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화 〉하랑
입학식 다음 날부터 수업이 진행되었다.
나에게는 오히려 호재였다. 친해지라며 자기소개 같은 시간을 가지면 불편할 것이 분명했다.
수업이 끝나면 조용히 밖으로 빠져나갔다가 시작할 때 들어가며, 다른 사람들을 피했다.
“던전에는 종류가 몇 개지? 앞에 있는 생도 대답.”
던전 분석학 전공인 교관이 앞에 나와서 설명 중이었다.
던전 분석학 중 설화형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고 처음에 설명했다.
주위에 있는 사람 모두가 교관의 설명을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무언가 하나라도 건져가겠다는 심정과 시험을 잘 치겠다는 심정이 공존하는 교실이었다.
나에게만은 질문하지 말아달라며 속으로 기도를 했다.
“이계형과 설화형이 있습니다.”
아직 마계형은 발견되지 않았다.
아무리 빨라도 3년 이내로 발견될 일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 설화형에는 고정형과 이동형이 있다.”
“고정형에는 대표적인 던전이 영국에 있지.”
“엑스칼리버···”
“정답이다. 영국에는 매년 하는 행사가 있다. 성검 뽑기. 이름은 간단해도 쉽지는 않다.”
영국에 열려있는 던전으로, 내용은 간단했다.
바위에 박힌 검을 빼내면 됐다.
그러면 엑스칼리버의 주인이 된다.
뽑지 못해도 던전은 탈출용 게이트를 열어줬다. 안전함이 보장되자 영국은 그것을 연례행사로 만들었다.
“고정형 던전은 한자리에 열려서 움직이지 않는다. 매년 행사를 열 수 있는 것에는 이유가 있지.”
“교관님 엑스칼리버는 최근에 뽑히지 않았나요?”
“그것도 맞다. 몇십 년이 지나도록 뽑히지 않던 검이 최근에 뽑혔다고 들었다.”
후에 만날 주인공의 동료 중 한 명이었다.
물론, 마왕의 손에 죽기는 한다. 그럼에도 유은설과 견줄만한 강함을 갖고 있었다.
“이동형은 주기적으로 위치를 변하는 던전을 말한다. 대부분의 설화형은 이동형이다. 아마 지금까지 발견이 안 된 유물 모두 어느 곳에서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반복 중일 것이다.”
도깨비 감투도마찬가지였다.
그 빌런은 산에서 얻은 것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아마 다른 곳에서 얻었을 확률이 높았다.
내가 그것을 전에 가로챘고.
“설화형은 유물의 이야기를 그대로 재현한다. 아직까지 발견이 되지 않은 발뭉의 경우에는 위험 판정을 내렸다.”
“발뭉이요?”
“더 알고 싶으면 유물 탐구반 동아리에 들도록. 수업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던전 이야기뿐이니.”
자연스럽게 동아리 홍보를 하고 교관은 밖으로 나갔다.
생도들의 대다수를 궁금하게 만들고, 동아리를 권유하는 솜씨는 한두 번 해본 일이 아닌 듯 보였다.
“모두 주목!”
이미경이 들어와서 우리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무기가 들어왔으니, 다들 나를 따라서 받으러 오도록.”
**
“밖에서 사 온 무기를 가지고 있거나, 우연 혹은 기증으로 받은 유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공정한 결과를 위해 사제 무기는 모두 금한다.”
사제 무기를 금한다는 소리에 가난한 몇몇의 인상이 펴졌다.
유은설의 표정은 별로 좋지 못했다.
우연으로 유물 무기를 얻었지만,쓰지 못해 많이 슬퍼 보였다.
수업에서 이름을 불리는 것을 지켜본 결과 등장인물 대부분의 얼굴을 익힐 수 있었다.
유은설과 이하늘은 입학식 때 알고 있었고, 김세연은 저번에 봤기에 두 명만 찾으면 됐다.
지금 총을 꺼내 가는 사람이 윤예진이었다.
“총이라···”
“안되나요? 그것보다 탄이 약간 부족한 것 같은데.”
“알겠다. 총알은 있는 대로 구해보도록 하지.”
총은 사장된 무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다른 무기에 비해 강한 편에 속했다. 빠른 연사력과 강한 관통력은 총의 중요한 특징이었다.
그럼에도 잘 쓰이지 않았다.
이유는 단 한 가지, 너무 비쌌다.
이미경이 당황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사냥을 한 번 하면 남는 것이 거의 없을 정도로 탄환은 비쌌다.
비싼 이유는 간단했다. 괴수의 표피를 뚫기 위해서는 총알이 마나를 품어야 했다.
마나를 품기 위해서 특수제작된 총알을 써야 했고, 자연스럽게 마력석이 함유된 탄환은 비싸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사격 관련 특성이 떠도 다들 활을 사용했다.
윤예진이 가격을 감당할 수 있는 이유는 한국2위 길드 ‘미리내’ 길드장의 딸이기 때문이다.
확실한 지원을 받고 있고, 졸업 이후에는 길드의 중요한 위치로 배정받게 된다.
그녀 다음으로 나온 사람은 김종현이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와창을 한 자루를 가지고 다시 자리로 되돌아갔다.
윤예진이 길드장의 딸이라면, 김종현은 부길드장의 아들이었다.
김종현은 윤예진을 짝사랑하고 있다.
윤예진은 그 마음을 받아주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의 기쁨보다는 길드가 우선이었다.
후에 김종현이 악마와 계약하면서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간다.
그렇다고 지금 죽이기에는 너무 일렀다.
마음 같아서는 전개에 방해되는 사람을 모두 죽이고 싶지만, 그것은 힘든 일이다.
정말 필요한 사람들만을 죽여도 열 명이 넘었다. 살인자가 되기는 싫었지만, 최대한 적게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옷까지 얻으면 죽이고 도망칠 수 있으려나···?’
생각을 해봐도 김종현을 죽이는 것은 별로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지금으로써 사람을 죽이는 나를 상상할 수도 없고, 죽이면파장이 심할 것이다.
착하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나쁘다고 할 수도 없는 사람을 내 뜻대로 죽일 수는 없었다.
내가 본 소설이 미래라고 하지만, 미래는 늘 변할 수 있었다.
내가 입학한 것 하나만으로도 바뀔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했다.
윤예진의 마음을 바꾸던, 김종현의 마음을 돌리던 둘 중 한 가지는 해야했기에 머리가 아파져 왔다.
“한설화!”
내 이름이 불리고, 나가서 활과 화살을 집고 자리로 되돌아왔다.
“자신의 무기는 각자 보관하고 있도록 해라. 언제 어디서든적이 올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몸에 차고 다녀라.”
자신의 무기가 생겼다며 좋아하는 사람과 덤덤한 사람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처음 활을 잡아본 심정은 신기했다.
누군가를 쏘는 것이 아니고, 잡기만 해서 그런지 아직까지 두려움은 없었다.
**
수업이 끝나고 치료실로 향했다.
텅 빈 치료실이 보기 불편해서 약간 꾸밀 것도 챙겨갔다.
들어오는 사람도 들어오자마자 나를 보면 기분이 싱숭생숭할 것이다.
창가에 꽃 같은 것을 두면 그것에 먼저 시선이 쏠리지 않을까 해서 화분을 챙겼다.
“안녕하세요.”
치료실에는 가방을 정리하고 있는 교관이 보였다.
오늘도 어김없이 칼퇴근을 원하는 모습이었다.
“왔어? 손에는···?”
“아무것도 없어 심심해 보여서 화분이랑 커피 좀 들고 왔어요. 둬도 되겠죠?”
“괜찮아. 그럼 나는 이만 가볼게.”
내가 들어오자 환하게 반기며 가방을 들어 밖으로 향했다.
퇴근이 저렇게 좋은 걸까? 그의 모습은 한없이 즐거워 보였다.
“어떡해··· 들어가? 말아?”
“여기까지 와줬으면 혼자 들어가.”
치료실 벽은 방음이 안 된다. 저번에도 그렇고 심각하게 느끼는 중이었다.
밖의 이야기 소리가 내 귀에는 다 들려왔다. 오는 사람들에게도 알려줘야 할까?
“같이 들어가 주면 안 돼?”
“저번에는 혼자 뛰쳐나가더니 빨리 들어가서 사과···.”
뒷부분은 작게 말해서 인지 잘 들리지 않았다.
사과를 언급하는 것을 봐서는 어떤 말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니 잠깐만 기다려봐.”
기다리라는 말이 무색하게 문이 열리고 한 여자가 들어왔다.
“야!”
말을 받아주던 여자는 열었던 문을 다시 닫았고, 들어온 여자는 문을 열며 나가려고 했지만 밖에서 잡고 있는 듯 열리지 않았다.
“하하··· 안녕하세요?”
얼굴을 보니 기억이 났다.
치료실에 처음 온 사람이었다. 손을 잡았더니일어나 갑자기 밖으로 나간 사람이어서 똑똑히 기억했다.
그것보다 아까 얘기했던 사과가 생각이 났다. 사과를 받으러 따로 온 걸까?
생각했던 대로 먼저 그녀에게 미안함을 전했다.
“처음에 그분이시구나. 저번엔 죄송했어요.”
“아니에요! 고맙다는 인사도 못 하고 제가 그냥 가버려서..”
가볍게 서로 미안함을 주고받았다.
여자는 내가 사과를 했기에 예의상 사과를 건넨 것뿐이었다.
그게 사람끼리의 대화 방식이었다.
누가 먼저 사과를 한다면 그 사람도 사과한다.
그냥 사과를 받기만 하면 안 됐다. 조용히 있으면 쓰레기는 사과를 받은 당사자가 되었다.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냥 이해하기로 했다.
“같은 학년이라고 들었는데···”
“네 맞아요.”
“나는 양민지라고 해!”
갑작스럽게 손을 내밀며 자신을 소개하는 그녀를 보고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돈을 달라는 걸까?
친하게 지내자는 뜻인가. 아니면 다른 의미가 숨어있는걸까?
그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무슨 의미를 뜻하는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아··· 미안 너무 갑작스러웠지? 그냥 친하게 지내자는 뜻이었는데.”
“아니에요. 저는 한설화에요.”
“설화? 이름 예쁘다.”
사람을 칭찬하는 일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자신도 칭찬했으니 너도 칭찬을 하라는 것과 정말 진심에서 우러나오는칭찬이다.
후자는 무언가 하나라도 잘난 사람만이 받는 것이다. 나처럼덜떨어진 사람은 대부분 전자에 속했다.
후자에 속하는 사람은 인싸이거나 연예인이었다.
칭찬을 많이 받아 그에 무감각해진 사람들은 웃으며 대응하기 일쑤였다.
“민지라는 이름도 예뻐요.”
당연히 나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 아니었다.
칭찬은 칭찬으로, 친절은 친절로 보답해야 했다.
“그···그래?”
“오늘은 어디 다쳐서 오셨어요?”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려고 왔는데, 다친 곳은 딱히 없어.”
다친 곳이 없으면 치료실에는 무슨 일로 온 걸까라고 생각했지만, 금세 생각을 고쳤다.
그 전의 말을 더 해석하면 사과를 받기 위해서라는 것까지 연결된다.
“친구분이 기다리시는 것 같은데 나가보시는 건 어때요?”
“아··· 그럴까?”
다친 곳도 없는 것 같아 밖으로 자연스럽게 안내했다.
“다치신 곳 있으시면 찾아오세요.”
마지막까지 웃음을 잃지 않고 그녀를 내보냈다.
그녀에게 사과를 전했으니 마음이 약간 풀어졌다.
‘유은설이랑 김세연한테도 사과를 해야 하는데.’
말주변이 없어서 각자 따로 만나는 시간은 없었다.
그녀들이 치료실을 찾는 것도 아니었고, 늘 주위에 한 명이 붙어있었기에 피해 다녔다.
“그래. 잘 있어.”
양민지는 나가고 난 뒤 친구랑 문 앞에서 얘기했다.
“했어?”
“아니···”
“그냥 다시 들어가. 그렇게 다짐하고 갔으면서.”
“그렇지만 정작 보면 아무 말도 못 하겠는 걸 어떡해.”
방음이 안 된다는 걸 알려줘야 할까.
그녀들의 이야기를 엿듣는 기분이 되어서 별로 썩 좋지는 않았다.
나랑 관련된 이야기라면 듣고 싶어 했겠지만, 관련이 없는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았다.
“그냥 가자. 옥상으로 가서 뛰어내려.”
그렇게 말하면서 말소리는 점점 멀어졌다.
“오늘은 한 명밖에 안 왔네.”
그 한 명도 제대로 된 환자도 아니었기에 한 명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했다.
“양민지라···”
들어본 적이 없는 이름이었다.
아마도 잠깐 출현하지도 않는 엑스트라에 불과할 것이다.
“이름이 예쁘다고?”
자주 그런 소리를 들었다.
나도 그럴 때마다 상대방의 이름을 예쁘다고 한 적이 많았다.
한설화라는 이름은 나에게 애증의 이름이었다.
부모님이 내려준 것에 대한 사랑과 딸로 태어나지 못한 나에 대한 미움이 공존하는 이름이었다.
치료실을 정리하고 먼저 기숙사로 향했다.
교관이 나한테 끝나고 오라고 했으니 아마 훈련을 봐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