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잠
상태창을 열어 가면을 꺼내고 가면을 착용했다.
활을 잡은 상태에서 가면을 쓰자 눈이 맑아지고 아까와는 다른 느낌을 받았다.
무지한 상태에서 활을 잡는 것과 능력이 활성화된 상태에서 활을 잡는 것의 차이는 매우 컸다.
방금과는 달리 감각이 증폭된 상태였고, 움직임은 한층 빨라졌다.
“괜히 S등급이 아니긴 하네···”
실제로 느껴보니 장난 아니었다.
화살을 시위에 걸고 쏘자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나무에 꽂혔다.
생전 처음 써본 활이지만, 지금만큼은 양궁선수보다 더 잘 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려오는 나뭇잎을 쏴서 맞출 수 있을 만큼 자신감이 차오르자 정신없이 화살통을 비워내기 시작했다.
처음 느껴보는 성취감과 희열에 미쳐 화살을 걸고 쏘는 것에 집중했다.
화살을 쏘고, 나무에 박힌 화살을 빼내 다시 사용하던 중 감각에 무언가가 걸렸다.
황급히 가면을 벗고 인벤토리에 넣은 뒤 감각에 걸린 곳을 쳐다봤다.
“누구 있으세요?”
“김세연?”
나뭇잎 사이로 달빛이 비치며 얼굴이 보였다.
목소리와 얼굴을 보니 확실히 김세연이었다.
아마 숲 주위까지 오고 나무에 박히는 소리가 들려 안까지 들어온 것이 분명했다.
“누구···?”
현재 시간은 정오를 넘어서고 있었다.
해가 뜨지도 않았고, 달빛은나뭇잎에 가려져 시야를 차단하고 있을 것이다.
그녀가 못 알아보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어··· 한설화?”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얼굴을 이제야 본 것 같았다.
세 걸음도 안 되는 거리에서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나의 시선은 자동적으로 밑을 향했다.
눈을 마주 보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여기서 훈련 중인 거야?”
“응.”
달빛으로 인해 나무에 박힌 화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주위를 둘러보며 화살들을 바라봤다.
“예쁘다.”
“어?”
“아니 아니. 주위가 예쁘다고.”
그녀의 말에 주위를 둘러봤다.
한 줄기 물방울처럼 내려온 달빛은 숲 사이사이를 빛내고 있었고, 화살촉은 달빛을 반사시켜 다른 곳을 빛내주고 있었다.
확실히 운치 있기는 했다.
인공적으로 조성한 숲인지, 실제 숲보다 훨씬 예뻐 보였다.
“예쁘긴 하네.”
“그···그렇지?”
“미안해.”
그녀와 단둘이 있는 이 상황이 나에게는 기회였다.
저번에 못 한 사과를 하며 그녀에게 미안함을 표했다.
“뭐가?”
“저번에 너무 싸가지없이 말했던 것 같아서.”
“어? 아니야. 별로 그렇게 느낀적 없어.”
생각해보니 사과를 받는 유형에는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염치 있게 사과를 받는 법.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는 사과를 했으면 좋겠지만, 받을 때는 돌려서 말하는 것이다.
그녀는 그런 방법을 택했다.
실제로는 내가 사과를 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이 시간까지 훈련 했던 거야?”
“응.”
“잠은 언제 자고?”
“몇 시간 안 자도 돼.”
예전에 많이 자놓은것이 마치 신체에 저장된 것처럼 약간만 자도 충분했다.
애초에 잠을 자고 싶다고 잘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는 너도 지금까지 훈련했잖아.”
그녀도 훈련을 끝내고 나오는 도중이 분명했다.
얼굴에는 땀이 마른 흔적이 보였고, 이 시간에 산책을 나온 것은 아닐 것이다.
“너는 계속할 생각이었잖아.”
“······그렇지?”
“나는 이제 끝내고 가던 시간이었고.”
애초에 치료실에 있었던 시간까지 생각하면 그녀가 나보다 훈련한 시간이 길 것이다.
주인공을 따라가려면 그만큼 피나는 시간을 노력해야 했다.
무력이 부족하면 뒤에 따라붙지도 못한다.
미래를 알고 있다고 안주하는 것은 멍청한 짓이다.
유물을 빼먹으며 성장할 수도 있겠지만, 제 살 갉아먹기에 불과했다.
정말 필요한 것이라면 얻을 수도 있겠지만, 장비에 기대는 짓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애초에 후반부에 가면 기본적으로 모든 장비는 최상급으로 맞춰지게 된다.
빌런들의 장비를 약탈하던, 기연을 만나던 둘 중 하나를 겪게 된다.
“안 힘들어? 그렇게 하면 쉽게 지쳐.”
“힘들지 않아.”
죽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더 힘들게 나아가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들어온 것이니까 당연했다.
힘들어도 괜찮다.
알면서도 들어온 거니까.
“잠은 제대로 잤으면 좋겠는데···”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녀의 말투에서 느껴졌다.
정상적으로 생각한다면 잠을 자지 않는 것은 위험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잠은 다르게 다가왔다.
나에게 잠이란 죽음이었다.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상태, 움직일 수도 없는 상태.
처음 이런 것이 생각나자 자는 것이 무서웠다. 죽는 것만큼 무서웠다.
“이미 많이 잤어.”
그럼에도 잠을 청했다.
그 느낌이 좋아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시간이 지나가는느낌이 좋아서.
죽는 것 같은 느낌이 좋아서.
두려움을 상쇄시킬 만큼 자연스러운 욕구여서.
그래서 잠을 잤다. 마약을 먹은 사람처럼 온종일 잠을 쫓아다녔다.
“사람은 하루에 8시간 잠을자야 피곤하지 않다고 느낀대, 너도 별반 다르지 않을 거야. 나랑 같이 나가자.”
하루에 12시간을 넘게 잠을 잤다.
시간은 덧없이 흘러갔고, 내가 인지하지 못한 시간이 수백 시간, 수천 시간, 수만 시간이 되어갈수록 잠을 자기가 힘들어졌다.
나만의 세계를 만들며 잠을 청하는 것은 힘들어졌고, 나의 잠은 기절과 같아졌다.
현재는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자지 못할 정도였다.
하루에 4시간이면 많이 잤다고 생각할 만큼 수면 시간은 짧아졌다.
정신은 온종일 피폐했지만,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
“먼저 나가. 나는 조금 더 하다가 나갈게.”
“몸 상한다니까.”
그녀가 걱정하는 것도 똑같았다.
나를 자세히 몰라서 그렇다. 나의 사정을 안다면 그녀도 물러날 것이다.
그렇지만 나의 일생을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런 것을 말한다면 어느새 그녀는 벽을 뚫고 내 마음속에 들어와 있을 것이다.
내 마음속의 추악한 면모를 들여다보고 다시 뚫은 벽을 통해 밖으로 나갈 것이다.
내 마음은 휑하니 그녀가 들어온 곳을 바라볼 것이다.
굳게 세워져 있던 수천 개의 벽은 구멍이 뚫려 취약해져 있을 것이고, 구멍을 보고 허탈감만을 느낄 것이다.
그렇기에 말할 수 없었다.
무섭고, 두렵고, 걱정되고, 겁나기에 말할 수 없었다.
“알겠어. 한 시간만더 해. 나도 구경할 테니까.”
사람의 걱정은 양방향이 아니다.
일방향적이었다.
걱정하는 사람과 걱정을 받는 사람은 달랐다.
그것이 그 사람의 선택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위태로운 길을 선택한 것도 그 사람의 결정이었다.
그녀는 어느새 잔디에앉아서 내 연습을 구경할 준비를 갖췄다.
가면을 써야 궁술 연습이 제대로 되었기에, 그녀의 관심은 부담스러울 뿐이었다.
어떻게 해야 잘 쳐낼 수 있을까.
내가 뭐라고 그녀를 걱정하게 만드는 걸까.
차라리 맞이하지 않고 피했더라면 결과가 전보다 나았을까?
그녀의 걱정 섞인 관심은 나에게는 독일 뿐이었다.
사이사이 들어오는 달빛처럼 그녀는 달빛과도 같았다.
그녀는 나처럼 아무런 쓸모도 없는 사람과는 달리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며 밝게 빛났다.
나 때문에 그녀가 몸을 상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나무에 박혀있는 화살을 뽑았다.
“그냥 들어가자..”
“응? 훈련 더 안 하고?”
“······”
“그래. 뭐 좋은 게 좋은 거지.”
그녀는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웃기만 했다.
아마도 자신의 걱정이 나의 마음을 바꿨다고 생각할 것이다.
자신이 남에게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모두 좋아한다.
그것이 객관적으로 봤을 때 옳은 것이든, 옳지 않든 상관없었다.
자신이 보기에 옳은 길이라 생각하면 됐다.
그 길을 남이 그대로 따라올 때 희열감을 느낀다.
자신에게는 고속도로이겠지만, 남에게는 그 길이 절벽과도 같을 수 있었다.
천천히 걷고 있는 사람을 빠르게 이끌어준다면 좋아할까?
처음에는 좋아할 것이다.
자신이 걸어보지 못한 길을 남이 이끌어준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중에 가서는 후회할 것이다.
천천히 길을 걸으면서 놓친 것들이 생각나며, 자신의 과거를 원망하기 시작한다.
최후에는 끌어준 사람을 원망할 것이다.
사람은 그렇다. 좋아했던 자신의 과거를 잊은 채 쉽게 사람을 원망한다.
당연하게도, 이끌어 준 사람은좋아한다.
왜냐면 이끌어주면서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좋아지기 때문이다.
뒤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을 위해서 사람을 돕는 것이다.
김세연도 똑같았다.
자신이 나를 바른길로 인도했다면서 좋아하는 것이 분명했다.
이끌림을 받은 사람의 의견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가 보기에 나는 잘못된 길을 걷는 사람이었고, 그녀는 바른길로 인도할 생각이었으니까.
그녀가 나를 기숙사 앞까지 데려다 놓은 뒤 말했다.
“들어가는 거 보고 난 갈게.”
마지막까지 확인한다는 그녀의 말에 속수무책으로 기숙사에 들어갈수밖에 없었다.
나를 기숙사로 돌려보내는 그녀는 행복할까.
아마도 행복할 것이다.
방에 들어가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이렇게 관심을받은 날에는 잠이 더더욱 오지 않았다.
이불 속에 있던 공기가 사라지면서 내 얼굴을 덮었다.
점점 숨이 막혀오는 것이 느껴졌다.
밧줄에 목을 매듯, 연기에 질식하듯 그런 느낌을 받으며 잠을 청했다.
꿈도 꾼 적이 있었다. 깊은 잠에 빠져들었을 때 가끔 무의식이 만들어낸 세상을 탐방했다.
꿈을 꿀 때면 신기했다.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죽기만 했다.
꿈이라면 현실과는 달리 희망찰 줄 알았지만, 내가 겪을 수 있는 최악을 보여줬다.
좀비에게 물려서 사지가 찢겨 죽는 꿈, 살인마에게 쫓겨 복부가 찢어지는 꿈, 비현실적인 존재가 내려와 말할 새도 없이 몸이 터져 죽는 꿈.
꿈을 꾸고 일어나면 기분이 이상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일어나면 늘 상태는 똑같았다.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이불이 땀에 젖어 얼굴을 막고 있었고,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꿈은 마치 죽기 전 경고와 같이 다가왔다.
죽기 싫으면 일어나라는 듯 꿈에서 나를 죽였다.
처음에는 무서웠다.
잠을 자다가 죽는 것이 아닐까?그러면 어떡하지?
그러면 호상일까? 어쩌면 그게 편할 수도 있었다.
그렇게 죽어버리면 오히려 마음이 편하니까.
두려움 다음은 희열이었다.
죽음을 원하던 내가 가장 편하게 죽음을 느낄 수 있는 방법.
나 같은 쓰레기에게 관심을 주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없어져야만 했다.
그렇기에 꿈속에서의 죽음은 마약과 같았다.
잃어가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8시간. 10시간. 12시간.
관심을 받은 뒤에는 잠이 오지 않음에도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밥은 먹지 않았다.
나 같은 놈에게 들어가는 밥도 아까웠으니까 하루에 한 끼로 연명할 뿐이었다.
그렇기에 나에게 잠은 죽음이었다.
죽음과 가장 가까운 상태를 느끼게 해주는 매개체.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매개체.
오랜만에 느끼는 걱정어린 관심에 이불을 뒤집어쓴 채로 죽음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