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화 〉쪽지 시험 (12/120)



〈 12화 〉쪽지 시험

“오늘은 쪽지시험이 있습니다.”

“네?”
“갑자기요? 안 돼요!”

“이견은 받지 않고 시험지 나눠드리겠습니다.”

오늘이었던가. 앞에서 교관이 말을 한 뒤 시험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크게 하품을   나눠 준 시험지를 봤다.

[똑같은 입구로 미로형 던전에 들어갔습니다. 이때 두 가지 갈림길이 나옵니다. 총 네 번의 갈림길 선택  나올  있는 출구가 5가지가 있습니다. 5가지의 출구를 순서대로 왼쪽부터 A,B,C,D,E라고 칭하겠습니다. 이때 두 개의 파티가 들어갈 때, 파티가 나온 서로 다른 출구의 개수를 X라 합니다. 두 개의 파티가 모두 A로 나올 때 X=1입니다. 한 개의 파티가 A로 나오고, 한 개의 파티가 B로 나오면 X=2입니다. 이때 E(X)는? (갈림길에서 왼쪽 혹은 오른쪽을 선택할 확률은 1/2입니다.)]

‘이게 뭔 개소리냐.’

공부를 못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확률과 관련 있는 문제였다.

그림이 첨가되어있음에도 별로 문제의 해답과는 상관 없어 보였다.

문제가 있다면 대학에 입학한 뒤로 모든 것을 까먹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맞을 수 있다는 장담을 하는 이유는 당연했다.

작가가 소설을 읽었을 때의 기억을 보존해줬다.

유은설은 필기에서 1등을 놓친 적이 없을 정도의 수재였다.

키워드가 주어지면 소설의 내용이 재생되는 것처럼 생각났다.

‘유은설은 이때 한 개 틀렸네.’

나중에 오답을 고쳐보는 시간까지 있어 모든 문제의 정답을 알고 있었다.

‘221/128?’

정답이 진짜 미쳤네. 이게 맞는 수인가?

‘근데 이런 게 필요한가?’

그것은  모르겠고, 답을 점점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


“다들 제출해라!”

“안 돼!”
“조금만 시간 더 주세요.”

여러 곡소리가 터져 나왔지만, 눈물을 머금으며 교관에게로 제출했다.

“잠시 채점하고 있을 테니, 쉬고 있으면 된다.”

갑작스러운 쉬는 시간에 생도들이 모여 정답을 얘기하고 있었다.

“1번  뭐였어?”
“2번은 뭔데?”

“설화야  봤어?”

옆에는 김세연이 나한테 말을 걸고 있었다.

무슨 생각일까. 역시 그녀의 표정은 읽기가 어려웠다.

“약간?”
“그래? 나는 어려웠는데 공부 잘하나 봐.”

나도 정상적인 방법으로  것이 아니라 양심에 찔렸다.

“채점 끝났다! 다들 자리에 앉도록!”

“벌써요?”

다들 놀라며 시험지를 받았다.

“다 맞을 줄 몰랐지만, 만점자가 있었다.”
“만점자요?”

고개를 슬쩍 들어 유은설을 봤다.
그녀는  기대하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미안하네···’

그렇지만 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필기 장학금을 받아야만 했다.

“나도 놀랐다. 한설화가 만점이다!”

교관님?

‘그것을 아주 대놓고 말씀하시면···’

나는 예정에도 없던 관심을 한 눈에 받고 있었다.

유은설은 죽일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김세연은 웃으며 나를 쳐다봤다.

“한설화?”

내 이름을 처음 들은  수군대지만, 곧 나를 찾아내 쳐다보기 시작했다.

“상상 이상의 결과였구나. 그러면 오늘 수업은 시험으로 끝이다. 나머지는 알아서 보내도록.”
“어···”

교관이 나가고, 나는 나갈 타이밍을 놓쳤다.

“설화야 약간이라며.”

가장 먼저 말을 건 사람은 김세연이었다.

“아···”

이때다 싶어 나를 물어뜯으려 하이에나들이 접근했다.

“너야 만점자가?”
“대단하다!”

“아···”

**

웃으며 같은 반 생도들을 대하는 것은 어려웠다.
칭찬에는 칭찬으로 대답했고, 문제에 대한 풀이는 대충 넘겼다.

소설에서도 풀이는 넘기고 답만 적혀있어서 풀이를 물어보면 대답하기 힘들었다.

치료실은 조용하니 좋았다.

훈련 중에 다치는 사람은 거의 없었기에 가끔 사람이 찾아왔다.

노크 소리가 들리고 사람이 들어왔다.

“유은설?”

치료실에 왜 이렇게 아는 사람이 찾아오는 걸까.

“어디 다쳤어요?”
“같은 반인데 말 편하게 해.”
“그래?”
“너 공부는 언제 해?”

그녀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응?”
“있지. 나 필기로 져본 적은 없어서.”
“그···래서?”
“어떻게 공부하나 궁금해서.”

‘맞다’

그녀의 성격은 궁금증은 단번에 풀어야 했다.
특히, 자신이 관심 있는 부분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을 만나면 머리를 숙이고 들어갔다.

자기보다 검을 잘 쓰는 사람을 만나면, 검을 가르쳐달라며 조르는 장면도 있었다.

“나···”

공부를 안 하는데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언제? 같이 공부하자. 내가 맞출게.”
“안···하는데.”

내 말에 웃고 있던 표정이 단번에 일그러졌다.

“그냥 같이 공부하기 싫다고 말하지?”
“아니··· 그게···”

답을 다 알고 있다는 말을  수도 없고, 그녀의 질문은 대답하기 곤란할 뿐이었다.

“그럼 뭔데.”
“그냥 수업만 듣고 푸는 건데···”

대답하고 눈을 꾹 감았다. 그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하···! 그러면 이것도 풀어봐.”

문제를 풀라고 던져주면 풀  있을 리가 없었다.
나는 눈을 살짝 뜨며 그녀가 내민 문제를 쳐다봤다.

‘어?’

소설 속 유일하게 해답이 있는 문제.
오늘 시험에서 그녀가 틀린 문제였다.

오답 풀이를 하는 과정은 자세하게 적혀있었기에 내가 유일하게 풀 수 있는 문제였다.

그림에는 A, C, F,가 남자로 나와있고, B, D, E가 여자로 나와있었다.
[(가)는 대립유전자 R과 r에 의해 결정된다. r은 (가)를 일으키는 유전자이다. R은 r에 대해 완전 우성이다. (가)는 성염색체에 있다. A,B,C,D  마리의 늑대가 있다. A와 B 사이에 태어난 늑대를 E라고 하고, C와 D 사이에 태어난 늑대를 F라고 하겠다. D와 F는 (가)가 발현됐다. F는 염색체에 이상이 생겨 성염색체가 세 개다. A,B,C,D 각각의 체세포 1개당 r의 DNA 상대량을 더한 값/ E, F 각각의 체세포 1개당 r의 DNA 상대량을 더한 값은 3/2이다. 이때 E와 F에 아이가 생긴다면 돌연변이일 확률은 몇인가? (단, 제시된 염색체 비분리 이외의 돌연변이와 교차는 고려하지 않으며, R과 r 각각의 1개당 DNA 상대량은 1이다.)]

‘진짜 보면 볼수록 전혀 필요가 없어 보이네.’

‘답은 1/3이네.’

대체 우리가 괴수의 유전을 왜 배워야 하는 걸까.

“너 이거  거 아니야?”
“응···”

나는 그녀가 보는 앞에서 풀이를 적었다.

“자 여기.”
“음···”

그녀가 유심히 내 풀이를 봤다.
당연히 맞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녀가 푼 것이나 다름이 없으니.

“정···정말이야? 딱 수업만 듣고 푸는 거야?”
“응.”
“거짓말하지 마.”

유독 집착하는 느낌이었다.
그녀의 성격을 알기에 넘어갈 수 있었다.

성격을 몰랐다면 지금쯤 그녀에게서 도망갔을 것이다.
눈에서 불이라도 뿜어져 나올 것 같았다.

“그래··· 일단 가볼게.”

그녀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렇지만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지 않았지만, 창문으로 나를 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슬쩍 고개를 돌려 창문을 봤다.
인기척이 있다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에휴-”

느낌상 오늘 하루 동안은 따라다닐 것 같았다.

정말 공부를 안 하는 것을 보여줘야 믿을 것 같다.


**


치료실이 끝난 뒤에는 이미경 교관에게 찾아갔다.

역시 유은설은 나를 쫓고 있었다.

교관과 만난 뒤 숲을 향해 걸어갔다.

“설화야. 천천히 걸어 봐.”

교관의 촉까지 속일 수는 없었다.

교관은 뒤에서 따라오는 유은설을 눈치챈 것 같았다.

나는 진작에 그녀가 따라오는 것을 알았기에 눈치채고 있었다.

“설화야 내가 신호 주면 다른 교관을 찾아.”

교관은 뒤를 쫓는것이 위험한 무언가라고 판단한 것 같다.

그녀를 때리기 전에 교관에게 말했다.

“그럴 필요 없어요.”
“응?”
“지금 저희 뒤에 있는  유은설이에요.”
“유···은설?”
“네.”
“걔가 왜?”

그거야 제가 공부를 하는지  하는지 감시하기 위해서죠.

“일단 잡고 보자.”

그녀는 빠르게 움직여 우리의 뒤를 쫓고 있는 유은설을 잡아냈다.
옷을 잡은 유은설을 내 앞으로 끌고 왔다.

“그래서 왜 쫓아온 거야?”
“그게···”

자신도 말하기 쪽팔린 지 말을 섣불리 하지 못했다.

“교관님한테만 말하면  될까요?”
“음··· 그래.”

교관은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곧 귓속말로 말하더니 크게 웃었다.

“하하하하하. 설화야 얘가 뭐라는지 알려줄까?”
“교관님!”

“됐어요. 저도 대충 알고 있어요.”
“그러냐?”

“응? 알고 있었어?”
“자신을 쫓는 것도 알고 있었으니 이유도 알겠지.”

내가 알고 있었다는 말에 그녀의 얼굴이 토마토처럼 빨개졌다.

“알고··· 있었어?”
“응.”
“이유까지?”
“나 공부하는지 확인하려고 쫓은 거잖아.”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나저나 웃긴 애 아니니? 시험에서 자신을 이긴 게 분해서 쫓아다니는 게.”
“그게 쟤가!”

그  공부를  한다는 소리에 교관도 나를 놀라서 쳐다봤다.

“음··· 진짜면 설화는 천재란 소리네.”
“말도 안 되죠!”

그렇지만 그녀가 오늘 동안 본 나의 동선에는 공부 시간이 하나도 없었다.

“남은  하나밖에 없어요. 교관님이랑 쟤랑 둘이 공부하러 가는 것밖에.”

교관은 그 소리를 듣더니  호탕하게 웃었다.
저렇게 웃음이 많은 사람인 줄은 몰랐다.

“그래. 그럼 따라와라.”

교관은 유은설도 같이 데리고 숲으로 향했다.

“여기서 공부를 해요?”
“아니란 건 알겠지?”
“그러면···?”
“설화가 치유 능력자잖아.”

교관은 간략하게 유은설에게 설명했다.

교관이 있음에도 나를 쫓는 이유는 간단했다.
나라면 진작에 교관이 붙을 때 그만했을 텐데, 그녀의 집념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러면 시작하자.”

교관은 다시금 활을 꺼내고 나를 향해 겨눴다.

유은설도 그냥 오늘 훈련은 하지 않기로 한 것 같다.
나의 훈련을 구경하려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에휴-

한숨이 나오지만 곧이어 나를 향해 날아오는 화살에 그녀를 신경  시간이 없었다.



**


“진짜 죽겠네.”

늘 하는 훈련이지만 적응은 되지 않았다.

옆에서 유은설이 빤히 쳐다보는 것을 생각하면 오늘 궁술 훈련도 하기는 힘들 것 같다.

요즘 따라 맨날 김세연이 조금 집중한다 싶으면 나를 찾으러 숲으로 들어왔다.
그런 다음에 기숙사로 집어넣었다.

나를 훈련하지 못하게 하려는 속셈인 걸까.
그런 다음에 대련 때 다시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때리려는 걸까.

교관은 내가 활을 꺼내지 않는 것을 보고 물었다.

“오늘은 훈련  할 거니?”
“네.”
“그래? 그러면 같이 나가자.”

유은설은 내가 나가는 것을 보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정말이었어···”

양심에 찔릴정도로 침울한 한 마디였다.

기숙사 앞까지 가고 나서 유은설은 중얼거림을 멈추고 나한테 말했다.

“다음에도 공부하는지 안 하는지 확인할 거야!”
“으···응.”

그녀의 당찬 한 마디에 딱히 부정의 말은 하지 못했다.

**


김세연은 오늘도 훈련을 끝내고 숲으로 향했다.

저번에 치료실에 있었던 일은 그녀에게 아무 감흥도 없었다.
그저 부끄러운 일로 기억하고 있었다.

“면전에다 대고 예뻐서 챙겨준다고 어떻게 하냐고···”

그의 말에 놀람을 감추지 못하고, 치료실 밖으로 뛰쳐나온 일은 아직도 부끄러웠다.

갑자기 뛰쳐나온 일이 후회됐지만, 한설화도 별로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아서 기억에서 잊혀지고 있었다.

숲으로 향해 공터로 가자 아무도 없는 듯 조용했다.

“설화야?”

원래라면 그녀가 도착하기도 전에 화살을 정리하고 있던 한설화였다.
하지만 오늘은 주위에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쥐죽은 것처럼 조용했다.

“한설화?”

“설화야?”

그녀가 애타게 불러보지만, 그녀의 부름에 대답할 사람은 이미 기숙사에 들어가고 숲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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