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하랑
오히려 혼자 남는다는 사실을 더 두려워 했다.
집에 박혀있기 전까지는 꽤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다녔다.
그때 만난 사람들은 내가 집에 박혀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관심도 없을 것이다.
“하아···”
병원에서 있었던 일은 나를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녀가 나를 기억하면 어쩔까.
내가 병원비를 안 내고 무책임하게 도망친것에 대해 화내겠지?
수 만 가지의 걱정이 가지를 만들며 나무를 이뤘다.
나중에 만날 때 어떻게 대해야 할까.
그녀는 나를 싫어할 것이다.
업고 온 것부터 잘못된 행동일 것이다.
괜한 행동을 해서 그녀에게 해를 끼쳤다.
어차피 그 자리에 있어도 알아서 하랑으로 올텐데, 사람이 쓰러져있는 것을 보고 정상적인 사고가 되지 않았다.
“나중에 만나면 사과해야겠다.”
사과로 모든 말을 해명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게라도 하는 것이 마음에 편했다.
나의 마음이 편해지자고 그런 짓을 하는 것이 싫었지만, 사과하지 않으면 일은 더 커진다.
예전에 대학을 다닐 적, 친구에게 잘못한 적이 있었다.
바로 사과를 하지 않고 집으로 도망쳐 마음을 먹은 뒤에는 이미 상황은 늦었다.
친구는 전과는 다른 싸늘한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숨이 막히는 상황이었기에, 그의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결국, 그날의 수업은 모두 듣지 못했다.
집에 틀어박혀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지만, 당연하게도 친구에게까지 닿지 못했다.
시간이 지난 후 심란했던 마음이 가라앉은 후에는 친구를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군대를 가버렸다는 사실을 듣고, 나 때문이라는 생각이 발끝에서부터 올라와 머리를 잠식했다.
그 날 뒤부터는 말 수가 급격하게 줄었다. 누구에게 잘못한 일이 있으면 곧바로 사과를 하고 다녔다.
어쩌면만나자마자 유은설이 나한테 쌍욕을 해도 가만히 듣고만 있어야 하는 처지일 것이다.
현재의 그녀에게 돈은 중요한 위치에 속해있을 것이다.
그녀의 일생을 아는 내가.
적어도 내가 그렇게 행동했으면 안 됐다.
“잠시만 오늘···”
그녀에 관한 생각에 빠져 아침부터 일어나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핸드폰을 꺼내 시계를 봤다.
시간 아래에는 알림 창이 떠 있으며, 알림에는 똑똑히 적혀있었다.
[하랑 9시 입학]
“아씨···”
방에는 챙길 것도 별로 없었다.
가볍게 옷을 챙겨입고, 빠르게 밖으로 향했다.
**
하마터면 첫날부터 지각할 뻔했다.
문이 닫히기 전에 들어오려는 사람은 많았다.
나 말고도 여럿이 있었다.
물론 전부 들어오기는 했다.
전부 들어오고 나서 문은 다시는 나올 수 없는 감옥의 창살처럼 굳게 닫혔다.
하랑은 특수한 상황이 아니면 나오기 힘들었다.
특수하다고 해서 엄청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쉬운 일도 아니었다.
하랑.
하랑은 빌런들에게 대항할 수 있는 대인전 능력과 괴수들을대적하기 위한 양성 기관이었다.
소설에서 대한민국은 주변국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들도 알아주는 강국이었다.
기본적으로 인구수가 부족해 중국이나 미국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지만, 강국이라고 불러도 충분하다는 묘사가 있었다.
대부분의 나라에는 양성 기관이 따로 놓여있었다. 다른 나라가 한국으로 유학을 오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비슷한 국격의 나라는 각자만의 기관이 있고, 인구수가 많아서 헌터가 많은 나라의 경우 별다른 교육을 받지 않고 바로 헌터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랑에서는 더 심화된 교육을 받는다.
하랑 이전의 교육기관도 존재한다. 소설에서 편하게 부르기를 ‘학교’라고 부른다.
전체적인 명칭은 헌터 학교.
입학하는 대부분의 생도는 학교 출신일 것이다.
하랑 이전에는 무기를 사용하는 기초적인 방법을 알려주고, 포획해온 괴수를 상대로 직접 베어보는 연습을한다.
기초적인 연습을 한 다음에 하랑으로 올라오는 것이 전부였다.
학교는 고등학교 같은 개념이라면 하랑은 대학교였다.
하랑으로 올라오지 않고도 헌터로 활동을 할 수 있었다. 물론, 상위권의 길드들은 하랑을 졸업한 생도들을 좋아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랑으로 올라오기를 바랬다.
생도들을 모두 불러모은 허례허식인 입학식이 끝나가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똑같은 생각이었는지 지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가까운 곳에서 아는 얼굴을 만날 수 있었다.
“장난치지 말라니까.”
“다른 애들도 다 안 듣고 있다니까.”
유은설이었다. 옆에서 떠들고 있는 사람은당연히 이하늘이겠고.
소설의 주인공이던 유은설은 앞에 나와 있는 교장의 쓸데없는 말에 집중해서 듣고 있었고, 그녀의 소꿉친구인 이하늘은 그런 유은설의 옆구리를 찌르며 장난치고 있었다.
이하늘의 미래를 알고있는 나에게는 그의 미래가 상상되었다.
‘역시 안주해 있으면 안 돼.’
금방이라도 풀어질 것 같은 마음을 다잡고 앞을 향해 나아가기로 했다.
작가가 나를 이곳에 넣은 이유는 그들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나의 존재 이유는 그것으로 설명되었다.
“이상으로 입학식을 마칩니다. 각자 자신들이 배정된 반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미리 확인해놨던 반은 A반이었다.
주요 등장인물들이 모이는 반이었다.
**
하랑에는 다양한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 모인다.
그중 치유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극히 드물었다.
치유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모두 학교에서 약간의 교육을 받고 의료기관으로 빠지는 것이 대다수였다.
굳이, 던전에 들어가지 않아도 돈을 벌 수 있는데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하랑에 올라오는 사람들은 의료기관이 아닌 던전에 들어가 활동하는 사람만이 올라왔다.
원래 A반에는 한 명의 치유능력자가 있었다.
내가 들어옴으로써 두 명이 되었지만, 그럼에도힐러가 희귀한 것은 변하지 않았다.
“A반을 담당할 이미경이라고 한다.”
담당이라고 해봐야 중요한 공지를 할 뿐이었다.
담당 교관의 중요성은 거의 없었다.
각자 자신이 맡은 분야를 수업하고 나갈 뿐이었다.
“괴수 분석학을 담당하고 있고, 현역일 때는 A급 판정을 받았다.”
괴수 분석학이란, 괴수의 약점을 분석하는 과목이었다.
세간에 알려져있는 약점보다는 더 알 수 있겠지만, 모든 괴수의 약점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A급? 담당 잘 만난 것 같네.”
“괴수 분석학이면 실전 경험도 풍부해야겠지.”
A급 위로는 S급 밖에 없다.
물론 모든 A급이 동일한 것은 아니다.
A급 1위와 최하위가 붙으면 실력차이가 한 등급 이상으로 날 정도로 편차가 크다.
나머지 등급들도 마찬가지였다.
“첫날인 만큼 따로 수업은 없다. 따라와라.”
이미경은 말하고는 우리들을 기숙사로 안내했다.
한국 최대의 교육기관답게 거의 모든 시설은 공짜였다.
기숙사도 마찬가지였다.
“각자 방이 배정되어있을 것이다. 따로 대면이 필요한 사람을 부를 것이니 대기하고 있도록.”
이미경은 기숙사로 우리를 밀어 넣으며 말했다.
생도들은 각자방으로 향했다.
“처음보다는 넓네.”
방에 들어가자마자 나온 말이었다.
이제 무언가가 시작되었다는 느낌이 났다.
조용한 방 속에 나 혼자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전과는 달랐다.
전에는 방 안에서 혼자 갇혀있었다면, 지금은 밖으로 나가야 할 때였다.
예전의 내 유일한 친구는 컴퓨터와 핸드폰이었다.
밖으로 향할 수 있는 유일한 매개체였고, 나를 웃게도, 울게도 만들었다.
방 안에서만 고립되어 스스로의 마음을 갉아먹었다면, 이제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때였다.
아직도 사람은 두려웠다.
외면은 상관없었다. 속의 추악한 내면이 무서웠다.
“A반 한설화, 김세연 1층으로 내려오세요.”
벽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스피커에는 내 이름이 불렸다.
이름이 불린 것은 오랜만이었다.
부모님께서는 딸이 태어나길 바라면서 내 이름을 한설화로 지으셨다.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딸로 태어났다면 부모님의 마음에 들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아들로 태어났음에도 부모님은 나에게 온 힘을 다해 지원해주고 마음을 주셨다.
그럴수록 마음 한편에는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이 가득 찼다.
부모님을 생각하자 마음이 아려왔지만, 지금 부모님을 생각하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
문을 열고 바깥으로 한 걸음을 내딛었다.
**
“내가 너희를 부른 이유는 한가지야.”
이미경은 우리 둘을 따로 불러서 편하게 얘기했다.
아까 교실에서와는 달리
옆에 서 있는 김세연과의 공통점이라면 한가지뿐이었다.
“치유능력자.”
김세연이 옆을 보며 나를 쳐다봤지만, 나는 쳐다보지 않았다.
그녀의 외모는 내가 눈을 못 마주칠 정도로 예뻤다.
“음··· 세연이는 해당이 안 될 것 같고. 설화는 해당이 되겠네.”
교단에서 보는 모습과는 다르게 생도들을 아끼며 친근하게 대하는 것이 그녀의 특징이었다.
그녀가 무엇을 말하는 건지 알 수 없어서 되물었다.
“네?”
“따로 훈련을 받아야겠는데? 설화는 아마 실습하러 그냥 가면 크게 다칠 수도 있어.”
“아···”
그제야 그녀가 나를 부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정도로 챙겨줄 줄은 몰랐기에 놀란 표정을 지으며 이미경을 쳐다봤다.
김세연은 훈련을 받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녀는 능력이 두 개였다. 나와 똑같은 치유 능력과 궁술 능력.
능력이 두 개인 사람은 희귀했다.
그렇지만 일 년에 한 명 이상은 나왔으니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당장 S급에도 능력이 두 개인 사람이 꽤 포진해있었다.
내가 능력을 정할 때 김세연이 생각나 작가에게 말한 것이다.
“···그러면?”
“설화만 괜찮다면 내가 따로 훈련을 봐줄 수도있고.”
이미경이 나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이유는 한 가지일 것이다.
치유능력자라는 한 가지 특징만으로 반에 잡아두기 위함일 것이다.
그녀의 제안은 하나였다.
하랑에 적응해서 나가지 말아라.
그녀의 생각을 이해해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그러면 내일부터 연습하도록 하자. 시간은 언제가 괜찮겠니?”
“선생님 편하신 대로 잡으시면 될 것 같아요.”
받는 입장에서 다른 이유를 대어가며 가릴 처지는 아니었다.
그녀의 말에 무조건 따르겠다고 하자 그녀는 알겠다며 우리를 되돌려보냈다.
“안녕. 나는 김세연이야.”
밖으로 나가자 김세연이 나한테 인사를 해왔다.
관계에 있어 모든 것을 조심해야 했다.
행동 하나하나,표정 하나하나를 신경 썼다.
“난 한설화.”
20년을 넘게 살면서 느낀 점은 웃으며 대응하면 욕이 반절 정도 줄어든다.
눈꼬리를 살짝 내리고, 입꼬리를 올리며 그녀에게 말했다.
웃는 표정이 꼴 보기 싫다며 욕을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것은 소수였다.
이 사실을 깨닫고, 자주 웃음을 지었다.
“같은 힐러로써 잘해보자.”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먼저 보냈다.
그녀가 내 시야에서 떠나자 입꼬리와 눈꼬리는 다시 원상태로 되돌아왔다.
“이 정도면 혼자 가서 나를 욕하지는 않겠지?”
속에서는 그녀가 나를 마음에 안 들어 한다고 소리쳤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그녀가 나를 싫어해도 겉으로는 웃어 보여만 했다.
나 혼자만 겉으로 드러내면 병신 되기에 십상이었다.
이내 지친 표정을 이끌고 기숙사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