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저승식당-1050화 (1,048/1,050)

외전 23화

육포를 조금 뜯어먹은 최문우가 생각보다 괜찮은…… 아니, 생각 외로 더 맛있는 육포의 맛에 작 게 고개를 끄덕이며 한 입 더 물 어뜯었다.

뜨윽!

겉이 단단해서 뜯어먹기는 좀 불편했지만, 일단 씹으면 부드럽 게 씹혔다.

게다가 마른 육포 주제에 씹으

니 육즙까지 나오는 것이 맛이 너무 좋았다.

‘이거 비싸고 좋은 것을 주신 모양이네.’

한끼식당 사장님이 건우 주라고 한 간식이 생각보다 최고급이라 는 것에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낀 최문우가 육포를 씹다가 고개를 돌려 건우를 보았다.

소파에 누워 있던 건우는 어느 새 화장실 문 앞에 앉아 있었다.

헥 헥 헥 I

건우는 헥헥거리며 발로 문을 긁고 있었다.

그 모습에 최문우가 눈을 찡그 렸다.

“문 긁으면 기스……

말을 하던 최문우가 멈칫했다.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너 아빠한테 육포 주고 그러지 말라니까. 대체 왜 그래. 엄마가 육포 아빠 주지 말라고 했잖아.”

화장실에서 건우를 혼내는 목소

리. 그건 분명 임수정의 목소리 였다.

멍! 멍!

건우는 자신이 혼날 짓을 했다 고 생각하지 않는 듯 크게 짖으 며 화장실 문을 긁고 있었다.

마치 어서 나와 보라는 듯 말이 다.

그 모습에 최문우가 멍하니 화 장실을 보다가 천천히 다가갔다.

뚜벅! 뚜벅!

화장실 앞에 선 최문우가 가만 히 화장실 문고리를 잡았다.

“건우야, 혹시 오빠…… 육포 먹었어? 아니지? 그래, 설마하니 오빠가 건우 네가 먹는 간식을 먹었겠어? 안 먹었지?”

멍! 멍!

다시 화장실에서 들리는 임수정 의 목소리와 건우의 짖음을 들으 며 최문우가 침을 삼켰다.

한참을 망설이던 그는 문을 열 려고 문고리를 쥐었지만 문을 열

지 못했다.

옛날처럼 잡고 돌리는 회전식도 아니고, 그저 잡고 내리면 되는 간단한 구조였지만 힘을 줄 수가 없었다.

그럴 일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 도 지금 자신이 듣는 목소리가 임수정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 다.

그 생각에 최문우는 문을 열 수 가 없었다. 분명 자신이 듣는 이 목소리는, 임수정이 너무 보고 싶어서 만들어낸 환청이나 착각

일 것이다.

그래서 문을 열 수가 없었다. 문을 열면 텅 빈 화장실을 볼 테 고…… 그러면 지금 듣는 환청도 사라질까 봐 말이다.

“ 하아......"

숨을 깊게 토한 최문우가 입을 열었다.

“수정아……

그러자 방금 전까지 들리던 목

소리가 뚝 끊겼다. 그에 최문우 의 얼굴이 굳어졌다.

자신이 괜히 말을 해서 임수정 의 목소리가 사라진 건가 싶어서 말이다.

“오…… 오빠.”

하지만 다시 들려오는 목소리에 최문우는 그동안 가슴 한쪽에 꾸 욱꾸욱 눌러 두고 있던 그리움을 담아, 늘 하고 싶던 말을 꺼냈 다.

“사랑해.”

최문우가 자는 사이 건우가 그 의 입술, 혹은 베개에 육포를 가 져다 놓는 것을 임수정은 알았 다.

건우는 자신처럼 최문우가 임수 정을 봤으면 해서 육포를 가져다 놓았다.

그럴 때마다 임수정은 하지 말 라고 말리고, 간혹 베개에 떨어 진 육포를 몰래 치우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 날씨가 좋아서 창

밖 경치를 보고 있을 때, 또 건 우가 육포를 가져다 놓은 것이 다.

그리고 최문우가 그 육포를 입 에도 넣었고 말이다. 그래서 깜 짝 놀라 이렇게 화장실로 숨어든 것이다.

“너 엄마가 오빠한테 육포 주지 말라고……

“수정아.”

건우를 혼내려던 임수정은 자신 을 부르는 최문우의 목소리에 입

술을 깨물었다.

최문우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깨달았다.

겉으로는 건우가 육포를 주지 못하게 말리고, 최문우의 옆에서 육포를 치웠지만…… 사실은 건 우보다 자신이 더 최문우가 육포 를 먹기를 바랐다는 것을 말이 다.

‘나 참…… 나쁘다.’

자신을 보면 분명 상처받을 것

을 알면서도, 최문우가 자신을 보기를 원했고 자신의 목소리를 듣기를 원한 것이다.

잠시 있던 임수정이 입을 열었 다.

“오빠……

그리고 잠시 후…….

“사랑해.”

갑자기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에 임수정이 입을 틀어막았다.

“네 목소리가 지금 들린다. 아

마 네가 너무 보고 싶어서 환청 을 듣는것 같은데…… 그래도 너무 좋아.”

‘지금 내 목소리를 환청이라 생 각하는 거야?’

최문우의 말을 듣고 있던 임수 정이 닫힌 화장실 문을 보았다.

“환청이라도 좋으니까 뭐라고 말 좀 해 줄래? 나 네 목소리가 너무 듣고 싶어.”

뒤이어 최문우의 작은 웃음소리 가 들렸다.

“그런데 당신 내 환청인데 너무 한다.”

“내가 뭘?”

“내가 뭘?”

화장실에서 들리는 임수정의 목 소리에 최문우가 미소를 지었다.

환청이고 짧은 목소리였지만 들 으니 그냥 웃음만 나왔다.

“어떻게 나한테 먼저 말을 하지 않고 건우한테 말을 하고 있어.”

“건우한테?”

“그래. 건우한테 무슨 육포 이 야기하던데……

최문우는 그것이 황당했다. 자 신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 줘도 모자랄 자신의 환청이 고작 한다 는 말이 건우에게…….

어이가 없어 피식 웃은 최문우 는 문득 손에 쥔 육포를 보았다.

‘그런데 왜 수정이가 육포 이야 기를 한 거지?’

자신의 환청이라면 자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해 줄 텐데, 처음 들은 것이 육포 이야기니 말이 다.

육포를 보고 있을 때, 임수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서운했어?”

“서운하지. 내가 아닌 건우한테 먼저 말을 걸었으니까.”

말과 달리 최문우가 미소를 지 으며 말했다.

“그래서 내가 좋아, 건우가 좋 아?”

화장실 문 너머에서 임수정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걸 아직도 물어봐?”

“당신이 늘 답을 안 해 주니 까.”

최문우는 가끔 이걸 물었다. 오 래 키운 강아지 건우와 자신 중 에 더 누가 좋으냐고 말이다.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임수정 은 웃으며 건우라고 말했었다. 그럼 최문우는 서운해했고 말이 다.

물론 그건 진심은 아니었다. 진 심은…….

“사랑해.”

임수정의 목소리에 최문우가 미 소를 지으며 자신이 손에 쥐고 있는 문고리를 바라보았다.

“나, 문을 열고 싶은데…… 문 을 열고 텅 빈 화장실을 보면 너 무 슬플 것 같아서 문을 못 열겠 어. 그리고 네 목소리가 다시는 들리지 않을까 두려워.”

최문우의 말에 임수정이 문에

손을 살짝 가져다 댔다.

“그래. 열지 마. 그냥 나는 여기 있고 오빠는 거기 있는 거야.”

“그래. 맞아. 나는 여기 있 고…… 너는 그냥 거기 있는 거 야.”

임수정의 말을 곱씹둣 따라한 최문우가 재차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가끔 이렇게…… 나 한테 말을 걸어 줄래? 그럼 나 조금은 더……

최문우가 손을 내밀어 문에 가

져다 댔다.

‘너를 보내 줄 수 있을 것 같 아.’

임수정과의 이별은 너무 갑작스 러웠다. 평소와 같은 일을 하고 평소와 같은 시간을 보내다가 갑 자기 온 전화 한 통…….

그것이 최문우의 인생을 통째로 바꿔 놓았다.

그래서 작별 인사를 할 시간이 없었다. 그저 아침에 ‘다녀올게.’ 라고 한 말이 임수정에게 한 마

지막 말이 되어버렸으니 말이다.

사랑한다고 한 마디 해 줄걸.

오늘도 내일도 늘 당신과 있고 싶다는 말을 해 줄걸.

그녀에게 해 주고 싶었던 말이 너무 많은데 그 말을 전하지 못 했다. 그래서 최문우에게는 그녀 를 보내 줄 시간이 필요했다.

“왜 말을 하다 말아. 조금은 더 뭐?”

문 너머에서 들리는 임수정의 목소리에 최문우가 미소를 지었

다.

“더 행복할 것 같아.”

하지만 최문우는 자신의 환청에 게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 너 를 보내 줄 수 있을 것 같다는 말…… 환청 속 임수정이라도 들 으면 서운해할 것 같아서 말이 다.

“우리 이야기나 좀 할까?”

“그럴까?”

“오빠 거기 서 있어?”

“웅. 너는?”

“나도 서 있어.”

“다리 안 아파?”

“안 아파.”

“그래도 앉자. 우리 할 이야기 많잖아.”

“그럴까? 그럼 오빠 먼저 앉 아.”

“알았어.”

최문우가 화장실 문을 보며 앉 고는 건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 앉아서 건우 머리 쓰다듬고 있어. 너도 이제 앉아.”

“알았어.”

잠시의 간격을 두고 최문우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너 많이 보고 싶었어.”

“나도 많이 보고 싶었어.”

“그럼 우리 둘 서로 많이 보고 싶었던 거네.”

멍!

말을 하던 최문우는 건우가 짖 는 것에 웃으며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너도 엄마 많이 보고 싶 었지?”

두 사람…… 아니, 한 사람과 한 귀신 그리고 개 한 마리는 문 을 사이에 두고 정말 쓸데없고 영양가 없는 이야기들을 나눴다.

“그런데 오빠 출근 안 해?”

“맞다. 잠깐만……

최문우는 핸드폰을 꺼내 소방서

에 전화를 걸었다. 그는 최대한 아픈 목소리를 내며 말했다.

“몸이 갑자기 안 좋아서 쉬어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죄송합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걸로 전화를 끊은 최문우가 닫힌 문을 보았다.

“나 거짓말 잘하지?”

“나한테도 거짓말하고 그랬던 거 아니야?”

임수정의 말에 최문우가 웃으며 자신의 옆에서 문을 보고 앉아

있는 건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근데 당신은 나한테 거짓말 좀 하지 그랬어.”

“무슨 거짓말?”

“건우 이름 말이야.”

최문우의 말에 임수정이 웃으며 말했다.

“당신한테 거짓말하기 싫었어. 그리고 그건 과거였고, 건우는 건우일 뿐이야.”

임수정의 말에 건우가 작게 짖

었다.

멍!

자신의 이름이 좋다는 듯 말이 다. 그런 건우를 보며 최문우가 말했다.

“건우야, 이름이 마음에 들어?”

멍! 멍!

마음에 든다는 듯 짖는 건우를 보며 최문우가 말했다.

“건우가 건우한테 잘 해 줬나 보네.”

사실 건우는 임수정의 예전 남 자친구가 선물을 해 준 녀석이었 다. 개를 좋아하는 임수정에게 예전 남자친구인 건우가 개를 선 물해 준 것이었다.

그래서 임수정은 개의 이름을 건우라고 지었다.

이후에 최문우가 왜 개 이름을 건우라고 지었냐고 물었을 때, 임수정은 사실대로 이야기를 해 주었다.

사연을 알게 된 최문우는 건우 의 이름을 바꾸자고 했었다. 괜

히 옛 남자친구 이름을 계속 부 르는 것이 마음에 안 들어서 말 이다.

그런 최문우의 말에 건우는 눈 을 찡그렸었다. 마치 그게 무슨 개 소리냐는 듯 말이다.

잠시 예전 일을 떠올린 최문우 는 문득 건우의 얼굴을 유심히 보았다.

“그런데 건우 눈썹이 하얗게 됐 네.”

“맞아! 건우 눈썹이 며칠 전부

터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어.”

“며칠 전?”

“한 삼 일 정도 됐나 봐. 그렇 지 않아도 오빠가 어서 알아보고 병원 데려가 봤으면 했어.”

“삼 일?”

“응. 그 정도 됐어.”

임수정의 말에 최문우가 건우의 얼굴을 보다가 말했다.

“개도 늙으면 눈썹이 하얗게 되 는 건가?”

“무슨. 우리 건우 아직 일곱 살 밖에 안 됐어. 한창때인데 늙기 는 뭐가 늙어.”

“그런가?”

말을 하던 최문우가 문득 화장 실을 보았다.

‘삼 일? 일곱 살?’

화장실을 가만히 보던 최문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건우의 눈썹 이 하얗게 변한 것을 안 것은 방 금 전이었다.

그런데 환청은 정확하게 삼 일

이라 말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건우의 나이…….

‘건우가 일곱 살이었나.’

최문우는 건우의 나이를 늘 헷 갈리곤 했다. 그런데 환청은 정 확하게 일곱 살이라고 말을 했 다.

환청이라는 건 내가 만들어 내 는 가상의 소리다. 그럼…….

‘내가 아는 것에 대해서만 들려 야 할 텐데.’

그리고 생각을 해 보니, 수정이

의 목소리를 건우도 듣는 것 같 았다.

수정이가 말을 하면 건우가 답 을 하는 것처럼 짖었으니 말이 다.

‘설마?’

화장실 문을 빤히 보던 최문우 가 다시 문고리를 잡았다.

그리고…….

스르륵!

부드럽게 문고리를 내린 최문우

가 화장실 문을 천천히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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