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5화
젊은 부부가 쓰고 있는 VR 기 기를 보던 이강혜가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아쉬워. 조금만 더 연구하면 될 것 같은데.”
그런 이강혜를 보던 강진은 고 개를 돌려 한쪽에 있는 호떡 가 게를 보았다.
“그런데 장사하는 캐릭터들이 많네요.”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에서 만나고 싶은 분들이 생전에 무엇을 좋아했을지 몰라 서 정말 다양한 음식을 재현해 냈어. 저쪽에 가면 중국집도 있 고 삼겹살집도 있어.”
이강혜가 한쪽을 가리키고는 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에 강 진이 그녀의 뒤를 따라 공원 한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그의 눈에 작은 포장마 차 같은 것이 보였다.
〈황룡각〉
〈돼지 촌〉
포장마차에는 중국집과 삼겹살 집에 어울리는 간판이 걸려 있었 다.
삼겹살집과 중국집을 강진이 신 기한 눈으로 볼 때, 이강혜가 말 했다.
“저것 말고도 해외 음식점들도
꽤 많이 구현해 놨어.”
“해외 음식점들도요?”
“여기 오시는 분 중에는 외국인 도 있거든. 그리고 VR로 만드는 거라 공간에 제한을 받지도 않잖 아.”
웃으며 삼겹살 가게와 중국집이 있을 위치를 보던 이강혜가 말을 이었다.
“저런 음식점과 놀이기구에서 조금이지만 소득이 나오고 있 어.”
“누나가 비싼 가격으로 콘텐츠 를 팔지는 않을 것 같은데…… 그것 가지고 매출이 잡혀요?”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맞아. 완전 공짜는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은 돈을 받고 있지.”
“그래도 그거로는 서비스 유지 비도 안 될 것 같은데?’’
강진의 물음에 이강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얼마 안 되기는 하지만 팔린다
는 것이 중요하지.”
“그래요?”
“사는 사람이 있다는 건 그 콘 텐츠가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거잖아. 따지고 보면 내가 여기 오시는 분들에게 돈을 드려야지. 나는 이분들에게 VR 콘텐츠를 시도해 보는 거고 저분들은 그에 대한 답을 주고 계시는 거니까.”
이강혜의 말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회사에 하는 변명이 이건가 보
네.’
아무리 L 전자가 인간 중심의 경영을 하고 회장님도 그런 마인 드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회사 란 건 결국 이윤을 추구할 수밖 에 없었다.
아마 이곳에 들어가는 돈도 꽤 될 것이다. 공원에 이렇게 이른 시간에 직원이 있는 것을 보면 아마 저녁 늦게까지도 인원을 배 치할 확률이 높으니 말이다.
그럼 못 해도 3교대로 세 명의 인원을 쓸 테고, 거기에 여기 공
원에 있는 센서들 관리하고, 콘 텐츠 개발하고, 운영진들도 있어 야 할 테고…….
여러모로 돈은 계속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회사 입장 에서는 말이 나올 것이고, 그럴 때마다 이런 말로 설득을 하는 모양이었다.
강진이 입맛을 다시는 것에 이 강혜가 웃었다.
“너무 불쌍하게 보지 마. 그리 고 내가 한 말 어느 정도는 사실 이야. 사람들이 우리 VR 하면서
보이는 반응들 우리 연구에 큰 도움이 돼.”
“그렇다니 다행이네요.”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피식 웃 고는 말했다.
“진짜로 도움이 돼.”
정말이라고 강조를 하는 이강혜 를 보던 강진이 주위를 둘러보았 다.
“하여튼 대단하네요.”
공원에 보이는 VR 세상에 강진
이 감탄을 할 때, 이강혜가 웃으 며 공원을 설명해 주었다.
“공원 앞에 있는 대여소에 말하 면 공원 지도를 줘.”
“지도요?”
“놀이공원에 가면 어디에 어떤 놀이기구가 있고, 뭐가 있는지 찾기 쉬우라고 지도를 주잖아. 그런 것하고 비슷해. 아이하고 산책하기 좋은 길, 부모님과 가 기 좋은 길, 연인과 가기 좋은 길 등등 각 테마로 산책로를 만 들었어.”
이강혜의 말을 들으며 주위를 보던 강진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 렸다.
그것도 잠시, 강진은 피식 웃었 다.
“애견 VR 기기도 만들었어요?”
“응? 애견 VR?”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무슨 말 인가 싶어 그를 보다가 말했다.
“강아지 키우는 분들한테도, 나 한테도 강아지는 소중한 가족이 지만…… 아직까진 애견들을 캐
릭터화하지는 않았어.”
이강혜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거 말고요.”
말을 하며 강진이 한쪽을 가리 켰다.
“저기요.”
강진의 말에 이강혜가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녀의 얼굴에 의 아함이 어렸다.
산책로에 조금은 덩치가 큰 노
란 개가 머리에 VR 기기를 쓰고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 옆에는 서른 중반 정도 돼 보이는 남자가 조금은 긴 목줄을 들고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우리 상품 중에 애견용 VR 기 기는 없는데……
이강혜가 의아한 듯 개를 보고 있을 때, 오혁이 그쪽으로 걸음 을 옮겼다.
“오빠, 어디 가?”
“물어보려고, 그리고 저 개가
뭘 보고 있는지도 궁금하잖아.”
오혁의 말에 이강혜가 그를 보 다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같이 걸 음을 옮겼다.
그녀도 개가 VR 기기로 무엇을 보고 있는지 궁금했다. 또, 한국 애견인을 생각하면 애견 시장도 엄청난 수요가 있으니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았다.
강진은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가 다가 남자의 옆을 보았다. 그곳 엔 머리에서 피를 홀리는 여자 귀신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사고로 돌아가셨나 보네.’ 머리에 저 정도 출혈이 있다니
사고로 죽은 것 같았다.
발로 땅을 툭툭 치며 걷던 최문 우는 앞에서 신이 나서 뛰고 있 는 레트리버, 건우를 보며 말했 다.
“천천히 가라. 힘들다.”
귀찮은 티가 다소 나는 최문우 의 목소리에 건우가 그를 돌아보 았다.
그러더니 작게 멍, 하고 짖고는 다시 옆을 보며 신이 나서 걸음 을 옮겼다.
그 모습에 최문우가 한숨을 쉬 었다.
“건방진 놈의 개자식.”
욕은 아니었다. 건우는 개니 말 이다.
최문우의 말에 그 옆에 걷던 여 자 귀신이 웃으며 말했다.
“그런 말 하지 말라니까. 좋은 이름 두고 개자식이 뭐야.”
그녀의 남편인 최문우는 건우에 게 장난식이든 진심이든 개자식 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하면 남 편은 건우는 개라서 개자식이라 고 해도 타격을 전혀 받지 않는 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지만…… 그래도 좋은 이름 있는데 그렇게 부르니 그녀 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건우에게 끌려가듯 앞으로 가는 최문우를 보던 여자 귀신이 그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안녕하세요.”
건우의 뒤를 따라가던 최문우는 자신에게 인사를 하는 남자를 보 고는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인사한 최문우는 그대로 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저 가벼운 길거 리 인사라 생각을 한 것이다.
“애가 참 듬직하게 생겼네요. 레트리버죠?”
남자가 건우를 보며 하는 말에 최문우가 걸음을 멈추고는 고개
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애한테 좀 다가가도 될까요?”
“그러세요. 다른 사람은 안 물 더군요.”
“다른 사람은?”
남자가 의아한 듯 보자, 최문우 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를 싫어해서 초반에 몇 번 물렸습니다.”
“아……
남자가 살짝 뒤로 물러나자, 여 자 귀신이 급히 말했다.
“피도 안 나게 살짝 물었는데 그걸 몇 번이나 우려먹는 거야.”
여자 귀신의 말에 최문우가 고 개를 저었다.
“그래도 다른 사람은 안 무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애가 사람을 좋아해서 쓰다듬어 주면 좋아합니다.”
“그래요?”
남자는 의아한 듯 최문우를 보
았다.
“주인이 아니세요?”
레트리버는 대표적인 친인간적 견종이었다. 일명 천사견이라고 불리기까지 했다.
그런데 왜 최문우만 무나 싶었 다.
“지금은 주인이기는 한데…… 저놈은 제가 주인이라 생각을 하 지 않죠.”
작게 고개를 저은 최문우가 말 했다.
“그런데 건우가 그쪽 마음에 드 나 보네요.”
최문우의 말에 남자, 오혁이 건 우를 보았다.
건우는 오혁의 발밑에서 그를 올려다보며 꼬리를 흔들고 있었 다.
아마도 가방에 들어 있는 사료 와 간식 냄새를 맡은 모양이었 다.
그 모습에 오혁이 피식 웃으며 자신의 주먹을 내밀었다.
그에 건우가 오혁의 주먹 냄새 를 맡고는 혀로 핥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최문우가 말했다.
“개 키우시나 보네요.”
“키운다기보다는 애들하고 좀 친하게 지내는 편입니다.”
그러고는 오혁이 자신의 옆에 있는 이강혜와 강진을 가리켰다.
“여기는 제 아내, 그리고 이쪽 은 처남입니다.”
처남이라는 말에 이강혜와 강진
이 웃었다.
“아......" 네.”
오혁이 자신의 일행을 소개하 자, 최문우는 가볍게 고개를 숙 이면서도 속으로는 오혁을 조금 이상한 사람 취급을 했다.
공원에서 만나 가볍게 인사하는 것 정도야 이해가 된다. 개 좋아 하는 사람들은 개를 보면 말을 걸기도 하니 말이다.
그 또한 건우 데리고 산책을 다 니다 말을 거는 사람들을 꽤 많
이 만났었다.
다만 이렇게까지 친근하게 다가 오는 사람은 드물었다.
최문우가 조금 당황스럽게 그들 과 인사를 할 때, 이강혜가 오혁 이 메고 있는 가방에서 간식을 꺼내며 말했다.
“간식 좀 줘도 되나요?”
“그러세요.”
최문우의 말에 이강혜가 간식을 건우에게 내밀었다.
“자, 먹어.”
이강혜의 말에 건우가 침을 흘 리며 최문우를 보았다.
“먹어.”
멍!
최문우의 말에 건우가 간식을 앞니로 살며시 잡아당겨서는 입 에 넣고 씹었다.
그 모습에 이강혜가 웃으며 말 했다.
“애가 교육이 잘 됐네요.”
“제 아내가 개를 좋아해서 잘 가르쳤습니다.”
“잘 가르쳤는데…… 선생님을 물어요?”
오혁이 이상한 듯 묻자, 최문우 가 건우를 보며 입맛을 다셨다.
“이 녀석이 질투가 심해서요.”
“질투?”
“제 아내가 처녀 때부터 키우던 녀석인데, 저하고 결혼해서 사니 나를 질투하더군요.”
“질투심 강한 애들이 있죠.”
이강혜의 말에 여자 귀신이 한 숨을 쉬며 말했다.
“결혼하기 전에는 저하고 같이 자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결혼하 고 남편하고 자니…… 그게 싫었 나 봐요.”
물론 자신의 말이 들리지 않겠 지만, 여자 귀신은 푸념하듯 말 했다.
당연히 그녀의 말을 듣지 못한 이강혜는 건우의 머리를 쓰다듬
으며 물었다.
“그런데 이름이 뭐예요?”
“건우입니다.”
“건우 너 되게 잘생겼다.”
건우의 머리를 쓰다듬던 이강혜 는 VR 기기를 살폈다.
‘기계는 우리 건데……
개가 쓰도록 만들어진 VR 기기 는 없지만, 기계 자체는 L 전자 에서 만든 것이었다. 다만 개가 머리에 쓸 수 있도록 수제로 고
친 모양이었다.
“그런데 애가 뭘 보는 건지 물 어도 될까요?”
“건우는 저를 보는 거예요.”
여자의 목소리에 강진이 힐끗 그녀를 보았다. 하지만 여자 귀 신은 강진을 보지 않았다.
귀신이라고 모두 저승식당을 아 는 건 아니었다. 귀신도 아는 것 만 알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
즉, 식당에 대해 듣지 못했거나 가 본 적이 없으면 저승식당의
존재를 모를 수밖에 없는 것이 다.
그러다 보니 이처럼 귀신을 보 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하는 귀신이 있기도 했다.
강진은 같이 온 사람들이 있어 서 그녀에게 말을 걸 수가 없었 다.
‘용수 데리고 올걸.’
배용수를 데리고 왔으면 귀신과 대화를 시켜서 자신에 대해 알게 할 텐데……. 그런 생각을 하던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부르면 되잖아.’
사람이 있을 때, 귀신과 대화를 하려면 배용수의 도움이 필요했 다. 하지만 지금은 안 된다. 지금 배용수는 한참 음식을 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그에 강진이 입을 작게 열었다.
“이혜미, 이혜미, 이혜미.”
배용수가 안 되면 다른 직원을 부르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