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5 화
[오늘 첫눈이 내렸습니다. 미끄 러운 눈길 안전운전하시기 바랍 니다.]
첫눈이 왔다는 뉴스를 보던 강 진이 배용수를 보았다.
“첫 방영 날 눈 오고 좋네.”
“그러게. 아가씨가 눈 오면 분 위기 좋을 거라고 했는데.”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강진은 식탁 옆에 세워져 있는 꽃 피어나다 책을 집었다.
“정말 드라마로 나오네.”
“그러게 말이다.”
이야기를 나누던 강진이 시간을 보았다.
<09:45>
“얼마 안 남았다.”
“혜원이 긴장되겠어요.”
이혜미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TV 를 보다가 가게 안에 있는 귀신들을 보았다.
가게 안에는 여러 귀신들이 모 여 있었다. 처녀 귀신들과 허연 욱, 최호철, 그리고 장대방 등등 이 와 있던 것이다.
오늘 드라마를 같이 보려고 강 진이 조금 일찍 귀신들을 불러
모았다.
“선생님은 요즘도 병원에 계시 죠?”
강진의 물음에 허연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야 늘 그렇지요.”
“요즘 자주 안 오셔서 어디 멀
리 가셨나 했어요.”
“죄송합니다. 앞으로 자주 오겠 습니다.”
“자주는 말고요. 가끔 오다
가…… 좋은 날에 가셔야죠.”
자주 오다 보면 오래 오게 될 수 있으니 말이다.
“감사합니다.”
허연욱이 고개를 끄덕이자 강진 이 웃으며 그를 보았다.
‘그러고 보면 허 선생님한테 참 도움을 많이 받았어.’
식당 초반에 허연욱이 마사지도 해주고 침도 놔주고 해서 조금은 덜 피곤하게 일을 했었던 강진이 었다.
그리고 여러 조언과 좋은 이야 기를 해 준 것도 있었고 말이다.
허연욱을 보던 강진이 고개를 돌려 최호철을 보았다.
“형 덕에 광현 형 실적 잘 나온 다고 하던데요.”
“내 도움이라기보다는 나쁜 놈 들 잡겠다고 귀신 돼서도 열심히 탐문 조사하는 경찰 귀신들 덕이 지.”
“그래도 형 도움이 없는 건 아 니잖아요.”
강진의 말에 최호철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 니었다.
최호철이 각 지역을 다니면서 만난 귀신 경찰들을 최광현에게 연결해 줘서 범인을 많이 잡았으 니 말이다.
“아, 광현이 연애한다.”
“ 연애요?’’
“이번에 경찰서에 새로 온 여경 이 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연 애를 하게 됐어.”
“잘 됐네요.”
“잘 된 거지. 광현이 그 녀석도 나이가 있으니 여자 만나야지.”
“연애를 하면서 나한테는 이야 기도 안 한 거네요.”
강진이 한마디 해야겠다며 말을 하자, 최호철이 웃었다.
“너 연애 안 하는데 말하기 어 렵겠지. 그리고 너는 우리하고 가까이 있어서 연애 안 하는 것 도 있잖아.”
“에이! 그렇지 않아요. 무슨 그
런 생각을 하세요.”
신경 쓰지 말라고 말을 했지만, 사실 그런 이유도 있었다. 연애 를 하면 숨겨야 할 것이 많으니 말이다.
숨기기 싫다고 해서 귀신 본다 고 말했다간 상대가 떠나갈 확률 이 높았다.
물론 여자를 만날 시간 자체도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점심 준비하고, 좀 쉬었다가 곧장 저 녁 장사 준비를 해야 했다. 주말 에는 봉사를 하러 다니고 말이
다.
강진의 말에 최호철이 그를 보 다가 말했다.
“너무 저승식당에 묶여서 살지 마라.”
“알았어요.”
웃으며 대답한 강진이 장대방을 보았다.
“크리스마스에 불러 줄 테니까 그때는 집에서 보내.”
“고맙습니다.”
장대방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았다.
‘이 녀석도 어서 승천해야 할 텐데.’
장대방은 승천을 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그런데 묘하게 승천 을 못 하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강진이 부르지 않아 도 혼자서 서울까지 올라올 정도 로 묵은 귀신이 될 것 같았다.
장대방과 이야기를 나누던 강진 이 가게를 둘러볼 때, 문이 흔들
렸다.
띠링! 띠링!
닫혀 있는 문이 흔들리는 것에 강진이 의아한 듯 보고 있자 목 소리가 들려왔다.
“강진아, 형이다.”
익숙한 목소리에 강진이 웃으며 문을 열었다.
띠링!
문이 열리자 황민성이 강상식과 함께 안으로 들어왔다.
“어떻게 두 분이 오세요? 집에 서 보시는 거 아니었어요?”
오늘 첫 방영이라 집에서 가족 들과 드라마를 볼 줄 알았는데 이곳에 온 것이다.
황민성은 뒤에서 자신을 따라 들어오는 김소희를 슬쩍 보고는 말했다.
“드라마는 이야기하면서 봐야 재밌는데, 아가씨 우리 집에서 보면 혼자 보셔야 하잖아. 그래 서 여기로 왔어.”
“나는 형이 오라고 해서 왔지.”
“잘 하셨어요.”
두 사람의 말에 웃으며 답한 강 진이 김소희에게 고개를 숙였다.
“오늘 드디어 방송입니다.”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작품이니 많이들 봐야 할 텐테...
말을 하며 김소희가 자신을 보 자, 강진이 웃으며 말했다.
“이미 제가 아는 사람들한테는 모두 보라고 했습니다.”
강진의 답이 마음에 드는 듯 김 소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지. 좋은 이야기는 많이 보면 좋으니까. 나도 내 주위 아 는 이들에게 모두 알리라 했으니 많이들 볼 것이네.”
“아는 이들이면 저승식당 사장 님들요?”
“그이들도 있고, 나를 모시는 무당과 스님들에게도 다 말을 했
지. 좋은 작품이니 많이들 보라 고.”
“ 무당요?”
“요즘 가짜 무당이 많기는 하지 만 여전히 신과 소통하는 진짜 무당은 있지. 손님들에게 이 드 라마 자주 보면 건강에 좋다 했 으니 많이들 보겠지.”
“드라마를 보는데 건강에 좋습 니까?”
허연욱이 의아한 듯 슬며시 물 었다.
의사인 그로서는 이해할 수 없 는 일이었다. 그에 강진이 웃으 며 말했다.
“드라마 제목을 소희 아가씨가 친필로 쓰셨거든요. 무신의 가호 가 담겨 있어서 글을 자주 보고 하면 건강에 도움이 된대요.”
“아!”
허연욱이 고개를 끄덕였다. 살 아 있는 상태라면 그게 말이 되 나 싶겠지만, 귀신인 상태로 김 소희를 알다 보니 이해가 된 것 이다.
“병원에서 틀어주면 좋겠습니 다.”
“그것도 좋겠네요.”
대답하며 강진이 자리를 가리키 자, 김소희가 그곳에 앉았다.
강진은 자리에 앉은 그녀의 앞 에 조각 케이크와 음료를 가져다 놓았다.
“제가 직접 만든 겁니다.”
“이런 것도 만들 줄 아나?”
김소희의 물음에 강진이 배용수
를 보았다.
“용수가 요즘 제과 제빵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제과와 제빵이라……
김소희의 중얼거림에 배용수가 말했다.
“한식 요리사라도 다른 쪽 요리 를 조금씩이라도 할 줄 알면 도 움이 됩니다.”
“그렇군. 잘 먹겠네.”
포크로 조각 케이크를 자르던
김소희가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불투명한 포크에 진짜 케이크가 들린 것이다.
“저승 식재로 만들었군.”
“케이크는 귀신분들이 드실 것 같아서 더 맛있게 드시라고요.”
“그렇군.”
김소희가 케이크가 입에 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저승 식재를 쓴 데다가 강진이 만들어서 더 맛이 좋았다.
김소희가 맛있게 케이크를 먹는
것을 보던 강진이 시간을 확인하 고는 말했다.
“이제 곧 시작하겠네요.”
강진의 말에 귀신들과 사람들이 모두 TV를 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웅장하면서도 잔잔한 사극풍 음 악이 흐르고, 화면에 검은 붓글 씨로 꽃 피어나다가 한 획씩 쓰 여 나갔다.
〈꽃 피어나다〉
“소희 아가씨가 쓴 글입니다.”
“ 쉿.”
무신의 가호를 담아 쓴 글씨가 나타나자 강진이 손가락으로 가 리켰다. 그에 김소희가 주의를 주자 강진이 조용히 화면을 보았 다.
타이틀이 지나간 이후, 출연진 들의 모습이 하나씩 화면을 채우 기 시작했다.
“아……
강진은 작게 탄식을 토했다. 주 연들의 모습이 지나간 뒤, 문지 혁이 까맣게 분장한 얼굴로 웃고 있는 모습이 화면 가득 나왔기 때문이었다.
강상식도 화면을 보고는 급히 핸드폰을 꺼내려다가 황민성을 보았다.
“형 저 아무래도……
“그래. 지나 씨한테 가 봐.”
“네!”
서둘러 가게를 나서던 강상식은
김소희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저……
“가 보게.”
무슨 말을 할지 아는 김소희가 고개를 끄덕이자, 강상식이 더는 말을 하지 않고 가게를 서둘러 나섰다.
지금 문지나는 TV 속 CG로 나 오는 문지혁을 보며 울고 있을 테니…… 그녀의 옆에 있어 줘야 했다.
강상식이 서둘러 가게를 나서는
것을 보던 강진이 TV를 보았다. 이미 문지혁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오프닝에 잠시 나오는 거라 나 오는 장면이 짧은 것이다.
“지혁 씨 정말 사람처럼 나왔네 요.”
“요즘은 CG 기술이 좋잖아. 검 둥이 나오는 장면 보면 정말 지 혁 씨가 연기하는 것 같을 거 야.”
촬영하는 것을 종종 보곤 했던
황민성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 덕이다가 미소를 지었다.
“지나 씨가 좋아하겠네요.”
“시청자들도 좋아하겠지. 좋은 연기를 하는 배우니까.”
비록 CG이기는 하지만, 문지혁 의 목소리와 연기하는 모습 데이 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즉, 문지혁이 좋은 배우라서 좋 은 CG가 나온 것이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광고가 끝나고, 드디어 꽃 피어나다가
시작을 했다.
처음 장면은 그림 같은 강가에 서 왜구들과 싸우는 박신예의 모 습이었다.
‘이건 내가 본 그곳이네.’
강진이 푸드 트럭으로 음식을 해 주러 갔던 촬영장이었다.
그에 강진이 입을 열려고 할 때 김소희가 그를 보았다.
“조용.”
그녀의 제지에 강진이 입을 다
물고는 드라마를 보았다.
아름다운 배경에서 피를 흘리며 검을 휘두르는 박신예가 있었다.
그녀의 가슴에 검이 박혀 들어 가는 순간, 박신예는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을 보았다.
잠시 후, 구름을 보는 박신예의 모습이 어린 김소희로 변했다.
어린 김소희는 연무장에 복실이 와 함께 기웃거리고 그것을 걸려 아버님에게 혼이 나고…… 연무 장 청소를 하는 검둥이를 불러
목검을 훔쳐 오게 했다.
‘정말 말썽장이셨네.’
웃으며 드라마를 보던 강진이 슬며시 김소희를 보았다. 김소희 는 그리움이 가득한 얼굴로 화면 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때 그 시절 자신의 모 습과 복실이, 그리고 사랑했던 가족들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우리 아가씨 정말 행복하시구 나.’
화면 속 김소희는 정말 행복하
게 웃고, 즐겁게 놀았다. 게다가 주위엔 좋은 사람들이 넘쳐났다.
자상하면서도 호랑이 같은 어머 니, 무섭게 보이지만 속으로는 정이 가득한 아버지, 그리고 늘 옆에서 살펴주는 다정한 오라버 니, 누이처럼 옆에서 보살펴 주 는 복실이까지…….
‘귀신도 꿈을 꿀 수 있으면 좋 을 텐데.’
그럼 오늘 김소희는 정말 좋은 꿈을 꿀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미소를 지으며 김소희를 보던 강진이 화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화면에서는 마을에 온 사당패의 공연을 보며 환하게 웃는, 박혜 원이자 어린 김소희의 모습이 나 오고 있었다.
화면 속 박혜원이 웃는 것처럼 김소희도 미소 짓고 있었다.
꽃 피어나다 1회가 끝이 나자 강진이 가게 안을 보았다. 가게 안에는 이미 귀신들이 현신을 한
상태였다.
드라마가 11시 넘어서 끝나다 보니, 중간에 현신을 한 것이다.
“드라마 잘 보셨습니까?”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미소를 지었다.
“내…… 이런 시절이 생각나더 군.”
“그러셨습니까.”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었고, 아
름다운 시절이었지.”
광고가 나오는 화면을 지그시 보던 김소희가 잠시 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주방 좀 쓰겠네.”
“주방요?”
“내 음식 몇 가지 하고 싶군.”
“드시고 싶은 음식 있으면 말씀 하시면 제가……
“아니네. 오늘은 어머니가 해 주던 음식을 먹고 싶군.”
“알겠습니다.”
김소희와 함께 주방으로 들어간 강진은 그녀가 음식 만드는 것을 도왔다.
김소희가 만든 건 배추전과 몇 가지 나물무침이었다.
음식을 다 만든 김소희는 그것 을 가지고 홀로 나왔다.
“맛들 보시게나.”
김소희가 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하는 말에 강진이 웃으며 말했 다.
“아가씨께서 손수 만드신 음식
을 먹으니 참 황송합니다.”
강진의 말에 김소희가 작게 웃 으며 말했다.
“내 가끔 해 주도록 하지.”
“앞으로도 해 주신다고요?”
강진이 눈을 휘둥그레 뜨자 김 소희가 작게 헛기침을 하고는 자 리에 앉았다.
“가끔이라 하였네.”
김소희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그녀를 보았다.
김소희가 손수 음식을 해 주겠 다니……. 물론 가끔이라는 단서 가 붙기는 했지만 김소희의 성격 을 생각하면 정말 큰 결심이었 다.
‘가끔 말고 자주 얻어먹겠습니 다.’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은 눈앞에 서 쪽지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는 급히 그것을 받았다.
탓!
쪽지를 받아 든 강진이 그것을
펼쳤다.
〈강진 씨, 저 혜원이 엄마예 요.〉
박혜원 어머니가 보낸 쪽지에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혜원이 드라마 잘 나온 것 보 고 승천을 하셨나 보구나.’
작게 웃으며 강진이 쪽지를 보 았다.
쪽지에는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혼자서도 이렇게 잘 해나가는 딸 을 보니 안심이 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쪽지 끝부분엔 앞으로도 딸을 잘 봐 달라는 부탁도 적혀 있었 다.
강진은 웃으며 쪽지를 주머니에 넣었다.
‘혜원이는 앞으로도 잘 해나갈 겁니다.’
아는 귀신이 한 명 더 승천했다
는 것에 마음이 좀 편안해진 강 진이 웃으며 가게에 있는 귀신들 을 보았다.
귀신들은 김소희가 요리를 하는 사이 내어 온 음식과 술을 마시 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하하하!”
“드라마 재밌더라고요.”
“그러게 말이야.”
귀신들이 꽃 피어나다를 화제로 이야기를 나누며 웃는 것을 보던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부디 여기에 계시는 동안은 늘 이렇게 웃으면서 지내세요. 그리 고…… 좋은 날 햇살 따뜻할 때 웃으며 승천들 하세요.’
속으로 귀신들에게 말을 건넨 강진이 김소희의 앞에 앉았다.
“그럼 저도 한 입 먹겠습니다.”
“먹어 보게.”
김소희가 기대감 어린 눈으로 자신을 보는 것에 강진이 웃으며 배추전을 뜯어 입에 넣었다.
배추전을 먹는 자신을 지그시
보는 김소희의 모습에 강진이 웃 으며 말했다.
“정말 맛이 좋습니다.”
“그래. 많이 먹게나.”
환하게 웃는 김소희의 모습에 강진이 웃으며 배추전을 한 젓가 락 뜯어 내밀었다.
“아가씨도 드세요.”
그에 잠시 머뭇거리던 김소희가 슬며시 젓가락으로 배추전을 건 네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