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화 〉하랑
눈을 뜨자 색다른 천장이 나를 반겼다.
원래 살던 곳보다 더 작은 방이어서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다행히도 원래 내몸 그대로 온 것 같았다.
철학적인 질문은 배제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롭다.
똑같은 몸에 기억만 옮긴 것이라는 질문은 현재 상황에서 옳지 않다.
그저 그대로 받아들일 뿐이다.
작가님에게 부탁해 본래 소설이 시작된 날짜로 보내 달라고 했다.
소설의 시작은 주인공인 유은설이 던전에 끌려가는 것부터 시작된다.
잠재력 최하로 판명 난 유은설이 아카데미에 입학하기 전 기연을 만나는 것으로 성장하게 된다.
지금쯤이면 아마 던전에 들어갔을 때였다.
소설의 초반 부분은 ‘하랑’에 입학해 그 속에서 사건이 전개된다.
‘하랑’ 이전에 다니는 학교에서 무시를 당했던 유은설이 능력을 보이며 성장하는 것이 초반부의 이야기였다.
굳이 이 시간대로 온 것은 ‘가면’을 찾기 위해서다.
가면은 빌런이 쓰고 나타나는 장비로 그렇게 큰 효과는 없다.
인지 저하로 사람이 누군지 못 알아보는 효과뿐이었던 걸로 기억이 난다.
빌런은 내부에 침투해있어 가면의 효과를 톡톡히 보여줬다.
가면을 쓰고 습격을 한 뒤, 벗은 뒤에는 사람들을 챙기는 모습을 보이며 이미지를 챙겼다.
작가에게 위치를 미리 받았기에 알려준 곳으로 향했다. 앞으로의 사건을 생각하면 낭비할 시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가면이 나오는 던전으로 발을 향했다.
**
소설 속의 던전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기존의 사람들이 상상하던 판타지 세상처럼 오크나 고블린같은 괴수가 나타나는 이계형 던전.
유물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설화형 던전.
마지막으로 아직 밝혀지지 않은 마계형 던전이 있다.
앞의 두 가지는 각각 얻을 수 있는 것이 있다.
이계형에서는 괴수에게서 나오는 특별한 마력석이, 설화형 던전은 해당하는 유물을 얻을 수 있다.
던전은 사람들의 상상을 반영한다.
악마들이 나오는 마계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사람들의 상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후반 부에 마왕이 간섭력을 키우기 위해서라고 서술되기는 하지만, 자세하게는 설명하지 않는다.
이번에 들어갈 던전은 설화형 던전이었다.
작가의 배려인지 던전과 꽤 가까운 곳에서 깨어났다.
일찍 도착한 덕분인지 아직 던전은 열리지 않고 있었다.
아무도 없는 숲 한가운데였고, 주위에는 새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아마도 빌런은 여기서 가면을 얻은 것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지금쯤 새소리뿐만 아니라 발걸음 소리도 같이 들려야 했다.
주인공에게 방해가 된다면 얻지 않을 예정이지만, 가면은 빌런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빌런에게서 뺏는 것은 이로운 방향이라고 생각했기에 게이트가 열릴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던전으로 향하는 게이트가 열리고 그 속으로 몸을 맡겼다. 이상한 느낌과 함께 던전 속으로 떨어졌다.
**
“으윽···”
머리가 어지러워 신음이 나옴과 동시에 일어나 상황을 파악했다.
가지고 온 것은 하나도 없었다. 어차피 이 설화에서 다칠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조심히 있다가 유물을 가지고 나오면 되었다.
주위를 살피자 바닥에는 흙만이 깔려 있었고, 주위 집들은 초라해 보였다.
제대로 온 것이 분명했다. 시대는 고려 혹은 조선 중의 하나인 것 같았다.
설화형 던전이라고 모두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어떤 유물은 지정한 상대와 싸워야 할 때도 있었다.
또한, 유물이라고 모두 좋은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각성자가 직접 만드는 장비보다 안 좋은 경우도 많았다.
앞에 한 집에는 한 노인이 나와 탄식하기 시작했다.
“내 팔자는 왜 이런가.”
“이거 드릴 테니 한번 써 보시죠?”
어디선가 나타난 사람이 노인에게 감투를 하나 내밀었다.
저것이 내 목표인 ‘도깨비 감투’이다.
현재로서 가면이라고 보기 힘든 감투의 형태를 이루고 있지만, 손에 들어올 때는 가면의 형태로 들어오게 된다.
노인은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투명으로 변할 수 있는 도구를 얻었다고 다른 사람들의 것을 약탈하기 시작한다.
불태우게 된 계기마저도 자신의 실수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불태울 때 나타나 대가를 주며 감투를 요구하면 그는 흔쾌히 줄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모두 거래다.
주는 것이 있으면 받는 것이 있어야 한다.
물론 받는 것만을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은 나와는 다른 세상의 사람이다.
받는 것이 익숙한 사람, 그렇다고 나쁜 사람은 아니다.
자신이 타고난 것을 이용해 남에게 관심과 돈을 받는다.
몇몇은 쓰레기라고 욕을 먹지만, 대부분은 오히려 칭찬과 환호를 받는다.
그런 생각을 하며 기다리자 노인이 감투를 불태우려고 하려고 마당에 불을 지피고 있었다.
“영감님 그 감투와 이 금을 교환하죠.”
실제로 금은 아니었다.
어차피 사라질 허상 같은 존재에게 진짜 금을 주는 것은 사치였다.
그럼에도 그를 믿게 하려고 금으로 도색한 물건을 가지고 왔다.
비싼 것도 아니었고, 싼값에 구할 수 있었기에 부담은 크지 않았다.
욕심이 서린 눈길로 내 손에 있는도색한 물체를 쳐다보고 있었다.
노인은 감투의 무서움을 알기에 한껏 고민하는 척을 했지만, 이내 거래를 수락했다.
내 손에 감투가 잡히고 가면의 형태로 변한 뒤 앞에 게이트가 생겨났다.
게이트 속으로 들어가자 마지막으로 있었던 숲으로 나왔다.
**
[손상된 도깨비 감투]
[유물][전설]
─투명(▼)
•감투를 쓴 상태로 얼굴을 보면 형태가 흐릿하게 보인다.
•하루에 한 번 30초 동안 몸을 투명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
손상으로 능력이 격하되었음에도 충분히 만족할만한 장비였다.
유물에는 세 가지 등급이 존재한다.
민담, 전설, 신화 세 가지 등급으로 나뉘어 판단한다.
기본적으로 대부분의 유물은 전설 등급이다. 몇몇 유물만이 민담과 신화 등급을 달성한다.
민담이 제일 아래 등급이고 신화 등급이 제일 높은 등급이다.
가벼운 걸음으로 산에서 내려가던 도중 어딘가에서 앓는 소리가 들렸다.
원래라면 잡아내지 못할 작은 소리였지만, 각성으로 인해 증폭된 나의 감각은 작은 소리마저 잡아냈다.
“으윽.”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자 길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은 소설의 주인공인 유은설이었다.
소설에서 삽화는 단 한 명밖에 없었다. 주인공 유은설 딱 한 명.
그녀의 얼굴은 삽화와 같았다. 그림판에 대고 그린듯한 동일함에 놀라며 그녀를 쳐다봤다.
“지금이었던가.”
하지만, 그녀가 다친다는 소리는 못 들었다.
애초에 초반 부에 그녀가 검을 얻고 쓰러졌다는 글을 본 기억도 없었다.
검을 얻고 시점은 곧바로 하랑으로 변환된다.
“괜찮아요?”
그녀를 땅바닥에 두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인간관계가 꺼려진다고 해도 사람을 길바닥에 버려두고 갈 만큼 정신병자는 아니었다.
그녀의 뺨을 치며 깨워보지만, 깨어나지 않았다.
그녀를 업은 뒤 옆에 떨어져 있는 검을들어 챙기고, 병원으로 향했다.
**
“안녕하세요.”
“혹시 진료하나요···?”
“네. 혹시 뒤에 업으신 분?”
“네 맞아요.”
그녀를 간호사에게 넘기고 곧바로 병상에 눕혔다.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업혀서 온 여자에게 관심이 있는지 눈길이 나를 향해있었다.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나를 욕하는 것 같았다.
‘남자가 여자를 업고 왔나 봐.’
‘남자가 나쁜 짓 한 것 아니야?’
“남자가 쓰레기네.”
“얼굴 봐봐. 딱 쓰레기 짓 하기 좋잖아.”
머릿속에서만 맴도는 이야기가 어느 순간부터 귀를 통해 목소리로 들리기시작했다.
귀 옆에서 속삭이는 환청은 오면서 들었던 수많은 사람의 목소리가 섞여 이상한 소리를 내었지만,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이야기를 듣기도 전에 관계를 유추하는 것이 좋아한다.
유부남과 젊은 여자가 같이 있으면 불륜부터 의심하고, 고등학생 여자가 중년 아저씨에게 안겨있으면 원조교제를 의심한다.
당연한 거라고 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나는 너무나도 싫었다.
왜 전후 사정은 들어보지도 않고 판단하는 걸까.
유부남과 여자가 같이 있으면 조카일 수도 있고, 고등학생 여자가 중년 아저씨한테안겨있어도 사연이 있을 수도 있다.
‘후자는 아닌가···’
약간 선을 넘은 것 같기도 하지만 모든 것에는 사정이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따갑게만 느껴지고 점점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더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주위의 쪽지를 찾아 적고 그녀의 병상 옆에 붙여놓았다.
그녀가 일어나기 전 병원을 떠났다.
별다른 내용은 아니었다. 병원비 미안하다고 적었을 뿐이다.
집으로 돌아와 있었던 일들을 모두 정리했다.
오랜만에 사람을 만나 머리가 어지러웠고, 다시금 병이 도지는 것 같았다.
안정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아니었음을 깨닫고 가면을 요구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일을 위해 잠을 청했다.
**
유은설은 병상에서 눈을 떴다.
“여긴?”
마지막으로 봤던 풍경과는 사뭇 다른 흰색 천장이 그녀를 반겼다.
“드디어 일어났네.”
옆에서 익숙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대체 어디서 다쳐온 거야?”
유은설은 옆에 앉아있는 이하늘을 보고 이내 심란했던 마음을 가라앉혔다.
자신의 친한 친구인 하늘이가 데려온 걸까?
“너가 데려온 거야?”
“아니? 너가 여기 있다는 소리 듣고 달려온 건데, 처음은 어떤 예쁘장한 남자애가 너 업고 왔데.”
“어···?”
이하늘이 아닌 다른 사람이 업고 왔다는 소리에 약간 놀람을 표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나야 모르지? 너가 아는 거아니었어? 데려다 놓고 갑자기 밖으로 뛰쳐나갔다던데.”
유은설은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누가 자신을 업고 왔는지, 던전에 나오고나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하랑에 입학하기 전 늘 그렇듯 등산을 하며 체력을 키우던 도중 게이트에 빨려들어 갔다.
다행히도 쉬운 편에 속하는 설화형 던전이여서 자신의 힘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이 검은 뭐야?”
“아···!”
나올 때 받은 유물이 기억났다.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지만, 옆을 보자 검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볼품없어 보이는데? 양산품이야?”
이하늘이 검을 만지며 물었지만, 유은설은 손을 쥐었다 피며 생각에 잠겼다.
사람들을 베는 느낌은 아직까지 손에 남아있었다.
왕위를 탈취하기 위해서라지만, 그렇게 많은 사람을 죽인 것은처음이었다.
보상으로 받은 검은 처음 받았을 때와 사뭇 달라 보였다.
검신에 가득했던 별자리들과 한자는 어느새 모습을 감춘 상태였다.
“아무것도 아니야.”
“일단 편히 쉬어, 곧 입학인데. 무리하지 말고.”
이하늘은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밖으로 나갔다.
유물의 경우에는 받은 당사자를 제외하고는 정보를 확인할 수 없기에 다행이었다.
받은 검의 가장 큰 특징이 사라져 누구에게도 눈에 띄지 않을 수 있었다.
“어··· 이건?”
검의 옆에 포스트잇이 붙어있었다.
[병원비 죄송합니다.]
“그사람인가?”
병원비도 문제였지만, 자신을 구해준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도 문제였다.
보답해야 할 텐데 아무도 기억을 못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물어봐야겠다.”
주위에 그 사람을 본 사람에게 외견을 물었지만, 정체를 알 수는 없었다.
“나중에라도 알게 되면 연락해주세요.”
그를 봤다는 간호사에게 번호를 주며 얘기했다.
간호사도 사심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 번호를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