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9화
남자가 사라질 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던 황민성에게 한 사람 이 다가왔다.
스윽!
그는 보자기에 싸인 네모난 상 자를 내밀었다.
“돈은 됐다. 형님한테 마음만 받는다고 전해 줘라.”
황민성의 말에 남자가 고개를
저었다.
“노루궁뎅이버섯입니다.”
“노루, 뭐?”
처음 들어보는 이상한 버섯 이 름에 황민성이 그를 보자, 남자 가 고개를 숙였다.
“치매에 좋다고 큰형님께서 어 머니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남자의 말에 황민성이 보자기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돈이라 면 거절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를 위한 음식이라 면…….
“감사하다고 전해 드려라.”
“그동안 어머니께서 해 주신 김 치 값이라 하셨습니다.”
남자가 고개를 숙이고는 몸을 돌리자, 황민성은 손에 들린 보 자기를 보다가 비틀거리며 걸음 을 옮겼다.
집에 도착한 황민성은 백미러로 자신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고는
쓰게 웃었다.
‘이건 감사하네.’
집단으로 두들겨 맞았음에도 얼 굴은 멀쩡했다. 아마 어머니가 걱정을 할까 싶어 얼굴에는 손을 대지 못하게 한 모양이었다.
쓰게 웃은 황민성이 자동차 문 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끄응!”
몸을 움직이자 맞았던 곳이 욱 신거리고 아픈 것에 신음을 홀린 황민성이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셨어요?”
“어머님 별일 없으시죠?”
“네. 그런데 왜 이리 비를 맞으 셨어요?”
장 여사님의 말에 황민성이 쓰 게 웃었다.
“비를 맞을 일이 좀 있었습니 다.”
덜컥!
그때 문이 열리며 조순례가 방 을 나왔다.
“민성이 왔니?”
“왜 안 주무시고요.”
“아들 오는데…… 아니, 그런데 비를 왜 이리 맞았어? 흠뻑 젖었 네.”
조순례는 급히 수건을 가져와 그의 머리를 닦아주었다.
“괜찮아요.”
“괜찮기는. 여름이라도 비 잘못 맞으면 감기에 걸려.”
마치 어린아이 대하듯 비에 젖
은 자신을 닦아주는 어머니의 손 길에 황민성이 웃으며 그 손을 잡으려다가 멈췄다.
‘하루하루가 선물이라고 했던 가?’
의사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 올린 황민성이 웃으며 손을 내렸 다.
비에 젖은 자신을 닦아주는 어 머니의 손길…… 이런 선물이라 면 기분이 좋았다.
가만히 조순례의 손길을 받던
황민성이 말했다.
“저 깡패 그만뒀어요.”
멈칫!
황민성의 말에 그의 머리를 닦 던 조순례의 손이 멈췄다.
“저 이제 깡패 아니에요.”
황민성의 말에 잠시 가만히 있 던 조순례는 비에 젖은 머리카락 을 수건으로 부드럽게 닦아주었 다.
“우리 아들 정말 잘 했다. 정말
잘 했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좋아하는 조순례의 모습에 황민성은 미소 를 지었다.
오늘 좀 많이 맞고, 자신 대신 칼을 맞아줬던 형님, 자신을 믿 고 따르던 동생들과 헤어졌다.
하지만... 어머니가 좋아하시
니 그저 좋았다. 그에 황민성이 살며시 어머니의 등을 손으로 감 쌌다.
‘제가 그동안 엄마한테 못 해
드린 거…… 앞으로는 계속 해 드릴게요. 그리고 돈도 많이 벌 어서 엄마가 원했던 대로 도움 필요한 사람들 도와주고 좋은 일 도 하고…… 엄마가 원했던 것 해 드릴게요. 그러니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제 옆에서 엄마로 있 어 주세요.’
황민성을 마주 안고 있던 조순 례가 웃으며 말했다.
“일단 아들 따뜻한 물에 씻고 나와. 이러다가 감기 걸려.”
“알았어요. 그리고 엄마도 옷
갈아입으세요. 저 때문에 옷이 다 젖었어요.”
“알았어. 들어가. 엄마가 갈아입 을 옷 가져다줄게.”
황민성이 욕실로 들어가자, 조 순례가 환하게 웃으며 욕실을 보 았다.
그런 조순례를 보고 장 여사가 웃으며 말했다.
“언니, 정말 잘 됐어요.”
“그러게. 정말 잘 됐어.”
조순례는 장 여사의 손을 잡았 다.
“우리 아들이…… 깡패를 그만 한대.”
조순례의 말에 장 여사가 웃으 며 그녀의 손을 쥐었다.
“정말 잘 됐어요.”
“그러게. 아!”
말을 하던 조순례가 급히 냉장 고를 열더니 재료들을 꺼내기 시 작했다.
“언니 배고프세요?”
장 여사의 말에 조순례가 웃으 며 고개를 저었다.
“우리 아들 뭐 좀 해 주려고.”
조순례는 김치를 테이블에 내려 놓으며 말을 이었다.
“비를 맞았으니 따뜻한 국물을 먹으면 좋을 거야. 냉장고에서 콩나물 좀 꺼내 줄래?”
“알았어요.”
장 여사가 콩나물을 꺼내자, 조
순례가 웃으며 물을 올리고는 김 치를 마저 썰려고 했다.
그 모습에 장 여사가 슬며시 다 가왔다.
“언니, 제가 할게요.”
“우리 아들 먹을 건데 내가 해 야지.”
그러고는 조순례가 살며시 칼을 집었다.
“그리고…… 언제까지 내가 우 리 아들한테 밥을 해 줄 수 있을 지 알 수도 없고. 그러니 하루
한 끼 한 끼 해 줄 수 있을 때 해 줘야지.”
멈칫!
조순례의 말에 장 여사가 그녀 를 보았다.
“언니…… 혹시……
“내가 바보인 줄 알아?”
조순례가 웃으며 말했다.
“나도 핸드폰이 있어. 검색도 할 줄 알고.”
조순례는 칼로 김치를 썰며 말
을 이었다.
“선생님이 그렇게 치매를 잘 본 다고 인터넷에 잘 나왔더라고.”
“아……
“그래서 내 정신 멀쩡할 때라도 아들한테 맛있는 밥 해 주고 싶 어.”
웃으며 말을 하던 조순례의 손 이 돌연 떨기 시작했다. 그에 장 여사가 급히 칼을 쥔 조순례의 손을 잡았다.
“언니?”
조순례는 잠시 고개를 떨군 채 말을 이었다.
“아들한테…… 밥도 못 해 줄까 봐 무서워. 아들…… 못 알아볼 까 봐 너무 무서워.”
그러고는 조순례가 장 여사를 보았다.
“그래서 나 정신 있을 때는 늘 밥을 해 주고 싶어. 그래야…… 내가 우리 아들 못 알아봐도…… 우리 아들이 내 밥맛 기억하고 나를 기억하지.”
조순례의 말에 장 여사가 미소 를 지었다.
“그럼 맛있는 걸 해 주자고요.”
“그래. 고마워.”
눈가에 흐른 눈물을 소매로 닦 은 조순례가 김치를 마저 썰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던 장 여 사가 웃으며 말했다.
“김치도 있고 비도 오고……. 김치전도 몇 장 만들까요?”
“그거 좋네.”
“그럼 부침가루 꺼낼게요.”
“그렇게 해. 아! 돼지고기도 좀 꺼내. 김치전에 돼지고기 썰어서 넣어도 맛있어.”
“그럼요. 비 오는 날 김치전 좋 죠.”
“우리 소주도 한잔할까?”
기분 좋아 보이는 조순례에게 장 여사가 살며시 말했다.
“언니, 술은 안 좋아요.”
“그래?”
“네.”
“그럼 우리 아들 먹는 거나 봐 야겠다.”
싱긋 웃은 조순례는 콩나물 김 칫국과 김치전을 만들기 시작했 다.
따뜻한 물로 몸을 씻은 황민성 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몸을 보 았다. 거울 속 황민성의 몸은 근 육질의 그것이었다.
헬스장 트레이너나 영화배우처
럼 울근불근한 근육 같은 건 없 었지만, 딱 봐도 단단해 보인다 는 생각이 드는 그런 몸이었다.
그런 몸이 지금은 붉게 부어올 라 있었다. 거기에 시퍼렇게 멍 이 들기 시작하는 곳도 많고
‘걱정하시겠네.’
거울에 비치지 않는 등 쪽을 이 리저리 비쳐 보던 황민성이 슬며 시 욕실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속옷과 갈아입을 옷
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옷을 입은 황민성은 거실로 향 하다가 맛있고 칼칼한 냄새가 나 는 것에 주방으로 들어갔다.
“어서 와. 밥 먹자.”
조순례가 식탁을 가리키자, 황 민성이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배가 고픈 것도 아니고 입맛도 없었다.
그렇게 두들겨 맞고 와서 입맛 이 돌 리가 없으니 말이다. 하지 만…….
“맛있겠네요.”
어머니가 해 주시는 한 끼 한 끼가 모두 선물이니 말이다.
황민성이 자리에 앉자. 조순례 가 프라이팬을 가스레인지에 올 렸다.
“뭐 더 하시게요?”
“김치전 해 줄게.”
“지금도 좋은데요.”
“아니야. 잠시만 있어.”
조순례가 프라이팬에 김치전 반
죽을 부었다.
촤아악
김치전 한 장을 빠르게 만든 조 순례가 웃으며 그것을 황민성 앞 에 놓았다.
“다 됐어.”
김치전을 본 황민성이 웃으며 말했다.
“돼지고기 넣고 하셨네요.”
“옛날에 우리 민성이가 돼지고 기 넣고 김치전 하면 고기 있는
데만 쏘옥쏘옥 빼 먹었는데.”
“제가 고기를 좋아했죠. 비 와 서 하셨나 보네요.”
“비가 안 와도 우리 아들이 좋 아하는 거면 하는 거지. 자, 어서 먹어. 비 맞았을 때는 따뜻하게 씻고, 따뜻한 거 먹는 게 좋아.”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자, 조 순례가 김치전을 젓가락으로 찢 어 그에게 내밀었다.
“자, 따뜻할 때 먹어.”
그에 황민성이 입을 벌려 김치
전을 받아먹었다. 어머니가 찢어 준 김치전에는 작은 돼지고기가 잘 붙어 있었다.
자기가 고기를 좋아하니 돼지고 기가 붙어 있는 부분을 준 것이 다.
김치전을 입에 넣은 황민성은 고소한 기름 맛과 구운 김치의 맛, 그리고 바삭하게 구워진…… 그냥 엄마가 해 준 맛있는 김치 전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 보니 엄마가 해 준 김 치전 정말 오랜만에 먹어 보네.’
황민성은 조폭이 되고 난 후 가 출을 하듯 집을 떠났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동안 집을 한 번도 찾아가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가 집에 올 때면 조순례는 늘 맛있는 음식을 많이 해 놓곤 했 다.
잡채, 불고기, 소고기뭇국…… 황민성이 집에 올 때마다 명절날 처럼 상을 차려놓았다.
하지만 김치전은 없었다. 김치 전이 맛있는 음식이기는 하지만, 귀한 아들에게 주기에는 어머니
기준으론 부족해 보인 모양이었 다.
그러다 보니 어머니가 해 주시 는 김치전은 정말 오랜만에 맛보 는 별미였다.
“국물도 먹어.”
조순례의 말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콩나물 김칫국을 떠 서 입에 넣었다.
칼칼하면서도 시원한 김칫국에 황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때. 맛있어?”
“맛있어요. 몸이 따뜻해지네요.”
황민성의 말에 조순례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 아들 소주 한잔할래?”
“아니요. 저는 괜찮아요.”
치매 환자는 술을 마시면 안 된 다. 그런데 자기가 술을 마시면 어머니도 드시고 싶을까 봐 황민 성은 거절을 했다.
그에 조순례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오늘 우리 아들한테 좋은 날인데 그냥 지나가면 안 되지.”
조순례는 냉장고에서 소주를 꺼 냈다. 그 모습에 황민성이 장 여 사를 보았다. 집에 왜 술이 있냐 는 시선이었다.
“그게 언니가 집에 술 하나 없 으면 사장님 심심할 거라고
“그래. 장 여사한테 뭐라고 하
지 마. 내가 고집부린 거야.”
웃으며 조순례가 소주잔을 가져 다 앞에 놓고는 뚜껑을 땄다.
드르륵!
뚜껑을 옆에 내려놓은 조순례가 소주병을 기울였다.
“아들, 한 잔 받아.”
조순례의 말에 황민성이 잔을 들으며 웃었다.
“엄마가 주는 소주 오랜만이네 요.”
교도소에 있다가 나와서 처음으
로 어머니가 주는 술을 받는 것 이니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러게. 앞으로는 자주 따라 줄 테니 어디 오래 가 있지 마.”
“앞으로는 절대 어머니 두고 어 디 가지 않을게요.”
“정말?”
“그럼요. 그리고 내일은 어디 가까운 데로 나들이나 가요.”
“정말?”
환하게 웃는 조순례를 보며 황
민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내일 맛있는 것도 먹 고 좋은 곳도 보고 하셔요.”
“그래. 그럼 우리 민성이 뭐 먹 고 싶어? 내일 갈 때 도시락 싸 가자.”
“저야 어머니가 좋아하는 거면 다 좋죠.”
“엄마도 그래. 엄마도 민성이 좋아하는 거면 다 좋아.”
말을 하던 조순례가 웃었다.
“우리 민성이가 제일 좋아하는 잡채 만들어서 가야겠다.”
잡채라는 말에 황민성이 웃었 다. 잡채를 좋아하지만 나들이에 어울리는 음식은 아니었다.
“왜? 싫어?”
“싫기는요. 고기 많이 넣어 주 세요.”
“그래. 알았어.”
조순례가 환하게 웃는 것을 보 던 황민성이 김치전을 집어 입에 넣었다.
‘엄마한테도 하루하루가 선물이 되게 할게.’
자신에게 하루하루가 선물이라 면, 엄마에게도 하루하루가 선물 이 되게 해 드리고 싶었다.
이때까지 둘이 가지지 못했던 평범한 모자간의 추억들도 쌓고 말이다.
후루룩!
콩나물 김칫국을 마신 황민성이 미소를 지었다. 몸이 참 따뜻해 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