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엘프
유은설은 대장 고블린에게로 달려갔다.
아마 자신의 힘을 시험하고 싶을 것이다.
그녀에게는 자신이 얼마나 강해졌는지 판단할 기준이 없었다.
가장 강한 적이 오크였고, 그마저 내 도움이 컸다.
대장 고블린 정도라면 오크와 동급이라고 봐도 무난했다.
일반 고블린이라면 짧은 단검을 자주 사용했고, 가끔 장검이 보였다.
그래서인지 대장 고블린의 무장은 매우 특색있었다.
큰 몽둥이와 라운드 실드는 그 고블린만이 들고 있었다.
‘애초에 저렇게 큰 몽둥이를 쟤 말고 누가 들 수 있냐는 거겠지.’
다른 고블린보다 성장이 우월한 대장 말고는 착용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꽤 가까이 도착해있었다.
많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최대한 소비를 줄여야만 했다.
마나를 다방면으로 퍼트려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들어가게 했다.
김세연도 마찬가지로 싸우는 곳에서 가까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에게 고블린이 한 마리 달려들자 다른 사람의 발이 튀어 나왔다.
─끼에에엑
발에 걷어차여 멀리 날아가 버렸다.
“너지? 힐러가? 졸지 말고 있어.”
한 여자가 저렇게 말하고 다시 싸우러 갔다.
충분히 반할만한 상황이었고, 반할만한 대사였다.
조금 멋져 보이기는 했다.
점점 전세가 역전되고 있었다.
잔 상처만이 늘어났고, 큰 상처를 입는 사람은 없었다.
그만큼 신중에 기울여 한 마리씩 죽이고 있었다.
눈앞에서 피가 튀는 전장이 벌어지고 있었다.
너무 비현실적이라 감흥을 못 느끼는 걸까?
아니면 벌써 이 세상에 적응한 것일까?
어느 것이든 베고 베이는 전장은 참혹하기 그지없었다.
“으아아악!”
“좀 죽어라!”
─캬아아아악!
두 종의 치열한 싸움의 끝은 끝을 맺어가고 있었다.
김세연도, 나도 마력을 다 써서 생도들의 생채기는 회복되지 않고 있었다.
어느새 한 마리뿐이 남지 않았다.
그 한 마리마저도 온몸이 피로 물들어 있었다.
물론 상대도 별로 몸이 성치 않아 보였다.
한쪽 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고, 한 손으로 검을 들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무도 끼어들지 않았다.
유은설과 대장 고블린의 결투였다.
“캬아아악!”
“그래. 이 새끼야 뭐라는 진 모르겠지만 끝이다.”
유은설의 검이 사선으로 고블린의 목으로 그어졌다.
깔끔하게 그어지며 고블린의 목이 베어졌다.
“드디어 끝났다.”
한 사람의 말과 함께 다들 손에 들고 있던 무기를 내려놓았다.
“잠시 쉬었다 갈까?”
게이트 앞까지 가야 모든 것이 끝이었다.
지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교관도 복귀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지금부터 시작이지.’
윤예진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윙크를 하며 잘해달라고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미간을 찌푸렸다.
점점 풀숲으로 들어가고 주위에 아무도 느껴지지 않자 가면을 쓰고 엘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땅을 파내 몸통을 꺼냈다.
그러자 눈이 번뜩 뜨이며 나를 쳐다봤다.
생각해보니 며칠 동안 아무것도 먹이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이 났다.
“읍! 읍!”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 보여 잠시 입의 밧줄을 풀었다.
“मला भात द्या!”
생각해보니 무슨 말인지 알아먹을 수 없었다.
다시 밧줄로 입을 막고 활을 높이 들었다.
그러자 고개를 양옆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읍읍!”
“조용히 할 거야?”
내가 뭐라 말하자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너 내가 무슨 말 하는지 모르잖아.”
그러자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가차 없이 세 번을 내리쳤다.
당연하게도 깔끔히 기절했다.
이제는 약간 요령이 생길 것만 같았다.
엘프를 업고 움직였다.
생도 무리는 천천히 움직일 것이기 때문에 내가 먼저 게이트에 도착했다.
“이번에는 무리 없이 해냈네요.”
“다행이네요. 사상자 없이 잘 나왔다는 게.”
새벽 4시가 가뿐히 지나는 시간임에도 교관은 깨어있었다.
아마 고블린을 모두잡았다는 소리에 미리 나와서 대기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능력을 사용한 채 천천히 걸어갔다.
“음? 근데 무슨냄새나지 않아요?”
“그냥 숲 냄새겠죠.”
업고 있는 엘프까지 투명화된 것을 확인했다.
냄새까지는 숨길 수 없기에 빠르게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게이트를 넘어가고 나서는 무서울 것이 없었다.
밖에 서 있는 사람은 치료실 교관뿐이었고,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조금 더 멀어지고 나서 대충 쓰레기통에 엘프를 박아 넣고 복귀했다.
아슬아슬하게 게이트속에서 생도들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가면을 벗고 조심스럽게 치료실 교관에게 다가갔다.
“교관님 도와드릴까요?”
“아니 됐어. 너도 어차피 마력 다 썼을 것 같은데.”
“하하…”
그의 말이 맞았기에 그냥 물러갔다.
아무도 이상함을 못 느끼고 있었다.
윤예진만이 나에게 다가왔다.
“어디에다 뒀어?”
“비밀.”
“우리가그 정도 사이였어?”
“그럼 뭔 사인데.”
그러자 윤예진이 나를 노려봤다.
“같이 챙겨줄 거야?”
“가지고 나온 건 맞아? 언제 나왔는데.”
“비밀.”
“비밀도 참 많아.”
“그래서 도와줄 거야?”
“일 끝나면 죽여도 돼?”
자신의 몸에 화살 여러 개를 박은 엘프를 살려두고 싶지는 않아 보였다.
“안 돼.”
“게이트 밖으로는 어떻게 나온 거야?”
그녀는 궁금한 것을 토해내고 있었다.
반대쪽에서 치료실 교관은 기적을 펼치고 있었다.
심한 상처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광역 치유를 펼치고 있었다.
아마 내 성지보다는 치유 효과가 작을 것이다.
실제 치유보다 몇 배는 더 느려 보였다.
“도와줄 거야?”
“하아- 말해줄 거야?”
“도와주면 말해줄게.”
그녀의 도움을 받으면 한층 편해질 수 있었다.
당장 엘프를 둘 곳부터 찾아야 했다.
“그래. 도와줄게. 도와준다고.”
그녀의 말을 싱긋 웃었다.
“그러면 기숙사로 가서 나와.”
“잠시만!”
다른 것보다 엘프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녀의 도움은 있어도 됐고, 없어도 됐다.
“왜 그러는데.”
“나오라는 게…?”
“보면 알 거야.”
**
윤예진은 말을 끝까지 하지 않는 한설화가 싫었다.
지금 당장 하랑으로 가고 있는 와중에도 궁금증이 넘쳐났다.
‘괴수가 게이트 밖으로 나왔다고?’
‘처벌받는 거 아니야?’
‘아니 그것보다 걔는 어떻게 나온 거야?’
그녀는 게이트 밖으로 나갈때까지 한설화를 찾았다.
그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았고, 등장한 곳은 치료실 교관의 뒤였다.
“걔가 어떻게 거기서 나타났지.”
궁금한 점투성이였지만, 그는 비밀이라며 알려주지도 않았다.
곧 하랑에 도착하자, 교관은 크게 말했다.
“수고했다! 내일부터 바로 수업이라고 하면 싫어할 것을 알고 있다. 그러니 내일은편히 쉬도록!”
주위에 엘프를 뒀다면 밖으로 나가야 했다.
밖으로 나가려면 특별한 사유가 있어야 했다. 그만큼 수업을 빼놓는 것은 하랑에서 허락되지 않는 행위였다.
‘하지만 수업이 없다면?’
그의 말이 이해가 됐다.
그녀는 당장 한설화를 쳐다봤다.
김세연이랑 투닥투닥거리는 것을 보니 어이가 없었다.
기숙사로 간 뒤 몸을 씻고 한숨 잔 뒤 아침에 한설화와 약속한 곳으로 나갔다.
“안녕.”
“안녕은 무슨 안녕이야. 어떻게 안 거야?”
윤예진은 어이가 없었다.
“뭐가?”
“수업 쉴 거라는 거.”
“이렇게 이틀 동안 오래 했는데, 쉬는 시간 정도는 주겠지.”
그가 전에 했던 말은 추측이 아니라 확신에 가까웠다.
“그래서 외출할 거라고?”
“응.”
“나야 뭐 어떻게든 나간다고 해도 너는 어떡할 건데?”
“잘.”
그가 먼저 교관이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곧이어 웃으면서 종이 한 장을 흔들며 나왔다.
“빨리 갔다 와.”
“그렇게 빨리?”
윤예진은 교관을 만나러 들어갔다.
“그래. 예진이는 무슨 일이니.”
“교관님 저도 외출증 좀…”
“방금 설화도 끊어갔는데 둘이 혹시…?”
“아니에요! 제가 저런 애랑 왜.”
“설화 정도면 괜찮지 않니?”
윤예진은 교관의 말에 한설화를 생각했다.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얼굴이었지만, 다음에 생각난 것은 말투였다.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그의 주둥아리가 생각났다.
“성격이 별로잖아요.”
“그래… 오늘 내로 돌아와라.”
“네.”
오늘따라 기분이 좋은지 교관은 외출증을 남발하고 있었다.
기껏 준비한 변명도 쓸모가 없었다.
“왔네?”
문을 열고 나오자 한설화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냥 주지?”
“그러게. 뭐라 말할 필요도 없었네.”
그는 큭큭 웃으며 윤예진을 실습했던 장소로 데려갔다.
“여기는 왜 왔어?”
윤예진은 잘 가던 중 쓰레기가 몰려있는 곳으로 왔다.
한설화는 자연스럽게 쓰레기통을 열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잠시만 거기서 꺼내는 거.”
“맞아. 니가 봤던 엘프야.”
“그럼 얘 3일 동안…?”
“중간에 물 조금 먹였으니까 안 죽었지 않았을까?”
윤예진이 보기에 한설화는 사이코패스였다.
그녀가 보기에 엘프를 죽이는 것이 더 편안한 길처럼 보였다.
저렇게 쓰레기통에서 꺼내며 웃는 모습을 보면 누구라도 소름 끼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엘프라서 다행이지 사람이었다면 이미 그를 신고했을지도 몰랐다.
그녀는 어느새 자신의 몸을 꿰뚫었던 화살을 잊은 상태였다.
오히려 앞에 뾰족한 귀를 내보이고 있는 엘프가 불쌍해 보였다.
처음 봤던 깨끗한 얼굴과 생기가 있던 눈은 사라져있었다.
깨끗한 얼굴은 쓰레기가 묻어 검어졌고, 눈은 죽어 생기가 없어졌다.
“그래서 얘 어디로 데려갈 건데…?”
“그거는 너가 도와줘야지.”
“나…?”
윤예진은 한설화가 자신을 말하자 당황스러웠다.
그녀가 갈 곳은 길드랑 부모님의 집뿐이었다.
“혹시 갈 곳 없어?”
“걔를 데리고 갈 곳은 없는데…”
“어쩌지… 너만 믿고 있었는데.”
윤예진은 당황스러웠다.
무언가 계획 없이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아…!”
그녀는 무언가 생각난 듯한 소리를 내뱉는 한설화에게 물었다.
“왜? 어디 있어?”
“응. 근데 얘는 어쩌지?”
한설화는 품에 끼고 있는 엘프를 흔들며 말했다.
“어디로 가야 하는데.”
핸드폰에 주소를 찍어 보여줬다.
꽤 허름한 곳에 있는 원룸이었다.
그녀는 지도를 뒤지며 최대한 사람이 안 보이는 곳으로 찾았다.
끝끝내 길을 찾고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보통 사람들보다 빠른 둘이었기에 사람이 보이면 숨으며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끝내, 아무한테도 들키지 않고 주소에 도착했다.
“여기가 어딘데?”
“전에 살던 곳.”
그의 말에 따라 들어가자 기숙사보다 작은 방이 눈에 들어왔다.
“부모님은?”
윤예진은 자신이 말하고도 실수했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나온 질문이었지만, 원래 이런 질문은 민감하게 해야 했다.
“없어.”
윤예진은 그의 말에 정말로 실수했다고 생각했다.
‘병신.’
이 한마디로 자신을 설명할 수 있었다.
“미안해.”
“됐어. 이제는 상관도 안 써.”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저렇게 상관 안 쓴다는 사람 중에상관 쓰지 않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일단 얘부터 먹이고 씻기자.”
“얘를?”
바닥에 내팽겨쳐진 엘프를 봤다.
어느새 적대감보다는 미안함이 더 강했다.
2일 동안은 머리를 가격당하며 기절 당하고, 3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것이 생각났다.
한설화가 말했다.
“나는 먹을 거 사 올게.”
“나는?”
“얘 좀 씻겨줘. 팔은 풀지 말고, 위험할 것 같으면 지금 상태로 물만 묻혀.”
“으… 응.”
한설화가 나가고 윤예진은 엘프를 데리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방만큼 화장실도 작았다.
샤워기 하나와 좌변기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입에 물고 있는 천과 밧줄을 풀었다.
“मला भात द्या…क्षमस्व…”
윤예진은 엘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대충 알 것 같았다.
“인간이 미안해…”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씻기는 것뿐이었다.
**
대충 씻기고 밥을 먹인 뒤에야 윤예진은 한설화에게 물을 수 있었다.
“이제 어떡할 건데? 말도 안 통하는 애 가지고.”
“말이 통하는 사람에게 가야지.”
“얘랑 말이 통하는 사람이 어딨어.”
윤예진은 말을 하는 괴수도 처음 만나 봤다.
그런 괴수의 말을 아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있잖아.”
“그런 사람이… 있네?”
소피아.
이번에내한한 스웨덴 사람.
S급 헌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