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1030화 (1,028/1,050)

외전 3화

촤아악!

기름이 튀는 소리를 들으며 배 용수가 말했다.

“비 내리는 소리와 전 만드는 소리…… 참 맛있는 소리예요.”

배용수의 말에 이진웅이 작게 고개를 젓고는 그의 앞에 놓인 버너와 프라이팬, 그리고 반죽이 들어 있는 그릇을 보았다.

“비 오는 날 그거 옮기는 것도 귀찮지 않냐?”

“음식을 하는 과정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생각하라고 숙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맞다. 음식을 만들고, 그 걸 그릇에 담고, 손님상에 내는 그 과정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생 각해야 좋은 요리사가 되는 것이 다.”

대화를 하던 두 사람은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개량 한복을 입은 김봉남이 우 산을 쓰고 뒤에 서 있었다.

“숙수님.”

두 사람이 급히 일어나려 하자, 김봉남이 웃으며 말했다.

“앉아 있어.”

그러고는 김봉남이 정자 위로 올라오며 말했다.

“흔히 요리사는 음식을 완성하 는 사람이라 생각들 하지만, 좋 은 요리사는 좋은 재료를 찾고, 그 재료를 조리할 좋은 도구를

준비하고, 음식을 맛있게 만들고 그걸 어울리는 그릇에 담는 사람 이다. 그 과정 하나하나가 모여 야 좋은 요리사다.”

김봉남의 말에 이진웅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서 요리사가 피곤한 직업 이죠.”

이진웅의 말에 김봉남이 웃으며 그를 보았다.

“그럼 지금이라도 다른 직업을 찾아보지그래?”

“에이! 지금까지 배운 게 아까 워서 어떻게 다른 직업을 찾습니 까.”

다른 직원들이라면 김봉남이 어 려워 이런 농을 못 하겠지만, 이 진웅이야 김봉남 밑에서 20년이 니 이제는 제자가 아니라 나이 차이 좀 나는 친구나 다름없이 편한 사이였다.

이진웅의 말에 웃은 김봉남이 부침개를 보았다.

“비 오는 날에는 늘 부침개구 나.”

“장마 때는 안 하는데요.”

“장마 때는 매일 비가 오니까.”

이진웅이 웃으며 하는 말에 배 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오랜만에 비가 와서 부 침개를 해야 합니다.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 김봉남은 비에 젖지 않은 곳에 자리를 하고는 비 내리는 정원을 보았다.

“내가 생각을 해도 정자를 참 잘 만들었어.”

정자에서 밖을 봐도 좋고, 밖에 서 정원에 선 정자를 봐도 그림 처럼 좋았다.

김봉남의 중얼거림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저희 운암정에서 여기를 제일 좋아합니다.”

배용수의 말에 이진웅이 웃었 다.

“요리사가 주방을 가장 좋아해 야지. 여기가 가장 좋아?”

“주방은 늘 좋죠. 다만…… 여

기는 좀 기분이 좋아요. 마음이 편해진다고 할까요.”

배용수가 다 익은 부침개를 접 시에 담고는 다시 반죽을 프라이 팬에 부었다.

촤아악! 촤악!

프라이팬에서 기분 좋은 튀김 소리가 나자, 김봉남이 젓가락으 로 김치전을 찢어 입에 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김치전은 확실히 용수가 참 잘 해.”

“맛있게 드세요.”

잠시간 말없이 김치전을 먹던 김봉남이 문득 배용수를 보았다.

“오늘 저녁은 용수가 해 봐라.”

“오늘 저녁은 태구 담당인데 요?”

운암정 직원들 식사는 주방 식 구들이 돌아가면서 준비를 한다. 요리사란 늘 음식을 해야 한다.

그리고 그건 숙수가 아닌, 아직 배우는 단계의 요리사들도 마찬 가지다.

특히 배우는 단계의 요리사들은 손님들에게 음식을 낼 수 없으니 직원들 식사를 준비하는 겸 음식 연습을 했다.

물론 배우는 단계의 요리사라고 해도 음식이 맛이 없지는 않다.

운암정 주방에서 일을 한다는 건 어디 가도 한식 주방장으로 충분히 통할 실력이었다.

직원 식사는 보조 숙수들이 순 번을 정해서 했는데, 이 순번은 절대 바꾸지 않았다. 순번이 바 뀌는 건 오늘 요리할 보조의 기

회를 뺏는 것이니 말이다.

“해 봐. 그리고 오늘은 대구 맑 은탕으로 해라.”

“대구 맑은탕?”

대구 맑은탕이라는 말에 배용수 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어렸다.

“정말 대구 맑은탕으로 해요?”

“할 때도 됐지. 맑은 대구탕 자 신 있니?”

“깜짝 놀랄 정도로 맛있게 만들 겠습니다.”

자신감 있게 대답한 배용수가 부침개를 접시에 담고는 반죽이 담긴 통에 뚜껑을 덮었다.

달칵! 달칵!

“왜? 더 안 구워?”

“저는 재료를 봐야 할 것 같아 서요.”

“우리 재료야 늘 최고지.”

이진웅의 말에 배용수가 웃으며 말했다.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고 하잖

아요.”

그러고는 배용수가 프라이팬과 버너를 챙기려 하자, 김봉남이 말했다.

“그냥 둬.”

“네?”

“나온 김에 나도 전이나 몇 장 만들어야겠다.”

“알겠습니다.”

배용수는 마다하지 않고 우산을 쓰고는 급히 운암정 건물로 뛰어

갔다.

그 모습을 보던 김봉남이 웃으 며 배용수가 뚜껑을 닫은 반죽 통을 열었다.

달칵! 달칵!

반죽 통을 연 김봉남은 불을 켜 고는 프라이팬에 기름을 둘렀다.

그러고는 반죽을 프라이팬에 올 리자, 이진웅이 슬며시 말했다.

“용수를 국으로 올리시려고 하 십니까?”

“오늘 맑은 대구탕 맛을 보고 결정해야지.”

“용수가 실력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 경력이 짧은데요.”

우려 섞인 이진웅의 말에 김봉 남이 웃으며 말했다.

“경력이야 시간이 지나면 알아 서 느는 것이고……

김봉남은 프라이팬에서 넓게 퍼 지는 반죽을 보며 말을 이었다.

“수석 숙수는 아직 용수가 국에 가기에는 아직 이르다 생각하

나?”

운암정에서는 모든 음식을 중요 하게 생각하지만, 특히 국을 가 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보통 사람이 한식을 먹을 때는 국을 먼저 떠먹는다.

백인백색이라 그렇지 않은 사람 도 있겠지만, 보통 음식이 나오 면 국물을 한 입 떠먹고 밥과 반 찬으로 손이 가는 것이 일반적이 었다.

국은 운암정의 얼굴이었다.

운암정에서 처음으로 입에 넣는 음식이 국이니 말이다.

그래서 국은 운암정 주방에서도 실력이 제일 좋은 숙수가 담당한 다.

그리고 운암정은 대구 맑은탕으 로 국으로 승격을 할지 안 할지 를 결정한다.

강한 양념이 아닌 기본 재료로 맑게 끓인 대구탕은 요리사의 실 력을 가장 잘 드러내는 탕이었 다.

그래서 대구 맑은탕을 끓이라는 말에 배용수가 신이 나서 운암정 건물로 뛰어간 것이다.

“실력이야 그만하면 국을 맡아 도 될 것 같지만…… 실력만으로 주방을 아우르는 건 아니잖습니 까.”

여러 요리사들이 일하는 주방이 기에 그들을 컨트롤할 수 있어야 했다.

이진웅의 우려에 김봉남이 웃으 며 말했다.

“일단 용수가 탕을 어떻게 끓여 내는지 보고 생각을 해 보세나.”

김봉남의 말에 이진웅이 잠시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이진웅의 대답에 김봉남이 부침 개를 접시에 담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오늘 김치전이 특히 맛있군. 이따 퇴근할 때 반죽 좀 가져다가 집에서 소연이하고 같 이 먹게나.”

“그렇지 않아도 좀 가져갈 생각

이었습니다.”

이진웅이 웃으며 부침개를 집어 입에 넣었다.

“용수가 부침개 반죽을 확실히 잘해요.”

“그러게 말이야. 부침개는 나보 다 잘하는 것 같아.”

김봉남이 웃으며 이진웅을 보았 다.

“소연이는 잘 크지?”

“그럼요. 요즘은 너무 잘 먹어

서 살이 통통하게 오르는 것이 걱정이 될 정도입니다.”

“어릴 때는 잘 먹는 것이 좋아. 살이야 크면 다 빠지는 것이고 말이야.”

“맞습니다.”

“그리고 명색이 운암정 수석인 자네 딸이 삐쩍 마르면 되겠나. 잘 먹이게나.”

김봉남의 말에 이진웅이 슬며시 말했다.

“그런데 소연이가 숙수님이 만

들어 주는 김밥이 먹고 싶다고 그렇게 말을 하는데……

“후! 그럼 진즉에 말하지 그랬 나. 김밥 싸 주는 것이 뭐가 그 리 어렵다고.”

웃으며 김봉남이 말을 이었다.

“이따가 영업 끝나고 김밥 싸 줄 테니 퇴근할 때 가져가게나.”

“감사합니다.”

이진웅이 웃으며 김치전을 입에 넣자, 김봉남이 그를 보다가 말 했다.

“자네도 이제 슬슬 자기 가게를 차려야지.”

김봉남의 말에 이진웅이 웃었 다.

“제가 귀찮아지셨습니까?”

“자네가 있어서 주방을 마음 놓 을 수 있는데 귀찮을 일이 있나. 다만……

김봉남은 운암정을 보며 말을 이었다.

“요리사라면 누구나 꿈이 있지. 나만의 주방을 가지는 것.”

김봉남의 말에 이진웅이 고개를 끄덕이며 운암정 건물을 같이 바 라보았다.

“나만의 주방을 가지는 것. 요 리사라면 누구에게나 꿈이죠.”

“그러니 자네도 자네 꿈을 이뤄 야지.”

김봉남의 말에 이진웅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 싶어도 아직 그만한 돈 도 없고 그 정도 실력도 안 됩니 다.”

“돈이야 내가 투자를 하면 되 고, 자네 실력이야 내가 알고 우 리 손님들이 아는데 무슨 소리인 가.”

“저한테 투자해 주시려고요?”

김봉남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진 웅이 웃으며 말했다.

“저는 나가는 것보다 숙수님의 후계자가 되고 싶은데요.”

“하하하! 이거 수석이 이렇게 야심이 큰 사람인 줄 몰랐구먼.”

“한국 최고 식당의 주방을 가지

는 것. 요리사라면, 남자라면 가 져야 할 꿈 아니겠습니까.”

이진웅의 말에 김봉남이 다시 웃었다.

“그래. 요리사라면 그런 꿈이 있어야지. 하지만 쉽지 않을 게 야. 자네 이전의 수석도, 자네 이 후의 수석도 모두 바라는 꿈이니 까.”

운암정은 정말 유명한 식당인 만큼 유명한 요리사들도 많이 배 출했다.

그중 일부는 외국에서 운암정이 라는 이름을 걸고 자기만의 식당 을 하고 있고, 한국에서도 여러 호텔에서 수석으로 일하고 있었 다.

나중에 후계자를 정하게 되면 김봉남의 밑에서 음식을 수련한 전국, 전 세계의 요리사들이 모 두 운암정으로 몰려들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김봉남의 친자식 들과 함께 후계자가 될 자격을 검증받을 것이다. 김봉남은 피가 이어졌다 해서 운암정을 물려줄

생각이 전혀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나는 내 자리 나보다 요리를 못 하는 사람에게는 물려 줄 생각이 없네.”

김봉남의 자신감 넘치는 말에 이진웅이 웃었다.

“저도 당장은 후계자 될 생각이 없습니다. 아직은 숙수님에게 배 워야 할 것이 너무 많거든요.”

“아직은, 이라…… 후! 자네가 나를 넘어설 날을 기대해 보지.”

이야기를 나누던 김봉남이 부침

개 뒤집개를 내밀었다.

“그전에 이 늙은이가 언제까지 부침개를 해야 하나?”

“주세요.”

이진웅이 뒤집개를 받아 부침개 를 뒤집자, 김봉남이 이미 만들 어 놓은 부침개를 보고는 전화기 를 꺼냈다.

“정자에 부침개 만들었으니 가 져가.”

직원을 부른 김봉남이 부침개를 찢어 입에 넣으며 운암정을 보았

다.

‘비 오는 날은 대구 맑은탕을 어떻게 끓일 거냐.’

음식이라고 해도 다 같은 레시 피로 하는 건 아니었다. 최고의 요리사라면 그날 음식을 먹는 사 람의 마음과 몸 상태, 그리고 날 씨까지 생각을 해서 음식의 맛에 변화를 줘야 한다.

쌀쌀한 날씨, 더운 날씨, 습한 날씨 등등으로 말이다.

운암정을 보던 김봉남이 미소를

지었다.

배용수가 어떠한 국을 낼지 기 대가 되는 것이다.

그동안 국을 만들기 위해 대구 맑은탕을 끓인 숙수들은 많았다.

그리고 정말 다행히도…… 모두 자기만의 비법으로 다른 맛을 추 구했다. 운암정에서 배운 것만이 아닌 자기만의 조리 방법을 추구 했던 것이다.

기존의 것에 안주하면 발전이 없다. 그래서 김봉남은 기대가

되었다.

오늘 배용수가 어떠한 대구 맑 은탕을 준비해서 낼지 말이다.

‘오늘도 맛있는 저녁이 될 것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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