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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식당-1021화 (1,019/1,050)

1021 화

황미소가 달리는 것을 보던 강 진은 자신의 눈앞으로 떨어지는 쪽지에 급히 손을 내밀었다.

탓!

강진이 쪽지를 잡자, 황민성이 그 손을 보았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자신들의 뒤에 있던 황희승이 사라진 것을 확인한 그는 다시 강진을 보았다.

황민성은 황희승이 사라졌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황미소는 달리고 있지만, 황태수는 아직 자신들의 옆에 있으니 말이다.

“태수야, 미소 좀 데려올래? 저 러다 다치겠다.”

“네.”

강진의 말에 황태수가 황미소를 향해 뛰어갔다.

“미소야!”

황태수가 뛰어가는 것에 황민성 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귀신을 보지 못하는 강상식과 달리 황민성은 저승 음식을 먹어 서 귀신을 볼 수 있었다. 황민성 은 귀신을 보는 삶을 선택했으니 말이다.

“황희승 씨가 없어졌는데……

황민성의 말에 강상식이 주위를 보았다.

“황희승 씨면 태수, 미소 아버 님?”

“네.”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강상 식이 말했다.

“그럼 방금 승천하신 거야?”

“네.”

대답한 강진이 쪽지를 펼쳤다.

그런 강진을 보던 강상식이 입 맛을 다셨다. 그의 눈에는 강진 이 허공에서 뭔가를 펼쳐서 보는 시늉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강진의 옆에 선 황민성 도 뭔가를 보고 있는것 같 고…….

‘그냥 나도 귀신 보면서 살까?’

자기만 귀신을 못 보니 소외감 이 들었다. 강진과 황민성이 하 는 건 자기도 뭐든 다 하고 싶은 외로운 강상식이었다.

강상식이 생각에 잠겨 있는 사 이, 강진은 쪽지를 읽었다.

〈아이들 커서 직장도 가지고 결

혼하는 것도 보고 가려고 했는 데…… 갑자기 이렇게 승천을 하 게 됐습니다.

어쩌다 지금 이렇게 승천을 하 게 됐는데, 여기 와서 생각을 하 니 조금 마음이 무겁습니다.

집사람이 먼저 가면서 애들 잘 부탁한다고 했는데…… 저는 그 약속을 두 번이나 지키지 못했습 니다.〉

쪽지에 적힌 글에 강진이 입맛

을 다셨다.

한 번은 죽었을 때, 또 한 번은 귀신으로서 승천할 때 아이들을 부탁했을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이 아직 이렇게 어린데 자신이 죽어서 첫 번째 약속을 어겼고, 이렇게 어린 아 이들을 두고 승천을 해서 두 번 째 약속도 어기게 된 것이다.

‘하지만 승천은 하셔야죠. 아내 분도 아저씨 승천해서 오신 거 약속을 어겼다 생각하지 않을 거 예요.’

속으로 중얼거리며 강진이 쪽지 를 마저 읽어 내려갔다.

〈애들 크는 거 보고, 잘 사는 거 보고 웃으면서 승천을 하려고 했는데…….

오늘 민성 씨와 상식 씨가 아이 들 보며 하는 말을 들으니 제가 없어도 아이들을 돌봐 줄 좋은 분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마음이 편했습니다. 아 마도 그래서 승천을 한 것 같습

니다.

앞으로도 우리 아이들 성공보다 는 열심히 살고…… 세 분처럼 몸보다는 마음이 편하게 사는 어 른이 되게 지켜봐 주십시오.

그리고…… 정말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자식을 맡기고 무책임하게 떠 나 버린, 못난 아버지가.〉

쪽지를 옆에서 같이 읽은 황민 성이 고개를 돌려 손 잡고 걸어

오는 두 아이를 보았다.

“황희승 씨는 못난 아버지가 아 닙니다. 살아서 아버지 역할을 못 하고 자식 안 챙기는 아빠도 많은데…… 황희승 씨는 죽어서 도 자식들 옆을 지키려고 했습니 다. 그런 당신은 정말 위대한 아 버지입니다.”

자식을 나 몰라라 하는 아버지 와 어머니들이 있는 세상이다. 하지만 황희승은 살아서는 힘들 게 일하며 자식들을 챙기려 했 고, 죽어서는 귀신으로 남아서

지키려 했다.

능력이 닿지 않아 아이들을 풍 요롭게 키우지 못했고, 삶이 길 지 못한 것이 죄라면 죄겠지 만…… 황희승은 존경받아 마땅 한 위대한 아버지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최 선을 다해 살았고, 남부끄럽지 않게 산 아버지이니 말이다.

“저도 황희승 씨처럼 좋은 아버 지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황민성이 작게 중얼거리며 달려

오는 아이들을 보았다.

“저 정말 잘 뛰죠!”

환하게 웃으며 다가오는 황미소 의 모습에 황민성이 웃으며 아이 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정말 잘 뛰네. 아저씨가 상으 로 달리기에 좋은 신발을 사 줘 야겠다.”

“정말요?”

“그럼. 정말이지.”

“그럼…… 우리 오빠도 사 줄

거예요? 나만 받으면 안 받을래 요.”

황미소의 말에 황태수가 급히 고개를 저었다.

“오빠는 신발 아직 멀쩡해.”

그러고는 황태수가 황민성을 보 았다.

“저는 신발 멀쩡하니 미소 것만 부탁 드리겠습니다. ”

자신은 됐으니 동생 것만 人} 달 라는 황태수의 말에 황민성이 웃 으며 아이의 어깨를 두들겼다.

“아저씨가 미소하고 태수, 그리 고 다른 아이들 신을 신발도 사 줄게.”

“이야! 정말이죠?”

“그럼 당연하지. 자! 그럼 우리 가서 맛있는 거 먹자. 미소 많이 뛰어서 배고프겠다.”

“네!”

황미소가 황태수의 손을 잡고 식판을 놓아둔 곳으로 서둘러 뛰 어가자, 황민성이 그 모습을 보 며 웃었다.

“형 신발 사실 때 저도 좀 보탤 게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웃었다.

“형 혼자 좋은 일 하는 꼴을 못 보네.”

“그럼요. 좋은 일을 왜 혼자 하 세요. 다 같이 해야죠.”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웃으며 끼어들었다.

“돈으로 하는 좋은 일이면 저도 하겠습니다.”

강상식의 말에 황민성이 그를 보았다.

“왜, 몸으로 하는 건 싫어?”

“몸으로 하는 좋은 일도 좋기는 한데…… 몸이 너무 힘들더라고 요. 그리고 사람이 분수를 알아 야죠.”

“분수요?”

강진이 의아한 듯 보자, 강상식 이 웃으며 말했다.

“잘하는 걸로 봉사를 해야지. 내가 빨래 봉사나 음식 봉사를

한다 생각을 해 봐라. 그건 돕는 것이 아니라 민폐지.”

그러고는 강상식이 황민성을 보 았다.

“그러니 이왕 돕는 거 잘하는 걸로 할게요. 저는 돈 잘 버니 돈으로 좋은 일 하겠습니다.”

“그것도 맞는 말이다. 네가 잘 하는 걸로 봉사해.”

웃으며 걸음을 옮기던 황민성이 말했다.

“그럼 이번 신발 기부 금액 청

구할 테니 너희들 나한테 계좌 번호 보내.”

“알겠습니다.”

강상식의 답에 강진이 슬며시 말했다.

“그런데…… 저한테 엔 분의 일 하자고 하지는 않으실 거죠?”

“왜, 액수가 클까 봐?”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민망한 듯 웃으며 말했다.

“저도 돈 보태고 싶은 마음은

많지만…… 형님들 걸음 제가 따 라가려면 제 가랑이가 찢어집니 다. 제가 얼마나 보폭이 작은데 요.”

강진이 보폭을 대폭 줄여 반 보 씩 움직이며 아장아장 걸었다.

“보세요. 저는 이렇게 보폭이 아주 작아요.”

그런 강진을 보며 황민성이 웃 었다.

“걱정하지 마. 금액 많이 안 들 어.”

“그럴 리가요. 요즘 애들 신발 비싼데. 그리고 여기만 신발 기 부하실 건 아니잖아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국 보육원에 모두 신발 기부 를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 가 다니는 곳에는 같이 해야지.”

“그러니까요. 그럼 가격이 상당 할 텐데……

“뭘 그런 걸 걱정해. 형들이 알 아서 할게. 너는 수저만 올려.”

조금만 보태라는 강상식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저야 당연히 그럴 생각입니다. 최대…… 백만 원까지는 보탤게 요.”

강상식이 놀란 듯 강진을 보았 다.

“그렇게 많이?”

황민성이나 강상식에게 백만 원 은 그리 큰 돈이 아니었지만, 강 진에게 백만 원은 상당히 큰 돈 이었다.

“그동안 저는 돈 안 보탰잖아 요.”

“너야 음식을 챙겨 오니까.”

황민성의 말에 강상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는 음식 봉사를 하잖 아.”

“그래도 이번에는 저도 보태고 싶어요.”

강진이 웃으며 앞에서 걸어가는 황미소와 황태수를 보았다.

“제가 보탠 돈으로 산 신발을 신고 뛰는 애들 보면서 저도 뿌 듯해하고 싶어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그런데 정말 돈 많이 안 들 거 야.”

“왜요?”

“이번에 신발 만드는 중소 업체 하고 계약했거든.”

“신발 업체요?”

“신발은 잘 만드는데 알다시피 브랜드 아니면 요즘 애들 잘 안 신잖아.”

“그렇죠.”

“애들한테는 미안하지만 한두 켤레 사는 것도 아니다 보니 브 랜드는 좀 부담스럽더라고. 그래 서 신발 잘 만드는 중소 업체로 하나 계약했어. 그래서 시중가보 다 조금 더 싸게 사는 거야.”

“아! 그러셨군요.”

강진의 말에 황민성이 애들을

보며 말했다.

“시작 안 했으면 모를까, 알고 시작했으면 힘닿는 데까지는 잘 지원해 줘야지. 그러려면 돈만 때려 박아서는 안 되고 가성비 있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 어.”

말을 하던 황민성이 피식 웃었 다.

“애들이 쓸 물건에 가성비 따져 서 미안하네.”

“미안하기는요. 형 말대로 한두

개도 아니고, 이번 한 번만 할 것도 아니잖아요. 좋은 제품 좋 은 가격에 살 수 있게 준비하는 것도 좋은 거죠.”

기부를 한 번 하고 끝내는 것보 단, 여러 번 지원하는 게 보육원 에도 좀 더 도움이 될 것이었다.

그래서 황민성이 좋은 신발 공 장을 알아본 거였다. 주기적으로 지원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황 민성은 의류 공장도 알아보고 있 었다. 신발처럼 좋은 옷을 좋은

가격에 사려고 말이다.

이야기를 나누며 황미소와 황태 수가 있는 나무 밑에 도착한 강 진과 황민성이 바닥에 앉았다.

흙바닥에 털썩 앉은 황민성이 식판을 들고는 잡채를 크게 집어 후루룩 먹었다.

“맛있네.”

“그러게요. 고기가 많아서 그런 지 맛이 좋네요.”

강진의 말에 강상식이 황민성에 게 식판을 건네받아 젓가락으로

잡채를 후루룩 먹고는 말했다.

“고기 씹히는 거 맛있다.”

강상식이 한 젓가락 크게 집어 먹는 것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 다.

“맛있게 많이 드세요.”

강상식이 잡채를 먹는 사이, 황 민성은 아이들이 밥을 먹는 것을 지켜보았다.

“기분 좋네.”

“잘 먹는 애들을 보는 것만큼

기분이 좋은 것도 없죠.”

“그러게 말이다.”

황민성이 아이들을 흐뭇한 얼굴 로 바라보자, 강진과 강상식도 함께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음식 을 맛있게 먹으며 즐거워하는 아 이들의 모습을 말이다.

추석 날 아침, 강진은 귀신 직

원들과 함께 황민성의 집에 들어 서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김이슬이 반갑게 맞이해 주는 것에 강진이 웃으며 손에 든 배 박스를 내밀었다.

“배예요.”

“뭘 이런 걸 다 사 오셨어요.”

“명절인데 빈손으로 오기는 그 렇잖아요.”

강진의 말에 김이슬이 웃으며

말했다.

“저도 그냥 예의상 해 본 말이 에요.”

웃으며 김이슬이 몸을 옆으로 움직였다.

“들어오세요.”

“네.”

집 안으로 들어간 강진은 고소 한 기름 냄새와 조기 굽는 냄새 를 맡을 수 있었다.

“냄새 맛있게 나네요.”

“명절 아침이잖아요.”

김이슬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인들은 보통 아침에는 있는 반찬에 국이나 하나 더 해서 밥 을 먹는다.

하지만 명절만큼은 다르다. 명 절 아침에는 가장 좋은 생선을 굽고, 소고기국을 끓이고 소불고 기나 갈비를 내놓는다.

정말 다 먹지도 못할 만큼 거하 게 음식을 해서 내놓는데, 그것

이 한국인의 명절 아침상의 모습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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