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7화
[여보세요.]
밝은 갈색으로 염색을 한 젊은 여자의 모습에 김소희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
“복실…… 언니?”
김소희의 말에 젊은 여자가 핸 드폰 화면에 자신의 얼굴을 들이 밀었다.
[아가씨? 소희 아가씨?]
수백 년 만에 복실의 목소리를 들은 김소희의 눈가에 눈물이 맺 혔다.
“복실…… 언니야.”
김소희의 부름에 복실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더니 이내 주르륵 홀러내렸다.
[어머! 우리 아가씨! 우리 아가 씨네! 아이고, 우리 아가씨! 어쩜 좋아! 아가씨, 우리 아가씨! 얼굴 이 왜 이리 상하셨어요. 살이 왜 이리 빠지셨어요.]
쉴 새 없이 계속 말하는 복실은 눈물을 줄줄 홀리고 있었다. 그 런 복실을 보며 김소희가 미소를 지었다.
“언니 왜 이렇게 울어.”
[아가씨도 우시잖아요. 울지 말 아요.]
자신도 울면서 상대에게 울지 말라고 말하던 김소희가 핸드폰 화면에 뜬 복실을 가만히 보다가 말했다.
“언니는…… 많이 예쁘다.”
[예, 예쁘기는요. 아가씨야말 로…… 한 송이 꽃이세요.]
“아니야. 언니가 더 예뻐.”
[아니에요. 아가씨가 더 예쁘세 요.]
“언니는 잘 지내?”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아가 씨는 잘 지내세요?]
“나는 잘 지내고 있어.”
[하아! 이승에서 그 오랜 시간 있으셨으니 얼마나 고생이세요.
아가씨, 여기도 살 만한 곳이에 요. 열심히 살면 이승보다 더 잘 먹고 잘 살 수 있더라고요.]
“이야기 들었어. 언니 거기에서 부자가 됐다며.”
김소희의 말에 울던 복실이 눈 을 닦으며 웃었다.
[아니에요. 그냥…… 살아서 했 던 것처럼 하니 저절로 돈이 벌 리더라고요.]
복실의 말에 강진이 핸드폰 속 그녀를 보다가 작게 웃었다.
‘하긴, 조선시대 노비의 삶대로 저승에서 살았다면 돈이 안 벌릴 수가 없었겠네.’
조선시대 노비는 해가 뜨면 일 하고 해가 지면 방에서 볏짚을 꼬아서 짚신을 만들고 다른 잡일 들을 했다.
그리고 밤이 깊어서야 잠에 들 었으니, 그런 삶대로 저승에서도 살았다면 돈이 저절로 벌렸을 것 이다.
이승과 달리 저승은 일을 하면 일을 한 만큼 대가를 지불하니
말이다.
‘그리고 난리 중에도 술을 구할 정도로 수완이 좋은 분이니……
정당하게 일하는 데다 엄청 부 지런하니 돈을 벌기 싫어도 벌 수밖에 없었다.
‘지금 시대에 태어났으면 대기 업 창업주를 하셨을 텐데.’
강진이 속으로 중얼거릴 때, 복 실이 눈을 닦으며 말했다.
[저 여기 있는 동안 우리 동지 들 많이 만났어요.]
“잘들…… 왔던가요?”
[그럼요. 다들 무사히 이곳에 와서 같이 모여 살며 좋은 시간 보냈어요. 그리고 다 좋은 곳으 로 환생을 했어요.]
“잘 됐네요.”
[우리 아가씨도 어서 오셔야 할 텐데…….]
그리움이 가득한 눈으로 화면을 보던 복실이 환하게 웃으며 말했 다.
[저 아가씨하고 살려고 집도 지
었어요.]
“건물을 샀다는 이야기는 들었 어.”
[그건 제 잡화점 건물이구요. 아가씨하고 같이 살려고 강이 내 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예전에 저 희 살던 집하고 비슷하게 지었어 요. 아! 그리고 집 뒤에 연무장 도 만들었어요. 주위에 꽃도 심 었구요. 아가씨 좋아하는 개나리 도 많이 심어서, 개나리 필 때 되면 연무장 주위가 모두 노란색 으로 물들어요.]
복실의 말에 김소희가 미소를 지으며 화면을 보다가, 손가락으 로 복실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언니는 정말 열심히 살고 있네 요.”
[열심히 살아야죠. 그래야 아가 씨 만나서 떳떳하죠.]
“ 나는......"
뭔가 말을 할 듯하다가 멈추는 김소희의 모습에 복실이 미소를 지었다.
[아가씨는 제가 아는 모든 이를
통틀어서 가장 열심히 사는 분이 세요.]
“내가…… 그래요?”
[그럼요. 아가씨는 늘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사시는 분이세 요.]
복실이 웃으며 김소희의 눈을 바라보았다.
[정말 보고 싶어요.]
복실의 말에 김소희가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얼굴을 보다가 입 을 열었다.
“언니 이거 제 핸드폰이에요. 앞으로는 자주 연락드릴게요.”
[아니에요, 아가씨. 제가 연락을 자주 할게요.]
“누가 하면 어때요. 서로 같이 해요.”
[그런데 아가씨.]
“왜요?”
[지금 전화 끊으시려는 것 아니 죠?]
복실의 말에 김소희가 웃었다.
평소 보기 힘든 환한 얼굴에 강 진이 그녀를 볼 때, 김소희가 웃 으며 말했다.
“오늘 밤새 이야기해요.”
[정말요? 진짜죠?]
“그럼요.”
웃으며 김소희가 복실이의 얼굴 을 보다가 말했다.
“그런데 언니 머리색이 왜 그래 요?”
[요즘 저승에서 유행하는 색인
데 이상해요?]
복실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쓰다 듬으며 하는 말에 김소희가 미소 를 지었다.
“너무 예뻐요.”
[정말요?]
“그럼요.”
[그럼 아가씨 오시면 제가 염색 을 해 드릴게요.]
복실의 말에 김소희가 잠시 멈 칫했다. 자신의 머리카락이 다른
색으로 변한다는 걸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예쁘게 해 주셔야 해요.”
[제 손이 얼마나 꼼꼼한지 아시 잖아요. 제가 정말 예쁘게 해 드 릴게요.]
“고마워요.”
그 후로 두 여자는 이런저런 이 야기를 하며 때로는 울고, 때로 는 웃었다. 그 모습에 강두치가 미소를 지었다.
휙! 휙!
그러던 중 강진이 자신에게 손 짓을 하는 것을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강두치가 다가오자, 강진이 웃 으며 배용수와 JS 직원이 앉아 있는 곳을 가리켰다.
“여기 앉으세요.”
강진의 말에 강두치가 자리에 앉으며 직원을 보았다.
“넌 안 갔어?”
“여기 사장님이 식사하고 가라 고 해서요.”
“그래. 많이 먹어라. 여기 맛있 어.”
“그러게요. 아주 맛이 좋습니 다.”
직원의 말에 강두치가 강진을 보았다. 자기도 뭐 주라는 시선 으로 말이다.
그에 강진이 웃으며 음식을 그 에게 가져다주고는 말했다.
“오늘 정말 잘 하셨습니다.”
강진의 말에 강두치가 고개를 돌려 김소희를 보았다. 김소희는 환하게 웃으며 복실과 영상통화 를 하고 있었다.
오백 살쯤 되는 처녀귀신이지 만, 지금의 그녀는 친한 언니와 이야기를 하며 좋아하는 어린 소 녀로만 보였다.
김소희를 잠시 보던 강두치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말 좋아하시는군요.”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그의 맞
은편에 앉으며 소주를 따라주었 다.
“이렇게 좋아하시는데 진작 영 상통화 한 번 하게 해 주지 그러 셨어요.”
“예전에 복실 누님에게 전화를 한 번 걸어드리려고 한 적이 있 었습니다. 그때 아가씨가 괜찮다 고 거절을 했습니다.”
“왜요? 저렇게 좋아하시는데.”
“왜, 그런 것 있잖습니까.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고, 누
우면 자고 싶고.”
“아…… 통화를 하면 더 보고 싶을까 봐 그러신 모양이군요.”
강진의 물음에 강두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전화를 안 시켜 드렸었 는데, 오늘은 누님이 핸드폰을 가지신 김에 영상통화를 걸어 드 렸습니다. 누님이 핸드폰을 가지 고 다니시면 보고 싶을 때 영상 통화라도 마음껏 하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
말을 하던 강두치가 웃으며 김
소희를 보았다.
“그러다가 만나고 싶다는 생각
이 강하게 드시면... 승천을 하
실 수도 있고요.”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강진의 말에 강두치가 김소희를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누님이 저렇게 좋아할 줄 알았
으면 십 년 전에 통화시켜 드릴
걸 그랬습니다.”
“십 년요?”
“영상통화가 그때쯤 나왔으니까 요.”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한 시기는 기억이 안 나지만 십 년 전쯤부터 영상 통화를 대중적으로 쓰기 시작했 으니 말이다.
“그래도 지금이라도 복실 누님 과 얼굴 보면서 통화하시니 다행 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이젠
복실 누님이 자기 사진 찍어서 핸드폰으로 보내면 사진으로라도 계속 볼 수도 있고요.”
강두치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아마 올해 들어 가장 잘 한 일 같습니다.”
“올해는 방금 시작했는데요.”
지금이 월 1일 새벽 12시 15 분이니 올해 딱 15분 지난 셈이 었다.
강진이 의아한 듯 보자, 강두치 가 웃으며 김소희를 보았다.
“올해 누님이 저렇게 환하게 웃 는 모습을 볼 일…… 또 있을 것 같습니까?”
강두치의 말에 강진도 김소희를 보았다. 그러고는 작게 웃었다.
“그 말이 맞네요.”
김소희가 가끔 웃거나 미소를 지을 때가 있기는 하지만, 지금 처럼 눈물까지 맺힐 정도로 좋아 하고 웃는 모습은 강진도 처음 보았다.
이렇게까지 좋아하는 모습은 투
희를 볼 때도 볼 수 없는 것이었 으니 말이다.
“그래서 거기에 좋아하는 남자 는 없어요?”
[남자는요. 그리고 여기 있는 남자들 대부분 얼마 있으면 환생 하러 휙 하고 사라지거나 그렇지 않으면 정말 순둥순둥한 사람들 만 있어서 재미가 그렇게 없어 요.]
“정말요?”
[그럼요. 여기 오래 있으려면
VIP로 정말 세상 착한 놈이어야 하거든요.]
“착한 남자 싫어요?”
[싫지는 않은데 재미가 없어요. 몇 만나 봤는데 으……. 쉬는 날 에 봉사 활동만 그렇게 가자고 하더라고요. 재미 드럽게 없어 요.]
김소희와 복실이 남자 이야기를 하는 것에 강진이 웃었다. 김소 희가 저런 대화를 할 줄은 몰랐 던 것이다.
“올해가 아니라 근 백 년 중 가 장 잘 한 일이신 것 같습니다.”
강진의 말에 강두치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백 년이라…… 후! 누님이 저 리 웃는 것을 보면 백 년이 아니 라 내가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 인 것 같습니다.”
강두치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김소희를 보다가 슬쩍 주위에 있 는 귀신들을 보았다.
평소 김소희를 어려워하던 귀신
들이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반면 처녀귀신들은 눈물 을 훌쩍거리며 김소희를 보고 있 었다.
특히 이지선은 펑펑 울며 김소 희를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강진이 웃으며 소 주를 따라서는 잔을 들었다.
“한잔하시죠.”
강진의 말에 강두치가 잔을 들 어 가볍게 부딪히고는 단번에 잔 을 비웠다.
“우리 누님 잘 부탁합니다.”
“부탁하지 않으셔도 저한테도 무척 소중한 아가씨세요.”
강진의 말에 슬며시 배용수가 말을 보탰다.
“저한테도 소중하신 분입니다.”
“저두요.”
“저도요.”
배용수의 말에 이혜미와 강선영 도 말을 보탰다. 그에 강두치가 웃다가 두 여자를 보았다.
“임정숙 씨 환생했습니다.”
“아!”
“그래요? 어디로요?”
강진이 놀라 급히 묻자, 강두치 가 웃으며 말했다.
“그건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일단 좋은 집에서 태어났습니 다.”
“부잣집요?”
배용수의 물음에 강두치가 웃으 며 고개를 저었다.
“돈이 많다고 다 좋은 집은 아 니지요.”
“그건 그러네요.”
“아기가 태어나는 날, 부모님이 환하게 웃으며 세상에서 가장 행 복해하는 집에서 태어났고…… 양가 어머님이 새벽에 일찍 일어 나 미역국을 끓이고 아버님의 차 를 타고 산후조리원에 오는 집안 이면 좋은 집 아니겠습니까.”
강두치의 말에 이혜미와 강선영 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말만 들어도 정말 화목한 집이었다.
사랑 속에 태어났고 태어남을 축복해 주는 가족이 있으니, 돈 은 문제될 것이 아니었다.
“정말 잘 됐네요.”
강진이 웃으며 하는 말에 강두 치가 살며시 말했다.
“원래 말하면 안 되는데…… 오 늘 아가씨 좋아하시는 거 보니 저도 기분이 좋아서 말을 해 드 립니다.”
“문제 생기는 거 아니에요?”
“시말서 한 장 정도는 써야겠
죠. 이 바닥이 비밀은 또 없어 서.”
그 정도는 각오한다는 강두치의 모습에 강진이 웃으며 소주를 따 라 주었다.
“언제든 연락 주시면 맛있는 음 식 해 놓고 기다리겠습니다.”
“연락 없이 와도 언제나 맛있는 걸요.”
강두치가 기분 좋게 웃으며 소 주를 마시는 것에 강진이 김소희 를 보았다.
김소희는 해맑게 웃으며 여전히 복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 김소희를 보던 강진이 가 게 안을 둘러보았다.
누군가는 김소희를 보며 웃고 있고 누군가는 새해 복을 빌며 술을 마시는가 하면 또 누군가는 옆자리 다른 손님과 이야기를 나 누고 있었다.
가게에서 술을 마시며 새해를 맞이하는 귀신들을 보던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올해에는 정말 좋은 일들만 생 길 것 같은데.’
어쩐지 올해에는 정말 그럴 것 같은 느낌에 강진은 기분이 좋았 다.
저희 식당에 오는 모든 분들이 다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완〉
[작가 이야기]
연재 시작은 2019년 3월 18 일...
작업을 시작한 시기는 2018년 9월쯤이니, 대략 삼 년 저승식당 과 함께 한 것 같습니다.
뜬금없이 완이라는 글자가 나와 놀라시는 분들도 있으시겠죠.
아직 주방 옆문도, 배용수도, 이 런저런 이야기도 안 끝났으니까 요.
주방 옆문과 배용수, 그리고 다 른 최호철과 친한 귀신들을 승천 시키지 않고 완결을 한 이유는 외전을 위해서입니다.
외전이 아닌 계속 이어 쓸 생각 도 했지만…… 삼 년이라는 시간 동안 일일 연재를 계속 이어나가 다 보니 소재가 부족해졌습니다.
그래서 잠시 휴식을 하면서 좋 은 이야기로 외전을 쓰려 합니 다.
본 이야기를 완결 짓기 위해 몇 회 동안은 잔잔한 이야기로 풀어 나가 실망을 하셨을 독자님들도 계실 것입니다. 정말 죄송하지 만…… 저승식당은 그런 것 같습 니다.
잔잔한 일상 이야기, 그리고 좋 은 사람들...
아마도 삼 년 동안 독자님들이 저승식당을 좋아해 주신 이유는
나쁜 사람보다는 주위에 있는 어 머니, 아버지, 형제, 친구…… 어 디서나 볼 수 있지만 너무나 소 중한 분들의 자극적이지 않은 집 밥 같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 1025화가 완결입 니 다.
1026화, 1027화가 원래 외전인 데 이런 느낌으로 외전을 구상 중이라는 것을 보여 드리려고 2 화를 더 연재했습니다.
앞으로 좀 쉬고 뉴스 자주 보면 서 독자님들에게 좋은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너무 가까이 있어 소중한 것을 모르는 사람은 바보라네. ‘말을 하지 않아도 알겠지.’, ‘왜 내 마 음을 몰라?’ 이런 말을 할 바에 는 전화를 한 통 하시게나.”
소중한 분들에게 전화 한 통 하 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외전으로 돌아오겠습니다.
형상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