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화 〉실습 훈련
윤예진은 옆에서 같이 걷고 있는 한설화가 신경 쓰였다.
평소에는 아무 말도 없었다.
애초에 말을 걸 타이밍조차 잡지 못했다.
그래서 같은 반 생도들에게는 환상의 동물과도 같았다.
저번에 실습이 끝나고치료를 해준 것 외에는 접촉이 아예 없었다.
그녀는 부모님이 해주신 말이 생각났다.
‘남자를 조심해라.’
물론, 그녀도 어떤 뜻인지 알고 있었다.
남자와 성관계를 하다가 들켜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녀는 20년을 넘게 살면서 그런 남자를 만나보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알 것 같았다.
웃음이 헤프다고 말해도, 여자들이 오해한다고 말해도 자기 마음이라고 한다.
‘한설화가 그런 유형인가?’
웃음으로 여러 명을 홀려놓고 돈을 달라는 그런 남자가 아닐까?
윤예진은 그와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났다.
처음 만날 때부터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그는 김세연이랑 이하늘한테는 미소를 짓지 않았고, 자신한테는 미소를 지으며 대응했다.
‘지금도 옆을 바라보면’
“왜?”
웃으면서 자신을 쳐다보는 그의 얼굴에 고개를 돌렸다.
웃음은 작위적이지 않았다. 물 흐르듯자연스러웠다.
“그냥 빨리 가기나 해.”
“네 팀이 있는 곳으로 가는 건데 먼저 가야지.”
“아… 맞다.”
‘오해하라고?’
‘혹시 날 좋아하는 건가?’
윤예진은 그 생각을 한 뒤 고개를 양옆으로 도리도리 흔들었다.
자신에게 미소를 짓는 사람은 많았다. 그 중의 대다수가 자신의 지위를 노리고 접근했다.
자신이 길드장의 딸인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었다.
아마 한설화도 그들과 똑같은 사람일 것이다.
그와 만남은 그저 하룻밤의 우연이었을 뿐이다.
그에게는 무언가 꺼림칙함이 있었다.
엘프를 살려달라는 부탁부터 무언가 이상했다.
그럼에도 그를 도와주려는 이유는 목숨값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한설화가 오지 않았더라면 꼼짝없이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것이다.
화장실이 없어 조금 멀리까지 나온 것이 문제였었다.
‘화살을 갑자기 뽑은 건 괘씸하지만, 한설화가 아니었으면 죽었을 거야.’
“윤예진! 어디 갔다가 온 거야!”
자신이 밤 동안 사라졌으니 팀원들이 걱정할 만도 했다.
한설화는 자신의 뒤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연합할 팀을 구해왔어.”
“어제 말했던 계획?”
“응.”
“얘네는…”
“이하늘네 팀.”
“나쁘지 않네.”
“일단 흩어져서 다른 팀을 찾자. 연합할 거면 저녁 9시 주둔지 앞에서 만나자고 해.”
윤예진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세 명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생각대로라면 팀 대부분은 제안을 받을 것이다.
이하늘의 팀을 제외하고 모두 식량이 부족한 상태일 것이다.
대부분 속전속결로 끝내고 싶어 할 것이기 때문에, 제안을 거부할 일은 거의 없었다.
가장 먼저 연합을 제안할 팀을 찾는 것이 문제였다.
그런 상황에서제안하는 팀이 생겼다는 것은 명분이 생겼다는 것이다.
첫날에는 무언가 해보려고 했겠지만, 둘째 날부터는 굶주림과도 싸워야 했다.
윤예진은 나머지 팀원을 보내고 뒤를 돌아봤다.
“넌 안가?”
“가야지.”
그는 여전히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뭐가 그리 좋은지’
그와 반대로 활을 들어 엘프의 머리를 깰 때는 소름이 끼쳤다.
무표정한 얼굴로 활을 내리찍는 것은 흡사 사이코패스를 보는 느낌이었다.
‘이토록 상반돼도 되는 건가.’
“약속은 지켜줘.”
“걱정하지 마.”
그가 어떻게 대응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부탁을 받은 입장에서 그녀는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
“저녁 9시 고블린 주둔지 앞에서 모이기로 했어.”
“9시면… 방심한 틈을 타서 끝내려는 것 같네.”
돌아가는 길에 엘프의 입을 조금 더 단단히 막고, 거의 생매장하듯 땅을 파서 숨겨 놓았다.
누가 와서 보더라도 그냥 밟고 지나갈 것이다.
“우리와는 다르게 더 이상 버틸 기력이 없을 테니까.”
김세연이 말했다.
“그러면 9시까지 뭐하지?”
“최대한 세력을 줄여놔야지.”
그와 동시에 무기를 챙기고 아침사냥을 나섰다.
앞에서 김세연이 멈추자 우리도 동시에 걸음을 멈췄다.
‘6마리’
그와 동시에 이하늘을 쳐다봤다.
많다면 많은 숫자였고, 상대하려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숫자였다.
이하늘은 나한테 와서 작게 말했다.
“너도 한 마리 가능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인 뒤 김세연과 똑같은 선상에 섰다.
그녀는 나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활을 흔들며 자세를 잡자 그녀도 눈치챈 듯 활을 들었다.
그녀는 수신호와 함께 땅을 살짝 찼다.
탁-
‘3’
나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탁- 탁- 탁-
마지막 탁 소리와 함께 김세연과 나는 동시에 화살을 쐈다.
─캬아아악!
─끄아!
비명과 괴성이 동시에 들렸다.
자세히 바라보니 두 마리 동시에 즉사했다.
뒤에 서 있던 이하늘과 유은설이 달려나갔다.
“한설화는 능력만, 김세연은 보조도 해줘.”
그 말에 나는 활을 놓았다.
사실 나도 자신이 없었다. 괴수와 사람이 엎치락뒤치락하는 사이에서 괴수만 정확하게 맞출 자신이 없었다.
유은설은 이하늘보다 한 수 더 빨랐다.
김세연의 보조 없이도 금세 두 마리를 해치우고 이하늘에게로 붙었다.
‘저 정도는 해줘야 주인공이지.’
고블린이 죽기 전 마구잡이로 던진 검에 스친 적은 있어도 큰 상처는 없었다.
“유은설 너…”
“응?”
이하늘은 유은설의 움직임을 보고 무언가 알아차린 것이 있는 것 같았다.
옆에 김세연도 마찬가지였다.
“아니야.”
이하늘은 말을 하다가 말고, 김세연은 나한테 다가왔다.
“설화야 쟤 뭔가 이상해. 저 정도로 잘하진 않았던 것 같은데…”
상황을 알고 있는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 후로 우리는 한 무리를 더 찾아냈다.
아까와는 다르게 2마리뿐이었다. 무장은 없었고, 식량을 채집하러 나온 것 같았다.
“이게 뭐지?”
고블린들이 들고 있던 주머니에서는 풀이 나왔다.
“먹을 수 있는 것 같은데?”
고블린이 먹고 있어 식용이 가능할 것 같지만, 우리는 손을 대지 않았다.
위험을 감수하고 먹을 만큼, 식량이 부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돌아가자. 6시니까. 들어가서 쉰 다음에 합류하도록 하자.”
**
돌아가고 나서 밥을 챙겨 먹었다.
오늘 확실하게 끝난다는 보장도 없으니 내일 분량까지는 남겨놓았다.
유은설이 가장 먼저 말문을 열었다.
“오늘로 끝나야 할 텐데.”
“맞아. 근데 은설아 너… 언제 그렇게 세졌어?”
“응? 하하… 그냥 하다 보니까.”
“하다 보니 능력이 성장할 수는 없잖아.”
이하늘이 툭 던진 말에 유은설의 얼굴이 시시각각 변했다.
정확하게 정답에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능력이 하나 새로 생겼고, 하나는 성장했다.’라는 말을 가볍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있겠지.”
그녀 대신에 내가 대답했다.
꼽사리라고 여길 수 있지만, 이하늘에게 이미 밉보인 나는 상관없었다.
“그래… 뭐 그렇겠지.”
곧 각자 휴식을 취하고 김세연은 다시 나한테 다가왔다.
“설화야 역시 쟤 이상해.”
무슨 경고 로봇도 아니고, 나한테 와서 이상하다고 말한다.
“너무 믿지 마.”
그녀의 앞에서 가면은 쓰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웃음을 짓지 않았다.
자동적인 방어 기제라고 해야 할까.
그녀의 앞에서는 웃음이 지어지지 않았다.
억지로 웃는다고 해도 작위적이라며 욕을 먹을 수 있었다.
‘내가 김세연을 어떻게 생각하는 걸까.’
의문에는 정확하게 답을 내리지 못했다.
뇌가 망가진 걸까.
‘나한테 와서 뒷담화를 할 정도면 어디선가 내 얘기도 하는 거 아니야?’
그런가?
아니다. 그녀는 나를 걱정해서 말한 것이다.
‘걱정일까? 아니면 우롱일까?’
우롱?
자신이 뒷담화하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나를 어리석게 보는 걸까?
“알고 있었잖아.”
옆에서 들린 김세연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옆을 쳐다봤다.
그녀는 어느새 내 옆을 떠나 나무에 기대 고개를 숙여 졸고 있었다.
“내가 뒷담화 하는걸.”
그냥 듣기만 했다.
혼잣말을 한다면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 환청을 멈춰야 했다.
“사실 나는 너 싫어해. 조금 역겹잖아?”
알고 있어.
“갑자기 웃다가 왜 안 웃어줘? 나 싫어하는 거야?”
모르겠어.
“사실 나는 너 정신병자인 거 알고 있어.”
진짜?
“응. 진짜.”
그럴 리 없다.
‘내가 티를 낼 만한 행동을 했던가?’
“치료실 때 기억 안 나? 혼잣말했잖아.”
‘아… 치료실 벽은 방음이 안 됐지.’
아니야. 너는 환청일 뿐이잖아.
“언제까지 환청이라 생각할 거야.”
그 말에 고개를 들어 확인했다.
고개를 들자 서 있던 땅이 비틀어지기 시작하며 나는 중심을 잡으려고 비틀어진 땅에 발을 내디뎠다.
‘아 환각.’
허공에 발을 내딛자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
“괜찮아?”
“아… 응. 졸다가 그랬나 봐.”
앞에 서 있는 건 김세연이 아니라 유은설이었다.
김세연은 방금 막 잠에서 깨 상황 파악을 하고 있었다.
“고마워.”
웃어 보이고는 옷에 묻은 흙을 털었다.
어느새 시간은 훌쩍 지나가 있었고 밤이 다가왔다.
높게 떠 있던 해는 이미 사라져 있었다.
“슬슬가자.”
이하늘의 말과 함께 주둔지로 향했다.
**
주둔지 앞은 사람이 많았다.
그렇지만 고요했다. 숙달된 사냥꾼처럼 사냥감 앞에서는 아무 소리도내지 않았다.
대충 세어봐도 10팀 중 9팀은 모인 것처럼 보였다.
‘아마 10팀 모두 다 모였을 거야.’
그중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것은 윤예진네 팀뿐이었다.
우리에게도 한 명이 다가왔다.
“시작 신호는 빛이야. 빛과 동시에 문으로 불이 쏘아질 거고, 그다음은 활로 나오는 애들을 상대하는게 계획이야.”
“그다음은?”
“그다음이랄 것이 있나? 들어가서죽이는 거지. 거기 뒤에 힐러 두 명은 최대한 빠져서 다친 사람만 치료해줘.”
아무래도 4명이 아닌 40명이 모여있다 보니 힐러의역할은 더욱 중요했다.
김세연과 내가 한 마리를 죽이는 것보다 한 명을 살리는것이 우선되었다.
이하늘은 끄덕이고 우리 앞에 있던 애는 다른 곳으로 향했다.
조금 기다리자 빛이 일어났다.
빛은 가까이 있다면 눈이 멀만큼 밝았다.
나무 감시탑 위에 서 있던 고블린들은 눈이 멀었을 것이다.
다른 고블린들을 부르지 못하고 여러 개의 화염구가 문과 목책 안으로 쏘아졌다.
‘마법이 아니라 능력인가.’
마법이 빨리 상용화가 되어야 편할 텐데.
목책이 불타 없어지기 전 문이 활짝 열리며 30마리 정도의 고블린이 무장하고 나왔다.
사수는 몇 안 되기 때문에 30마리 전부에게 맞히기에는 무리였다.
8마리가 화살에 맞았고, 나보다 빠르게 장전해서 쏜 사람은 7명이었다.
‘빠르네.’
아직 손에 덜 익었기에 남들보다 활을 다시 거는 속도가 느렸다.
내가 뒤늦게 한 마리를 맞추고 다가오는 14마리는 합세해서 해치웠다.
“안 나와?”
한 명이 외쳤다.
“불이나 계속 쏠까?”
“나쁘지 않네!”
곧이어 머리 위로화염구가 여럿 날아갔다.
마을 대부분은 나무로 지은 것이기 때문에 불이 번지고 있었다.
곧이어 100마리가 우글우글 튀어나왔다.
아마 다 같이 뭉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았다.
‘대충 계산하니 2명당 5마리만 죽이면 되네.’
말은 쉬웠다.
2명당 5마리가 누구 개 이름도 아니고, 쉽게 부를 숫자는 아니었다.
그들이 다가오기 전 최대한 숫자를 줄여놓을 생각으로 화살을 쏴댔다.
“모두 천천히 도망치면서 하자!”
윤예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시간은 우리 편이었기에 도망치면서 최대한 전력을 줄이는 것이 맞았다.
벌써 화살에 10마리가 넘게 죽어있었고, 몇 마리는 빗맞아 다리를 절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계획은 성공하기 힘들었다.
‘왜냐하면.’
“캬악!”
한 고블린이 외치며 달리기 시작하자 뒤이어 모든 고블린이 달렸다.
주둔지를 이끄는 대장이라고 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다른 개체보다 유독 셀것이다.
“에이씨 도망치긴 글렀네.”
한 명의 탄식과 동시에 다들 한 마디씩 내뱉었다.
“힐러! 나 죽기 전에 살려줘!”
“나도!”
살려달라는 말에 웃음밖에 지을 수 없었다.
그렇게 많이 살릴 수 없었기에 다들 다치지 않기만을 기도할 뿐이었다.
어차피 최대한 죽지 않을 것이다.
유은설은 이미 달려가고 없었다.
대장 고블린을 유은설이 죽이고 마무리될 것이다.
“싸워!”
어디서 들린 소리와 동시에 검과 검이 부딪히는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