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6화 〉교관 (26/120)



〈 26화 〉교관

나는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봤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달도 구름도 아닌 나뭇잎이었다.

“하하…”

비현실적인 일에 웃음만이 나왔다.

옷을 하나도 입고 있지 않았음에도 춥다는 생각보다 다른 생각이 먼저 들었다.

정상적인 세계였다면 여자에게 강간당할 확률이  퍼센트일까?

아마도 0에 수렴할 것이다.

그만큼 여자는 성욕이 남자와 같지 않다.
어떤 일이 있으면 그 일에 반응해 성욕이 점점 올라오는 것이다.

“하아…”

주위에 내팽개쳐져 있는 옷을 주우며 하나하나 입기 시작했다.

“윽…”

옷을 입을 때마다 맞은 곳이 쓸리며 아파져 왔다.

그녀에게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

첫 성관계였음에도 기분이 좋았다.
한  맞기 전까지는 나도 수긍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한 대를 맞은 후에는 세상이 빙글빙글 돌았다.

어쩌면 교관은 처음부터 나에게 이런 목적으로 접근한 것이 아닐까?
계획한 것처럼 내 녹취록과 사진을 가져갔다.

사실 나에게 그런 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

“…있나?”

그런 것이 퍼지면 나의 생활에 문제가 있을까 생각해봤다.

“잘 모르겠네.”

오늘은 별로 훈련할 기분도 나지 않았다.

나무에 앉아 곰곰이 생각했다.

내가 지금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까.
남자는 모두 성관계를 하면 좋다고 하던데, 지금은 아프기만 했다.

처음은 좋았을지라도 나중에는 아픔이 쾌락을 집어삼켰다.

“기분 좋은 표정? 아니면 울상을 짓고 있을까?”

핸드폰의 카메라를 이용해 얼굴을 볼 수 있겠지만, 보지 않았다.

초등학생 이후로 내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본 적이 별로 없었다.
지나가는 길에 거울이 있다면 고개를 돌리고지나갔다.

어차피 거울에 비친 나를 쳐다봐도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한 마리의 괴수가 나를 대신하고 있었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그런 생물체가 내 얼굴을 대신하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거울을 멀리하게 됐다.

내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궁금했다.
평소처럼 웃고 있을까?
아니면 교관에게 분노해 화난 표정을 짓고 있을까?

교관은 나한테 왜 그런 걸까?
정말 내가 잘못한 걸까?

그녀는 성관계하는 내내 내가 잘못했다고 말했다.

“내가 잘못한 거겠지?”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올 정도면 그만큼 내가 잘못했을 것이다.
그녀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잘 들리지도 않았지만 그랬을 것이다.

한 대를 맞고 나서는 귀에 노이즈가 낀 것처럼 이명이 계속해서 들렸다.

어지러워 정신을 차리기도 힘들었다.

“내가 잘못한 건가?”

내가 뭘 했다고 그녀에게 맞아야 할까?

“맞을 만큼 잘못을 했으려나?”

궁금증은 끝나지 않았다.

내 잘못인가 교관의 잘못인가에 대한 머릿속의 논쟁은 끝나지 않았다.

‘네가 ………이러니 잘못했어.’

자세하게 들리지 않는다.
듣지 못했으니 내 생각에서는 답을 못 내리는 것이 분명했다.

“교관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생각이 반복되는 느낌이었다.
내가 이 질문을 했던 것 같은데.

“했나?”
“했지.”

“내가 잘못했나?”
“이것도 말했던  같은데?”

“다 닥쳐.”

머리를 어지럽히는 생각을 차례차례 정리해야 했다.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건 ‘교관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이다.

“교관은 지금 나를 완전히 잡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아마 다시 나를 숲으로 데려와서 이런 짓을 하려고 할 것이다.

“받아줘야 하나?”

슬쩍 입을 닦아보니 여러 액이 묻어있었다.

그녀와 다시 성관계를 가져야 할까?

“교관을 신고한다면?”

나 같은 애를 대변해줄 사람이 있을까?

“없어. 너 같은 놈은 그냥 몸이나 주라고.”

교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약간 다른 여자의 목소리가 섞인 것처럼 들렸지만, 교관의 목소리가 지분의 대다수를 차지한 것처럼 보였다.

“더러워. 몸이나 팔고 다니는 창남같아.”

김세연의 목소리였다.
아마 이 세계에서 나는 배척받을 것이다.

전의 세상에서도 창녀는 그렇게 좋지 못한 대접을 받았다.

내가 지금 창남인가?

그녀가 강제로 강간한 피해자 아닐까?

“피해자가 아니라 교관이 너랑 성관계를 해준 거지. 고마워하라고.”

정체불명의 남자 목소리였다.
어디선가 들은목소리였지만, 알 수 없었다.

이명과 함께 찾아오는 환청은 내 머릿속을 헤집었다.

“너는 평생 성관계도 못 할 놈이었잖아. 차라리 그렇게 예쁜 교관이랑 한 게 축복 아니야?”

교관은 내가 말을 못 붙일 정도의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전의 세계라면 연예인을 하고 있지 않을 정도였다.

“고마워하라고.”
“근데 사람은 내가 해달라는  안해줬는데?”
“너가 먼저 잘못했잖아. 그러니까 안 들어주는거지.”

맞다.
내가 잘못을 했음에도 그녀는 큰 품으로 껴안아 줬다.
오히려 몇  때린 것만으로 용서해줬으니 다행인 것 아닐까?

바람이 불자 옷에 상처 부위가 쓸리며 방금 있었던 일을 상기시켜줬다.

“근데 이 정도로 맞을만한 일이었나? 내가 싼다고 했는데 왜 교관은 빼지 않았을까?  나를 괴롭힌걸까?”
“맞지. ………”

삐이이이익-

뒤에 말은 이명이 찾아와 듣지 못했다.
사이렌 소리와 같은 이명은 끝없이 찾아왔다.

오히려 이 소리가 나를 집중하지 못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생각을정리하자 이명은 멈추고 환청은 다시금 들리기 시작했다.

“너가 교관이 기분이 나쁜데, 이상한 소리를 내뱉었잖아.”
“내가 이상한 말을 했어?”
“응.”
“그러면 교관은 날 무시해도 되는거야?”
“너가 잘못했잖아. 그녀의 표정이 안좋은 걸 봤잖아.”

기분이 나쁜 것이 눈에 보였다.
그런데도 그녀에게 좋지 못한 소리만 말했다.

그녀가 화나는 것도 이해를 해야 했다.

기나긴 질문 끝에 내 뇌는 대답을 내놨다.

“내가 잘못했네.”

나중에 교관에게 따로 사과해야겠다.

“근데 뭐라고 사과하지?”

그녀가 내 뒷담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교관은 학생의 뒷담을 안 할  같았지만, 지금 상황에 이르러서는 불안감이 증폭되었다.

내가 잘못했으니 그녀는 퇴근하고 나서 다른 사람에게 말할 것이다.

‘우리 반 생도 중에 이상한 애가 하나 있다니까? 짜증 나게 말해서 죽여버리고 싶다니까?’
‘그래? 그냥 죽이지.’
‘죽일 수는 없잖아. 그래서 강간해줬지.’
‘걔 좋자고강간을 왜 해.’
‘차라리 그냥 때리기만 할 걸 그랬나?’

“아니야. 저런 말은하지 않았어. 교관은 앞에서 나를 강간했잖아. 그런 사람은 뒤에서 ᄄᆞ로 얘기 안해.”
“맞아. 앞에서 너한테 상처주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야. 적어도 뒤에서 얘기하지는 않잖아?”

때리지만 않고 내 기분도 좋게 해줬으니 그녀는 나에게 큰 인심을베푼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나는 교관한테 안 좋은 말만 했으니 쓰레기나 다름없었다.

교관에게 내가 지금까지 쌓아놨던 이미지가 모두사라졌을 것이다.
숲으로 들어오면서 간간이 얘기를 하는 이미지는 사라지고, 나쁜 말이나 내뱉는 쓰레기로 변했을 것이다.

사람의 인식 변화는 순식간이다.

우리는 그런 상황을 많이 겪는다.

평소에 이미지가 좋은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이 범행을 저지른다면 사람들은 모두 그 사람을 욕한다.

이유는 당연했다.
그 사람이 잘못했으니까.

범행의 동기는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 사람이 할머니를돕다가 잘못해서 법을 어겼다고 해도, 강간을 당하는 사람을 도와주는 와중에 강간범을 죽였다고 해도 듣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런 동기는 중요하지 않다.

가장 중요한 일은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내가 교관에게 말한 말이 순수한 것은 상관없었다.
그 사람이 듣기에 악의적으로 들렸다면 내가 잘못한 것이었다.

사회는 그런 식으로 흘러가니까 내가 잘못한 것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나는 그녀에게 있어 평범한 생도에서 쓰레기만도 못한 존재로 변한 것이다.

“말을 잘해야 했는데.”

소설 속에서 그녀는 생도를 많이 아끼는 사람이었다.
내가 등장함으로써변했다면 나의 문제가 분명했다.

그녀의 문제였다면 소설 속에서도 그녀가 악당이었을 테니까.

증거가 하나하나씩 나오기 시작하며 그녀가 한 행동에 하나하나 들어맞기 시작했다.

“설화야 뭐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옆에서 말이 들렸다.

김세연이었다.

“응? 아니야.”
“오늘은 훈련 안 했어? 평소랑 달리 그냥 앉아있던 것 같은데?”
“어. 그냥 앉아있었어.”
“일어나.기숙사로 가야지.”
“응.”

김세연은 나한테 왜 잘해주는 걸까?
분명히 내가 그녀에게 잘못한 것이 많을 텐데.
내가 의식하지 못한 부분에서 그녀에게 잘못한 부분이 많을 텐데, 웃으며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다.

“세연아, 너는 나한테 실망한 적 없어?”

평소라면 물어보지 않을 질문이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오늘은 목에서 멈추지않고 그대로 튀어 나왔다.

‘왜일까?’

모르겠다.
오늘은 모르는 점이 너무 많았다.

“내가 너한테 실망을 왜 해.”
“그렇구나.”

그녀는 나한테 진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녀도 내심 나한테 실망한 부분이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한테 얘기하지 않는 것은 믿음이 없어서 일 것이다.

오히려 교관처럼 나한테 잘못했다면서 해를 끼치면 이해할 텐데.

그런 사람이 호감이었다.
뒤에서 남을 까는 사람보다 앞에서 상처를 주는 것이 나았다.

뒤에서 퍼지던 내 얘기를 들으면 상처를 입는다.
마치 그동안 숨겨 놓았던 칼날이 나한테 날아와 모두 꽂히는 것 같았다.

앞에서 상처를 주는 사람은 칼을 하나만 들고 있었다.
내가  자리에서 준 상처를 그대로 돌려주는 것이기에 그대로 받을 수 있었다.

교관과 김세연은 달랐다.

김세연은 아마도 뒤에서 나를 안 좋게 얘기할 것이다.

“잘 있어.”

김세연은 나를 데려다주고 기숙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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