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화 〉실습훈련
“설화야!”
김세연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이번에 소피아가 우리나라로 온대.”
며칠 전부터 학교는 이 이야기로 들썩거렸다.
전투력은 한없이 낮음에도 S급 판정을 받은 헌터였기에 더 기대가 큰 것 같다.
“응.”
그런 사실보다 김세연이 더 신경 쓰였다.
모르겠다.
이제는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녀에게 까칠하게 굴고 있는 것은 방어적인 본능이었다.
그녀에 대한 생각이 모두 거짓일지라도, 내 생각은 계속해서 말하고 있다.
나에게 해가 될 사람이고 외치고 있었다.
후회할 것이다.
그럼에도 멈출 수 없었다.
“내일부터는 실습이다! 준비하도록!”
갑자기 들어온 교관이 말했다.
“실습이요?”
“또 던전 가나 보지.”
실습이라는 소리에 여러 말소리가 오가고 있었다.
내일 실습은 아마 오래 걸릴 것이다.
‘고블린 주둔지였던가.’
준비하라는 말에 식량도 준비하라는 말일 것이다.
대부분은 저번 수업을 떠올리며 몸만 챙겨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경험을 쌓아보라는 의미로 숨긴 것 같다.
실제로 소설 속에서도 대부분 식량을 가지고 오지 않아 식물만 먹다가 겨우 탈출한다.
“설화야 실습이래.”
문제는 나 혼자 식량을 가지고 가서 관종처럼 나눠줄 생각은 없었다.
몇 명한테 정보를 흘리면 대부분 챙겨올 것이다.
가장 먼저 말할 사람은 옆에 있는 김세연이었다.
“식량 챙기는 게 좋을 것 같아.”
“식량? 음식? 갑자기 왜?”
“마음에 걸려서 원래 던전이라는 곳에서 오래 머물기도 하잖아.”
“그렇긴 하지만… 저번에는 그냥 몇 마리 잡고 나왔을 텐데, 똑같이 하지 않을까?”
바로 믿는 것이 이상했기에 그녀의 반응에 수긍했다.
“으음… 그래도 혹시 챙기는 게 낫지 않을까? 저번과 똑같을 거라는 보장도 없고. 저번과 똑같아도 던전 들어가기 전에 내려놓고 가면 되겠지.”
“그런가?”
“너가 다른 애들한테도 말해줘. 그러면 우리만 챙기는 이상한 일은 없을 거 아니야.”
그녀가 우리만 챙기면 이상해 보일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면 간단했다.
소문을 퍼트리면 됐다.
다음은 저번 실습과 다를 것이라는 뜬소문만 퍼트리면, 금방 다 퍼트릴 것이다.
김세연에게 살짝 말하자 그녀도 끄덕였다.
설마 소문을 듣고 한 명도 챙겨오지 않는 사태가 벌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신중한 몇몇은 소문을 듣고 분명히 챙겨올 것이다.
**
정확했다.
불안한 기분은 틀리지 않았다.
오히려 신중했기에 소문을 안 믿었던 걸까?
가방 두둑이 식량을 챙겨온 것은 나와 김세연밖에 없는 것 같았다.
‘여기는 혹시라는 개념이 없는 걸까?’
아예 실습하지 않았더라면, 소문을 믿었을 확률이 높았다.
저번의 실습이 이미 사람들에게 깊은 고정 관념으로 박힌 것이다.
“그래. 준비는 잘 해왔나?”
교관의 당당한 목소리에 한숨을 푹 쉬고 싶었다.
교관은 의기양양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아마 식량을 아무도 챙겨오지 않으리라 생각할 것이다.
“음… 다들 가방이 홀가분하군. 실제로 던전에 들어갈 때도 이러면 위험할 텐데 말이지.”
그 말에 몇몇은 눈을 번뜩였다.
아마 알아차린 것이 분명했다.
‘나는 분명히 말해줬다.’
김세연은 교관의 말에 나를 돌아보고 있었다.
“지금 들어갈 던전을 간략하게 소개하지. 저번과는 달리 고블린 몇몇이 아니라 고블린 주둔지가 있다.”
“…주둔지요?”
“그래. 전처럼 4마리씩 개별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단체 행동을 하는 고블린이 100마리가 넘게 있다는 이야기다.”
“그걸 하루 만에 다 잡나요?”
“그래 말 잘했다. 말한 생도라면 하루 만에 다 잡을 수 있겠나?”
말한 생도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저번과 같다면…”
“그러면 저번과 다르게 정상적인 무기와 5마리 이상씩 무리 지어 행동한다면?”
“힘들지 않을까요?”
“100마리도 최소로 잡아서 얘기한 것이다.”
교관의 말에 몇몇은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아마 자신들의 지난 행동을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난 말했다.’
내 책임은 아니라고 고개를 양옆으로 도리도리 돌렸다.
“그러면 하루가 아니라…”
“그거는 생도들에게 달려있다.”
첫날에 끝내려면 단체로 주둔지에 몸을 박으면 된다.
다칠 것을 감수하고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단체로 박자는 행동이 이루어질 수도 없었기에 밖으로 정찰을 나오는 고블린을 야금야금 갉아 먹는 것이 정석이었다.
“자 그럼 들어간다!”
이번 실습에서 평가하고자 하는 것은 두 가지일 것이다.
준비와 협동.
협동한다면 첫날에 무너뜨리는 것도 불가능 한 일도 아니다.
“설화야 우리 잘 챙겨온 거지?”
그래도 김세연만큼은 나를 믿어줘서 다행이었다.
역시 그녀는 나를 싫어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아직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정확하게 내놓지 못하겠다.
나의 망가진 머리는 계속해서 부정의 대답을 내놓고 있었으니 말이다.
“응.”
자동적으로 까칠하게 대답했다.
좋게좋게 말해주면 어디가 덧날까.
“들어갈까.”
고개를 끄덕이고 게이트 속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들어가고 일단 잘 곳을 찾았다.
하루 동안 이 던전의 고블린을 몰살시킬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
“등에 지고 있는 건 식량이야?”
옆에서 유은설이 김세연에게 물었다.
“응.”
“혹시 소문 듣고 가져온 거야?”
“설화가 알려줘서 들고 온 거야.”
자연스럽게 나한테 관심을 넘겼다.
“소문은 김세연이 냈어.”
“너네 알고 있던 거야? 그럼 알려줄 수 있잖아.”
이하늘은 우리한테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
여기에서는 남자가 생리를 하는 걸까?
남자애들 말투가 유독 날카로웠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분명히 말했기에 양심의 죄책감 따위는 하나도 없었다.
“소문 내줬잖아.”
나 대신 김세연이 대답했다.
“정확하게 말해줬으면…”
“그랬어도 너네는 우리를 미친년 취급했겠지.”
시작부터 둘이 싸우기 시작했다.
김세연은 어지간히 이하늘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 모두 간단한 식량 정도는 챙겨 왔을 것이다.
초코바라던지 에너지바라던지.
열량 소비가 심한 사람일 경우 밥도 있을 것이다.
“일단 자리부터 잡자.”
이하늘의 말에 다들 동의했다.
교관의 말을 들었다면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자리를 잡기 위해서 가장 먼저 찾아야 할 곳은 괴수가 있는 곳이었다.
그래야 위치를 어디쯤 잡을지 알 수 있었다.
곧이어 앞서 달리던 김세연이 수신호를 보냈다.
주둔지가 아닌 괴수를 발견한 것처럼 보였다.
‘5마리’
싸우자고 신호를 보내려던 이하늘을 말렸다.
그는 내가 거부하자 이유를 물었다.
큰 소리를 낼 수 없기에 다가가서 귓속말로 전했다.
“정찰대. 추적.”
두 단어만 말했을 뿐임에도 그는 알아차린 것 같았다.
이하늘이 나머지 두 명에게도 계획을 전하고 우리는 고블린의 뒤를 밟았다.
곧이어 목책들이 늘어져 있는 주둔지를 발견하고 우리는 바로 도망쳤다.
주위에 아무것도 없자 김세연이 먼저 말을 했다.
“하루 만에 절대 안 돼.”
“맞아.”
간단하게 원주민이 친 목책처럼 허름하지 않았다.
끝이 날카롭게 벼려진 나무는 인간 키보다 높게 서 있었고, 고블린의 수는 단번에 봐도 많아 보였다.
“방금처럼 나오는 고블린을 잡으며 살을 갉아먹어야 해.”
“아마 다른 팀도 똑같은 생각할 거야.”
“일단 우리가 유리하니까 쉬고 생각하자.”
이하늘이 계획을 설명했고, 유은설이 그에 반응했다.
‘어째서 협동하자는 선택지는 없는 거지?’
공통된 목표를 가지고 있음에도 단지 평가가 걸려있다는 말에 다른 팀과 협력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살짝 미소지었다.
약간 이해가 갔다.
옛날에도 똑같았다. 평가가 걸려있다면 친구든 뭐든 다 적이었다.
그런 경쟁 사회를 똑같이 살아왔다는 것을 증명하듯 지금 셋에게는 협동이라는 선택지가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주도해서 의견을 내지는 않았다.
천생이 겁쟁이였던 나에게 의견을 내자는 의견은 선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간략한 잠자리를 준비하고, 나오는 고블린을 잡으려고 주둔지로 다가갔다.
주둔지로 가자 대부분의 팀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몇 팀은 벌써 몇 마리를 잡은 지 무기에 피가 묻어있었다.
안에서는 어떤 말이 오갔는지 몰라도, 더 이상 고블린이 나오지 않았다.
밤이 다가오자 주위에 진을 치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물러갔다.
‘숲이 넓긴 넓네.’
적지 않은 인원을 수용하고 있음에도 다른 팀과의 접촉이 거의 없었다.
“불침번을 서야 해.”
괴수가 다가올까 봐 서는 거기는 하다.
물론, 고블린은 밤에 나오지 않는다.
현재로서 정찰대가 사라져 주둔지 안에서 몸을 사리고 있을 상황일 것이 분명했다.
첫날에 고블린을 만났다는 문구도 없었으니 맞을 것이다.
우리는 공평한 게임으로 순서를 정했고, 나는 두 번째로 서게 됐다.
가볍게 가져온 밥을 먹고, 급조한 나뭇잎을 깔아 놓은 바닥에 몸을 눕혔다.
“그러면 빠르게 자자.”
딱딱한 바닥임에도 잠은 잘 왔다.
몸이 지쳐서인지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
“한설화!”
누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눈을 떴다.
“으…응.”
“여기 시계 2시간 30분 뒤에 김세연 깨워.”
“응…”
비몽 사몽하게 이하늘의 말에 대답하고 일어나서 상황을 살폈다.
잔잔한 바람이 내 볼을 스치고 지나갔고, 현실과는 다른 풍경에 생각에 잠겼다.
눈을 뜨자 2시간 30분이 지나있었다.
‘생각에 잠긴다는 게 잠을 자버렸네.’
실제 던전이었으면 쳐맞아도 할 말이 없었다.
어차피 누가 오지 않는 것을 알기에 긴장이 풀렸나 보다.
정말로 주위는 소리하나 없이 조용했다.
김세연에게 다가가 김세연을 깨웠다.
조용히 몸을 흔들어도 깨지 않자 살짝 불렀다.
“김세연!”
“응!”
“여기 시계.”
“아…”
그녀에게 시계를 넘기고 볼일이나 볼까 싶어 구석으로 들어갔다.
으악!
꽤 가까운 위치에서 비명이 들리고 팀으로 복귀했다.
김세연은 졸고 있었다.
‘나랑 똑같네.’
“김세연!”
“으…응!”
“주위에 비명이 들렸는데 나 혼자 다녀올게.”
“응…”
원래라면 뭐라고 할 김세연이 졸린 지 대충 대답했다.
나는 비명이 들린 곳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비명의 주인과 소리를 만든 것과 마주할 수 있었다.
“엘프?”
여기에서 엘프는 별로 착하지 않았다.
특히 이런 곳에서 갑자기 등장한 엘프라면 더더욱 이상했다.
“तू कोण आहेस!”
나를 보고 소리치는 엘프를 보고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던전에서 자연적으로 생성된 엘프가 아니라, 차원을 넘어서 온 엘프였다.
지금 등장할 타이밍이 아님에도 등장했다는 것이 의아했다.
엘프는 나를 보고 죽일 것처럼 달려들었다.
“माणूस!”
그리고 말을 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이 세계에서 엘프는 성욕이 많았다.
여자는 죽이고, 남자는 강간하는 것이 엘프의 신조였다.
그래서 나를 보고 달려드는 엘프의 눈길은 아래로 향해있었다.
‘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