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화 〉하랑 (1/120)



〈 1화 〉하랑

“드디어 여기까지 온 건가.”

마왕이 조소를 지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
얼굴에는 누가 봐도 비웃음을 한껏 담고 있었다.

“···닥쳐.”

여기까지 오는데 많은 사람이 죽었다.
 주위에 모여있던 수많은 사람은 어느새  명도 남지 않았다.

광활한 대지에 나 혼자만이 그녀와 대적하고 있었다.

“여기까지  것만으로도 칭찬할만한 업적이라고 칭할 수 있다!”

하지만 마왕은 의자에 일어나지 않고 앉아있었다.
나를 얕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허리춤에 남아있는 마지막 검을 빼 들었다.

엑스칼리버, 발뭉 등 여러 성검들이 있지만, 그것들은 모두 동료들의 묫자리에 꽂아주고 왔다.
다른 검들에 비해 좋다고는 할  없다. 하지만 처음부터 나와 함께한 검이었다.

“이제 싸울 생각이  건가?”

생각하는 도중에도 공격하지 않고, 쳐다보기만 했던 마왕이 손가락을 튕겼다.

─딱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뒤에는 수많은 마법진이 생겨났다.

.
.
.


─쿨럭-

입에서 피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것이 죽을 징조임은 진작에 깨달았다.
마왕은 여전히 자신의 자리에 거만하게 앉아있었고, 그녀를 한 발자국도 움직이게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분할 뿐이었다.

동료들이 있었다면 과연 달라졌을까.
내가 만났던 수많은 동료가 영화를 보는 것처럼 스쳐 지나갔다.

마왕은 손을 쥐었다 피며 자신의 힘을 가늠하고 있었다.

“이 정도인가. 그만 죽어라.”

 위에 밝은 빛이 다가오고, 마지막으로 동료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을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


하아-

내가 지금까지 봤던 소설 중 가장 찝찝한 결말이었다.
사실 이런 결말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초반부터 등장인물을 몇 명씩 야금야금 죽이기 시작하더니 중반부에는 주인공의 남자친구를 죽이기까지 했다.
마왕은 강력하다고 서술되기도 했고, 마왕의 손에 죽은 등장인물 숫자만 해도 헤아릴 수가 없었다.

뒤로 가기를 누르며 마지막 화의 조회 수를 봤다.
마지막 화임에도 찍혀있는 조회 수는 7이었다.
전 화까지 찍혀있는 조회 수는  1이었다.

내가 이 소설의 마지막 독자였고, 마지막 화이기에 조회 수가 약간 올라간 것뿐이었다.

“그래도 마지막까지 댓글은 달아야겠지?”

[수고하셨습니다.]

길게는 달지 못했다. 평소에도 길게 쓰지 않았기에 쓰는방법도 모르거니와 그런 성격도 아니었다.

“욕하고 싶지 않아?”

옆에서는 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양옆으로 세차게 흔들며 소리를 떼어냈다.

방에 숨을 쉬고 있는 사람은 오직 나 혼자뿐이었다.

“오랜만이네.”

정상으로 되돌아온 줄 알았지만, 오래간만에 들린 환청이었다.

다른 사람들과의 연을 끊고 집에 들어온  환청은 더이상 들리지 않았다.
가끔 커뮤니티를 할 때 들리긴 했지만, 그렇게 크게 신경 쓰이지 않았다.

환청은 예전부터 있었기에 이제는 별로 신경도 안 쓰였다.
처음에 들었을 때는 정말 놀랐었는데.

“그때는 그 자리에서 넘어졌었지···”

이제 와서 생각하면 모두 추억이었다.
집에 박혀서 생활한  몇 년이 지나자 나쁜 일도 그저 추억으로 기억에 남았다.

핸드폰에는 알림이 울리며 쪽지가 한  와있었다.

[정말 만족하셨나요?]

쪽지를 보낸 닉네임이 익숙해 찾아보니, 방금까지 읽었던 소설의 작가였다.
마지막 화에 남긴 댓글을 보고 쪽지까지 보낸 것 같았다.

처음에는 남자와 여자의 지위와 힘이 뒤바뀐 남녀역전 태그를 보고 무심코 눌렀다.
많은 사람이 태그에 유입이 되어, 나 말고도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주인공이 남자가 아닌 여자라는 점에서 꽤 많은 사람이 빠져나갔다.

읽던소설을 하나  늘린다고 시간이 부족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하차하지 않고 끝까지 읽었다.

그 후 순애물이라는 점에서 하렘을 기대하던 사람들이 빠져나갔다.
주인공의 소꿉친구가 꾸준한 구애에 성공하며 결국 연애를 하게 되었다.

순애를 좋아하던 사람은 남아있었다.

“그때 조회수가 100 정도였나···”

회상해보지만 잘 기억은 나지 않았다.

그리고 몇  후 소꿉친구가 간살당하며 많은 독자가 빠져나갔다.

10명도 채 남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그전에도 강간을 당했다라는 서술은 있었지만 크게 거슬리는 정도가 아니었다.
남자가 강간을 당했다는 서술은 독자에게 있어 아무 감흥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연애를 하나 했더니 소꿉친구가 죽은 것은 나에게도 충격이었다.
간살이 문제가 아닌, 고백하고 별다른 풋풋한 이야기도 없이 죽은 것이 문제였다.

그 화에는 아직도 수많은 댓글이 남아있어 새롭게 유입되는 사람에게도 거름망이 되어주고 있었다.

작가의 쪽지는 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등장인물 한 명이 죽었을 때부터 작품에 만족한 적은 없었다.

관성에 이끌려 다음 화를 눌렀을 뿐이었다.

[아니요.  그러세요? 혹시 리메이크하시게요?]

이상한 점은 아니었다. 요즘에는 작가가 완결을 내고  후 리메이크하는 경우도 있었다.
마지막 남은 독자에게 감흥을 물어보는 것은 평범한 축에 속했다.

[그럴 수도 있고요.]
[그러면 다음에는 소꿉친구  죽이고 끝까지 가면 안 될까요?]

내 희망을 적어 보냈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

수많은 소설을 읽었던 내 직감이경종을 울리기 시작했다.

소설의 마지막 독자.
리메이크.
작가의 쪽지.

세 가지 증거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기 시작했다.
급하게 작가에게 쪽지를 하나 더 보냈다.

[혹시 제가 소설 속으로 들어가는 건 아니죠?]
[앗···]

[혹시 제가 거절해도 들어가나요?]
[앗···]

어차피 들어갈 운명이었나 보다.
작가는 부정도 하지 않고 앗앗거리기만 하고 있었다.

[근데 저보다 차라리 다른 사람을 찾는  낫지 않을까요?]

내가 생각해도 나를 소설 속으로 넣는 것은 좋지 않은 선택이다.

저 사람도 알고 있지 않을까?
사람을 소설 속으로 넣을 정도면 ‘신’이라는 이름이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나 같은 사람이 들어가도 별로 좋지 못한 상황이  것이다.
고구마라고 욕을 할 만큼순탄하지 못한 진행이 진행될 확률이 높았다.

[저는 그쪽 정도면 괜찮을 것 같은데요?]

헛웃음을 내뱉으며 쪽지를 쳐다봤다.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
유명한 철학자가 한 말이다.

하지만 세상 살면서 모든 사람은 사람을 수단으로써 대한다.
나에게 친절하게 말을 거는 사람도 자신이 착한 사람임을 보여주기 위해서였고, 연락할 때도 나에게 무언가 필요해서 전화를 건다.

이 작가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조회 수가 1이 아닌 2였다면 나 말고 그 사람을 들여보냈을 거다.

“정신병자는 들여보내기 싫은데 어쩔  없지.”

환청임을 알고 있음에도 그 말 한마디는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알고 있다.
작가는 그런 소리를 하지도 않았다. 실제로 내가 마음에  수도 있고, 나를 원할 수도 있다.

내 불안은 너무 과도했다.
그런데도 머릿속을 어지럽히고 있는 말은 떠나지 않고 작가에 대한 적개심만을 키우고 있었다.

[혹시 지금 바로 가야 할까요?]
[혹시 제 정체는 안 물어보시나요?]
[네.]

별로 궁금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작가에게 있어 나는 체스 말일 뿐이다.

주인공이 퀸 혹은 킹이라면 나는 그들을 지키기 위한 폰일 것이다.
거절해도 소설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 꺼림칙하지만 작가에게도 사연이 있을 것이다.

흔히 보는 소설 속 세계의 신이라던지 그에 준하는 존재일 것이다.

[혹시 싫으신가요···?]
[아니요. 마지막으로 다녀올 곳이 있어서요.]


**

작가에게 말하고, 부모님의 묫자리를 찾았다.

어쩌면 마지막으로 볼  있는 모습을 눈에 담고 싶었다.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아있었던 나의 인연이었다.
친구라고 부를만한 사람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는 그들이 돌아간 뒤 나도생을 끊을 생각이었다.
생각은 손목으로 옮겨갔다.

“푸흡···”

손목을 보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손목에 남아있는 자해의 흔적은 얕기만 했다.
죽으려고 해도 겁이 많아 죽지 못하는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어쩌면 내 정신이상이 만들어낸 망상일지도 모르는 작가의 쪽지를 받았다.
새로운 인생이 펼쳐진다는 두려움과 기대감이 공존했지만, 금세 두려움으로 감정이 모두 물들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작가님, 혹시 빙의인가요?]
[그쪽이 더 편하기도 하고, 힘이 덜 들기도 해요.]
[혹시  그대로 들어가면  될까요?]

흔히 빙의로 들어가는 것이 클리셰였다.

그렇지만 그런 것은 싫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인연이 생겨있다는 것부터 두려웠다.
그리고 내가 다른 사람의 몸을 뺏었다는 것에 자괴감이 몰려올것만 같았다.

그저 이방인일 뿐인 나를 다른 사람으로 착각해 대한다는 것이 무서웠다.

[음··· 네. 그 정도야.]
[혹시능력은···]
[무기술? 마법? 어떤 것이 좋으세요?]

가장 걱정되는 부분이었다.
괴수의 등장과 사람들과의 싸움.

칼로 그어본 것이라곤 내 손목밖에 없는 사람이.
아니. 내 손목도 제대로 못 그은 사람이 다른 사람을 벨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혹시 능력  가지를 받을 수는 없나요?]
[그거는 조금 힘들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숨기고 싶었다.
‘힘숨찐’같은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누구도 내 정체를 알 수 없으면 좋을 것이다.
평소의 나를 아무도 신경쓰지 않아줬으면 좋겠다.
남의 시선은 부담스럽기만 했다.

사람들을 구할 때마다 무거워지는 시선을 견딜 자신은 없었다.

[그러면 조건부로 가면을 쓸 때만 능력을 주면요?]
[가면이요?]
[소설 중에 상대가 가면 쓰고 나오는 장면 있지 않아요?]
[아···]
[쓰기 전에는 치유 능력, 쓰고  후에는 궁술을 주시면···]

작가에게 말하던 중 너무 과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갑인 입장에서 내가 바라는 것이 너무 많았다.
다시금 쪽지를 작성했다.

[죄송해요. 그냥 원래 하시던대로 하시면 될 것 같아요.]
[아니에요. 오시는 입장인데 제가 챙겨드려야죠.]

작가의 말은 나에게 더 챙겨줄 테니까 열심히 하라는 말로 들렸다.

‘내가  정도 챙겨줬는데 못하면 실망일 거야.’라는 느낌이었다.

부담스러운데…

도망치고 싶었지만, 이미 작가와 대화를 나눈 순간부터 늦었다.

[얼추 될  같네요! 원래 계획했던 설정집은 못 챙겨드릴  같네요. ㅠ.ㅠ]
[감사합니다. 그러면···]

작가와 한참을 대화한 후  가지를  받아냈다.
소설에 대한 기억의 보존, 가면의 위치, 움직임을 보조할 수 있는 옷의 위치, 가면과 옷을 보관할 수 있는 인벤토리.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받았다.
정신병이 있다는 이유로 이렇게까지 편의를 받을 줄은 몰랐기에 작가의 호의가 감사할 뿐이었다.
사실 정상이었다면 네 가지 중 세 가지는 필요도 없었고, 전이도, 능력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작가에게 민폐만 끼쳤다는 생각에 역겨움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애써 합리화를 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가지를 받고 나는 세상과의 작별을 고했다.
어쩌면 망상일지도 모르겠지만, 상관없었다.

이미 이 세상이 나에게 원하는 것은 없었다.
저쪽 세상에서 작가가 시키는 것을 완료하면 될 것이다.

[고마워요.]

작가에게 마지막 인사를 보냈다.

[제 아이들을 지켜주세요.]
[네.]

마지막 답장과 함께 내 시야가 흐려졌다.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작가의 마지막 말과 함께 눈앞이 정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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