어야 예쁜 딸을 낳는대요.”
“에이! 그거야 다 미신이지.”
“소희 아가씨가 한 말인데요?”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슬며시
김소희를 보았다. 김소희는 송편 이 담긴 접시를 유심히 보고 있 었다.
그러더니 결심을 한 듯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스륵!
쫄깃한 송편을 반으로 베어 문 김소희의 눈가가 찡그려졌다. 콩 송편이었다.
잠시 멈칫했던 김소희가 송편을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 에 강진이 작게 웃었다.
‘어떻게 저렇게 콩만 고르실까.’
강진이 그녀의 접시에 일부러 콩 송편만 담은 건 아니었다. 눈 으로만 봐서는 콩인지 꿀인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물론 꾸욱 눌러 보면 촉감으로 깨가 들어 있는지 콩이 들어 있 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그거 분간하자고 송편 모양을 망가뜨 릴 수 없으니 살짝 집어 놓았다.
그래서 랜덤으로 섞였을 텐데, 아까부터 김소희는 자신이 좋아 하는 꿀 송편이 아니라 콩 송편
만 집어먹고 있었다.
‘그렇게 꿀 송편이 좋으시면 능 력을 사용하시지.’
바람과 비를 부르는 능력을 가 진 김소희라면 꿀과 콩을 구분하 는 건 쉬울 터였다.
김소희는 손에 들린 송편을 다 먹고는 접시에 있는 송편을 다시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심각한 얼 굴로 송편을 보던 그녀는 마음을 정했는지 하나를 집었다.
스윽!
그것을 입에 넣은 김소희의 입 가에 미소가 가득 떠올랐다.
우물우물!
정말 보기 좋은 미소를 지으며 송편을 먹는 김소희의 모습에 강 진이 웃었다.
‘저래서 능력을 안 쓰시는 건 가?’
김소희의 능력이라면 속에 뭐가 들어 있는지 바로 알 수 있을 것 이다. 하지만 일부러 능력을 쓰 지 않았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만 골라 먹 는 것보다, 꽝인지 정답인지 모 르는 채로 먹는 게 더 재미있으 니 말이다.
그리고 김소희는 원래 자신의 능력을 함부로 쓰지 않았다.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힘 이 꼭 필요한 곳에만 힘을 쓰는 존재였다.
“소희 아가씨가 그렇게 이야기 했어?”
“네.”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심각한 얼굴로 자신이 만든 송편을 보았 다.
그냥 흔히 하는 말이라고 하기 에는…… 김소희가 그렇게 말을 했다고 하니 마음이 덜컥했다.
강상식이 한숨을 쉬고는 입을 열었다.
“내가 돈을 많이 벌어야겠네.”
“돈요?”
“그래야……
강상식이 손바닥으로 자신의 얼 굴을 위아래로 홅었다.
“돈이라도 발라 줄 것 아니겠 냐.”
강상식의 말에 황민성이 피식 웃으며 송편 반죽을 그의 손에 쥐여 주었다.
“돈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송편이나 예쁘게 만들 생각을 해 라.”
황민성의 말에 강상식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신중하게 소주병으로
반죽을 밀기 시작했다.
“만두 아니니까 너무 얇게 밀지 말고 적당히 밀어.”
황민성의 주의에 강상식이 신중 하게 소주병을 움직였다. 이 송 편에 딸의 외모가 걸린 것처럼 말이다.
그런 강상식을 보며 황민성이 강진을 보았다.
“올해 추석에는 영업할 거야?”
황민성의 물음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작년에 점심 장사를 해 보니 손님들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점 심은 쉬고 저녁 장사만 하려고 요.”
“쉬는 김에 하루 통으로 쉬지그 래?”
“그러고 싶기는 한데…… 추석 에도 나와서 일을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저녁에 대리운전을 하는 손님들 이 있다 보니 저녁 장사는 할 생 각이었다. 지금도 가게에 종종 들르는 정학봉처럼, 모두가 쉬는
날이라도 일을 하는 사람들은 있 었다.
“하긴, 명절이라고 다 쉬는 건 아니니까.”
“그래서 저녁에만 장사하려고 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추석에 우리 집에 와. 같 이 아침밥 먹자.”
“당연히 그래야죠.”
강진이 당연한 것 아니냐는 듯 보자, 황민성이 웃으며 강상식을 보았다.
“너도 와서 밥 먹고 고스톱이나 같이 치자.”
“고스톱요?”
“명절에 가족끼리 모이면 고스 톱 하는 거야.”
황민성의 말에 강상식이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네요.”
“왜,해 본 적 없어?”
“직원들한테 돈 잃어 주려고 한 적은 있지만 명절에는 없습니 다.”
강상식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명절에 하는 지.”
“패 좋은 걸로 갈게요.”
황민성이 작게
고스톱이 재밌
제가 하나 사서
“패는 우리 집에도 많아.”
말을 하던 황민성이 문득 강상 식을 보았다.
“아니다. 너 그냥 추석 전날에 우리 집에 와서 음식 만들고 놀 다가 자라.”
“형 집에서요?”
“어차피 음식 만들 때 와서 음 식 하고 놀다가 갈 건데 굳이 뭐 하러 집에 가냐. 그냥 우리 집에 서 먹고 마시고 잔 다음 아침에 명절 같이 지내자. 원래 명절은 좀 북적거려야지.”
“저는 좋은데…… 일단 지나한 테 물어볼게요.”
“하긴, 이제 홀몸도 아닌데 혼 자 이런 거 결정하고 그러면 안 되지. 제수씨한테 일단 물어봐. 좋다고 하면 우리 방 많으니까, 그중 하나에서 자면 돼. 아니면 거실에서 나하고 놀다가 자든 가.”
황민성의 말에 강상식이 환하게 웃었다.
“알겠습니다.”
‘하긴, 명절에 이런 분위기는 처 음일 테니까.’
서로 알게 된 이후 명절에 같이 식사하고 인사도 나누지만, 황민 성의 집에서 하루 자면서 명절을 지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마치 본가에서 잠을 자는 것처 럼 말이다.
오성그룹 사람들과 남처럼 지내 기 시작한 뒤론 명절에도 본가에 가지 않았다.
안 가려고 안 가는 것이 아니라
가도 반겨 주는 사람 하나 없고 왜 왔냐는 듯 보니 안 가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이제는 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문지나도 데리고 가야 한 다.
본가에 가면…… 문지나가 어떤 처지에 놓일지, 어떠한 대접을 받을지 보지 않아도 눈에 선했 다.
아마 주방 일이며 청소며 잡일 들이 모두 그녀에게 맡겨질 것이 다. 게다가 가족들이 모두 그녀
를 무시할 테고 말이다. 그래서 아예 갈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친한 형으로부터 함께 명절을 보내자는 제안을 받으니 강상식은 기분이 좋았다.
환하게 웃는 강상식을 보며 강 진도 웃으며 말했다.
“이제 적당히 만든 것 같으니 두 분은 쉬세요.”
“그래도 되나?”
“재미로 만들라고 한 거지, 계 속 만들라고 한 건 아니었어요.”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이제……
배용수가 홀을 보았다. 홀에서 는 어느새 음식 장만은 뒷전이고 귀신들이 먹고 마시고 있었다.
“마시는 분위기니까요.”
배용수의 말에 황민성이 재료들 을 보았다.
“그럼 이건 어떻게 해?”
아직도 꽤 많은 양의 반죽과 전
을 만들 재료들이 남아 있었다.
“저하고 혜미 씨, 선영 씨 셋이 서 만들어야죠.”
“힘들지 않겠어?”
“드라마 보면서 하면 어느새 끝 나 있어요. 그리고 같이 재밌게 만들어 보자고 재료 준비한 거 지, 다 만들자고 한 건 아니에 요.”
이혜미가 웃으며 하는 말에 황 민성이 미안한 듯 그들을 보다가 TV를 보았다.
“TV 바꿔 줄까?”
“아니에요.”
배용수의 말에 황민성이 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든지 불편하면 말해.”
“알겠습니다. 자, 형님! 이제 앉 아서 드시죠.”
배용수가 식탁에 있던 송편들과 재료들을 주방으로 옮기자 강진 도 다른 재료들을 옮기기 시작했 다.
재료들을 주방에 옮긴 강진이 배용수와 직원들을 보았다.
“괜히 미안하네.”
“뭐가?”
“나는 자는데……
자신은 저승식당 영업 끝나면 바로 잠을 자면서 쉬지만, 직원 들은 전과 송편을 만들어야 하니 말이다.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피식 웃 었다.
“스펙이 다른 걸 어떻게 하겠
냐.”
“응?”
“우리야 잠을 안 자도 되지만 넌 자야 하고, 우리는 육체 피로 가 없지만 너는 있잖아.”
“그건 그런데……
“그리고 우리가 어디 공짜로 일 하냐. 일한 만큼 월급 받잖아. 열 심히 일하고 저승 가서 떵떵거리 며 살 거니 괜찮아.”
배용수의 말에 이혜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용수 씨 말이 맞아요. 우리 열 심히 일해서 돈 벌어야 해요. 그 러니 일하지 말라고 하지 말아 요.”
이혜미가 장난스럽게 하는 말에 강선영이 웃으며 말했다.
“맞아. 우리 일해야 해요. 그래 야 저승 가서 배부르게 먹고 등 따뜻하게 자지.”
직원들의 말에 강진이 피식 웃 었다.
“그렇게 생각해 주시면 고맙고 요.”
“됐어. 그리고 진짜로 드라마 보면서 하다 보면 어느새 끝나 있어. 그러니 정말 신경 쓰지 마.”
배용수가 강진을 보며 말을 이 었다.
“그리고 미안해하지도 마라. 아 까도 이야기했지만 너는 사람이 라 자야 해. 아니면 죽어.”
죽는다는 말에 강진이 피식 웃
었다.
“그건 그렇지.”
“그렇다고 네가 낮에 일 안 하 고 노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 러니 너는 미안해하지 말고 푸욱 잠이나 자.”
“알았다. 그럼 나는 따스한 우 유 한 잔 마시고 꿀잠을 자야겠 다.”
“그래. 우유는 내가 데워 줄게.”
웃으며 강진이 직원들과 함께 홀로 나왔다. 음식을 만들던 자
리는 처녀귀신들이 깨끗하게 치 우고 있었다.
“놔두시면 저희가 할 텐데요.”
이혜미의 말에 이지선이 고개를 저었다.
“명절이니…… 다 같이 하고 다 같이 즐기는 것이 좋겠지.”
그러고는 이지선이 자리를 가리 켰다.
“오늘은 자네들도 편히 쉬게. 평소에는 우리가 편히 먹고 마셨 으니 오늘은 우리가 하겠네.”
이지선의 말에 이혜미가 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저희가 할게요.”
“괜찮으니 앉게.”
직원들을 자리에 앉힌 이지선이 그릇과 컵들을 식탁에 놓았다.
“음식 준비하느라 고생들 했 네.”
이지선의 말에 강진과 귀신들이 미소를 지었다. 사실 오늘 이 음 식 재료들을 다듬고 준비하느라 한끼식당 식구들이 참 바쁘게 움
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