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7화
황민성이 의아한 눈으로 조순례 를 보자, 그녀가 웃으며 말했다.
“밥 아직 안 먹었지? 밥 먹자.”
조순례의 말에 황민성이 찬합을 보았다. 그런 그의 머릿속에 어 제 윤강호가 한 말이 떠올랐다.
“그럽시다.”
황민성이 한쪽에 있는 나무 벤 치로 걸음을 옮기자, 조순례가
말했다.
“여기서 먹게?”
“어디서 먹으면 뭐 어때. 먹는 게 중요한 거지.”
“그래. 그러자.”
웃으며 조순례가 찬합을 벤치에 올렸다.
툭!
‘툭?’
벤치에 찬합을 내려놓는 소리에 황민성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머니가 출소하는 자신에게 주 려고 음식을 싸 왔으면 평소보다 도 더 많은 음식들을 가져왔을 텐데…… 소리가 너무 가벼웠다.
황민성이 의아해하는 사이, 조 순례는 찬합을 싸고 있는 보자기 를 풀고는 웃으며 말했다.
“네가 두부는 먹기 싫다고 해서 이번에는 두부를 안……
찰칵!
찬합 뚜껑을 열던 조순례의 얼 굴에 당황스러움이 어렸다. 찬합
이 텅 비어 있었다.
“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이 럴 일이 없는데?”
조순례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4 단 찬합의 다른 뚜껑들을 열었 다. 하지만 찬합 안은 모두 텅 비어 있었다.
“이럴…… 일이 없는데……
말을 하는 조순례의 눈빛이 순 간 천천히 흐려지기 시작했다.
“이럴 일이 없는데…… 이럴 일 이 없는데……
멍하니 같은 말을 반복하는 조 순례의 모습에 황민성의 얼굴이 굳어졌다.
“왜, 왜 그래?”
“이럴 일이…… 없는데……
“무섭게…… 왜 이래? 엄…… 엄마.”
“이럴 일이……
멍하니 같은 말만 중얼거리는 조순례의 모습에 황민성은 심장 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엄, 엄마……
황민성의 부름에 조순례가 그를 보았다.
그러고는 미소를 지었다.
“우리 민성이, 학교 다녀왔어?”
“엄마? 나 알아보겠어?”
“그럼. 우리 민성이를 엄마가 왜 못 알아봐.”
웃으며 조순례가 황민성의 머리 를 쓰다듬었다.
“민성이 오늘 학교에서 친구들
하고 안 싸웠어?”
“ 친구?”
“친구들하고 싸우지 마.”
웃으며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는 조순례의 손길에 황민성이 깊은 한숨을 토했다.
“하아아아!”
자신의 몸 안의 모든 것이 숨을 통해 빠져나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황민성이 조순례를 보았 다.
“엄…… 마……
"응."
“나…… 몇 살이야?”
황민성의 말에 조순례가 웃었
다.
“얘는. 왜 그런 것을 물어.”
“그냥…… 나 몇 살이야?”
“우리 민성이 열두 살이잖아.”
“ 하아아아.”
재차 깊은숨을 토해 낸 황민성
이 텅 비어 있는 찬합을 보았다.
그러던 황민성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흐르기 시작했다.
‘엄마가……
“아들, 갑자기 왜 울어? 학교에 서 무슨 일 있었어?”
조순례가 놀라 급히 황민성의 눈물을 손으로 닦아주었다. 그에 황민성이 손을 들어 자신의 눈 을…… 얼굴을 쓰다듬는 엄마의 손을 잡았다.
“엄마
“응?”
“ 엄마는……
잠시 말을 멈춘 황민성이 엄마 의 손에 얼굴을 문지르며 말했 다.
“내가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 어?”
“우리 민성이?”
“응. 나……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어?”
황민성의 말에 조순례가 그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나야 우리 민성이가 잘 살았으 면 좋겠지.”
“그러니까 어떻게?”
“우리 민성이…… 판검사나 의 사는 못 하겠지?”
엄마가 웃으며 하는 말에 황민 성이 웃었다. 열두 살, 초등학교 5학년 때 황민성은 절대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눈물을 흘리며 웃는 것이 이상
했지만, 그래도 황민성은 웃었다.
‘엄마는 그때 그 시절이구나.’
“그건 무리지.”
황민성이 울고, 웃으며 하는 말 에 조순례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돈 많이 버는 직업을 했 으면 좋겠어.”
“돈 많은 직업? 엄마는 내가 돈 많이 벌었으면 좋겠어?”
“돈 많이 벌면 좋지. 돈 많이 벌어서 도움 필요한 사람들도 도
와주고, 좋은 일도 하고……
조순례는 눈물을 소매로 닦아주 고는 말을 이었다.
“그래도 엄마는 민성이 네가 하 고 싶은 일 하면서 살았으면 좋 겠어. 하고 싶은 일 하면서 살다 가 좋은 여자 만나서 애도 낳 고……
말을 하던 조순례가 미소를 지 었다.
“그리고 엄마 용돈도 많이 주 고.”
엄마 용돈이라는 말에 황민성이 입술을 깨물었다. 용돈…… 조폭 으로 돈을 많이 벌게 된 후 엄마 에게 용돈을 많이 주었다.
하지만…… 자신이 주는 돈을 엄마는 한 번도 받지 않았다.
아니, 받기는 했다. 다만 그걸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기부를 하고 후원을 했다.
아들이 건달 짓을 해서 번 돈을 자기가 어떻게 쓰겠냐면서 기부 를 하고 후원을 한 것이다.
그걸로 황민성의 죄가 조금은 줄어들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황민성이 숨을 크게 토하며 말 했다.
“엄마…… 나 돈 많이 벌게. 그 리고 그 돈으로 좋은 일도 하고, 엄마 용돈도 많이 줄게.”
“우리 아들 철들었네.”
웃으며 황민성의 얼굴을 닦아주 던 조순례가 말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울어?”
“그냥…… 엄마.”
“응?”
자상한 얼굴로 자신을 올려다보 는 조순례에게 황민성이 작게 속 삭였다.
“엄마…… 미안해. 그리고…… 정말 사랑해요.”
황민성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하는 말에 조순례가 웃으며 그 머리를 쓰다듬었다.
엄마도 아들 정말 사랑해.”
“사랑합니다. 어머니.”
황민성은 슬며시 어머니를 안으 며 그녀의 머리를 손으로 감쌌 다.
“정말…… 미안하고 사랑해요.”
“우리 아들이 정말 철이 들었 네.”
조순례의 말에 황민성이 그녀의 어깨에 자신의 얼굴을 묻었다.
‘정말…… 사랑해요.’
숨을 크게 토하는 황민성을 보
며 조순례가 말했다.
“그런데 엄마 배고프다.”
“배고파요?”
“응…… 점심을 안 먹었나? 배 가 고프네.”
조순례의 말에 황민성이 급히 눈가를 손으로 닦았다.
“그럼 우리 가서 밥 먹자.”
“그래. 그러……
말을 하며 몸을 일으키려던 조 순례는 의아한 듯 주위를 보았
다.
“그런데 여기가 어디지? 집이 아니…… 어?”
두리번거리던 조순례는 교도소 를 보았다.
“여기는……
멍하니 교도소를 보는 그녀의 모습에 황민성이 말했다.
“엄마, 밥 먹으러 가자.”
“아......" 안......" 되는데......". 나 여기서…… 만날 사람이 있는
데……
멍하니 교도소를 보는 조순례는 일어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기 억이 온전하지 않지만…… 그녀 는 여기서 만나야 할 사람이 있 었다.
바로 황민성을 말이다. 그리 고…… 그녀는 지금 황민성이 누 구인지 떠올리지 못했다.
바로 눈앞에 아들이 있는데도 말이다.
그 모습에 황민성이 그녀를 일
으키려 했다.
“엄마, 우리 가자.”
“안 돼. 나는 여기서 만날 사람 이 있어.”
“그게 나야. 가자.”
황민성이 팔을 붙잡고 일으키 자, 조순례가 급히 고개를 저으 며 몸을 버둥거렸다.
“안 도fl. 나는 여기 있어야 해.”
“나 보러 온 거잖아.”
“안 돼! 안 돼!”
이제는 비명까지 지르며 버둥거 리는 조순례의 모습에 황민성이 놀라 그녀를 보았다.
“거기 무슨 일입니까!”
그때, 교도소에서 교도관 셋이 뛰어나왔다. 교도소 밖에서 소란 이 일어나니 급히 나온 것이다.
그러다가 황민성과 조순례를 보 고는 멈칫했다.
황민성이 누구인지 그들도 잘 알고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조 순례 역시 알아보았다.
조순례는 일주일에 한 번씩 아 들 면회를 꼬박꼬박 오던 사람이 니 말이다.
“황민성 씨 무슨 일입니까?”
“아무 일도 아닙니다.”
“그……
뭔가 말을 하려던 교도관은 바 닥에 떨어져 있는 찬합을 보았 다. 조순례가 버둥거릴 때 찬합 이 떨어진 것이다.
교도관은 찬합을 주워 들다가 그 안을 보고는 멈칫했다. 멍하
니 빈 찬합을 보던 그는 그것을 벤치에 올렸다.
그러고는 슬며시 어머니를 보 자, 황민성이 말했다.
“별일 아니니 들어가십시오.”
황민성의 말에 교도관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말했다.
“저기 잠시만요.”
교도관은 옆에 있는 다른 교도 관에게 말했다.
“가서 미지근한 물 한 잔만 가
지고 와.”
“네?”
“미지근한 물.”
“아, 네.”
대답을 한 교도관이 으로 들어가자, 찬합 던 교도관이 황민성을
서둘러 안 안을 보았 보았다.
“저…… 황민성씨. 일단 어머니 따뜻한 물을
좀 드시게 하시죠.
교도관의 말에 황민성이 그를
보다가 품에 안겨 떨고 있는 조 순례를 보았다.
“고맙습니다.”
황민성의 말에 교도관이 조순례 를 잠시 보다가 말했다.
“저희 어머니가 치매셨습니다.”
교도관의 말에 황민성이 멈칫해 서는 그를 보았다.
“처음에 정말 많이 놀랐는 데…… 그게 벌써 오 년이네요.”
교도관의 말에 황민성이 조순례
를 보다가 말했다.
“치매……인 겁니까?”
“아마 초기이실 겁니다.”
“그걸 어떻게?”
“사실 저번 달에 오셨을 때 저 희 어머니 초기 때와 비슷하셨습 니다. 말을 걸어도 멍하니 계시 거나, 성함을 불러도 그냥 보기 만 하시더군요.”
“그……랬습니까.”
“제가 어머니에게 병원에 한 번
가보시라고 말을 했는데……
교도관이 찬합을 보다가 말했 다.
“찬합에 음식을 안 담아오셨습 니까?”
음식이 담긴 흔적이 전혀 없는 찬합을 보며 황민성이 고개를 끄 덕였다. 그에 교도관이 한숨을 쉬며 조순례를 보았다.
“민성 씨 주려고 음식을 싸 오 셨을 텐데…… 텅 비어 있어서 놀라신 모양입니다. 아마 그래서
증상이 나온 모양입니다.”
“어떻게…… 아세요?”
“저희 어머니도 그랬으니까요. 저는……
교도관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머니가 저 준다고 김밥을 싸 셨는데…… 상했더군요.”
“상해요?”
“제가 김밥을 좋아합니다. 맛도 있고 간편하게 먹기도 좋고…… 그래서 어머니가 저 주려고 만드
셨습니다. 그런데 그걸 어머닌 그날 아침에 만들었다고 생각을 하셨는데, 사실은 며칠 전에 만 드셨던 거죠.”
교도관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날 알았습니다. 어머니가 아 프시다는 걸……
교도관의 말에 황민성은 자신의 품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조순 례를 보았다.
“그거 먹으면서……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
“그걸 드셨습니까?”
“안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 머니가 너무 행복한 얼굴로 김밥 을 내밀어서요.”
교도관은 조순례를 보며 말을 이었다.
“치매 초기에 갑자기 놀라거나,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렇게 불안 증세를 보이거나 치매 증상이 심 해집니다.”
말을 하는 사이 물이 도착하자, 교도관이 그걸 황민성에게 내밀
었다.
그에 황민성이 물을 받아 조순 례에게 조심히 먹였다.
“자세한 건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으셔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좀 많이 변하 실 겁니다.”
황민성이 그를 보자, 교도관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고생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그
런데…… 저희 갓난아기일 때 울 면 달래주고, 기저귀 갈아주고 삼시 세끼 차려주셨잖습니까. 그 것도 이십 년을요. 하지만 어머 니에게 그런 걸 해 줄 수 있는 기간은……
말을 하던 교도관이 작게 고개 를 저었다. 그리 길지 않다는 말 을 미리 말해 줄 필요가 없을 듯 했다.
“어머니가 충분히 진정될 때까 지 기다리셨다가 병원에 모셔 가 십시오. 흥분한 상태에서 강제로
하려고 하면 스트레스 받아서 더 심해지십니다.”
“감사합니다.”
황민성의 말에 교도관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려 교도소로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