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화 〉교관
윤예진은 정말 상식적으로 생각하고 싶었다.
어제 한설화가 외출증을끊고 나갔다는 말에 의심만이 증가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사람 중 외출증을 그렇게 많이 끊는 사람은 없었다.
대부분 하랑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유흥시설이 적은 것을 제외하고 모든 것을 하랑에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윤예진이 그의 말을 들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대련에 참가하라는 교관의 말을 듣고 나가지 않은 것은 두 명뿐이니까.
한설화에 관심이 많았던 윤예진도 교실 속의 얘기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미안해.’
분명히 고개를 숙여 잠을 자면서 중얼거린 말은 미안하다는 말이었다.
그가 중얼거린 말과 어제왔던전화는 그녀가 한설화에게 만나자는 얘기를 한 계기가 됐다.
“여보세요?”
[윤예진님이 알아보라고 하신 생도를 조사해봤는데요.]
“네.”
그가 외출했던 시기에 온 전화였다.
그녀는 그의 전화가 자신의 의심에 결판을 내려줄 것이라고 믿었다.
[평범한 가정집에서 자랐고, 부모님은 하랑에 들어오기 몇 년 전에 교통사고로 죽었고, 하랑에 들어오기 몇 주 전 각성 신고를 한 것이 끝입니다.]
그녀는 정은혁의 말에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예상했던 결과였기에 알겠다고 하고 끊었다.
정은혁의 정보 수집을 불신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알고 있는 사람 중 그의 정보 수집능력은 최고라고 단언할 수 있었다.
“여긴가?”
그렇기에 한설화가들어왔을 때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추측이 맞는다면 한설화는 회귀자니까.
그녀는 진위를 가리는 구슬까지 가져왔다.
그가 이것을 속이는 방법까지 가지고 있다면 어쩔 수 없었다.
“와서 앉아.”
“저번에 있었던 일은 미안해. 내가 제정신이 아니었나 봐.”
그녀는 그가 말하는 일이 밖으로 나갔던 일임을 알았다.
그의 성격은 전에 봤을 때와 달랐다.
어딘가 나사가 빠져 보였다.
‘이제 그 답을 알 수 있겠지.’
“구슬에 손 올려.”
“잠시만 이 구슬은…”
“왜못 올리겠어?”
“응 안 되겠어.”
“그래? 그러면 상관없어.”
그녀는 한설화가 구슬을 속이는 방법이 없다고 믿었다.
그렇기에 그가 구슬을 꺼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윤예진은 상관이 없었다.
강제로 올리는 방법도 없었기에그냥 물어봤다.
그가 감정을 잘 숨기는 편이 아니라면 외견으로 드러낼 것이다.
“하나 물어볼게. 혹시 나 죽는 것이 운명이야?”
윤예진의말을 듣고 한설화의 표정이 시시각각 변했다.
처음은 놀람이었고, 다음은 의심이었고, 그다음은 다시 놀람으로 되돌아왔다.
“그렇구나.”
그녀는 그가 회귀자냐는질문은 하지 않았다.
뻔했기때문이다.
“아니야.”
“표정은 숨기고 말해.”
“……”
“어제는 왜 나간 거야?”
그는 구슬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윤예진은 그가 손을 올리는 것에 놀랐다.
손을 올리고 말한 것은 그녀를 더 놀라게 만들었다.
“부모님 기일이었어.”
구슬은 그의 대답에 대답하듯 푸르게 빛났다.
“진짜라고? 무언가 얻으려고 간 것도 아니고?”
“……”
그의 대답은 그녀를 당황하게 했다.
부모님 기일이라면 외출증을 낸 것도 이해가 갔다.
그런 이유라면 교관도 외출증을 끊어줄 만했다.
“그리고 너도 안 죽어.”
윤예진은 그 말에 빨간빛이 나올 줄 알았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처음 말했던 감정변화가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구슬은 그녀의 기대를 배반하듯 푸른 빛이 나왔다.
“…그러면 처음에 그 얼굴 변화는 뭔데.”
“그냥 놀래서 그랬던 거야.”
한설화는 그렇게 말하고 구슬에 손을 뗐다.
“이제 질문은 더 이상 없지?”
윤예진은 자신이 착각했다는 사실에 부끄러워 얼굴이 빨개졌다.
한설화가방을 나가고 나서도 끝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잠시만… 그러면 교실에서 중얼거리던 건? 그냥 잠꼬대였다고?”
윤예진은 믿지 않았다.
자신이 죽지 않는 것은 사실이라고 해도, 엘프에 대해 아는 것은 설명할 수 없었다.
“내가 틀렸다고?”
“아니야. 끝까지 한 번 알아보자.”
윤예진도 한설화를 따라 방을 나섰다.
의심은 그치지 않았다.
그의 말을 들었어도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 부분은 많았기 때문이다.
**
나는 방에서 나오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윤예진이 갑자기 저렇게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사실 알고 있었을까?’
그녀를 데리고 다녔을 때부터의심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를 째려보는 눈빛도 이해가 갔다.
구슬에는 허점이 있기에 다행이었다.
원래 살던 세계에 존재하던 거짓말탐지기도 심장 박동 같은 것으로 추측한다.
구슬도 비슷한 원리이다.
대신 현대의 거짓말 탐지기와는 궤가 다를 뿐이다.
그녀에게 말한 것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정말 그날이 부모님의 기일이었을 뿐이었고, 그녀는 죽지 않는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마지막 말은 나도 약간 긴장했지만, 푸른색이 떠서 다행이었다.
그녀가 의심하고 있는 이상 윤예진한테는 조심해야 했다.
이 세상의 결말을 알고 있다는 말을 하면,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그녀의 말에 다시금 되새길 수 있었다.
나는 그저 체스말일뿐이고, 체스말은 명령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
치료실에 가니 교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로 거의 한 달이 되던가?”
“네.”
그는 나한테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여기. 수고했다.”
그러고 쿨하게 가버렸다.
봉투 안에 액수를 보니 걱정은 없어 보였다.
애초에 많은 금액을 바라고 한 일도 아니었다.
“유은설한테 돈 줘야 하는데.”
애초에 그러려고 시작한 일이었다.
‘근데 어떻게 주지?’
그녀와 따로 만남을 가지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따로 만나자고 하면 그녀가싫어할 것이다.
애초에 말을 거는 것도 싫어할 것이기에 곤란하기만 했다.
‘전처럼 나를 쫓아다니면 주기 편할 텐데.’
“근데 그냥 주면 없어 보이나?”
생각해보니 돈을 그대로 주면 이상하게 쳐다보는 사람이 많았다.
밥을 사줬기에 나는그 사람에게 돈을 줬다.
아마 그때 했던 말이 그거일 것이다.
‘선배 제가 밥 샀으니, 다음에는 밥 사주세요.’
그날은 특별히 지갑을 가져오지 않았었다.
애초에 밥을 먹을 생각도 없었기에상관없었지만, 후배가 나를 이끌고 밥집으로 향했다.
밥을 시키고 나서야 지갑이 없다는 사실을 말했다.
그 말에 후배는 저렇게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그녀에게 돈을 보냈다.
그랬더니그녀는싫어했다.
자기를 거지로 아냐고 말하는 것에 당황한 적이 있었다.
“이번에도 그러면 안 되겠지?”
다행히도 나는 인간이었다.
전에 했던 실수를 그대로 반복할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물론, 바보같이 반복한 적이 있기는 했다.
이렇게 의식하고 있는 것에는 실수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그녀는 식사로 갚으라는 말이었지, 돈을 보내 달라는 것이 아니었다.
“그러면 유은설은 병원비를 대신 내줘야 하나?”
그렇다면 상황이 더 이상하게 흘러갈 것 같았다.
“그러면 물건으로?”
내가 생각해도 가장 무난했다.
물건으로 무언가를 받으면 싫어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내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딱 좋아 보였다.
오늘은 치료실에 손님이 없는 것 같았다.
하루 종일 생각을 해도 아무도 오지 않는 날이 가장 좋았다.
**
교관과는 오늘이 마지막 날이었다.
그녀도 그것을 말했다.
그녀의 표정은 별로 좋지 않아 보였다.
무언가 일이 좋지 않게 풀렸나 보다.
이럴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유은설의 선물을 물어볼 생각이었지만, 포기하는 것이 좋았다.
“설화야 너는 이렇게 단둘이서 숲으로 오는 거 안 무서워?”
그녀가 무슨 뜻으로 말하는 걸까.
그녀의 표정이 좋지 않은 것을 보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럴 때일수록 대답은 신중해야 했다.
‘속뜻이 무엇일까?’
생각하고 내놓은 대답은 두 가지가 있었다.
‘교관님과 함께라서 괜찮아요.’
‘네.’
전자는 교관한테 의지하는 모습이었고, 후자는 너무 딱딱해 보였다.
“교관님이랑 오면 괜찮아요. 위험할 일이 없잖아요.”
그 말을 한 뒤 후회하게 됐다.
원래부터 무표정이었던 그녀의 표정이 한없이 일그러졌다.
내가 무엇을 잘못한 걸까?
“여자와 남자 둘이서 있는데?”
“네?”
그녀의 질문은 마지막으로 만회할 기회를 주는 것 같았다.
무엇이 옳은 대답일까.
‘남자와 여자 둘…’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문장이었다.
남자와 여자의 성욕이 뒤바뀐 것을 생각하면 그녀가 위험하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교관을 믿어달라는 뜻일까?
나는 예전의 지식까지 꺼내며 남자가 좋아하는 대답에 대해 생각했다.
‘의지하는 여자가 좋다고 했던가?’
남자는 자신한테 의지하면서 의젓하게 자신의 할 일을 하는 여자를 좋아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여기서는 그녀에게 의지해야 하는 걸까?
대답은 두 가지로 나누어졌다.
‘교관님은 교관님이잖아요.’
‘무슨 생각하시는 거예요?’
미연시를 하는 것처럼 두 가지 선택지가 내 머리를 오갔다.
교관에게 미움을 받지 않으려면 선택해야 할 선택지는 한 가지뿐이었다.
“교관님이니까 안심이 되죠. 다른 여자였으면 안 그랬을 거예요.”
그녀는 나한테 표정을 보여주지 않았다.
나는 잘 풀렸다고 생각했다.
내 대답에는 문제가 없었다.
**
“내가 여자로도 안 보이지? 보여줄게.”
상황이 왜 이렇게 된 걸까.
교관은 나한테 다가왔다.
그녀는 나를 못 움직이게 팔로 꾹 잡고 있었다.
별로 좋지 않은 상황이었다.
숲 깊은 곳이라 누구한테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소리를 질러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또한, 교관은 눈에 생기가 없어 보였다.
내가 그렇게 좋은 대답을 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성관계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렇기에 선호하는 편은 아니었다.
성욕은 있었지만, 혼자서 푸는 편이었다.
“교관님?”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성관계에 두려움이 있는 것은 당연했다.
성관계는 둘 다 만족해야 했다.
‘내가 과연 여자를 만족시킬 수 있을까?’라는 물음은 나에게 커다란 질문이었다.
여자는 아다를 싫어한다고 들었다.
만족시킬 자신감이 없기에 남자는 처녀를 좋아한다.
나는 더욱 심했다.
성관계를 하게 되면 자괴감이 더욱 밀려올 것만 같았다.
나는 누구를 만족시킬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기에 그녀의 접근은 부담스러울 뿐이었다.
내 망상이라면 좋겠지만, 그녀의 몸은 점점 가까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