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화 〉실습 훈련
그 일이 있고 난후 김세연은 나에게 평소보다 심할 정도로 관심을 주고 있었다.
그녀는 평소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수업시간에 빤히 나를 쳐다보는 등 여러 행동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관심을 떼야 할 텐데.”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이 아니었다면 이미 훌쩍 떠나버릴 정도로 마음의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 부담감을 없애기 위해서는 나에 대한 그녀의 관심을 없애야 했다.
“그나저나 무슨 할 일 없나?”
다른 사람들 모두가 던전에 들어가고 할 일이 없었다. 주위에 할 일은 있어 보이지도 않았다.
조금 있다가 치료실 교관이 던전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이렇게 대접받는 것은 불편했다. 뭐라도 해야 이 불편함이 풀릴 것만 같았다.
“저도 도와드릴까요?”
“응? 어? 너 이 반이었어?”
교관은 내 얼굴을 보고 놀라며 쳐다봤다.
“실습은?”
“아··· 저는···”
대충 상황 설명을 하니 그도 끄덕거리면서 나에게 도움을 청했다.
“저녁에는 잘하고 있어?”
“네. 별로 사람도 안 몰리고 괜찮아요.”
“조금 선 넘는 애들이 간혹가다가 있긴 한데, 알아서 잘 처리해.”
“어떤 경우요?”
그의 말에 어떤 상황인지 들어보려고 했다.
이 세상에서는 내가 모르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
새롭게 배우는 것도 많았다.
그에게 능력 사용에 대한 활용법도 알수 있을 것 같았다.
“다친 곳 만져달라는 여자도 있었고, 성교육해달라고 조르는 애도 있었지.”
“네?”
다친 곳을 만져야 되는 게 정상이 아니었나?
그 편이 효율이 더 좋은 것 같았는데.
“접촉하면 안 되는 건가요?”
“심한 상처일 경우에는 상관없는데, 가벼운 상처는 접촉하지 않는 편이지. 특히 이성 간의 접촉은 하지 않는 것이좋아.”
“아···”
“간혹 여자가 남자를 치료 목적으로 만지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는데, 요즘은 많이 없어졌지.”
“여자가요?”
“응. 대부분 여자가 그러잖아.”
‘생각났다.’
지금까지까먹고 있던 설정이 기억났다.
왜 지금 기억했는지 의아할 정도로 눈치를 못 채고 있었다.
여기는 남자와 여자의 힘과 지위가 뒤바뀐 세상이었다.
생각해보니 별로 달라진 점은별로 없었다.
하랑에 속한 생도는 기본적으로 모두 각성자였다.
남자와 여자의 힘은 비슷할 것이다.
그렇기에 여자가 남자를 무시하는 일은 있을 수가 없었다.
또한, 수업 중간 쉬는 시간마다 밖에 있다가 와서 일상의 대화를 듣지도 못했다.
‘그러니 차이점을 못 찾을 수밖에···’
“그래서 대부분은 조금 거리를 두며 치료하나 보네요.”
“그렇지. 그런 여자애들 오면 그냥 문밖으로 내보내. 심하면 교관한테 말하고.”
“네.”
“저기 한팀 나온다.”
게이트가 일렁거리고 곧 사람을 토해냈다.
네 명이 나오고, 네 명 중 한 명은 단검에 찔린 듯 피가 흐르는 복부를 부여잡고 있었다.
“크게 다친 애도 있네. 나머지는 네가 맡고, 부축받고 있는 애는 내가 맡을게.”
“네.”
“여기로 와!”
그는 나온 사람들을 보고 크게 소리쳤다.
주위 교관들은 나온 사람을들어 간이침대로 눕혔다.
주위 간단한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내 앞으로 오고 있었다.
남자 한 명은 눈물을 흘린 것을 티 내듯 눈 아래에 눈물 자국이 남아있었다.
“내가 실수해서···”
“괜찮아요.”
자신을 자책하는 그에게 변변치 않은 위로를 하며 다친 곳에 힘을 불어넣었다.
곧 새살이 돋아나며 피가 멈췄다.
“아··· 고마워.”
그는 내 얼굴을 보고 감사 인사를 했다.
“다음 다친 분 오세요.”
교관과 이야기하면서 새로 안 점을 반영해 거리를 두고 능력을 사용했다.
예전보다는 힘이 더 들었지만, 충분히 치료되고 있었다.
침대에 누운 사람은 벌써 박혀있던 단검을 빼고 상처를 거의 다 치료했다.
‘숙련도가 중요하긴 하네.’
치료실 교관의 능력은 아마 나랑 동급이거나 밑일 것이다.
그럼에도 나랑 치료 속도의 차이가 난다면 당연히 숙련도의 차이일 것이다.
“설화야 뭐해?”
줄이 서 있음에도 내 옆으로 다가와 묻는 소리에 옆을 바라봤다.
어느새 김세연은 나의 옆에 와있었다.
갑자기 와서 그녀도 치료하기 시작했다.
“도와줄게.”
그녀의 의도는 알겠지만, 주위에 시선이 신경 쓰였다.
둘이 같이 앉아있는 모습은 보기에 좋지 않았다.
나에게로 쏠리는 시선을 감당하기가 버거웠다.
그렇지만 옆에 있는 그녀에게 떨어져달라는 말을 하기도 힘들었다.
호의로 접근한 그녀에게 멀어져달라고 얘기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내가 감당해야 할 업보인 것이다.
**
“괜히 도와준다고 했나.”
예상에도 없던 주목을 한 번에 받아서인지 속이 울렁거렸다.
치료실에 가만히 앉아 속을 가라앉혔다.
똑똑-
발소리를 못 들었던 건지 문에서는 노크 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는 것을 지켜보고 아는 얼굴이 들어왔다.
“진짜네?”
“김세연?”
그녀가 치료실이 올 일이 있을까?
“여기는 왜···?”
“너가 여기서 일한다는 소리 들어서 와봤어.”
“으···”
너무나도 과한 관심에 몸이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나에게 관심을 주지 않아 줬으면 좋겠지만, 그녀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저녁 시간마다 여기 있던 거야?”
“응.”
“심심하겠는데.”
“별로···”
혼자 있는 시간이 더 편했다.
김세연이 빨리 가줬으면 좋겠다.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그녀는 여전했다.
남의 마음은 신경 쓰지 않는 듯 나를 신경 쓰지 않았다.
“나도 같이 있을까?”
“아니. 그건 괜찮아.”
김세연의 말에 겁에 질려 손바닥을 흔들며 거부의 표현을 했다.
그녀에게 나는 무엇일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본 지 며칠도 되지 않은 사이임에도 그녀는 나를 신경 쓰고 있었다.
그녀의 성격이 애초에 이런 것일까? 지나가는 돌멩이도 관심을 가지는 성격일까?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그저 내 속에서의 물음일 뿐이다.
속에서만 생각한 것을 밖으로 꺼낸 적은 별로 없었다.
단 한 번이었다.
실제로 그것을 입 밖으로 내놨다가 주위 분위기가 싸해지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 뒤로 궁금증은 내 속에서만 묵혀놨다.
말했다가 분위기가 안 좋아지는 것은 순식간이니까.
그런 것들이 뭉쳐 내 몸의 독이 될지라도 끝까지 품었다.
내 거절을 끝으로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그녀는 아직 나갈 생각이 없는지 의자에 앉아있었다.
더 이상 이 분위기를 참을 수가 없었다.
일하는 곳이 아니었다면 당장 문밖으로 뛰쳐나갈 정도였다.
“···혹시 커피 마셔?”
“커피?”
“응.”
“마시긴 하는데···”
뜨거운 물을 받아 커피를 만들어 그녀에게로 건넸다.
“자. 이거 마셔.”
“고마워.”
뭐라고 말해야 할까.
나가줘?
이거는 너무 싸가지가 없는 것 같고, 전에 온 사람처럼 친구라도 같이 왔으면 내보낼 텐데.
좋은 생각이 났다.
“훈련은 안 하러 가?”
“응? 아···”
“원래 이 시간에 하지 않았어?”
“그렇지. 너가 새벽에 하려고 하니까. 나도 새벽에 할까싶어서.”
“그럴 필요 없는데··· 내가 뭐라고···”
“혼자 하면 재미없잖아.”
“재미있으라고 훈련하는 건 아니지.”
“그···렇긴 하지만. 혼자보다는 둘이 낫지 않겠어?”
싫다.
관심이 과했다. 그녀의 관심은 내 병을 고쳐주지 않았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과 같은 소리였다.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아 치료하는 방법도 있기는 했다.
하지만 약물치료도 실패한 나에게 그런 관심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난 혼자 하는 게 나은데···”
“그래도 걱정되니까.”
“그냥 나 혼자 하면 안 될까?”
“남자가 혼자서 숲에서 훈련하면 위험해.”
“그래도 각성했는데, 그리고 하랑 내부인데 위험한 게 있을 리가 없잖아.”
그녀와의 언쟁은 끝나지 않았다.
다른 사람이 올까 싶었지만, 주위에 들리는 발소리는 하나도 없었다.
이럴 때 사람이 와주면 나에게 큰 도움이 될 텐데.
그녀는 나를 어린애 보듯 보고 있었다.
보살핌을 받아야 할 존재로 여겨지고 있는 것이 불편했다.
선을 그어야 했다. 가만히 있다면 그녀는 자기 마음대로 나를 휘두르려 할것이다.
“그래도···”
“나는 어린애가 아니야. 보살핌을 받을 만큼 어리지 않고.”
“알고 있어!”
“그러면 나한테 왜 그러는 건데.”
“······”
김세연은 선뜻 말을 꺼내지 못했다.
내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녀는 나를 자신보다 하등한 존재로 여기고 있었다.
인간은 강아지한테 큰 것을 바라지 않는다.
자신의 옆에만 있어 주면 강아지의 역할을 모두 다 했다고 생각한다.
요리하라고 하지도 않고, 청소하라고 하지도 않는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강아지는 인간보다 하등한 존재니까.
그런 전제조건이 깔려있는 것이었다.
결혼한 사람이 강아지처럼 요리도, 청소도 안 하고 있다면 화낼 것이다.
왜냐하면, 두 사람은 동등한 존재니까.
자신도 할 수 있는 것을 남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에게 나는 강아지 같은 존재였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지만, 나는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 나가볼게.”
그녀가 나가는것을 붙잡지 않았다.
오히려 바라던 것이었다. 이 일로 그녀가 나한테 관심을 껐으면 좋겠다.
주인공과 그 동료들이 앞을 나가면 나는 묵묵히 장애물만을 치워주면 됐다.
무슨 방법이 되었든 내 역할은 그것뿐이었다.
손에 피를 묻혀도 상관없었다.
그녀가 나가고 치료실은 조용했다.
방금까지 언쟁을 벌였던 것이 무색하게 주위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너가 심했다고 생각 안 해?’
“생각해.”
그렇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심한 말을 한 것도 내 선택이었으니까.
‘후회하고 있잖아.’
“맞아. 사실 후회해.”
하랑에 와서 처음으로 나를 맞이해준 사람이 떠나갔다.
웃으며 나를 맞이해주었던 그녀는 내 눈앞에서 사라졌다. 나의 선택으로 인해서.
‘병신’
“알고 있어.”
내 마음속에 서 있던 벽이 한 겹 더 늘어났다.
이미 다른 사람들과 나의 거리는 너무 멀었다.
그들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세운 벽들을 모두 무너뜨려야 했다.
두려웠다.
힘들게 쌓은 수천 개의 벽을 쓰러트릴 수 있을까? 무너뜨려도 마주 볼 수 있을까?
나를 정상인이라 보기에는 힘들었다.
‘그러니까 니가 이런 생활을 하게 된 거야.’
“알고 있어.”
내가 내린 생각에 대답을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다른 사람이 보고 있다면 미친놈이라고 욕을 할 것이다.
미친놈이 맞다. 부정하지 않겠다.
“김세연은 너를 욕하고 있을 거야.”
“알고 있어.”
깊게 생각할수록 이명과 함께 환청이 찾아왔다.
“아마도 내일부터 교실에서 너는 쓰레기가 되어있겠지. 김세연은 그 정도의 사람이니까.”
“알고 있어.”
감당할 수 있었다.
그 정도는 간단하니까. 많이 겪어본 일이었으니까.
“너의 책상에 욕이 쓰여있을 수도 있어.”
“그 정도는 지우면 돼.”
“어쩌면 구석으로 끌고 가서 때릴 수도?”
“맞으면 돼.”
내가 그녀에게 한 행동은 씻을 수 없었다.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했다.
“이제는 닥쳐줘. 제발···”
후회만이 남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