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4화
운암정 주방에 서둘러 들어온 배용수는 청소를 하고 있는 후배 들을 보고는 급히 말했다.
“오늘 대구 생물 들어왔어?”
“오늘은 없을 텐데요?”
후배의 말에 배용수가 입맛을 다셨다.
‘하긴, 대구 생물 주문 안 했으 니……
생물은 말 그대로 냉동을 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냉동을 하지 않은 대구는 유통 기간이 짧으니 예약 주문이 들어올 때나 특별 메뉴로 할 때 빼고는 주문을 하 지 않았다.
“근데 갑자기 생물 대구는 왜……
말을 하던 후배가 놀란 눈으로 배용수를 보았다.
“선배 혹시?”
후배의 물음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이다.”
“축하드려 요.”
무슨 말인지 안 후배가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하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을 하다가 시계를 보았다.
지금 시간에 생물 대구를 구하 는 건 쉽지 않았다.
‘아마 생물 대구가 없는 걸 아 시고 오늘로 정했을 거야.’
배용수는 김봉남이 무슨 생각인 지 알 것 같았다.
김봉남은 대구 생물이 안 들어 온 날인 것을 알고 오늘 시험을 정했을 것이다.
주방에서 일을 하다 보면 주문 실수나 음식이 실패해서 사용해 야 하는 식재가 줄어들 수 있었 다. 그때 주방에서 얼마나 빠르 게 대체 식재를 구하느냐도 정말 중요했다.
즉, 임기응변 실력을 보려는 것 이다. 필요한 식재를 얼마나 빠
르게 구하느냐로 말이다.
배용수는 핸드폰을 빠르게 두들 겼다.
투투툭! 툭!
상대가 전화를 받자 배용수가 빠르게 말했다.
“사장님, 저 용수입니다.”
[아이고! 우리 배 숙수 아닌가.]
상대가 너스레를 떠는 것에 배 용수가 웃으며 말했다.
“오늘 제가 정말 숙수가 될지
안 될지가 사장님 손에 달렸습니 다.”
[내 손에? 그게 무슨 소리야?]
“질 좋은 생대구가 필요합니 다.”
[대구라…… 난 또 뭐라고. 알 았어. 내일 아침에 보내 줄게. 몇 박스나 필요해?]
“내일 아침에 필요하면 제가 사 장님에게 이렇게 전화를 했겠어 요?”
[그럼 설마 지금 생물이 필요하
다는 거야?]
“있죠? 있어야 합니다.”
배용수의 말에 잠시 말이 없던 상대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생물이야 있지. 근데…… 운암 정에서 쓸 만큼 좋은 건 없어.]
상대의 말에 배용수가 웃었다.
“최상이 안 되면 최선의 식재를 구할 뿐입니다.”
[최선의 식재?]
“늘 최고의 식재를 쓰면 요리사
로서 그만한 행복이 없겠지만, 늘 최상의 식재를 쓰는 건 말이 안 되죠. 그러니……
배용수가 웃으며 말했다.
“사장님이 구할 수 있는 최고의 대구를 구해다 주세요.”
[내가 구할 수 있는 최고의 대 구라. 자네 마음에 안 들 수도 있는데 괜찮겠어?]
“제가 아는 사장님이라면 최선 을 다해서 좋은 식재를 구해다 주실 거예요.”
[나야 늘 좋은 물건을 다루기는 하지만…… 괜찮겠어? 운암정에 들어갈 급은 아닌데.]
“저는 사장님의 안목을 믿습니 다.”
단호한 배용수의 말에 상대방이 잠시 있다가 웃었다.
[그렇게 말하니 더는 할 말이 없고만. 알았어, 최고는 아니더라 도 최선의 대구를 구해다 주지.]
“감사합니다.”
그렇게 전화를 끊으려던 배용수
가 급히 말을 이었다.
“아! 그리고 일곱 시까지는 가 져다주셔야 합니다.”
[일곱 시? 지금 세 시인데?]
“저는…… 사장님을 믿습니다.”
배용수의 말에 잠시 말이 없던 상대방이 한숨을 쉬었다.
[일곱 시. 조금 늦을 수 있지만 최대한 그 시간 맞춰 볼게.]
“감사합니다.”
그걸로 전화를 끊는 배용수를
보며 후배가 말했다.
“생대구가 없대요?”
“있기는 한데, 운암정에 어울리 는 생대구는 없대.”
“하긴, 저희 운암정에 들어오는 생대구는 정말 좋은 것만 들어오 니까요.”
후배의 말에 배용수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나 좀 도와줄 수 있지?”
“그럼요. 우리 용수 형이 국 파
트를 간다는데 제가 당연히 도와 야죠.”
“그럼 일단 대구 맑은탕을 할 재료부터 챙겨 놓자.”
“네.”
배용수는 식재 창고가 있는 곳 으로 걸음을 옮겼다.
운암정의 식재 창고는 냉장고, 냉동고, 그리고 실외 창고 이렇 게 세 개가 존재했다.
실외 창고는 옛날 식재 창고처 럼 바람이 잘 통하는 형태로 지
어져 있었다.
황토와 나무로 만들어져서 습기 가 많은 날에는 나무와 황토가 습기를 흡수하고, 건조한 날에는 반대로 황토와 나무가 습기를 방 출해 보관된 야채들이 쉽게 상하 지 않게 해 주었다.
물론 일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 지하는 냉장창고에 비하면 효율 이 떨어졌다.
여기 창고는 일종의 보여주기 식이었다. 전통 있는 식당에 있 는 전통적인 식재 창고라는 의미
로 말이다.
그래서 유통기한이 짧고, 질이 좋고, 그날 쓸 식재들은 이곳에 서 보관을 해서 바로바로 사용을 했다.
황토 창고에 들어간 배용수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대구 맑은탕……
탕에 들어가는 재료들을 떠올리 며 배용수가 식재 창고를 살필 때, 후배가 말했다.
“형.”
“응?”
“대구 맑은탕에 뭐 넣으실 거예 요?”
“당연히 대구 맑은탕에 들어가 는 재료를 넣어야지.”
“에이! 그런 거 말고 비장의 비 법 같은 거 있을 거 아니에요.”
“비장의 비법?”
“숙수의 한 수요.”
후배의 말에 배용수가 그를 보 다가 그 머리를 툭 쳤다.
“어디서 이상한 것만 배워서는. 음식은 기본으로 하는 거야.”
“기본요?”
“모든 건 다 기본에서 시작하는 거니, 음식도 기본이 가장 중요 한 거야.”
말을 하며 배용수가 식재 창고 한쪽에 걸려 있는 마늘을 꺼내 바구니에 담았다.
“내 비법은 신선하고 좋은 재료 로 음식을 만드는 거지. 그리고 간을 잘 하고…… 그게 내 비법
이다.”
“그럼 뭐 다른 거 안 넣어요? 전에 인철 숙수님 하시는 거 보 니 마른 버섯을 여러 개 섞어서 만든 조미료 넣으시던데.”
“그렇게 하면 더 깊은 맛도 나 고 좋겠지. 난 기본에 충실하면 서 어머니가 해 주는 음식처럼 만들 거야.”
“어머니가 만든 음식……
O.. ”
M •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후배
가 말끝을 흐렸다.
“오늘 저녁 잘 해야 국으로 올 라가는데 너무 평범하지 않아 요?”
후배의 말에 배용수가 피식 웃 었다.
“세상 모든 사람은 어머니가 해 주신 평범한 음식을 잊지 못하는 법이다. 평생 그걸 먹고 자랐으 니까.”
배용수는 고개를 돌려 후배를 보았다.
“그리고 요리사가 아무리 음식 솜씨가 뛰어나도 어머니 음식 솜 씨는 못 따라가는 거야. 명심해. 세상에서 아무리 귀한 식재, 요 리 실력을 가지고 와도 언제나 최고는 어머니의 손맛이다.”
이야기를 마친 배용수가 파와 무를 바구니에 담자 후배가 그것 을 보다가 식재를 같이 고르기 시작했다.
배용수가 말했던 것처럼 좋은 식재 속에 숨어 있는 더 좋은 식 재를 찾으려고 말이다.
* * *
“으아! 피곤하다.”
저녁 장사를 마친 운암정 식구 들이 직원 식당에 하나둘씩 들어 와 앉았다.
운암정이 식당이지만, 손님을 위한 식당과 직원들이 먹는 식당 이 구분되어 있었다.
식당에 삼삼오오 모여 앉은 직
원들이 지친 얼굴로 어깨나 다리 를 주물렀다.
“대범 씨, 오늘 저녁은 뭐예 요?”
홀 여직원의 말에 배용수를 도 와 식재들을 모았던 후배, 이대 범이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맑은 대구탕입니다.”
“맑은 대구탕?”
“오늘 용수 형이 할 거예요.”
“용수 씨 며칠 전에 해서 순번
아니지……
말을 하던 직원은 순간 이게 무 슨 의미인지 깨닫고는 놀라 말했 다.
“설마 오늘 용수 씨 국 시험 보 는 거예요?”
“네!”
이대범이 웃으며 하는 말에 여 직원도 웃었다.
“오늘 저녁 정말 기대가 되네 요.”
“아싸! 오늘 저녁 대박.”
직원들이 신이 나서 하는 말에 이대범이 웃었다.
운암정은 음식 파트가 나누어져 있다. 국, 조림, 반찬, 튀김 등으 로 말이다.
그래서 파트가 올라갈 때는 배 용수처럼 시험을 치른다. 그리고 그때마다 자신이 가진 최고의 재 주들과 비장의 팁들을 사용하다 보니 그날은 정말 맛있는 음식이 밥상에 오른다.
그래서 직원들이 신나 하는 것 이다. 운암정에서 일하면서 맛있 는 부식들을 많이 먹기는 하지 만, 그래도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건 늘 행복한 일이었다.
직원들이 기대감에 찬 눈으로 한쪽을 볼 때, 배용수가 카트를 끌고 안으로 들어왔다.
드르륵! 드르륵!
배용수가 끌고 오는 카트에는 커다란 국통이 실려 있었다. 그 리고 그 뒤로 다른 음식이 담긴 카트를 끌고 주방 막내들이 따라
왔다.
배식을 하는 곳에 음식들을 놓 은 배용수가 웃으며 말했다.
“자, 배식하겠습니다.”
그의 말에 직원들이 하나둘씩 일어나서는 카트 앞에 서서 식판 을 들었다.
그에 배용수가 음식을 가리켰 다.
“오늘 저녁은 대구 맑은탕입니 다. 음식들은 알아서 뜨시고 탕 만 제가 드릴게요.”
직원들이 밥과 반찬들을 뜨고는 그의 앞으로 오자, 배용수가 웃 으며 카트를 덮고 있는 보자기를 들었다.
화아악!
그러자 보자기 밑에서 하얀 김 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김처럼 하 얀 국그릇에 대구와 알, 그리고 통통한 하얀색 고니가 담겨 있었 다.
“우리 미정 씨는 여기……
배용수가 국그릇 중 하나를 집 어 그 위에 뜨거운 국물을 조심 히 담았다.
안에 담겨 있는 대구와 알의 모 양들이 흩어지지 않게 국물을 담 은 배용수가 오미정에게 그릇을 내밀었다.
“뜨거워요.”
“고마워요.”
오미정이 식판을 들고 자리로 가서 앉자, 배용수는 다른 직원 들에게도 그릇에 국물을 담아 내
밀었다. 그렇게 하나둘씩 직원들 이 자리로 가자, 자신의 차례가 된 이대범이 식판을 들고 배용수 의 앞에 섰다.
“우리 대범이 거.”
배용수가 대구가 담겨 있는 그 릇 하나를 집어 국물을 담아 주 자, 이대범이 그것을 식판에 담 다가 배용수를 보았다.
그러고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역시 우리 형.’
자기가 대구 알을 좋아하는 것
을 아는 배용수라서 그런지 알이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들어 있 었다.
역시 자신을 생각하는 건 용수 형이라는 생각을 하며 몸을 돌린 이대범이 서둘러 자신의 자리로 걸음을 옮겼다.
그가 만든 대구 맑은탕이 무슨 맛일지 무척 궁금했고, 걱정도 되었다.
만드는 것을 옆에서 직접 봤지 만, 딱히 비법이라고 할 것은 없 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용수 형이 만든 거니 까.’
속으로 중얼거린 이대범이 국물 을 떠서는 입에 넣었다.
후루룩!
한 모금 맛을 본 이대범이 미소 를 지었다.
‘맛있다. 맛있어.’
입에 넣는 순간 조금은 칼칼한 맛이 목을 강하게 강타했다. 그 칼칼한 맛에 속이 풀리는 느낌이 었다.
‘으! 좋다.’
입맛을 다신 이대범이 다시 국 물을 떠서 먹고는 이번에는 알을 수저로 떠서 입에 넣었다.
이대범은 역시 맛있다는 듯 배 용수를 보다가 앞에 있는 임유정 을 보았다.
“유정 씨가 먹기에는 좀 맵겠네 요.”
라면도 순한 맛으로 먹는 그녀 에게는 좀 매울 거란 생각이 들 어 한 말이었다.
그런 그의 말에 임유정이 의아 하다는 듯 물었다.
“이게 왜 매워요? 이게 매워 요?”
“이렇게 칼칼한데…… 안 매워 요?”
“전혀요. 담백하고 개운하고 아 주 좋은데요.”
싱긋 웃는 임유정의 말에 이대 범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운암정 에서 일한 지 일 년밖에 안 됐지 만, 그동안 홀 직원들과 식사를
자주 했기에 이대범은 그녀의 식 성을 알았다.
그런데 자신도 살짝 맵다 생각 되는 국물이 안 맵다니?
‘매울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