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1046화 (1,044/1,050)

외전 19화

비닐장갑을 보며 의아해하는 임 수정에게 강진이 말했다.

“문우 씨가 좋아하는 음식 직접 해 주고 싶지 않으세요?”

“직접요?”

“여기 오신 분들 사랑하는 사람 에게 음식 해 주는 거 정말 좋아 하더라고요. 수정 씨도 문우 씨 가 좋아하는 음식 하나 해 보세 요.”

“그래도 되나요?”

귀신인 자신이 음식을 해도 되 는지를 묻는 임수정을 보며 강진 이 웃었다.

“우리 용수도 이렇게 하고 있잖 아요.”

강진의 말에 배용수가 젓가락으 로 삶아지는 국수 면을 쫘아악! 들어 보이며 웃었다.

“강진이 말대로 저도 이렇게 하 고 있잖아요.”

“아……

작게 탄성을 토한 임수정은 비 닐장갑을 보았다.

“그럼 제가 음식을 해도 되는 건가요?”

“이왕이면 문우 씨가 좋아하는 음식을 해 드리면 좋잖아요. 그 리고 그건 아마도 수정 씨의 손 맛일 것 같아서요.”

그러고는 강진이 비닐장갑을 살 짝 들어 보였다.

“싫으세요?”

강진의 말에 임수정이 급히 비

닐장갑을 쥐었다.

“싫기는요. 당연히 좋죠.”

말을 한 임수정은 손에 쥔 비닐 장갑을 만지작거렸다.

자신이 물건을 만지고 있다는 것이 정말 신기했다. 귀신이 되 고 난 후 한 번도 물건을 쥐어 본 적이 없으니 말이다.

신기해하는 임수정을 보며 작게 웃은 강진이 말했다.

“그래서 뭘 해 보고 싶으세요?”

강진의 말에 임수정이 장갑을 끼다가 김치와 깍두기, 그리고 배용수가 삶고 있는 국수를 보고 는 말했다.

“혹시 골뱅이 통조림 있을까 요?”

“있습니다.”

강진이 냉장고에서 골뱅이 통조 림을 꺼내 들자, 임수정이 미소 를 지으며 말했다.

“그럼 비빔국수 만들게요.”

“비빔국수라. 그거 좋죠.”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임수 정이 웃으며 말했다.

“제가 국수를 좋아해서 자주 골 뱅이 넣고 김치 넣고 해 먹었거 든요.”

“그럼 오이도 꺼낼까요?”

“오이는 괜찮아요. 오빠가 오이 를 못 먹거든요.”

“오이 향을 싫어하시나 보네 요.”

“맞아요. 그래서 우리는 비빔국 수나 김밥에서 오이를 빼고 먹어

요.”

임수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강진이 말했다.

“그럼 맛있게 부탁드리겠습니 다.”

음식을 임수정에게 맡긴 강진은 뜨거운 물로 오미자차를 타서는 홀로 가지고 나왔다.

“차 한 잔 드세요.”

“고맙습니다.”

음식이 아니라 차를 주는 것에

조금 의아했지만, 최문우는 차를 받아 한 모금 마셨다.

“맛있네요.”

“오미자차예요. 따뜻한 물에 오 미자를 타서 마시면 오미자차가 되고, 차가운 물에 타서 마시면 오미자 주스가 되죠. 이따가 제 가 조금 드릴게요.”

“그러면 죄송해서.”

“아닙니다. 저희는 음식이 많은 걸요. 그리고 음식은 조금만 기 다려 주세요. 저희 셰프가 특별

한 음식을 만들고 있습니다.”

강진이 웃으며 하는 말에 최문 우가 그를 보다가 말했다.

“그런데 사장님은 참 특이하시 네요.”

“제 가요?”

“아! 물론 나쁘게 특이하다는 건 아니고요. 말하자면…… O.. 하

말끝을 늘이던 최문우가 웃으며 머리를 긁었다.

“사실 저희 오늘 처음 봤잖아 요.”

“그렇죠.”

“그런데 왜 이렇게 저에게 잘 해 주시는지 그게 좀 의아합니 다.”

“사람한테 사람이 잘 해 주는 것이 의아하세요?”

강진의 말에 최문우가 피식 웃 으며 말했다.

“그게 당연한 말인 것 같기는 한데, 요즘은 사람이 사람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잘 해 주는 사 회는 아니잖아요.”

최문우의 말에 강진이 그를 보 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한 말이 당연한 세상이면 좋겠는데…… 문우 씨 말대로 요 즘 세상이 그게 당연하지는 않은 세상이죠.”

“그러니까요.”

최문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강진 이 2층 쪽을 한 번 보고는 말했 다.

“아마 건우 때문에 잘 해 드린 것 같네요.”

“ 건우요?”

“사실 건우가 VR 기기를 쓰고 있던 것이 눈에 띄었고, 그것이 신기해서 문우 씨에게 다가갔습 니다. 그리고 건우가 수정 씨를 보고 있다는 것에 신경이 쓰였고 요.”

강진의 말에 최문우가 작게 고 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VR을 보는 개, 그것도

죽은 주인을 보고 싶어 하는 개 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어쩐지 마음이 갈 것 같았다.

쉽게 볼 수 있는 일이 아닌, ‘세 상에 저런 일이’ 같은 TV 프로 그램에 나올 법한 일이니 말이 다.

강진이 잠시 허공을 보다가 말 했다.

“제 마음에 남아 있는 개가 셋 이 있습니다.”

“셋요?”

최문우의 물음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와 같은 식당을 운영하던 이 태문 어르신이 있었습니다.”

“같은 식당?”

“저와 같은 컨셉으로 식당을 운 영한다고 봐야겠네요.”

웃으며 강진이 말을 이었다.

“그분께선 황구라는 이만 한 개 를 기르셨습니다.”

강진이 탁자 밑으로 손을 내려

황구의 크기를 가늠해 보여 주고 는 말했다.

“그분께서 어느 날 저희 가게로 황구를 데리고 오셨습니다.”

“식당에요?”

강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몸은 자기가 잘 안다는 말이 있는데…… 어르신께서 자 기가 얼마 살지 못할 거라 생각 을 하시고 황구를 저에게 맡기려 고 온 겁니다.”

“황구를 맡기려고……

최문우의 말에 강진이 허공을 잠시 보다가 말했다.

“그런데 황구가 잘 놀다가 어르 신이 가니 기어코 따라가더군 요.”

“그렇겠죠.”

개는 주인을 따라가려고 하니 말이다.

“그게 참 기억에 남습니다. 주 인…… 아니, 가족의 곁에 있고 싶어 하는 마음이 말입니다.”

강진의 말에 최문우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물었다.

“그럼 황구는 어떻게 됐습니 까?”

“어르신 가시고…… 같이 갔습 니다.”

“같이요?”

“아마도 하나뿐인 가족이 가니 녀석도 같이 간 것 같습니다.”

물론 황구가 먼저 죽어 귀신이 된 상태에서 주인이 죽으니 같이 승천을 한 것이지만 말이다.

“아…… 그런 일이 있군요.”

주인을 따라 죽었다는 말에 최 문우는 아련한 눈으로 천장 쪽을 올려다보았다. 2층에 있는 건우 에 대해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 다.

다시 시선을 내려 강진을 본 최 문우가 말했다.

“그럼 두 번째 강아지는?”

“예전에 공원에서 한 어르신을 만났습니다. 그분께서 종이 박스 에 ‘개 데려가실 분.’ 하고 글을

적어 놓으셨더군요.”

“개 분양요?”

“처음에는 그리 보기 좋지 않더 군요. 무슨 사정인지 모르겠지만, 자기가 기르던 개를 다른 사람에 게 보내려고 한다 생각을 했거든 요.”

잠시 허공을 보던 강진은 어르 신이 적었던 글귀를 떠올렸다.

〈개 가져가실 분.

진돗개 믹스로 똥, 오줌 잘 가 립니다.〉

카스의 전 주인인 할아버지가 적어 놓았던 글을 떠올리며 강진 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애가 나이를 먹고 커서 사람들이 데려가려고 하지를 않 았습니다.”

“그렇겠죠. 보통 작은 아이를 입양하니까요.”

“그런데도 어르신은 개를 데리

고 매일 공원에 왔습니다. 그것 도 아주 먼 곳에서요.”

“먼 곳에서요?”

“아무래도 여기 공원 주변엔 부 자들이 사는 집들이 많으니…… 이왕이면 부잣집에 입양을 보내 고 싶어 하셨습니다.”

“애를 그렇게 생각하시는데 왜 굳이 부잣집에……

최문우의 말에 강진이 한숨을 쉬었다.

“그 어르신도 병원에서 시한부

판정을 받았습니다.”

“아……

“그래서 애를 입양 보내려 하신 겁니다.”

숙연해진 최문우를 보며 강진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벽에 가게 밖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더군 요.”

“개 짖는 소리요?”

“새벽이라 시끄럽기도 하고 해

서 나가 봤는데, 카스였습니다. 아! 그 녀석 이름이 카스예요.”

“그래서요?”

홍미가 돋는 듯 최문우가 묻자, 강진은 그날을 떠올리며 이야기 를 이어나갔다.

“털에 피를 잔뜩 묻히고 헥헥거 리며 문 앞에 있더군요.”

“피?”

피라는 말에 최문우가 눈을 찡 그렸다.

“할아버지가 쓰러지셔서 저한테 도와달라고 온 거였더군요.”

강진의 말에 최문우가 놀란 눈 으로 그를 보았다.

“애를 데리고 집에 7} 보니 철 로 된 방충망이 뚫려 있었습니 다. 철로 된 방충망을 맨몸으로 뚫고 나오니 몸이 이리저리 상한 거였고요.”

“그럼 어르신은?”

“집에 들어가니 돌아가셨더군 요.”

“카스가…… 똑똑하네요.”

최문우는 한숨을 쉬다가 물었 다.

“그럼 카스는 어떻게 됐습니 까?”

“저하고 친한 형이 입양해서 같 이 살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다행이에요. 그럼 아 까 말한 세 번째 강아지는요?”

최문우의 물음에 강진이 잠시 허공을 보며 흰둥이를 떠올렸다.

“흰둥이를 처음 만난 건 그 공 원에서였습니다. 아실지 모르겠 지만 공원에 작은 정자가 있습니 다.”

“아, 알고 있습니다. 팔각정 말 씀이 시죠?”

최문우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팔각정 아래가 흰둥이가 살 던 곳이었습니다.”

“팔각정 아래라면…… 혹시 유 기견이었습니까?”

“네. 주인이 그곳에 두고 가서 그곳이 집이 된 것 같았어요. 몇 번 얼굴 마주하다가 제가 데려다 키우려고 했는데…… 녀석이 꼬 리를 흔들며 따라오다가도 정자 에서 멀어지면 다시 돌아가더군 요.”

“다시?”

의아한 듯 강진을 보던 최문우 가 한숨을 쉬었다.

“주인이 올까 그 자리로 돌아가 는 거군요.”

“맞습니다.”

“그럼 흰둥이는 아직 거기에 있 습니까?”

최문우의 물음에 강진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눈이 오는 날이었습니다.”

강진의 말에 최문우가 입맛을 다셨다.

“그 말만 들어도…… 벌써 마음

이 아픕니다.”

최문우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진도 흰둥이가 떠나 던 날을 떠올리면 슬퍼지니 말이 다.

“눈이 오는 날, 흰둥이한테 밥 을 주려고 정자에 갔는데…… 흰 둥이가 없었습니다.”

“설마 무슨 사고라도?”

강진은 고개를 저었다.

“주인을 만났더군요.”

“주인? 주인이 흰둥이를 데리러 온 거였습니까?”

환한 얼굴로 묻는 최문우를 보 며 강진이 말을 이었다.

“그건 아니고, 주인이 아내와 어린아이를 데리고 왔다가 흰둥 이를 만난 거였습니다.”

강진은 그날 본 광경을 떠올렸 다.

아직 귀신을 볼 수 있는 아이는 흰둥이와 함께 눈밭을 뛰어다니 며 놀았다.

그리고 흰둥이는 자신과 놀아주 는, 주인과 같은 냄새가 나는 아

이와 정말 최선을 다해 놀아주었 다.

아이를 웃게 해 주려고 이리저 리 뛰고, 바닥을 뒹굴고, 배를 까 서 보여주고…… 그런 흰둥이를 보며 아이는 정말 밝고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런 아이의 웃음에 흰 둥이는 더욱더 열심히 재롱을 부 렸다.

“흰둥이는 어린 주인과 정말 재 밌게 눈밭을 뛰어다니며 놀았습 니다.”

“잘 됐네요.”

최문우가 안도의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강진이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그리고 주인은 흰둥이를 두고 가족과 함께 떠났습니다.”

강진의 말에 최문우의 얼굴이 굳어졌다.

“흰둥이만 두고요?”

“정확히는…… 흰둥이가 따라가 지 않았습니다.”

“안 따라가요?”

“가는 주인의 뒷모습만 보다가 더 이상 보이지 않자 저에게 오 더군요.”

“아니, 왜요? 주인을 그렇게 기 다렸으면서?”

답답하다는 듯 말하는 최문우를 보며 강진이 고개를 저었다.

“주인의 가족을 보고 자신이 버 려졌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았습 니다. 주인의 곁에 자신의 자리 가 더 이상 없다는 것도요.”

강진의 말에 최문우가 멍하니 그를 보았다.

“그렇게까지......" 생각을 한다고 요?”

‘개가?’라는 말은 삼키고 묻는 최문우를 보며 강진이 말했다.

“물론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지 만 그런 것 같았습니다. 흰둥이 는 그저 주인이 가는 것을 물끄 러미 보다가 저한테 왔었거든 요.”

“아…… 그럼 흰둥이는요?”

강진은 대답 대신 작게 고개를 저었다.

“ 하아.”

최문우가 크게 한숨을 쉬자, 강 진이 입을 열었다.

“애들을 보면 사람이나 개나 하 나의 생명이라는 생각이 듭니 다.”

강진의 말에 최문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강진의 말을 들으 니…… 오히려 개가 사람보다 낫 다는 생각이 들었다.

흰둥이가 그러했듯, 건우도 사 랑하는 사람을 그리워하고 있으 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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