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성장
한설화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길드장만이 남아있었다.
그녀가 쫓아간다면 잡을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그 자리에서 전화기를 꺼내 전화를 걸었다.
“다른 사람이 있던데.”
[뭐? 그러면 못 얻은 거야?]
“아니. 던전 자체가 여러 명이 들어갈 수 있는 구조였어.”
[그러면 같이 들어간 사람은 누군데?]
“나도 몰라.”
[특징이라도 말해봐. 얼굴은 봤을 거 아니야.]
“가면을 쓰고 있었어.”
[하아… 그건 길드장도 쓰고 있잖아. 벗길 수는 없었어?]
“가면이 유물이더라고.”
[강해?]
“아니 약해.”
길드장의 말이 끝나고 전화기에서는 한숨만이 들렸다.
[그러면…]
전화기에서 들리는 여성이 욕을 하자 길드장은 전화기를 귀에서 뗐다.
[그래서 뭐 어쩌자고.]
“틀렸잖아. 이제 알아봐야지.”
[가면 써서 얼굴도 모른다며.]
“우리 아직 하랑 시연회에 갈 사람 안 정했지?”
[하랑? 거기는 갑자기 왜?]
“재밌는 것을 본 것 같아서.”
길드장은 한설화가 들고 있는 활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 활이 하랑에서 배부하는 생도용 무기임을 알고 있었다.
“어쨌든 시연회에 참가할 수 있지?”
[하아…]
“그럼 끊는다.”
길드장은 전화기를 주머니에 집어넣고 곧 잡을 남자에 대해 생각했다.
“무기는 활이고, 능력은 아공간인가?”
단지 착각을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녀는 그가 위험해지기 전부터 싸움을 구경하고 있었다.
알 수 없는 곳에서 단검을 꺼내는 것을 보았기에 능력을 아공간으로 생각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길드장의 주머니 속에 넣어놓은 핸드폰이 울리고, 화면에 떠 있는 이름은 방금과는 다른 사람임을 증명했다.
“여보세요.”
[여보고 자시고 걔 누구야.]
“진정해. 마음이 급하네.”
[너라면 진정할 수 있겠냐?]
“그나저나 너도 못 봤지?”
[그러니까 누구냐고.]
“걔는 내 정체를 다 알고 있는 것 같던데.”
[뭐?]
“탐이 나서 이제부터 찾아보려고. 그럼 끊을게.”
[야! 야!]
길드장인 그녀에게 반말을 쓸 수있는 사람은 몇 명 없었다.
그녀의 길드는 다른 길드와 달리 개인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 이점에 이끌려 가입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렇지만, 혼자서 활동할 수 없는 의뢰의 경우에는 사람을 찾는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다 보니 길드 내에서 집단이 생겨난다.
그런 집단을 관리하는 것이 길드장의 덕목이었다.
그녀는 시연회까지 남은 일자를 체크하고 다시 길드로 복귀했다.
**
나는 자세히 보지 못한 옷의 상태를 살폈다.
외견은 상상 속에서나생각하던 저승사자가 입던 옷이었다.
검은색의 얇은 코트와도 같았다.
옛날 옷이기에 현대의 코트와 같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 입어도 촌스러워 보이지는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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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 차사 ‘강림’의 차사복]
[유물][전설]
•옷을 입은 상태에서 민첩 능력치가 10% 증가한다.
•24시간에 3번 25m를 단숨에 이동할 수 있다.
•168시간에 한 번 10초간 몸을 영체화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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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쁘지 않네.”
이미 영체화를 제외한 능력을 사용했다.
그만큼 그녀한테서는 멀어지는 것이 좋았다.
시간을 보니 새벽 7시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아…”
옷을 입고 산 밑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계산을 해보니 지금 당장 택시를 타고 가도 위태위태한 시간이었다.
한숨도 못 잤음에도 자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
“겨우 도착했다.”
문 앞에 서서 약간의 외견을 정돈하고 문으로 들어갔다.
가장 늦게 들어왔기에 다른 사람들의 눈길을 볼 수 있었다.
전과는 다른 점이라면 윤예진과 김종현이 나를 째려보고 있다는 점이다.
똑같은 점이라면 이하늘은 나한테 관심을 가지지도 않았고, 김세연은 나를 쳐다보고 있다는 점이다.
‘윤예진은 아마 전에 있던 일로 나를 싫어하고 있을 테고…’
김종현은 왜 저럴까.
그의 심정을 읽을 수 있다면 읽고 싶었다.
전까지는 관심도 없던 애가 나한테 격렬한 관심을 표하고 있었다.
이하늘은 여전히 나한테 관심이 없었다.
‘남자가 여자 같아지면 저러는 걸까?’
그제는 걱정을 털어놓더니 관심을 주지도 않는다.
원래 그렇게까지 했다면 관심을 가질 만한 것 같은데.
했던 말이별로 마음에 들지 않아 실망한 것 같았다.
어차피 그는 관심 밖이었다.
살려야 했지만, 방향이 달랐다.
다른등장인물들은 끝까지 데려가도 충분히 전력이 될 수 있지만, 이하늘은 예외였다.
그의 재능이 어디까지인지 모르기에 중간에 사건에서 열외로 하는 것이 살리는 길이었다.
“설화야 어디 갔다 왔어? 어제 치료실에는 없던데.”
“응? 일이 있어서.”
김세연에 대해서는 아직 정리하지 못했다.
사람과의 인연은 자르고 싶다고 한순간에 자를 수 있는 관계가 아니었다.
그렇게 관계가 이루어진다면 많은 사람이 상처를 받고, 상처를 입힐 것이다.
가슴으로 외치는 말은 무조건 믿으면 안 된다.
감정은 인터넷 기사와도 같았다.
90퍼는 믿지 말고, 10퍼는 믿어도 될 정도였다.
감정대로 따르면 이 반에서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었다.
교관마저 나를 싫어한다고 외치는 감정은 정상적이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반의 아이들과 교관을 내가 싫어하지 않는다.
‘거짓임을 알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과 연관되면 그 감정은 더욱 커진다.
‘일정한 논리적 근거가 있기는 하나 거기에 과도한 감정적 요소가 더하여 정상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망상으로 발전하는 병입니다.’
병원에서 분명하게 들었던 말이다.
일정한 논리적 근거는 나를 끝없이 괴롭힌다.
그것을 토대로 망상은 몸집을 불려 나간다.
꿈속의 괴수처럼 끝없이 몸집을 키우고 그것은 곧 내 이성을 먹어치운다.
이성을 먹힌 결과는 표정으로 나타난다.
웃고 싶어도 그 사람 앞에서는 웃어지지 않는다.
작위적인 웃음이 될 뿐이었다.
그렇기에 옆에서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김세연은 부담스러울 뿐이었다.
나와 엮이게 되면 될수록 그녀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부정적인 영향만 끼친다.
검은 먹을 가까이 하면 검어진다는 사자성어가 있다.
정신병자의 친구는 없다.
검은 먹과 검은 먹이 만나는 일은 없다.
정신병자와 정신병자가 만나도 친구가 되는 일은 없었다.
둘은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다.
자기가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남을 신경 쓰지 않는다.
서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음에도,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렇기에 친구가 될 수 없었다.
“설화야 무슨 생각 해?”
그렇다면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만나면 친해질 수 있을까?
악한 사람이 영향을 받아 선해질 수 있을까?
“이제 수업 들어야지.”
악한 사람은 선한 사람을 죽일 것이다.
정신적으로든 물리적으로든 선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혹시 오늘 밥 같이 먹을래?”
그렇기에 나는 그녀와 가까이 있으면 안 됐다.
“미안. 할 일이 있어서.”
“그래? 그러면 다음에 같이 먹자.”
가끔씩 생각한다.
내가 정상이었다면 어떤 삶을 보내고 있었을까?
과거로 돌아간다면 여동생을 살릴 수 있었을까?
한참 회귀가 소재인 소설을 봤을 때마다 생각하던 일이었다.
여동생을 살렸다면 정상적인 삶을 이어나가고 있을까?
그렇다면 지금 다음에 같이 먹자는 말에 웃으며 긍정할 수 있지 않을까?
질문에 질문을 거듭하지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내가 질문에 답하면 비참해질 것 같아서 답하지 못했다.
다시 돌아간다면 살릴 수 있을 텐데 왜 그때는?
“그때는 왜 날 내버려 뒀어?”
어느새 시야는 검어지고 눈앞에는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여동생이 보였다.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 모습 그대로였다.
“미안해…”
“왜 날 살리지 못했어? 살릴 수 있다며.”
“미안해…”
“날 조금 더 신경 써줄 수 있었잖아. 그런 위치였잖아.”
“미안…”
“내가 자살한 이유는 너 때문이야.”
“맞아. 나 때문이야.”
“일어나!”
마지막 동생의 입에서 나오는 말과 함께 눈을 떴다.
“설화야 일어나. 뭘 자꾸 중얼거리고 있어.”
“아…”
내가 눈을 감고 있다는 사실도 잊고 있었다.
어제 잠을 자지 못해서인지 잠을 잔 것 같다.
“다들 대련장으로 오래서 가고 있어. 빨리 일어나.”
“고마워.”
악몽이었다.
점점 기억에서 잊혀가고 있지만, 지금은 확실하게 기억에 남아있었다.
꿈은 늘 그렇다.
최악을 보여주고, 바람에 날아가는 가루같이 금방 사라진다.
기억나는 꿈은 기록을 해놔야 기억에 오래 남았다.
그렇지 않으면 금방 사라졌다.
그녀가 했던 첫 마디가 사라졌다.
곧, 김세연의 첫 마디를 제외하고는 기억에 남은 것이 없었다.
오늘 대련은 활을 쏘는 생도와의 시합이었다.
나도 많이 성장한 걸까, 처음에는 어느 정도 비등비등하게 가고 있었다.
그가 능력을 사용하자 시간이 가속된 듯 여러 발의 화살을 쏘았다.
그 자리에서 교관이 막아주지 않았더라면 어제 봤던 고슴도치가 될 뻔했다.
“현수 맞지? 잘하더라.”
그를 치료하며 얘기를 했다.
얘기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렇게 치료하는 과정에서 어색함이 더 불편했다.
같은 반 생도의 이름은 대부분 외웠다.
성은 외우지 못했다.
소설에서 본 것이 아니라 자동적으로 외웠다.
잘 모르겠지만 이름만은 세 번 듣고 외우는 편이었다.
아마 방어를 위한 적응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내가 이름을 부르니 좋다고 말을 토해냈다.
그의 입에서나오는 말은 내가 모르는 얘기였다.
마치 여자처럼 여러 이야기를 말하지만, 머릿속에 들어오는 건 하나도 없었다.
그가 말을 멈춘 시점은 다음 경기가 끝났을 때였다.
**
대련이 끝나고 가고 있는데 윤예진이 나를 데리고 구석으로 향했다.
“어제 어디 갔다 왔어.”
말하기 어려운 질문이었기에 옆으로 몸을 피하려고 했다.
탁-
눈앞에는 그녀의 팔이 보였다.
‘말로만 듣던 벽치기인가?’
여자에게 당해보니감회가 새로웠다.
감옥에 갇힌 것 같았다.
“여기서는 말하기 어려운 거지? 이따가 문자하는 곳으로 와.”
그녀가 나한테 갑자기 왜 그러는 걸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전에 있던 일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그때 있었던 일에 대해 사과하라는 걸까?’
“그건가?”
그것보다 가장 중요한 문제가 있었다.
윤예진이 주위 사람들도 신경을 안 쓰고 말했기에 우리는 사람이라는 감옥에 막혀있었다.
그녀도 깨달았는지 귀가 빨개져 있었다.
“오…”
“둘이 뭐한 거야?”
“내가 봤는데 윤예진이 한설화한테 벽치기 했다니까?”
“꺄아아.”
마지막 두 마디는 남자가 말한 것이다.
중저음의 목소리로 저렇게 말하는 것이 듣기 좋지 않았다.
윤예진도 딱히 생각 있게 행동한 것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둘이 뭔 사이야?”
인파에서 튀어나온 질문은 주위 사람들을 조용히 시켰다.
“어…”
“아무 사이도 아니야.”
그녀가 대답하기 전 내가 먼저 대답했다.
나와 엮이면 끝이 좋지 않으니까.
그들과는 끝까지 ‘남’으로 남고 싶었다.
김세연도 나중에는 멀어져야 할 것이다.
그렇게 말하고는 인파 사이를 가르며 나아갔다.
“설화야 조금 전에 있다던 일이 쟤랑 만나는 거야?”
인파를 갈랐다고 상황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혼자 가던 중 김세연이옆에 붙어서 말했다.
거짓말은 더 큰 일로 다가온다.
그렇기에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다시 거짓말을 할까? 아니면 사실대로얘기할까?’
사실대로 얘기하는 것은 기각.
헤어짐에도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헤어지고 싶지는 않았다.
‘당장 내가 너와 밥 먹기 싫어서 거짓말했어’라고 말한다면 그녀와의 관계를 끝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상처를 받는 건 당연히 김세연이 될 것이다.
관계에 있어 악당은 내가 되어야했다.
그러는 편이 마음에 편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의 생각에는 자신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내가 잘못했다는 것이 남아있을 것이다.
“아니… 다른 할 일이 있었는데, 이렇게까지 말하는 걸 보니 만나야 할 것 같은데.”
“그래? 하긴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얘기할 정도면 심각한 거겠지. 다음에 나랑 밥 먹으러 같이 가는 거다?”
고개를 끄덕였다.
**
저녁에 윤예진을 만나러 갔다.
그녀는 방에서 심각한 분위기를 잡고 있었다.
“구슬에 손 올려.”
나는 그 구슬이 뭔지 알고 있었다.
진위를 가릴 수 있는 구슬이었다.
소설 속에서나 보던 외견과 같았다.
“안 돼.”
“그래? 그러면 그냥 대답해. 혹시 나 죽는 것이 운명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