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0화
홍유정의 앞에 선 강상식이 식 판을 내밀었다.
“많이 주세요.”
강상식의 말에 홍유정이 식판을 보고는 말했다.
“밥부터 뜨셔야 하는데.”
홍유정의 말에 강상식이 고개를 저었다.
“잡채만 먹을 겁니다.”
“네?”
“오늘 여기 식재들 형하고 제가 보내 드린 거 아시죠?”
“이야기 들었습니다.”
“그러니 저는 제가 먹고 싶은 걸 먹을 자격이 있습니다.”
살짝 거만한 강상식의 모습에 홍유정이 그를 보다가 잡채를 잔 뜩 떠서는 식판에 올리려 했다. 그에 강상식이 슬며시 식판을 뒤 로 빼며 말했다.
“하지만 조금만 먹겠습니다.”
“네?”
“여기 오기 전에 보육원을 두 곳 더 돌았거든요. 배가 부른데 도 워낙에 음식을 많이 주셔서 지금 배가 터질 것 같습니다.”
강상식이 잡채를 내려다보며 말 을 이었다.
“그런데 잡채는 맛있어 보여서 맛은 좀 보려고요.”
“아……
강상식이 웃으며 식판을 다시 내밀자, 홍유정이 잡채를 다시
내려놓고는 조금만 집어 식판에 올렸다.
그런 홍유정을 보며 강상식이 말했다.
“방금 전에 잡채만 먹겠다고 했
잖습니까.”
“네? 네.”
“그게 얼마 전에 저의 모습입니 다.”
홍유정이 자신을 보자 강상식이 식판에 담긴 잡채를 보며 말을 이었다.
“거만하고 남 배려는 하지 않고 그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강상식이 웃으며 다시 홍유정을 보았다.
“예전 제 모습 그리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니라서 홍 선생님 기분 상하게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고개를 젓는 홍유정을 보고 강 상식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홍 선생님 변하셨다고 하더군
요.”
“그게......"
“저는 예전에 아주 나쁜 놈이었 습니다.”
“네?”
“방금 잡채 달라고 했을 때 모 습은 애교고, 저보다 없는 사람 한테는 갑질을 하는 것이 당연하 다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없는 사람하고는 이야기도 하지 않고 눈길도 주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만날 때도 그 사람이 나한테 도
움이 되는 사람인가, 도움이 안 될 사람인가 구분을 하고 만났습 니다.”
강상식이 홍유정을 보며 말을 이었다.
“저 예전에는 쓰레기, 아니…… 개쓰레기 였습니다.”
강상식의 말에 홍유정이 그를 가만히 보았다. 강상식이 왜 이 런 말을 하는지 이제야 알았다. 그도 예전 자신처럼 잘못을 했었 다고 말하는 것이다.
홍유정이 자신을 보자, 강상식 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리고 지금은 재활용이 됐습 니다.”
“재활용요?”
“예전 모습으로 살았으면 지금 도 쓰레기였겠지만 지금은 재활 용되어서 사람들이 필요한 물건 이 된 셈이죠. 쓰레기도 그대로 두면 쓰레기지만, 재활용하면 사 람이 쓰는 물건이 되잖습니까. 홍 선생님도 세상에 필요한 착한 사람이 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강상식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착한 사람이 되니 좀 귀찮은 일이 많은데 마음은 편하더군요. 앞으로 몸은 귀찮아도 마음은 편 한 일 많이 하시기 바랍니다.”
강상식이 고개를 숙이자, 홍유 정이 그를 보다가 고개를 숙였 다.
“말씀 감사합니다.”
“좋은 이야기를 해 드린 것이니 감사 인사 잘 받겠습니다.”
강상식이 웃으며 잡채를 젓가락
으로 들어 보였다.
“아주 맛있어 보입니다.”
“봉사하러 오신 분들하고 같이 만들었어요.”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 듯, 자신 이 만들었다 말하는 홍유정을 보 며 강상식이 말했다.
“앞으로도 맛있는 음식 만들어 주세요.”
“아직 안 드셔 보셨잖아요.”
“먹어 봐야 아나요.”
강상식은 주변에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애들이 이렇게 맛있게 먹는 것 만 봐도 알 수 있죠.”
그러고는 강상식이 웃으며 식판 을 들어 보였다.
“그럼 맛있게 먹겠습니다.”
말을 하며 강상식이 몸을 돌리 려 하자, 황민성이 그를 잡았다.
“대기.”
“네?”
황민성은 강상식이 들고 있는 식판을 살며시 잡고는 홍유정에 게 내밀었다.
“조금만 더 담아 주세요.”
“형 저 배부른데.”
“같이 먹자고.”
“같이요?”
“다른 보육원에서 너 먹을 때 나도 먹었잖아. 너도 나도 많이 먹을 것도 아닌데 설거지 늘릴 필요 있냐.”
황민성이 웃으며 홍유정을 보았 다.
“그러니 지금 담은 것 정도만 더 주세요. 같이 먹으면 설거지 할 것 하나 줄어드는 셈 아니겠 어요?”
“알겠습니다.”
홍유정이 식판에 잡채를 올리는 사이, 황민성이 나지막하게 말했 다.
“저는 예전에 조폭이었습니다.”
“네? 조……폭요?”
눈을 휘둥그레 뜨는 홍유정을 보고 황민성이 웃으며 고개를 끄 덕였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조 폭들은 많이 착한 편이고, 저는 정말 나쁜 조폭이었습니다. 그리 고 지금은 개과천선까지는 아니 지만 손 씻고 이렇게 지내고 있 습니다.”
“아……
탄식을 토하는 홍유정을 보며 황민성이 말을 이었다.
“상식이가 말한 대로 좋은 사람 되는 건 많이 피곤합니다. 저희 만 해도 명절 전날인데 집에 있 지 못하고 보육원을 네 곳이나 돌아야 합니다. 하지만…… 상식 이 말대로 마음이 아주 편하기도 합니다.”
황민성의 말에 홍유정이 그를 보다가 말했다.
“저도 몸이 귀찮아도 마음이 편 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홍유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황민성이 한 손으론 식판을 들고
한 손으론 황미소의 손을 잡은 채 걸음을 옮겼다.
“맛있는 거 먹자.”
“네!”
황미소가 환하게 웃으며 황민성 의 손을 잡고 걸어가자, 황희승 이 그 모습을 보다가 미소를 지 으며 강진을 보았다.
“우리 애들 주위에는 좋은 분들 이 많은 것 같습니다.”
“애들이 착하잖아요. 착한 사람 옆에는 착한 사람이 다가오는 법
이죠. 마치 꽃에 벌이 모이는 것 처럼요.”
강진의 말에 황희승이 기분 좋 게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애들도 상식 씨, 민성 씨 처럼 몸은 좀 피곤해도 마음은 편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습니 다.”
황희승의 말에 강진이 잠시 생 각을 하다가 웃으며 말했다.
“제가 여러 일을 해 봤는데, 역 시 마음 편한 것이 최고더라고
요.”
“그 말이 맞습니다. 일이 편해 도 마음이 불편하면 일을 하기 어렵죠. 대신…… 몸이 힘들어도 마음이 편하면 일할 만합니다.”
황희승이 걸어가는 황민성과 강 상식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저 두 분이 좋은 일을 계속 하시나 봅니다.”
황희승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황민성과 강상식의 옆에 다가갔다.
“잡채가 형 좋아하는 스타일이 에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강상식이 손에 들린 식판을 보며 웃었다.
“내가 잡채에 고기 좀 많이 넣 어서 드시라고 고기를 많이 보내 드렸어.”
“기부금 보냈다고 들었는데 고 기도 보내셨어요?”
아는 내용이지만 강진은 일부러 말했다. 생색을 좀 내라고 말이 다.
“돈을 보내 드렸으니 그걸로 사 도 되겠지만…… 그래도 돈보다 이런 현물이 선물 받는 기분이 들잖아.”
“그건 그렇죠.”
“그래서 기부금은 기부금이고 따로 현물을 좀 보냈지.”
황민성이 잡채를 보며 말을 이 었다.
“어릴 때는 잡채에 들어 있는 고기가 다른 것보다 맛있잖아. 그래서 잡채에 고기 많이 넣으시
라고 좋은 부위로 많이 보냈어.”
“맞아요! 잡채 고기 맛있어요.”
황미소가 웃으며 하는 말에 강 진이 웃다가 문득 강상식을 보았 다.
“형 혹시 육상 쪽에 아는 분 있 어요?”
“육상?”
강상식이 의아한 듯 보자, 강진 이 웃으며 말했다.
“미소가 엄청 잘 달려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웃었다.
“원래 애들은 잘 뛴다.”
“하긴, 애들은 다 잘 뛰지. 그래 서 잘 넘어지고 잘 다치고.”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같은 또래 남자 애들보다 더 잘 뛴대요.”
“그래?”
“어릴 때는 남자, 여자 신체 차 이가 많이 나지는 않지만…… 혹
시 미소한테 육상 재능이 있나 싶어서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황미소를 보았다.
“우리 미소가 정말 잘 뛰나 보 네.”
“나 잘 뛰어요. 한 번 볼래요?”
황미소는 대답을 듣지도 않고 앞으로 뛰어나갔다.
타타탓!
빠르게 뛰어가는 황미소를 보던
황민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게 빠른 건가?”
“빨라요.”
강상식이 살짝 놀란 듯 말하자 황민성이 그를 보았다.
“ 빨라 2”
“네.”
“네가 어떻게 알아?”
“보면 알죠.”
그러고는 강상식이 황민성을 보 았다.
“형은 애들 뛰는 거 본 적 없으 시죠?”
“음…… 본 적 없는 것 같네.”
애들 뛰는 것을 보려면 애들 뛰 는 곳에 가야 한다. 운동회 하는 날의 운동장 같은 곳 말이다.
하지만 황민성은 애들과 연관이 없는 삶을 살다 보니 애들 달리 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빠른지 안 빠른지 비교를 할 수 가 없는 것이다.
“너는 본 적 많아?”
“저희 회사 야유회에는 자녀 동 반해서 오게 하거든요. 거기에서 애들 나이 대 별로 달리기 시켜 서 상 줘요. 그래서 저는 애들 달리는 거 좀 봤죠.”
말을 하던 강상식이 황미소를 보며 소리쳤다.
“미소야, 이리 와!”
강상식의 외침에 황미소가 몸을 돌려서는 다시 빠르게 달려왔다.
다다다닷!
“아저씨, 나 되게 잘 달리죠!”
빠르게 달려와 외치는 황미소의 모습에 강상식이 웃으며 말했다.
“미소 달리는 거 좋아?”
강상식의 말에 황미소가 고개를 저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아요.”
“그래? 그럼 왜 달렸어?”
“제가 빨리 달리면 아저씨가 좋 아할 것 같아서요.”
해맑게 웃는 황미소의 모습에 강상식이 웃으며 머리를 쓰다듬
었다.
“다음부터는 아저씨들 좋아하는 거 말고 네가 뛰고 싶을 때 열심 히 뛰자.”
“네!“
“그리고 혹시 달리는 것이 즐겁 고 네가 제일 잘한다 싶으면 그 때 아저씨 앞에서 한 번 더 뛰어 줘.”
“나 지금도 뛸 수 있는데.”
“지금은 아저씨 좋아하는 거 보 고 싶어서잖아. 그런 거 말고 미
소가 정말 달리고 싶고, 뛰는 것 이 좋을 때 달려. 알았지?”
“네!”
대답한 황미소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뛰지 마.”
“지금은 뛰고 싶어요!”
황미소가 다시 뛰는 걸 지켜보 던 강진이 강상식을 보았다.
“어때요? 잘 뛰죠?”
“잘 뛰네.”
웃으며 황미소가 달리는 것을 보던 강상식이 강진을 보았다.
“그런데 운동은 힘들어.”
“그렇겠죠.”
“재능이 있어도 지금 어리잖아. 그럼 자기가 하고 싶은지 안 하 고 싶은지도 모를 거야. 조금 더 컸을 때도 육상이 좋고 재능이 있으면 그때 알아보자.”
강상식이 웃으며 황미소가 달리 는 것을 보았다.
“아직 어린데 굳이 벌써부터 진
로 생각할 필요 있겠어? 재능도 어릴 때는 재미로 키워야지, 이 게 네 미래다 하고 교육하면 재 능이 꽃피우기도 전에 썩어 버릴 수 있어.”
강상식의 말에 황민성이 그를 보았다.
“좋은 말이네. 어릴 때 재미도 없는데 재능 있다고 강제로 시키 면 하기 싫어질 수 있지. 상식이 가 생각이 깊네.”
“깊기는요. 미소가 지금 자기가 좋아서 뛰겠어요? 우리한테 칭찬
받고 싶어서 뛰는 거지. 칭찬 말 고 자기가 뛰고 싶을 때 뛰었으 면 좋겠어서 그래요.”
강상식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황미소를 보았다.
“애들 신발 좀 알아봐서 보내야 겠네.”
한편, 두 사람의 뒤쪽에서 조용 히 대화를 듣고 있던 황희승이 미소를 지었다.
딸의 장래를 생각하고 배려해 주는 세 사람의 모습을 보니 마
음이 편했다.
아이들이 뭘 잘 하는지, 뭘 좋 아하는지 배려해 주고 생각해 주 는 어른들이 옆에 있다는 것에 안심이 된 것이다.
황태수와 황미소, 황민성과 강 상식, 그리고 강진을 물끄러미 보던 황희승이 고개를 숙였다.
“우리 애들 앞으로 잘 부탁드리 겠습니다.”
화아악!
빛과 함께 황희승의 모습이 흩
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