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4화
오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 진은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주방 에 들어갔다.
“ 핑계는 만들었는데…… 음식 손으로 집어서 먹을 수 있는 예 쁜 거로 만들어라.”
“손으로?”
“형하고 누나 분위기 내라고 만 들었다고 하려고. 두 사람이 먹 기 전에 혜미 씨하고 호철 형이
음식 가지고 가면 되니까.”
“역시 너는 거짓말을 참 잘해.”
배용수의 농에 강진이 한숨을 쉬었다.
“이게 다 귀신들을 위해서 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 아니겠냐.”
“어쨌든 신수호 씨한테 잘 해 라. 나중에 네 혀에서 지은 쌀로 밥하고 싶지 않다.”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시며 혀를 입안에서 굴려 보다 가 주방을 나섰다.
‘나도 내 혀에서 자라는 쌀로 밥해 먹기 싫다.’
속으로 중얼거린 강진은 오혁의 앞에 앉으며 말했다.
“용수가 음식을 하나 봐요.”
강진의 말에 오혁이 고개를 끄 덕였다. 요리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있고, 음식점에서 음식 하 는 것이야 이상할 일이 아니니 말이다.
“왜 하냐고 안 물어보세요?”
“음식점에서 음식 하는 거야 당
연한 거잖아.”
“그 음식들이 오늘 형이 후원하 는 아이들 먹을 건데도요?”
“아……
오혁이 주방을 보고 웃으며 말 했다.
“용수 씨 고마워요! 다음에 내 가 진짜로 좋은 술 한 잔 살게 요.”
그 소리에 주방에서 그릇 치는 소리가 들렸다.
쨍!
그 소리에 오혁이 쓰게 웃었다. 얼굴을 못 본 것은 그렇다 해도, 목소리도 전혀 못 들은 것이다.
하지만 서운하거나 하진 않았 다. 그저 뭐가 사정이 있겠구나 싶었다.
말을 못 한다거나 몸이 불편하 다거나 말이다.
그저 자신 생각해서 말없이 음 식을 해 주는 배용수가 고마웠 고, 다음에는 얼굴 한 번 볼 수
있을까 하는 아쉬운 마음뿐이었 다.
식사 후에 푸드 트럭 사용 방법 을 알려 준 강진은 오혁 부부와 함께 공원으로 걸음을 옮겼다.
공원으로 향하는 오혁 부부의 발걸음이 무척 가벼웠다.
그런 두 사람을 보며 강진이 속 으로 웃었다.
‘힐링하러 가시는구나.’
강진도 공원으로 가는 동안 기 분이 좋았다. 정확히는…… 슬프 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옆에서 걸어가는 두 사람을 보 던 강진이 앞을 보았다. 어느새 도착한 공원에는 예전에는 없던 작은 부스가 세워져 있었다.
〈공원 내 VR 명소 안내
VR 기기 대여소〉
이곳은 공원에 찾아오는 이들에 게 신분증을 받고 VR 기기를 대 여해 주는 곳이었다.
“사장님.”
이강혜가 다가오자 부스에 있던 직원이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그에 이강혜가 웃으며 손을 저 었다.
“그렇게 나오지 말라고 해도 늘 나오시네요.”
“아닙니다!”
바짝 군기가 들어 소리치는 직 원의 모습에 이강혜가 작게 고개 를 젓고는 부스를 보았다.
“손님들 좀 오셨어요?”
“제가 교대하고 한 스무 분 오 셨습니다.”
“이른 시간인데도 많이들 오시 네요.”
“네.”
직원의 말에 이강혜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고개를 숙였다.
“수고하세요.”
직원이 고개를 마주 숙이자 이 강혜가 오혁과 함께 공원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공원으로 들어간 강진은 VR 기 기를 쓴 채 걸음을 옮기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이른 시간인데도 고개를 돌리면 한두 명씩은 보일 정도의 수였 다.
‘오늘도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싶은 분들이 많이들 오셨구나.’
보고 싶은 사람을 보여주는 이 VR 기술은 L 전자가 만들었다.
사람들은 VR 핸드폰으로 사랑 하는 사람을 스캔하고 음성을 만 들어서 집이나 차에서 그들을 보 고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VR 인물들은 주변을 인식하지 못하기에 벽을 뚫고 지 나 거거나 의자에 겹치는 현상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직까지는 핸드폰으로 주위 환 경을 스캔하기는 어려우니 말이 다.
하지만 이곳 공원에서는 달랐 다. 이미 공원의 산책로와 일정 한 휴식 장소는 정밀 스캔이 되 어 있고 VR이 인식할 수 있는 센서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래서 여기서는 VR 캐릭터가 사물을 인지하고 그에 맞게 움직 였다.
그러다 보니 이곳에서는 다른 곳에서 느끼지 못하는 가상 인물 의 생생함을 느낄 수 있었다.
만질 수는 없지만 정말 살아 있 는 것 같은 부모님, 자식, 연인과
산책을 하고 이야기를 할 수 있 었다.
그래서 그립고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나고 보고 싶은 이들이 전국에서 이곳을 찾아왔다.
안내 부스는 혹시라도 VR 핸드 폰을 가지고 있지 않거나, 사용 하는 방법을 모르는 이들을 위해 L 전자에서 설치한 것이었다.
가상에서나마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서 조금이라도 위안이 됐으 면 하는 마음에 L 전자가 무상 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L 전자의 VR 기기를 쓰고 걸 음을 옮기고 있는 사람들을 보던 이강혜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자신이 대표로 있는 회사의 제 품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 다는 것에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그것은 오혁도 마찬가지 였다. 오혁도 이곳에서 어머니를 만났다.
그는 그때 느꼈던 감동과 슬픔, 그리고 죄송함을 떠올렸다.
자신이 누워 있는 것을 보면서
돌아가셨을 어머니……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찢어졌을까.
그리고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도 못한 자신의 마음도 너무 아 팠다.
그래서 저 사람들의 마음이 어 떠한지 알 수 있었다.
잠시 사람들을 보던 오혁이 웃 으며 이강혜의 어깨를 손으로 감 쌌다.
“ 가자.”
오혁의 말에 이강혜가 걸음을
옮겼다.
걸음을 옮기며 군데군데 애들이 먹을 사료와 물을 채워 넣는 이 강혜를 따라다니던 강진은 VR을 쓰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러다 한 젊은 부부를 본 강진 이 한숨을 쉬었다.
부부는 각자 한 손을 늘어뜨린 채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남편은 오른손을 늘어뜨렸고, 아내는 왼손을 늘어뜨리고 있었 다.
그리고 살짝 거리를 둔 채 걷고 있는데, 시선은 그 둘의 가운데 아래쪽을 향하고 있었다.
마치 아이의 손을 잡고 같이 걷 는 것처럼 말이다.
‘아이와 걷고 있구나.’
두 사람의 사이에 작은 아이가 있었다면 지금 두 사람의 어색한 자세가 아주 자연스럽게 변한다.
남들은 그들 사이의 아이를 보 지 못하지만, 지금 그 둘 사이에 는 작은 아이가 있을 것이다.
자신들의 눈에만 보이는 아이와 행복하게 산책을 하는 부부를 강 진이 가만히 보고 있을 때, 오혁 이 말했다.
“아이와 산책을 하시나 보네.”
오혁도 젊은 부부의 모습에서 어린아이를 본 것이다.
“그런 것 같네요.”
“아주 어린아이인 것 같은 데……
이강혜가 젊은 부부의 손 위치 를 보며 작게 한숨을 쉬자, 강진
이 입을 열었다.
“정말 좋은 기술을 만드신 것 같습니다.”
“그래?”
“사람을 향한 기술이 좋죠. 돈 을 벌려는 기술 말고.”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 기술도 돈 잘 벌어.”
“그래요? VR 핸드폰 잘 안 팔 린다고 전에 그러셨잖아요.”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쓰게 웃 었다. 실제로 VR 전용 핸드폰은 생각보다 많이 팔리지가 않았다.
“아무래도 사시는 쪽들이 한정 적이고…… 어른들은 VR에 관심 이 없으니까.”
그나마 젊은 애들이 게임이나 연예인들을 바로 앞에서 보고 싶 다는 마음으로 사기는 했지만, 전 국민을 상대로 파는 것과는 수요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주 망한 것은 아니지 만 홍한 것도 아닌…… 그저 지
나쳐가는 핸드폰처럼 되어 버렸 다.
“그래도 아이템이 좀 팔려.”
“아이템요?”
강진이 보자, 이강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강진이 우리 VR 핸드폰 안 써?”
“ 쓰죠.”
지금 강진이 쓰는 것은 이강혜 가 준 VR 핸드폰이었다. VR 기
능이 강조가 되기는 했지만, 다 른 기능도 최상급이니 안 쓸 이 유가 없었다.
“VR 기능을 안 쓰나 보구나.”
“그게, 제가 바빠서요.”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VR을 통해서 여러 사람을 만 나고 하다 보면 놀 거리도 필요 하고 먹을 것도 필요하잖아.”
“그렇죠.”
“그걸 VR 상점에서 팔아.”
“VR 상점요?”
“이를테면……
말을 하던 이강혜가 오혁을 보 자, 그가 몸을 돌렸다. 오혁의 등 에는 사료와 물들이 담긴 가방이 메어져 있었다.
혼자 공원에 올 때 이강혜는 작 은 손수레를 끌고 다녔다. 여자 혼자 유기견, 유기묘들에게 사료 를 주고 물을 주기에는 무거우니 말이다.
하지만 오혁이 건강해지고 난 후에는 그가 사료와 물을 가지고 다녔다. 그러다 보니 오혁의 가 방은 꽤 크기가 컸다.
그 가방에서 VR 기기를 꺼낸 이강혜가 강진의 머리에 그것을 씌우고는 핸드폰의 VR 기능을 켜더니 기기에 끼워 주었다.
그러고는 핸드폰과 연결된 장갑 을 그의 손에 끼워 주었다.
“자, 이제 주위 봐봐.”
이강혜의 말에 강진이 주위를
보다가 깜짝 놀라 말했다.
“어?”
강진의 반응에 이강혜가 웃었 다.
“그동안 한 번도 VR로 여기 안 봤어?”
“제가 야외에서 이걸로 공원을 볼 일이 있나요.”
말을 하며 강진이 주위를 둘러 보았다. 방금 자신의 눈으로 보 던 것과 VR을 통해 본 공원은 정말 천지 차이였다.
한쪽에서는 붕어빵과 어묵, 그 리고 순대를 팔고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어린아이들이 좋아하는 장난감을 파는 아저씨가 좌판을 열고 있었다.
이런 노점상 외에도 공원의 한 쪽엔 작은 바이킹이 앞뒤로 움직 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아주머니 몇이 웃으며 바이킹을 보고 있었 다.
아니, 정확히는 바이킹을 타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었다.
‘저 아주머니들은 VR 이 아닌 것 같은데?’
아주머니들을 보던 강진이 고개 를 돌렸다. 그리고 아까 본 부부 쪽을 보았다.
곧 강진의 얼굴에 놀람이 어렸 다. 그의 눈에 젊은 부부의 손을 잡고 붕붕거리며 뛰고 있는 어린 남자아이가 보였다.
마치 그네라도 타는 것처럼 아 빠 엄마 손을 잡고 앞뒤로 폴짝 폴짝 뛰는 아이를 잠시간 보던 강진이 이강혜를 보았다.
“VR 캐릭터가 보여요.”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는 자신의 핸드폰에 저장 된 것만 보였는데…… 지금은 여 기 공원 내에 있는 VR 핸드폰의 캐릭터들이 서로 보이게 만들었 어.”
이강혜의 말에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좋네요. 서로가 서로의 캐 릭…… 아니, 사람이 보이면 더
현실감이 있겠어요.”
“맞아. 처음에는 앞에 있는 사 람들이 허공에 손을 대고 쓰다듬 는 것을 보며 자신이 보는 것이 허상이라는 것에 대해 마음 아파 하는 분들이 계셨는데, 지금은 다들 그들이 무엇을 보고 웃고 있는지 아니까 더 현실감을 느끼 더라고. 그리고 아이를 보러 온 부부끼리는 서로 인사도 하고 상 대 아이들에게 귀엽다고도 하 고.”
“서로 아는 척을 해요?”
“아이 가진 부모들끼리, 그리 고…… 먼저 아이를 보낸 부모들 끼리 여기서 만나면 인사도 하고 그러시는데…… 그러다가 같이 우시지.”
이강혜의 말에 강진이 한숨을 쉬었다.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끼리 만나니 더 울컥할 것이다.
강진이 그런 생각을 할 때, 이 강혜가 입을 열었다.
“마음 같아서는 VR 기기도 안
보이게 만들고 싶은데……
“하긴. 그게 옥에 티네요.”
강진이 젊은 부부를 보았다. 그 들이 어린아이를 보며 행복해하 는 것은 보기 좋지만, 그들의 머 리에 씌워져 있는 VR 기기로 인 해서 그들이 보는 것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하니 말이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