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하랑
“계세요?”
남자가 여자보다는 편했다. 그래서인지 다시금 들리는 청아한 목소리는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고 아는 얼굴이 들어왔다.
“어···!”
내가 반응하기 전 유은설이 나를 보고 놀랐다.
“저희 같은 반 맞죠?”
말의 의도가 무엇일까.
병원에서 마주친 거 아니까 빨리 병원비를 달라는 걸까.
얼굴 기억했으니까 빨리 내놓으라고 재촉하는 걸 수도 있다.
“아··· 맞아요.”
“여기는 왜 있으세요?”
“저 포스터보고 지원해서···”
“첫날부터 열심히 하는 모습 보기 좋네요. 저도 열심히 해야겠어요.”
“하하···”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웃을 수 없었다.
첫날부터 열심히 하는 모습이라는 건 빨리 일을 해서 갚으라는 소리일 것이다.
“저 발목이 좀 아파서··· 예전에 다친 건데 훈련하다가 자꾸 신경 쓰여서 왔어요.”
‘예전에 다친’ 은근히 돌려서 압박하는 그녀의 화법에 식은땀이 흐를 것만 같았다.
지금이라도 사과를 해야 할까.
뭐라고 사과를 해야 하지? 그냥 미안하다고해야 할까.
“저기요?”
“아 네, 네.”
그녀의 부름과 함께 정신을 차리고 그녀의 발목을 봤다.
전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손을 대지 않고 멀리서 능력을 사용했다.
‘아까보다 약간 느린 느낌인데?’
손을 잡았을 때보다 더딘 느낌에 의아함을 느끼고 있었다.
혹시 접촉해야 더 빨라지는 걸까?
“혹시 손 닿아도 될까요?”
“괜찮으시겠어요?”
“네?”
“···편하신 대로 하셔도 돼요.”
물어본 것이 실수였을까. 그녀의 표정이 약간 굳어졌다.
조심스럽게 그녀의 발목에 손을 갖다 대고 다시 능력을 사용했다.
아까 전보다 빠르게 치료되는 느낌을 받으며 한 가지 사실을 유추해낼 수 있었다.
‘거리가 가까울수록 효율이 높아지는 건가?’
발목에 더이상 몸에서 나온 무언가가 들어가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치료가 끝났다고 생각하며 그녀에게 말을 꺼냈다.
“다 됐어요.”
“고마워요.”
언제 사과를 건네야 할까 타이밍을 재고 있던 나에게 느낌이 왔다.
지금이 아니면 사과를 못 할 것 같다는 기분에 그녀에게 말을 꺼내려고 했다.
“죄송···”
쿵쿵쿵-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의 발걸음 소리가 동시다발적으로 들리기 시작했다.
점점 소리가 커지는 것이 치료실로 다가오는 것임이 분명했다.
“바깥에 사람이 많이 왔네요. 저는 이만 가볼게요.”
“어···”
그녀는 수많은 걸음 소리에 급하게 밖으로 나갔다.
사과를 해야 했는데. 그녀가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나자 잡지도 못하고, 내 손은 허공을 맴돌았다.
문이 열리자 말소리가 많이 들렸다.
“여기야?”
“맞는 것 같은데? 치료실?”
문밖에는 꽤 많은 사람이 와 있었다.
유은설은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얼굴에 놀랐지만, 금세 인파를 뚫고 나아갔다.
갑작스럽게 사람이 많이 몰려온 것에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누군가가 크게 다치기라도한 걸까?
문 앞에서만 서성이고 들어오지 않는 그녀들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저··· 혹시 누가 크게 다쳤나요? 왜 이렇게 많이···”
“허업···”
“미쳤다···”
무언가 문제가 있었을까. 그녀들은 대답하지 않고 감탄사만을 표하고 있었다.
나에게 문제가 있는 걸까.
“교관님 저 여기가 아파요···”
인파 속에서 자신의 심장을 가리키고 아프다는 소리에 놀라며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심장이요? 많이 아프시면 저보다는 병원에 가시는 게···”
심장이 아프면 보통 심각한 병이 아닐까.
그녀가 걱정돼서 병원에 가보라는 말을했다. 교관도 없는 상태에서 내가 심장을 치료하는 것은 안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주변에서 웃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나를 비웃는듯한 소리에 앞에 서 있는 그녀를 쳐다봤다.
표정을 보니 장난이었던 것 같다. 내가 너무 과민하게 대응했던 것 같다.
“교관님 전 여기가···”
“미친년아!”
아프다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지만, 이미 그녀는 많은 사람의 욕설과 함께 인파 사이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번에도 장난인 것 같아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저 교관 아니에요. 1학년이에요. 그냥 알바같은 거 하는 거예요.”
교관이라는 칭호가 부끄러워 그녀들에게 정정을 해주었다.
“그러면 저녁때마다 여기 있어요?”
“네. 큰일이 없는 이상 저녁 시간에 치료실은 제가 있을 것 같아요.”
“자주 찾아와도 돼요?”
어쩌다 보니 나를 둘러싸고 물음이 쏟아졌다.
자주 찾아오지 말라고 하면 분위기가 안 좋아질 것 같아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저 여기 진짜 다쳤어요!”
저 뒤에서부터 들려오는 소리에 인파가 갈라지며 길이 열렸다.
이번은 장난이 아닌 듯 손목을 부여잡고 오고 있었다.
“밖보다는 안에서 하는 게 나을 것 같으니까 들어오세요.”
“와··· 저 미친년 다쳐오는 것 봐라.”
“독하다. 독해.”
다친 사람에게 야유가 쏟아지자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해야할지 몰랐다.
“저 너무 그렇게 말하지 마세요. 아파서 온 걸 텐데.”
손목이 다친 사람을 데리고 들어오고 이번에는 접촉하지 않고 치료하기로 했다.
거리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힘이 덜 들었다.
‘몸에서 빠져나가는 게 마력인가?’
실제 싸움에서 힐러는 멀리서 힐을 해야 할 것이다.
접촉을 유지하고 힐을 하면 힘은 덜 쓰겠지만, 싸움에 지장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가까이서 치료를 하면 몇 번이고 할 수 있겠지만, 멀리서 할 경우 한 번도 힘들 것 같았다.
“저 손 안 잡으셔도 돼요?”
“네?”
앞에 두 명은 아무 말이 없길래 접촉을 하지 않는 것이 보편적인 줄 알았다.
“아··· 접촉하면 더 좋다길래.”
그녀의 말은 치료할때 접촉은 보편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 이렇게 말할 정도면 접촉을 하는 것이 편할 것 같다.
“그러면···”
두 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잡고 힘을 불어넣었다.
“히힛···”
“다 된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그녀는 기분 좋게 밖으로 나갔다.
기분 좋게 나간 사람은 그녀가 처음이었기에 나도 똑같이 기분이 좋아졌다.
문이 열린 상태에서 수많은 사람이 보고 있었다.
‘문을 닫아야 하나.’
그녀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치료하는 장면이 부끄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무언가 숨겨야 할 것만 같은 기분에 문을 닫으려고 일어났다.
인파 속에는 한 사람이 그들을 비집고 들어오며 말했다.
“저기 나 허벅지가 아파서···”
**
허벅지가 아프다는 여자 뒤로 한 명이 끝나면 다시 한 명이 들어왔다.
“무슨 여기가 종합 병원인가.”
퇴근 시간까지 열심히 일하고 문을 닫으며 치료실을 나섰다.
“그래도 정신없이 지나가니까 이상한 생각은 나지 않네.”
한창 사람들과 어울렸을 때는 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갔었다.
예전에는 모임이 있으면 참석하려고 했고, 착한아이 증후군이 걸린 것처럼 행동했다.
다른 사람에게는 나의 나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부탁을 받으면 무조건 알겠다고 대답하고, 아픈 사람이 있으면 챙겼다.
웃는 것도 그때 습관이 들었다.
다른 사람 앞에만 서게 되면 자동적으로 웃음이 지어진다.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가면이었다.
몇 년 동안 이어진 습관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웃을수록 지쳐가는 건 나 혼자뿐이었다.
‘오늘 저녁 약속 있는데 올 거지?’
‘설화야 나랑 밥 먹을래?’
후배가 생기면 밥을 사주며 착한 척을 했고, 헤어지고 나서는 후배가 나를 욕하는 것이 상상되면서 먹은 것을 게워냈다.
친구가 생기면 그 사람이 나의 무엇을 보고 접근했는지 확인했고, 그에 맞춰 행동했다.
돈을 원하면 먹을 것을 샀고, 관심을 원하면 관심을 줬다.
호응을 원하면 따라가 모든 행동에 호응을 해줬고, 상담이 필요하면 상담을 해줬다.
그렇게 며칠, 몇 달, 몇 년이 지나고 내 정신은 버틸 수 없을 정도로 무너졌다.
마지막으로 정신이 무너지게 된 계기는 간단했다. 부모님의 죽음이었다.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은 필연적인 관계가 사라지고, 혼자 남은 집에서 손목을 그었다.
물론, 질긴 명줄은 내 정신을 붙잡았고, 손목에 흔적만이 남았다.
그것이 집에 틀어박히게 된 계기다.
사람들을 만나니 자동적으로 착한척을 하게 되었다.
나에게 장난을 쳐도 웃으며 넘기고, 심하게 대해도 웃으며 넘겼다.
습관은 무서웠다. 가면을 써서 사람을 상대한 것도 몇 년이 넘었을 텐데, 사람을 만나자마자 귀신같이 표정이 바뀌는 나에게 놀랐다.
장난을 쳐도 웃기만 했다. 그녀들에게는 나는 그저 장난감일 뿐이니까.
놀기 좋은 장난감, 그녀들에게 내 취급은 그 정도일 것이다.
그녀들이 나를 욕해도 상관없었다. 내 마음은 아플지라도 그저 장난감에게 툭툭 던지는 말일테니까.
장난감에게는 심한 말을 하지 않는다.
‘재미없다.’
‘쓸모없다.’
장난감에게 최대한으로 할 수 있는 욕이었다. 그 정도로는 나에게 흠집조차 낼 수없었다.
재미없고, 쓸모없는 것은 사실이니까. 내가 한 행동으로 벌어진 것이 아닌 그저 나를 평가하는 것이면참을 수 있었다.
참는 내가 싫어진 적은 없었다. 웃으며 대응하면 장난감과 병신은 될 수 있어도 찐따는 되지 않았다.
어쩌면 그게 내 본성이 아닐까 싶었지만, 지금까지도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너무 역겨웠다.
“아 맞다. 단련실.”
단련실 가는 걸 까먹고 기숙사로 와버렸다.
“바보 같네.”
아무도 없는 밤거리에서 혼자 웃음을 뱉어내면서 기숙사로 들어갔다.
**
“어디 갔다왔어?”
“나? 치료실.”
유은설은 치료실에서 나와 길을 가던 중이하늘을 만났다.
이하늘도 단련실에서 나왔는지 땀에 옷이 젖어 있었다.
“너도?”
“무슨 소리야?”
“조금 전에 단련실에 여자 두 명이들어와서 치료실에 예쁘게 생긴 남자가 있다면서 떠들던데.”
“처음 듣는 소린데.”
“그래서 단련실에 있던 여자들 거의 다 치료실로 달려가던데.”
유은설은 치료실에 있는 같은 반 친구의 얼굴을 회상했다.
이름을 정확히 몰랐기에 얼굴만이 기억에 남았다.
“생각해보니 꽤 생기긴 했네.”
“나보다?”
“응. 너보다.”
이하늘이 장난을 치는 것을 알았기에 반 친구의 얼굴을 더 치켜세웠다.
그런 대답을 듣자 이하늘은 삐졌다는 듯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칫···”
“그러면 나 다음으로 온 애들이 거기서 온 거겠네.”
유은설은 수많은 사람들이 치료실로 몰려온 것을 봤다.
그것을 보고 난처해하는 반 친구를 그냥 두고 나왔지만, 그게 그의 일이었다.
“치료실에 있는 걔 같은 반 애야.”
“교관이 아니라?”
“첫날부터 알바같은 거 하는 것 같은데.”
“여자 꼬시려고 그런 것 하는 거 아니야?”
유은설은 자신의 발목을 만지면서 부끄러워하는 그를 생각했다.
갑자기 만져도 되냐고 물었을 때는 놀랐지만, 상관없다고 하자 고개를 숙이며 발목을 만지는 그의 손길은 따뜻하기만 했다.
마지막 모습을 생각하자 자동으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하늘의 말이 웃기기만 했다.
“너는 말을 그렇게 하냐. 돈 벌려고 하는 거겠지.”
“나도 나중에 한 번 봐야겠네. 나보다 예쁘면 얼마나 예쁘냐.”
“뭐래. 얼굴도 빻은 게 훈련이나 해.”
말을 심하게 하긴 했지만, 유은설과 이하늘은 그 정도 사이였다.
어릴 때부터 함께한 세월만 세어도 10년이 넘었다.
이미 그와는 남자와 여자 사이가 아니라 여자와 여자 사이라고 봐도 됐다.
“너도 걔 보려고 치료실 자주 가지 말고.”
“난 아플 때만 가거든. 그리고 어차피 만날 건데 친하게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유은설은 그가 마지막에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생각이 안 났다.
‘별로 중요한 건 아니겠지? 그냥 잘 가라는 말일 거야.’
물어볼 필요도 없을 것 같아 기억에서 지우고 다시 훈련을 하러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