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1047화 (1,045/1,050)

외전 20화

흰둥이를 생각하던 강진은 문득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보았 다.

‘흰둥이는 잘 지내고 있으려나.’

그런 생각을 잠시 하던 강진에 게 최문우가 말했다.

“그래서 개를 좋아하시는군요.”

“그런 녀석들을 아는데 싫어할 수가 없죠. 그리고 제가 원체 동

물들을 좋아합니다.”

강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건우를 보니 문우 씨가 남처럼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친구의 친 구는 친구 아니겠습니까.”

강진의 말에 최문우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건우 덕에 좋은 친구를 사귀게 되었네요.”

“그런 셈이죠. 아, 강원도에 제 가 좋아하는 멧돼지 가족도 있습 니다.”

“멧돼지 가족요?”

그건 또 무슨 말인가 싶어 되묻 는 최문우를 보며 강진이 말했 다.

“저희 집 김치가 강원도에서 김 장해서 산속 동굴에서 보관을 하 거든요.”

“그래요? 산속 동굴에다 김치를 보관하는 가게들을 TV에서 보기 는 했는데 여기도 그렇게 하는군 요.”

“동굴에다 보관을 해서인지 맛

이 아주 좋습니다. 그리고 멧돼 지 가족은 그 동굴이 있는 산에 살아요.”

“그럼 위험하지 않습니까?”

“전혀 안 위험해요. 저 가면 멧 돼지 가족들이 달려와서 인사하 고 갑니다.”

강진의 말에 최문우가 웃었다.

“멧돼지 가족이 인사를요?”

“진짜예요.”

웃으며 강진이 말을 이었다.

“제가 그 녀석들 겨울마다 사료 를 챙겨 주거든요. 제가 밥을 주 는 걸 알아서 그런지 제 차 소리 만 들리면 달려와서 반겨줍니다. 아! 그리고 저 그 녀석들 타고 산을 뛰어다니기도 해요.”

“멧돼지를 타요?”

“아주 스릴 넘쳐요.”

강진의 말에 그를 보던 최문우 가 피식 웃었다. 진짜인지 농담 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야기만으 로도 유쾌한 것이다.

“재밌는 곳이네요.”

“다음에 한번 같이 가요. 건우 도 거기 가면 돼랑이 식구들하고 잘 놀 겁니다.”

“돼랑이?”

“거기 아빠 멧돼지 이름이 돼랑 이예요.”

말을 한 강진이 미소를 지었다.

“제가 좋아하는 형이 이름을 지 었죠.”

강진의 말에 최문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한번 갔으면 좋겠네요.”

“제가 다음에 갈 때 초대하겠습 니다.”

“감사합니다.”

웃으며 답한 최문우가 말을 이 었다.

“어쨌든 동굴에서 숙성한 김치 라니…… 맛이 아주 좋을 것 같 네요.”

“정말 맛이 좋습니다.”

입맛이 도는 듯 최문우가 침을 삼키다가 말했다.

“제 아내도 김치를 참 좋아했습 니다.”

“그러세요?’’

“음식점에서 정말 맛있는 김치 를 먹으면 파냐고 물어서 사 올 정도였죠. 제 아내가 김치 넣고 만든 비빔국수를 참 잘 했습니 다.”

최문우는 잠시 허공을 보다가 말을 이었다.

“집에 있는 김치, 깍두기, 열무 김치 등등 자잘하게 썰어 넣고 고추장, 설탕, 참기름 넣고 비비 면 정말 맛이 좋았습니다. 간단 하지만 정말 맛있었어요.”

“말만 들어도 입에서 침이 고이 네요.”

강진의 말에 최문우도 침을 한 번 삼키고는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먹으면 정말 맛이

말을 하던 최문우의 얼굴에 씁

쓸함이 어렸다.

“정말 맛이 좋았는데.”

그런 최문우의 모습에 강진이 입맛을 다셨다.

최문우는 그 비빔국수를 더 이 상 먹을 수가 없었다. 같은 재료 로, 같은 방법으로 한 비빔국수 를 같은 곳에서 먹어도…… 같이 먹었던 그 사람이 없으니 말이 다.

“강진아, 음식 다 됐다!”

그때, 배용수의 말에 강진이 몸

을 일으켰다.

“음식이 다 된 것 같네요.”

자리에서 일어난 강진은 주방으 로 가다가 주방 입구에 서 있는 임수정을 보았다.

그녀는 아련한 눈으로 최문우를 보고 있었다. 그런 임수정을 보 며 주방에 들어간 강진이 작게 말했다.

“이야기 다 들으셨어요?”

강진의 말에 임수정이 작게 고 개를 끄덕이며 홀을 보았다.

“우리 둘이 비빔국수를 먹으면 그렇게 맛이 좋았는데……

최문우가 자신이 해 준 비빔국 수를 좋아하는 건 알았지만, 이 렇게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몰 랐던 그녀였다.

그래서 더더욱 미안했다. 자신 이 너무 일찍 죽은 것이 말이다.

슬픈 눈으로 최문우를 보던 임 수정에게 강진이 말했다.

“죽은 것을 미안해할 이유는 없 습니다. 수정 씨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강진의 말에 임수정이 홀을 보 다가 말했다.

“아! 국수 불겠어요.”

그녀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 덕이고는 쟁반에 담아 놓은 비빔 국수를 보았다.

‘어? 비빔국수에 왜 이리 물이 많아?’

비빔국수는 조금 묽은 소스에 살짝 담가져 있었다. 보통 비빔 국수에 들어가는 소스 치고는 너

무 묽었고, 양이 많았다.

강진이 비빔국수를 보는 것에 배용수가 말했다.

“수정 씨가 한 거야.”

배용수의 말에 강진은 더는 말 을 하지 않고 비빔국수가 담긴 쟁반을 들고 홀로 나왔다.

“음식 나왔습니다.”

강진의 말에 고개를 든 최문우 가 웃으며 말했다.

“비빔국수를 벌써 만드신 겁니

까?”

“비빔국수가 쉽고 빠르게 만들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일 분 이 내에 나오는 건 아니죠.”

웃으며 강진이 음식을 식탁에 올렸다.

“우리 주방장이 김치가 맛있어 보여서 이렇게 비빔국수를 했다 고 하더라고요.”

“그렇군요. 주방장님하고 제가 마음이 통했나 봅니다.”

말을 하던 최문우는 자신의 옆

자리에 놓이는 비빔국수에 의아 한 듯 강진을 보았다.

“이건?”

“모자라시면 더 드시라고요.”

“저 그렇게 양 안 큰데요.”

최문우가 웃으며 자신의 앞에 놓인 비빔국수를 보았다.

“이것도 다 못 먹을 것 같은데 요.”

최문우의 말에 강진이 웃으며 그의 앞에 놓인 국수를 보았다.

확실히 그의 비빔국수도 꽤 많은 양이었다.

곱빼기라고 주문을 하며 나올 정도의 양이었으니 말이다.

“국수라는 게 원래 들어가면 한 도 끝도 없이 들어가잖아요. 그 리고 식당에서 음식 아끼면 되나 요. 많이 드세요.”

최문우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젓 가락을 드는 사이, 이혜미가 임 수정을 데리고 홀로 나왔다.

“수정 씨도 문우 씨 옆에서 드

세요. 문우 씨 옆에 놓인 비빔국 수, 수정 씨 거예요.”

“아…… 저 생각해서 세 그릇을 만드신 거예요?”

“그럼요.”

이혜미가 알아서 상황을 정리해 주는 것에 강진이 그녀를 보며 작게 웃고는 임수정에게 눈짓을 했다.

빈자리에 앉으라는 강진의 눈짓 에 임수정이 환하게 웃으며 최문 우의 옆에 앉았다.

그것을 보며 강진이 말했다.

“국수 불겠네요. 어서 드셔 보 세요.”

강진의 말에 최문우가 젓가락으 로 비빔국수를 슬쩍 저었다.

스르륵! 스르륵!

이미 비벼진 국수가 젓가락에 다시 한 번 비벼졌다.

‘그런데 이건 육수인가?’

국수를 비비던 최문우의 얼굴에 의아함이 어렸다. 이건 비빔국수

라고 하기에는 소스가 많았다.

마치…… 죽은 임수정이 자신에 게 해 주던 비빔국수처럼 말이 다.

최문우가 국수를 비비자, 임수 정도 따라서 국수를 비볐다.

스르륵! 스르륵!

꿀꺽!

국수를 비비던 임수정은 옆에서 들리는 침 삼키는 소리에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최문우는 정말 맛있겠다는 얼굴 로 국수를 비비고 있었다.

“내가 한 거야. 정말 맛있어 보 이지? 먹으면 더 맛있을 거야. 우리 집에서 먹던 김치보다 여기 김치가 훨씬 더 맛있거든.”

싱긋 웃으며 말을 한 임수정이 최문우를 보았다.

“어서 먹어 봐.”

임수정의 말을 듣기라도 한 것 처럼, 최문우가 비빔국수를 한 젓가락 크게 떴다.

주르륵!

묽은 소스가 면을 타고 흘러내 리는 것을 보고 입맛이 돈 강진 이 비빔국수를 크게 한 젓가락 떴다.

후루룩! 후루룩!

비빔국수를 입에 넣고 씹은 강 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삭! 아삭!

맛있게 익은 깍두기와 배추김치 가 아삭하게 씹혔고, 양념의 매 콤한 맛이 입안을 화끈하게 만들

었다.

‘깍두기를 조금 크게 썰어서 넣 어도 좋겠는데.’

다만 깍두기를 너무 작게 썰어 서 그런지 식감이 조금 아쉬웠 다. 그에 강진은 반찬으로 나온 깍두기를 집어 입에 넣었다.

아삭! 아삭!

입 안 가득 느껴지는 깍두기의 식감에 고개를 끄덕이던 강진이 슬쩍 최문우를 보았다.

최문우는 비빔국수를 정말 맛있

게 먹고 있었다.

‘확실히 국수는 입에 크게 넣어 야 맛있어.’

속으로 중얼거리며 강진이 임수 정을 보았다. 임수정도 많은 양 의 국수를 한 번에 입에 넣으며 맛있게 먹고 있었다.

그러다가 강진의 시선이 닿자, 급히 입가를 손으로 가렸다.

“제가…… 좀, 마。] 너었……

입안 가득 들어있는 국수 탓에 발음이 뭉개지자 이혜미가 웃으

며 말했다.

“국수는 원래 크게 한 입에 넣 어서 먹는 거니 괜찮아요. 봐요. 강진 씨도 문우 씨도 그렇게 먹 잖아요.”

이혜미의 말에 임수정이 민망한 듯 작게 웃고는 씹던 국수를 삼 킨 뒤 다시 입을 열었다.

“너무 맛있어요.”

정말 맛이 너무 좋았다. 아까 밥에 김치 올려서 먹을 때도 맛 이 좋았는데, 지금은 자신의 혀

가 녹아버릴 둣이 맛있었다.

게다가 매끈한 국수 면발이 입 안으로 빨려 들어와서 씹히는 감 촉과 깍두기의 아삭함이 너무 좋 았다.

국수를 맛있게 먹던 임수정이 최문우를 보았다.

“맛있……

‘맛있지?’라는 말을 하려던 임수 정은 말을 잇지 못했다. 최문우 가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던 탓이었다.

영화처럼 극적으로 오열하는 것 은 아니었지만, 조금씩 뺨을 타 고 홀러내리던 눈물이 허공으로 떨어졌다.

뚝뚝뚝!

소리 없이 눈물 흘리는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슬프고 아련하게 보였다.

그런 최문우의 모습에 임수정이 급히 말했다.

“왜 그래? 왜 울어?”

강진은 슬며시 티슈를 뽑아 내

밀었다. 그에 최문우가 급히 티 슈로 눈가를 눌렀다.

그러고는 잠시 있다가 웃으며 말했다.

“너무 맛있습니다.”

강진이 말없이 보자, 최문우가 말했다.

“우리 수정이가 만든 것하고 비 슷합니다.”

말을 하던 최문우가 피식 웃었

다.

“사실 맛은 우리 수정이가 한 것보다 이게 더 맛있습니다.”

“이것도 내가 한 거거든?”

퉁명스럽게 말한 임수정은 최문 우의 눈가를 손으로 쓸어올렸다.

“그럼 맛있게 먹으면 되지, 울 기는 왜 울어. 나 속상하게.”

하지만 그런 손길을 느끼지 못 하는 최문우가 입을 열었다.

“우리 수정이 비빔국수는 조금

소스가 묽은 스타일입니다.”

“그러세요?’’

고개를 끄덕인 최문우가 웃으며 소스를 보았다.

“사실 이거 주실 때 살짝 의아 했습니다. 비빔국수에 육수를 부 으신 건가 해서요.”

최문우는 숟가락으로 양념을 살 짝 떠서 맛을 보더니 웃으며 말 했다.

“양념장에 깍두기 국물을 넣어 서 만드신 거죠?”

최문우의 말에 강진이 임수정을 보았다.

“맞아요. 저는 비빔국수 할 때 깍두기 국물을 같이 넣어서 해 요.”

임수정의 말에 강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저희 주방장이 그렇 게 만듭니다.”

“저희 집 김치하고 깍두기 넣은 것하고는 맛이 조금 다르지 만…… 이상하게 우리 수정이가

한 것 같네요.”

최문우가 웃으며 비빔국수를 보 았다. 그 많던 비빔국수는 어느 새 몇 젓가락 남아 있지 않았다.

“너무 맛있어서 먹는 것이 아까 울 정도예요.”

최문우는 젓가락으로 비빔국수 를 삭삭 모아서는 크게 떠서 입 에 넣었다.

그렇게 남김없이 비빔국수를 먹 은 최문우가 미소를 지었다.

“저를 여기로 데려와 주셔서 정

말 감사합니다.”

최문우의 말에 임수정이 자리에 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강진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초대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 다.”

임수정은 정말 감사했다. 사랑 하는 사람에게 늘 해 줄 거라 생 각을 했던 한 끼 식사…… 하지 만 그녀는 얼마 해 주지 못했다.

그런데 강진 덕에 사랑하는 사 람에게 음식을 해 줄 수 있었다.

그래서 너무 감사하고 너무 행 복했다. 살아 있을 때는 정말 별 일 아닌 것 같던 하나의 일이었 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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