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화 〉하랑 (4/120)



〈 4화 〉하랑

생각을 하면 안 됐다.

 번 생각하니 머릿속에서 김세연과 만났던 일이 회상되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내가 너무 싸가지 없이 말했나.”

‘난 한설화’ 보다 분명히 나은 말이 있었을 텐데, 후회가 파도처럼 밀려왔다.

머릿속에는 그녀가 되돌아가고 나서 하는 말까지 재생되고있었다.
내 의지와는 다르게 상상은 멈추지 않았다.

‘너 걔 알지?우리 반에 힐러라고 있는데 싸가지 없더라.’
‘한 공간에 같이 있는데 헛구역질 나올 뻔했다니까.’
‘웃는데 존나 못생겨서 한  칠뻔했어.’

참자. 실제로 하는 말이 아니었다.
그녀의 목소리로 나오는 상상은 폭주 기관차처럼 멈추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물며 뻗어 나가고 있었다.

김세연도 분명히 비중 있는 조연이었다.
그녀와 관련된 이야기도 있을 만큼 분량도 있었다.

다음 날 보면 그녀가 나를 무시할 것만 같았다.
‘잘해보자’라는 말은 예의상 한 것이 분명했다.

나처럼 덜떨어진 애랑 잘해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처음부터 알아챘어야 했는데, 사람을 만나지 않다 보니 눈치가 많이 없어졌나 보다.

“에휴-”

벌써 두 명이랑 사이가 안 좋아진 것 같다.
본격적인 사건 전개도 전에 일을저질렀다는 생각에 한숨만이 푹푹 나왔다.


**

기숙사로 돌아가고 떨리는 마음으로 대기하고 있었다.

“진짜로 상태창을 외치게 될 날이 올 줄이야.”

자기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하다면 어떨까.

잘난 사람들은 보고 싶을 것이다.왜냐하면, 그들은 자신감이 있으니까 이미 주변으로부터 충분히 이야기를 들었으니까 긴장도 되지 않을 것이다.

못난 사람들은 그들과는 반대일 것이다. 자신의 추악한 면모를 보기 싫어할 것이다. 이미 시궁창으로 박힌 인생을 다른 사람이 평가하는 것만큼 비참한 상황은 없다.

나의 인생은 후자에 가까웠다.
상태창을 외치는 것이 무서웠다.

능력을 보기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다지만, 보기 싫은 것은 어쩔  없었다.

“···혹시 능력치를 제외하고 상태창을 볼  있을까?”

희망이 만들어낸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시도해볼 만은 했다.
속으로 방금 말한 그대로를 말하며 빌었다.


**

[한설화]

▶능력치

▶특수 능력치

▼인벤토리 [1/2]
• 손상된 도깨비 감투


▼능력

─치유[A]
[숙련도 F]

•외상 치유: 마나를 불어넣어 대상의 외상을 치료한다.
•급속 치유: 다량의 마나를 불어넣어 대상의 외상을 급속도로 치료한다.
•내상 치유: 마나를 불어넣어 대상의 내상을 치료한다.
•큐어: 대상의 상태이상(독···)을 치료한다.[잠금]
•치유: 대상의 몸에 마나를 깃들게 해 일시적으로 신체 능력을 강화하고, 모든 피해를 치료한다.[잠금]
•성지: 주위에 영역을 선포한다. 영역 내의 선한 존재는 치유 효과를 받고, 악한 존재에게 피해를 준다.[잠금]

─궁술[S]
[숙련도 F][잠금]

•감각 증폭: 감각이 증폭된다.
•매의 눈: 더 멀리 볼 수 있게 된다.
•재빠른 몸놀림: 활을 들  더 빠른 움직임이 가능하다.
•마력 화살: 화살에 더 쉽게마나를 깃들게 할 수 있다.[잠금]
•자세 고정: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활을 쏠 수 있는 자세를 잡게 해준다.[잠금]
•바람 제어: 바람을 제어할 수 있다.[잠금]
•신궁합일[身弓合一]: 활과 하나가 된다.[잠금]

**

“진짜로 능력치가 안 보이네?”

내가 생각했지만, 상태창이 이 정도로 편의를 봐줄 줄은 몰랐다.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능력치가 먼저 들어왔다.
그다음은 능력으로 눈길이 향했다.

“허미···”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대충 B급 능력  개 던져두고 살라고 할 줄 알았지만, A와 S라니 부담감이 몰려왔다.

아마도 나중의 파워밸런스를 대비한 작가의 생각인 것 같았다.

“두 개 안 받았으면 SS급 받은 거 아니야?”

후반에는 B급은 비중이 거의 없고, 조연의 기본은 A급이었다.

초반의 밸런스를 위해 A급이 희귀하게 나왔지만, 나중에 가면 초반 등장인물 대부분은 능력이 성장해 A급 이상을 이룬다.

“그나저나 궁술에서 신궁합일은 뭐지?”

정체를  수 없는 능력에 설명을 봐도알 수 없었다.

“나중에는 알게 되겠지.”

크게 긴장하지 않았다.
아마 잠금이 풀리려면 숙련도가 S에 도달해야 할 텐데, 먼 훗날이 될 것이다.

 정도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도 크게 꿇리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상태창은 모두가 가지고 있다. 각성했다면 기본적으로 상태창을 열  있었다.
하지만, 능력치를 말하는 것은 금기시되어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특수 능력치 중 제일 쓸모없다고 여겨지는 매력 능력치 또한 그랬다.

어차피 외견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굳이 말하지 않는 사람이 많았다.

능력도 정확히 밝히지 않았다.

하랑에서는 능력을 대분류로 작성하게 된다.
궁술 같은 경우에는 무기술로, 치유는 의료 계열로 작성해 교관에게 전해진다.

능력만을 사용하게 하는 외국의 양성기관도 있었다.

“그러고 보니 마법은 아직인가?”

아직 세상에는 마법의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처음 마법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외국에서 마법 학교가 세워졌을 때일 것이다.

이계형 던전에서 획득한 마법서를 해독해 사용한 것이 최초의 마법이다.
그전까지는 능력을 이용한 마법은 있었지만, 능력에 의존하지 않고 마법을 사용한 것은 처음이었다.

 후 발견자가 정부와 비밀리에 마법 학교를계획하고 설립한 것이다.
마력 제어와 관련된 특성을 가진 사람들을 수소문해 새로운 학교를 세운 것이다.
그만큼 마법의 발견 이전에는 능력의 의존도가 높았다.
능력은 그만큼 중요한 위치에 속해있었다.

그래서 능력에 대해 자세한 것은 묻지 않는다.
물론 유심히 보면 알 수 있었지만, 능력을 사용하는 기록물 같은 경우에는 철저히 보관되었다.

“숙련도는 언제 올리냐.”

숙련도가 올라야 그 밑에 능력들이 해금이 될 텐데 새벽에 나가 가면을 쓰고 훈련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아무리 능력의 등급이 높다고 해도 숙련도가 낮으면 그보다 밑 등급한테 질 수도 있다.

“그나저나 돈을 벌어야 하는데.”

학비는 걱정되지 않았다. 다른 곳에 쓸 돈도 없었고,필기로 장학금을 받으면 됐기에 상관없었다.

돈을 벌어야 하는 이유는 유은설의 병원비를 갚기 위해서였다.
아직까지 마음에 자리 잡은 그녀에 대한 불편함이 콕콕 찌르고 있었다.

나중에 만나면 미안하다고 하며 돈을 전해줘야 할 텐데.
그 전에 돈을 벌어놔야 했다.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을 생각하며 밖으로 향했다.

**


밖으로 나가  수 있는 거라도 찾던   눈에 포스터가 보였다.

[치료실 담당할 생도 구합니다.]

포스터에 홀린 듯 다가가서 내용을 읽어봤다.

매일 저녁 시간에 치료실을 맡아줄 생도를 구한다고 쓰여있었다.

매달마다 월급도 주고, 조건도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치료의 숙련도도 올려야 했고, 사람들이 많은 저녁 시간에는 궁술 훈련이 불가능했다.

원래 담당하던 2학년은 실습으로 빠졌는지 새롭게 사람을 구하고 있었다.
벽에 붙어있던 포스트를 뜯어서 치료실로 향했다.

**

노크하며 문을 열었다.

아직 해가 머리 위에서 떨어지지 않은 시간으로 담당 교관이 있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무도 없는 것 같이 치료실 내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저기···”
“히익···!”

천천히 들어가며 안을 들여다봤더니 교관이 머리를 옆으로 기울인  졸고 있었다.

“그···그래. 무슨 일이니?”
“저 이 포스터 보고 왔는데요.”
“어? 하루 만에 올 줄은 몰랐는데.”

그는 내가 내민 포스터를 보고 의아한 듯 쳐다봤다.

“하랑으로 올라오는 애들 중에 치료 능력을 가진 애들은 모두 저녁 시간에 훈련한다고  하거든.”
“아···”
“거기에 남자니까 한동안 치료실은 붐비겠네.”
“네?”
“아무것도 아니야. 그러면 오늘부터 할거지?”

당장 오늘부터 하라는 소리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할 일도 없었기에 그의 제안은 반가웠다.

아무 생각도 없이 방에 누워있는 것보다는 일하는 것이 한결 나을 것이다.

“그래. 그러면 나는 이만 퇴근할게.”
“······네?”
“잘 있어.”

교관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짐을 챙기고 치료실 문밖으로 나갔다.

저렇게 무책임하게 가도 되는 걸까?
설명도 안 하고 그는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현실 세계로 따지면 월급 루팡인가 뭔가 하는 걸까.
그가 나가는 것을 멍하니 보고만 있다가 주위를 먼저 확인하기 시작했다.

“근데··· 아무것도 없네?”

치료실이라고 명칭이 붙어있기는 했지만, 주위에는 침대밖에 보이지 않았다.
평소 보던 붕대라던지, 약이라던지 그런 것은 보이지 않았다.

“맞다··· 능력···”

능력 때문에 내상이든 외상이든 치유를 할 수 있기에 누울 수 있는 곳만 마련한 것 같았다.

능력에 대해 생각을 하고 있자 문에서는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높은음의 대화가 들리기 시작하고, 나의 몸은 한껏 긴장하기 시작했다.

“아니 이 정도 상처로 무슨 치료실을 와.”
“존나 크게 다쳤는데 안 오게 생겼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그녀들과 나의 눈이 마주쳤다.

“어··· 치료실 교관님?”

다친 사람 말고 그 옆에  있는 사람이 나에게 물었다.

‘웃음 잃지 말자.’

다시 한번 되새기고 그녀들에게 대답했다.

“어··· 저녁 시간에는 제가 맡게 되어있어서 일단 앉아보세요.”
“아··· 네. 네.”

큰일이 생겼다.
능력을 사용할 줄을 몰랐다.
순간 웃음을 잃을뻔했지만, 수년간 가면을 써온 경험으로 웃음을 잃지 않고 그녀들을 대응했다.

‘치유를 외치면 되는 건가? 아니면 그냥 생각만 하면 써지나?’

앉아서 다친 손을 내민 그녀를 보고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했다.
결국, 그녀의 손을 잡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몸에서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지며 그녀의 손으로 흘러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생전 느껴보지 못한 감각에 잠시 정신을 놓고 있었다.

“저기···!”
“······네?!”
“손  놓아주세요···”
“아, 죄송합니다.”

그녀의 손을 너무 오랫동안 잡고 있었다.
그녀가 거절을 표했고, 실수를 저질렀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감사했습니다!”
“야 미친년아 어디가. 같이 가!”

손을 잡았던 그녀는 황급히 일어나 밖으로 달렸고, 옆에  있던 친구도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싫었던 걸까.”

당연히 싫을 만도 했다.
남자가 여자의 손을 부여잡고 놓아주지도 않았으니까.

“하아···”

한숨이 부쩍 늘었다.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막상 상황이 닥쳐오자 한심하기만 했다.

조심하게 대하기로 마음먹었는데 바로 실수를  것에 대한 안일함에 후회만이 생겼다.

“바보.. 바보..”

 머리를 치며 후회해봤자 변하는 것은 없었다.

다시금 방으로 숨어 들어가고 싶었지만, 일을 맡은 이상 일하기로 했던 시간까지는 남아있어야 했다.
마지막에는 당황해서 표정을 그대로 내보였다.

그녀들에게 나는 파렴치한으로 보일 것이다.
치료실에 대해안 좋은 소문이 나면 어떡할까.

교관이 나를 믿고 간 것일 텐데, 깔끔하게 배신해버렸다.
그녀들은 친구들을 만나서 얘기할 것이다.

‘치료실에 남자가 있는데  만지면서 이상한  한다니까’
‘그렇게 안 봤는데 실망이네.’

“너는 이런 곳에 오면 안 됐어. 변태 같은 게 어딜 기어들어 와.”
“그냥 나가 죽으면 안 될까?”

너무 생각을 깊게 했다.
환청이 다시금 들리며손이 벌벌 떨렸다.
다른 생각을 하며 점점 떨쳐내기 시작했다.

이런 일은 익숙하니까 그녀들에 관한 생각을 없애기 시작했다.
점점 사과할 사람만이 늘어나고 있었다. 나중에 만나면 사과를 해야겠다.

또 다른 발걸음 소리가 들리자 나는 헝클어졌던 머리를 정돈하며 다른 사람을 맞을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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