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6화
예전 자신이 국 파트를 담당했 을 때 기억을 떠올리며 배용수가 웃었다.
“갑자기 왜 웃어?”
강진의 물음에 배용수가 웃으며 말했다.
“김치전을 먹다 보니…… 김치 전을 만들었을 때 기억이 떠올라 서.”
“좋은 기억인가 보네?”
“좋은 기억이지. 그리고 즐거웠 던 기억이고.”
배용수의 말에 황민성이 김치전 을 보았다.
‘즐거웠던 기억이라……
* * *
교도소에서 황민성은 책을 보고 있었다.
스륵!
〈경영 상식〉
책을 읽는 황민성의 뒤에는 덩 치가 큰 남자가 그 어깨를 주무 르고 있었다.
“됐다. 그만해라.”
“네, 형님!”
남자가 뒤로 물러나자, 황민성 은 옆에 놓인 책 하나를 남자에
게 툭 던졌다.
“너도 책이나 좀 봐라.”
“저는 책하고 안 친합니다.”
“누구는 책하고 친해서 보냐.”
그러고는 황민성이 책을 손으로 툭툭 쳤다.
“배워서 남 주는 것이 아니더 라.”
황민성의 말에 남자가 슬며시 말했다.
“그런데 형님, 경영 쪽 책은 왜
보십니까?”
“건달이라고 언제까지 주먹 쓰 며 살 수는 없다. 그리고 우리 조직도 이제 슬슬 음지 말고 양 지에서 하는 사업에 손을 댈 때 도 됐다.”
“하긴, 형님 쪽이 요즘 사업체 를 만든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 다.”
말을 하던 남자가 조용히 일어 났다.
“형님 책 보시니 다들 조용히
한다.”
“네.”
“알겠습니다. 형님.”
남자의 말에 주위에 있던 수감 자들이 모두 고개를 숙이고는 구 석에 조용히 모여 앉았다.
그런 수감자들의 모습에 황민성 이 말했다.
“됐다. 그냥 편히들 있어.”
“네, 형님!”
대답은 그렇게 하면서도 남자들
은 각을 잡고 앉아 있었다. 그 모습에 황민성이 작게 고개를 저 었다.
그가 다시 책을 보고 있을 때, 남자가 슬며시 말했다.
“그런데 형님, 내일 출소하시는 데 짐 안 챙기십니까?”
“책이나 몇 권 챙겨 가져가면 될 일인데 짐은 뭐 하러.”
그러고는 황민성이 남자를 보았 다.
“내 물건들은 너희들끼리 나눠
써.”
“감사합니다. 형님.”
“그리고 나가면 영치금 좀 넣을 테니 잘 먹고.”
“감사합니다.”
고개를 숙이는 남자의 모습에 다시 책을 보던 황민성은 문득 고개를 돌려 자신의 사물함을 보 았다.
사물함에는 작은 박스가 있었는 데, 거기에는 편지들이 담겨 있 었다.
편지가 담겨 있는 박스를 보던 황민성이 그중 몇 개를 꺼냈다.
어머니가 보낸 편지들이었다.
봉투를 보던 황민성이 편지지를 꺼냈다. 그러고는 내용을 읽던 황민성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대체......"
〈민성아, 잘 지내지?
엄마는 잘 지내고 있어. 며칠 전에 종성 엄마가 왔었어. 종성
엄마 기억하지? 예전에 너 예뻐 하던 이모 있잖아.〉
편지에는 어머니의 일상 이야기 와 자신에 대한 걱정, 그리고 잘 될 거라는 기도가 적혀 있었다.
그런데…….
스윽!
황민성이 다른 편지지를 보았 다.
〈민성아 잘 지내지?
엄마는 잘 지내고 있단다. 며칠 전에 종성 엄마가 왔었어. 종성 엄마 기억하니? 예전에 너 예뻐 하던 이모 있잖아.〉
단어 한두 개가 바뀌기는 했지 만, 그것 빼고는 거의 다 똑같은 내용이었다.
거의 같은 내용의 편지가 일주 일 차이로 온 것이다.
‘흠……
황민성은 편지지를 손으로 톡톡 치며 생각에 잠겼다.
‘노인네가 노망이 들었나…… 이게 무슨 일이야?’
그런 황민성의 모습을 보던 남 자가 슬며시 다가왔다.
“어머님 생각하십니까?”
남자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이런 말 하는 건 주제가 넘는 것 같지만……
남자가 뒷말을 흐리자, 황민성 이 그를 보았다.
“뭔데? 말해 봐.”
“그……
“너하고 여기서 육 개월이다. 그 정도면 밖에 있는 동생들하고 붙어 있던 시간보다 길다. 말해 봐.”
동생들하고 알고 지낸 세월은 더 길어도, 이곳에서는 먹고 자 는 것까지 모두 같이 한다.
그러니 붙어 있는 시간은 밖에
있는 동생들보다도 더 길었다.
남자, 윤강호는 이곳에서 만난 조폭이었다. 그리고 황민성이 들 어오기 전에 이곳 방장이었다.
물론 황민성이 들어오고 난 후 바로 고개를 숙였지만 말이다.
황민성의 말에 윤강호가 잠시 있다가 말했다.
“저희 어머니가 작년에 돌아가 셨습니다.”
윤강호의 말에 황민성이 그를 보았다. 그 시선을 받은 윤강호
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어릴 때는 싸움질하고 다니고, 커서는 여기 감방에 들락날락하 면서 어머니 걱정만 끼치고 고생 만 시켰습니다.”
윤강호의 말에 황민성이 입맛을 다셨다. 말 그대로 남 말이 아니 었다.
자신은 그보다 더 하면 더 했 지, 덜 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런 저에게 어머니는 늘 말씀 하셨습니다. 그렇게 살면 안 된
다. 지금이라도 기술 배우자, 기 술 배워서 공장이라도 다니는 게 더 낫다.”
말을 하던 윤강호가 슬며시 눈 가를 손으로 닦았다.
“그때는 그 말이 참 잔소리 같 았습니다.”
윤강호의 말에 황민성이 화장지 를 뜯어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윤강호가 슬며시 고개를 돌려 눈가를 닦고는 말했다.
“어머니 돌아가시니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자주 생각이 납니 다. 제가 좋은 차 끌고 집에 가 는 것보다…… 작은 트럭 타고 손에 기름 묻히는 것을 어머니는 더 좋아하셨을 텐데.”
윤강호의 말에 황민성이 그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 알았다.”
“제가 주제가 넘었습니다. 죄송 합니다.”
윤강호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저었다.
“나는 운이 좋다.”
“네?”
“나한테 이런 말을 해 주는 사 람이 있으니 말이다. 너도 나중 에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면 오 늘 네가 나한테 이런 이야기를 해 줬던 기분을 생각해라.”
“알겠습니다.”
윤강호가 고개를 끄덕이자, 황 민성이 말했다.
“네가 성호 형님 식구지?”
“네.”
“혹시라도 손 씻고 싶으면 연락 해라. 내 성호 형님한테 잘 말씀 드리마.”
황민성의 말에 윤강호가 고마운 듯 미소를 짓다가 머리를 긁었 다.
“지금 이 나이에 나가서 뭘 할 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 말씀대로 공장에서 손 에 기름 묻히는 것이 지금 사는
것보다 더 나을 수도 있다.”
“알겠습니다.”
황민성은 들고 있는 편지를 보 다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남 말 할 처지가 아니구나.’
손 씻으라고 말을 하면서 정작 자신은 손을 씻을 생각이 없으니 말이다.
고개를 저은 황민성이 책을 보 다가 창밖을 보았다.
비가 많이 오는군.”
철창살이 있는 창문 밖으로는 시원하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장마잖습니까.”
“장마가 지나가면 더위가 좀 가 시려나.”
황민성이 창밖을 보며 중얼거리 자, 윤강호가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내일은 화창하다고 하 니 형님 출소하기 참 좋을 듯합 니다.”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비가 오 든 눈이 오든 무슨 상관이겠냐.”
말을 한 황민성이 편지를 상자 에 넣고는 책을 베고 뒤로 누웠 다.
“얘들아, 형님 주무신다.”
윤강호의 말에 수감자들이 모포 를 창문에 걸었다. 황민성이 자 기 좋게 어둡게 해 주려고 말이 다.
“됐다. 그냥 비 오는 거 보면서 좀 누워 있으련다.”
“알겠습니다. 형님.”
모포를 동생들이 치우자, 황민
성이 가만히 내리는 비를 보다가 눈을 감았다.
‘어머니가 오실 때 비가 안 오 면 좋겠네.’
출소하는 날 어머니한테 오지 말라고 했지만…… 어머니는 분 명 오실 것이다.
늘 그렇듯이 여러 음식을 바리 바리 싸서 말이다.
‘내일 어머니 보면 편지에 대해 서 물어보자. 쓸 말이 없어서 비 슷하게 쓰셨을 수도 있으니.’
* * *
끼이 익!
교도소 문 너머에서 줄소를 하 는 수감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오는 수감자들은 도망 치는 것처럼 고개를 급히 숙이고 는 서둘러 걸음을 옮겼다.
교도소 앞에 두 줄로 검은 정장 을 입은 사내들이 도열해 있었던 탓이었다.
“확실히 범털 출소는 뭐가 달라 도 다르네.”
“그러게요. 우리 같은 사람들하 고는 다르네요.”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급히 자리 를 벗어났고 마지막에 황민성이 책을 몇 권 들고는 밖으로 나왔 다.
“형님!”
황민성이 나오는 것에 남자들이 구십 도로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
덕이고는 들고 있던 책을 내밀었 다. 그에 도열해 있던 남자 중 하나가 나와 책을 두 손으로 받 았다.
“고생하셨습니다, 형님.”
책을 받은 남자가 고개를 숙이 고는 한쪽에 있는 검은 고급 승 용차를 가리켰다.
“가시지요.”
남자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고 차를 향해 걸음을 옮겼 다. 그러던 황민성은 주위를 슬
며시 살폈다.
잠시 주위를 살피는 황민성에게 남자가 말했다.
“타시죠.”
남자가 차 뒷문을 열어 놓은 것 을 보던 황민성이 말했다.
“잠시 있다가 가자.”
“누구 기다리십니까?”
“아니다.”
그러고는 황민성이 뒷문을 닫았 다.
“나는 알아서 갈 테니 차나 두 고 너희는 먼저 가라.”
“큰형님이 바로 모시고 오라 하 셨습니다.”
“큰형님한테는 내가 연락하마. 너희들끼리 먼저 가라.”
“그……
스윽!
황민성이 남자를 보았다.
“내가 너무 오래 감방에 있었던 거냐?”
차가운 황민성의 목소리에 남자 가 급히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남자가 차 키를 내밀자, 황민성 이 그것을 받았다.
“ 가라.”
“알겠습니다.”
남자가 다른 이들과 함께 고개 를 숙이고는 다른 차를 타고 자 리를 떠났다.
그 모습을 보던 황민성이 뒷좌
석 문을 다시 열었다. 뒷좌석에 는 작은 상자가 있었다.
상자 안에는 수표와 현금, 담배 와 새 핸드폰, 그리고 시계가 담 겨 있었다.
그에 황민성이 지갑을 꺼내 수 표와 현금을 넣고 물건들을 주머 니에 넣었다.
덜컥!
문을 닫은 황민성이 차에 기댄 채 교도소 쪽을 바라보았다.
차에 기대고 있던 황민성이 시 계를 보았다.
‘한 시……
오후 한 시가 넘어가는 시간이 었다. 황민성은 살짝 고픈 배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교도소를 보 았다.
‘지금쯤 밥 먹고 누워 있겠네.’
교도소 안이었다면 자신이 하고 있을 일을 떠올리며 황민성이 주 머니에서 담배를 한 대 꺼내 입 에 물었다.
그리고 불을 붙이려 할 때, 저 쪽에서 버스가 오기 시작했다.
버스를 본 황민성이 담배를 다 시 담뱃갑에 넣고는 차에서 내렸 다. 그러고는 교도소 쪽으로 살 짝 빠른 걸음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교도소 문 앞에 멈춰 선 그는 버스가 다가오기를 기다렸 다. 어머니가 오셨을 때 자신은 여기서 기다린 것이 아니라 막 출소를 한 것처럼 보이게 말이 다.
끼이 익!
버스가 교도소 정류장에 멈추 자, 황민성이 버스를 유심히 보 았다.
그러던 황민성의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버스에서 어머니가 내 리고 있었다.
어머니는 찬합과 보온 물통까지 들고 있었다.
‘힘들게 뭐 하러 저렇게 다 들 고 와.’
속으로 중얼거린 황민성이 천천 히 걸음을 옮겼다.
황민성이 걸음을 옮기자, 맞은 편에서 걸어오던 조순례가 환하 게 웃으며 손을 들었다.
“우리 아들!”
조순례의 외침에 황민성이 입맛 을 다시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창피하게.’
속으로 중얼거리며 황민성이 조 순례에게 다가갔다.
“오지 말라니까.”
“우리 아들 나오는데 당연히 와
야지. 엄마가 많이 늦었지?”
“아니야. 나도 금방 나왔어.”
“그래? 다행이다. 엄마가 세상 에 버스를 잘못 탔잖니. 그래서 버스를 갈아타느라 너무 늦었 어.”
“버스를?”
조순례는 자주 면회를 왔었기에 여기 오는 길에 무척 익숙할 터 였다. 그런데 버스를 잘못 탔다 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