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성장
아직 상태창에는 인벤토리가 한 칸 비어있었다.
‘이제 곧 열리긴 할 텐데.’
“그래서 괴수의 급소는 중요합니다.”
앞에서는 교관이 열정적으로 강의를 하고 있었다.
다시 한번 하랑을 나갔다 와야 했다.
‘어떤 변명이 가장 나을까.’
“가끔 던전에는 기존 괴수보다 향상된 괴수가 등장하곤합니다.”
“저번에 저희가 만났던 고블린같은 괴수 말인가요?”
“얘기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가끔 고블린이 뭉쳐있는 곳에는 대장이 나오곤 합니다.”
“다른고블린보다 컸던 것 같은데요.”
“그렇게 기존에 만났던 괴수와 달리 힘이 강한 녀석이 나오면 힘들겠죠?”
작가가 알려준 던전은 위험할 수도 있다고 들었다.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유물이기에 단단히 긴장하고 가야 했다.
처음 얻었던 가면과는 달리 상처를 크게 입을 수도 있었다.
‘치료실 교관한테도 말하고 가야 하는데.’
저번에 깜빡하고 말도 안 하고 갔다가 꾸짖음을 당했다.
일이 있으면 말을 하고 가라고 엄청나게 혼났다.
‘까먹은 것뿐인데.’
하지만 내가 까먹었던 거기에 별말을 하지 않고 듣기만 했다.
“설화야..!”
옆에서 김세연이 나를 불렀다.
잠시 다른 생각을 하느라 멍 때리고 있었는데, 그녀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왜?”
“앞에..!”
“한설화 생도, 수업에 집중을 안 하시는 걸 보면 다 아시는 것 같네요.”
교관의 말을 듣고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망했네.’
편안하게 고개를 끄덕일수만은 없었다.
“그러면 방금 말한 괴수의 약점은 뭐였죠?”
방금 말한 괴수가 뭔지도 몰랐다.
일어서서 앞을 바라보니 다행히도괴수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저거는…’
두억시니
소설에서는 이렇게 표현됐다.
[거대한 그림자가 우리한테로 다가왔다. 그림자가 전부 다 덮었을 때쯤에 그림자의 주인을 확인할 수 있었다. 머리카락은 불에 탄 듯 몇 가닥이 하늘로 솟아있었고, 시뻘건 눈은 우리를 응시하고 있지 않고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억시니는 처음 조우할 때 공격할 수 없습니다.”
[공격해도 검이 통과하니 공격할 방도가 없었다.]
소설의 처음에도 이렇게 표현됐다.
[가장 처음 공격을 성공한 것은 윤예진이었다.]
“관심을 끄는 것이 우선입니다. 두억시니와 시선이마주쳐야 공격할 수 있습니다.”
“……”
“처음 공격이 성공하면 그 뒤부터는 빠른 속도로 공격을 한 사람한테 달려듭니다. 그때 대처를 잘해야 합니다.”
소설 속에서는 처음, 이 공격에 윤예진이 머리를 향해 달려드는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공격하고 난 뒤에는 모두와 시선을 마주칩니다. 그때 빠르게 해치워야 합니다.”
그리고 모두 다 말하고 나서 실수를 깨달았다.
소설 속에서도 공략법을 몰랐던 괴수를 지금에서야 알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교관의 질문에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다.
그제야 주위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잠시만… 그거 맞습니까?”
교관은 놀라서 나를 쳐다봤고.
“설화야…”
김세연은 나를 부르고 있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든 헤쳐나가야 했다.
“하하… 이것 아니었나요?”
쓸데없이 말해봤자 방금 진지하게 말한 것이 사라지지 않았다.
교관은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고, 생도들의 시선도 나를 향했다.
우물쭈물하며 대답했다면 나의 변명이 먹혔을지 모르겠지만, 막힘없이 술술 말했던 나에게 그런 요행은 벌어지지 않았다.
“일단 생도는 앉으세요.”
“넵.”
“설화야 그냥 막말한 거지?”
“…응 그렇지.”
수업이 끝나자마자 늘 하는 것처럼 교관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
아마 내가 막말한 것도 그들에게는 신기하게 보였을 것이 분명했다.
‘아니면 아무 관심도 없으려나?’
무엇이든 일단 도망쳐야 할 것만 같았다.
**
“들었어?”
윤예진은 김종현한테 말하고 있었다.
김종현한테만 말하고 이유는 간단했다. ‘두억시니’라는 괴수는 현재 주목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당황해서 아무 말이나 내뱉은 거겠지.”
김종현은 한설화를 저평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윤예진은 그가 범상치 않은 것을 알고 있었다.
‘전에 엘프부터 이상했어.’
소피아와 만나는 것도 그의 계획인 것 같았다.
엘프를 죽이지 않고 묶었을 때부터 무언가 알고 있다는 눈치였다.
그녀와는 다르게 엘프의 정체를 들었을 때도 별로 미동이 없었다.
“너는 그런 것 같아?”
한국에 고정형으로 설화형 던전이 생겨난 것이다.
그 속에는 두억시니가 있었고, 지금까지 공격이 성공한 사람이 없었다.
그렇기에 교관이 설명한 것이었다.
한설화는 교관의 대답에 막힘없이 대답했다.
‘두억시니의 정체를 알고 있는 것처럼’
“그럼 걔가 알고 있겠어?”
“알 리가 없지.”
엘프 때와 비슷했다.
평소에는 말을하지 않는 성격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 밖에서 소피아를 만나러 갈 때는무언가 신나 보였다.
사람이 달라진 것 같았다.
“너는 한설화 어떻게 생각해?”
“그냥 힐러 아니야? 저번에는 두고 보자며.”
‘한설화는 무언가를 숨기고 있어.’
윤예진은 그것이무언지 파악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보다 많은 정보량은 출처를 알 수 없었다.
‘설마…’
그녀는 한 가지 가능성을 노트에 적었다.
“말도 안 되지.”
“뭐가?”
노트에 적힌 것은 단어 한 가지였다.
‘회귀자.’
그녀는 말도 안 된다고 하면서 끝내 그 단어를 지우지 못했다.
자신이 죽을 것 같을 때 나타나 구한 것도 한설화였다.
엘프의 정체, 수업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 것도 한설화였다.
두 가지 증거가 모두 맞으려면 이것밖에 없었다.
말이 안 된다는 것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김종현, 시간 관련 유물이 나왔던가?”
“나오긴 했지? 그건 갑자기 왜?”
“그중에 시간을 되돌리는 건 없었지?”
“그렇지? 그냥 해봐야 몇 초 앞을 내다보는 것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그것마저도 시간이 오래 걸려 잘 안 쓰이고.”
윤예진은 노트에 써 놓은 단어에 대한 가능성을 가늠해봤다.
“한설화한테 뭐라고 할까?”
“아니 일단 기다려봐.”
김종현을 내보내고 윤예진은 전화를 걸었다.
“정은혁 비서님. 저에요. 윤예진.”
[요즘 따라 전화를 많이 거시네요.]
“부탁 좀 해도 될까요?”
[또 전과 같은 부탁인가요?]
“윽… 그런 건 아니고. 혹시 사람 좀 조사해주실 수 있어요?”
[사람이요?]
“한설화라고 저와 같은 반 애가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인가요?]
“…아니요. 개인적인 일이에요.”
[네. 뭐…]
비서가 전화를끊기 전 웃음소리가 들렸다.
윤예진은 그것을 애써 무시하며, 노트에 의심스러운 점을 적었다.
“한둘이 아니야.”
“근데 회귀자가 맞는다면 어떡해야 하지?”
정말로 한설화가 회귀자라면 윤예진은 이미 죽은 목숨이었다.
“엘프와 조우했을 때 죽었겠지.”
한설화에 관한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
“교관님 혹시 내일 외출 될까요?”
나는 이미경 교관의 앞에서 빌고 있었다.
“설화야 저번에도 나갔다 오지 않았니?”
“하하…”
“이번에는 저번처럼 쉽게 다녀올 수가 없단다.”
저번처럼 호락호락하게 외출증을 내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허락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가져왔다.
교관도 사람이라면 허락해줄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게… 부모님 기일이라.”
부모님께 미안한 마음밖에 없었다.
태어난 것도 미안한데, 이런 식으로 팔아먹는 것이 양심에 콕콕 찔렸다.
쓰레기라고 온 세상이 욕을 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이 방법 말고는 생각이 나지 않아.’
쓰레기라 욕해도 괜찮았다.
속으로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며 교관을 바라봤다.
꽤 난처한 얼굴을 하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 그러면 꼭 수업 전에는 와야 한다?”
“네…”
교관한테 인사하고 나오니 자괴감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나 진짜 쓰레기네.”
악당도 부모님을 팔아먹으며 이런 짓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치료실에 가니 교관이 앉아있었다.
“교관님 저 내일은 못 올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러면 내일은 문 닫고 갈게.”
“넵.”
교관은 그렇게 말하고는 가방을 챙겨 나갔다.
많이 봤지만, 적응은 되지 않았다.
그냥 쿨하다고 해야 할까?
오늘도 치료실은 조용했다.
가끔 사람이 오고 금방 치료를 받고 나간다.
문이 열리고 또 사람이 와서 앉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또 익숙한 얼굴이었다.
“오늘은 다쳐서 온 거야?”
“어제와 같은 이유.”
이하늘은 여기를 제집처럼 드나들고 있었다.
“여긴 다친 사람을 위한 곳인데.”
그렇기에 웃으며 대응할 수는 없었다.
마치 고민 상담소처럼 이용하는 그의 행태는 좋지 않게 보였다.
“알고 있어.”
이하늘의 얼굴은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아마 어제 있었던 일로 계속 고민을 하는 것이 분명했다.
“질투가 나서 훈련이 안 돼.”
마음고생이 심한 것처럼 보였다.
“인간을 움직이는 계기가 뭔 줄 알아?”
“뭔데?”
“네가 말한 질투심.”
질투심은 사람을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다.
“돈이 없는 사람이 기업가를 바라보며 일을 했어. 그렇다면 돈이 없는 사람이 기업가만큼 벌 수 있을까?”
“아니겠지.”
“그렇다면 왜 일을 할까?”
“먹고 살려고 하겠지.”
이하늘은 내 갑작스러운 말에 대답만 하고 있었다.
“단순히?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이 없을까?”
“있겠지? 그렇지만 확률이 낮잖아.”
“그렇겠지. 하지만 적은 것뿐이지 성공하는 사람이 있잖아.”
“그게 질투심 때문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해.”
이하늘은 내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했다.
“인정한다며 유은설을. 그럴 거면 인정하지 마. 유은설과 동등하게 나아가면 되지.”
“그렇지만…”
“왜 이미 따라잡을 수 없다고 마음을 먹은 거야?”
그는 이상하게 자신감이 없었다.
아마 대련과 실습을 통해 남아있던 자신감이 모두 떨어진 것일테고.
“일단 돌아가서 훈련해. 여기서 이러지 말고.”
그를 일으키고 문을 열었다.
“열심히 했잖아 지금까지. 그러니까 이제 나가.”
그를 밖으로 내보내고 문을 닫았다.
‘이 정도면 자연스러웠겠지?’
불편해 죽는 줄 알았다.
그냥 이상한 소리를 내뱉으며 그를 내보냈다.
무언가 느끼는 점이 있다면 성장할 것이고, 아니면 그대로 도태될 것이다.
이하늘의 한계가 어디까지인 줄 모른다.
중간에 죽었으니까.
그때도 강하지는 않았다.
“나부터 잘해야지.”
나부터가 정상이 아닌데, 남에게 충고할 상황이 아니었다.
“모르겠다. 이제는.”
머릿속에는 여러 명이 외치고 있었다.
너를 싫어한다며 소리를 지르는 것을 무시하고, 내일을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