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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화 〉유은설 (27/120)



〈 27화 〉유은설

김세연은 바보가 아니었다.

당장 옆에 있는 사람의 상태조차 확인하지 못할 정도로 눈치가 없지 않았다.

오늘따라 한설화의 상태는 이상했다.
아니 어쩌면 처음 만날 때부터 이상하다고 느꼈어야 할지 몰랐다.

‘처음에 미안하다고 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김세연은 그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자신은 그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음에도 사과를 건네는 한설화를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다.

잠을 자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한설화를 보고 알아챘어야 했다.

그때마다 딱히 신경 쓰지 않았던 점이 김세연의 정신을 건드리기 시작했다.

김세연이 확실하게 그의 상태가 이상함을 느낀 것은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부터였다.
한설화는 오늘따라 수업에 집중을 못 하고 고개를 떨구며 꾸벅꾸벅 졸았다.

‘아마 어제 있던 일 때문이겠지.’

평소에 수업을 듣지 않았지만, 잠은 잔 적은 없었다.
외출하고 늦게 들어온 것 때문이라는 추측은 있었다.

교관이 말한 것도 못 듣고 일어나지 못하는 한설화를 깨우러 다가갔다.

당연히 김세연의 귀에도 한설화의 중얼거림이 들렸다.

“뭐가 미안한 건데.”

잠자면서 중얼거리는 것은 좋은 현상이 아니었다.
수면 중 무의식으로 나오는 말로 심적으로 갈등이 있을 때 일어나기 쉽다.

신경 쓰지 않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땀을 흘리며 미안하다고 말하는 한설화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나 때문일까?”

한설화는최근에 김세연에게 웃음 짓는 일이 줄어들었다.
최근이 아니라  주가 지났다.

생글생글 잘 웃는 그의 모습을 보지 못한지 꽤 시간이 지났다.

그렇기에 김세연은 자신을 의심할 수밖에없었다.

그녀가 한설화에게 무언가를 잘못한 걸까라는 생각이 그녀를 잠식시켰다.

‘세연아, 너는 나한테 실망한 적 있어?’

한설화의 마지막 말이 맴돌았다.
김세연은 한설화가 마음에 들었고,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이 있을 리가 없었다.

굳이 하나를 꼽자면 힘든 일이 있으면 말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오늘 나무에 기대고 있는 한설화는 무언가 퇴폐적이었다.

김세연은 그런 한설화를 보고 달려갔다.
한설화는 어딘가 지친  보였고, 훈련은 하지 않았다.
주위를 다가가니 그의 상태가 제대로 보였다.

숨을 쉬는 것은 불규칙했고, 손은 벌벌 떨리고 있었다.

단순히 수전증이라고 보기에는 많이 힘들 정도였다.
그의 앞에 어떤 괴수가 있더라도 손을  정도로 떨지는 않을 것이었다.

김세연은 자신이 다가오자 보이는 한설화의 반응에 놀랐다.

‘그렇게까지 내가 싫은 걸까.’

김세연은 그렇게 당당한 성격은 아니었다.
남에게 자신에 관해서 물어보는 것을 싫어했다.

그녀가 다가간 사람은 한설화가 처음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녀의 능력을 알고 접근했다.
처음 능력을 확인할 때 두 가지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많은 사람이 달려들었다.

처음에는 그녀도 그런 관심을 즐겼다.
관심이 고팠던 소녀는 다른 사람들의 관심이 즐겁기만 했다.

하지만 학교에 들어간 뒤로는 정상적인 친구 관계를 갖지 못했다.

그녀를 그저 인맥으로만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능력이 2개니까 무조건 성공할 사람.’
‘우리 길드에 영입하면 좋을 사람.’

그것이 김세연에 대한 주위의 평가였다.
그런 뒤로는 그녀는 관심이 부담스럽기만 했다.

그렇기에  한설화에게 집착했을지도 몰랐다.
처음에는 그저 얼굴을 보고 말을 걸었을 뿐이었다. 그가 어떻게 생각하든 일단 말을 걸어보고 싶은 얼굴이었다.
잘 웃는 그의 모습은 그녀가 더욱 빠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고, 무언가 부탁을 하지 않는 모습은 그녀의 마음에  들었다.

한설화에게 무슨 생각이 들어있는지는 몰라도 김세연은 그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그의 상태를 나아지게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손을 떨 정도의 불안함이 자신이 아니라 타인 때문이라면 그를 보듬어 줄 생각이었고, 자신 때문이라면 말끔히 떨어져 줄 것이었다.

“그렇지만…  때문이 아니면 좋겠다.”

그만큼 한설화는 김세연에게 있어 중요한 사람이 되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이미 한설화를 위한 자리가 남아있었다.

 자리에 한설화가 들어오는 것은 그의 선택이었다.

그녀는 내일 볼 한설화를 생각하며 기숙사로 들어갔다.

**



김세연과는 별로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늘 그렇듯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렇다면 나는 받아줄 수밖에 없었다.

교관은 원래 훈련하는 시간마다 나를 범하기 시작했다.
내가 미안하다고 했더니 웃으며 나를 받아줬다.

다음부터는 잘못을 하지 말라고 했다.

둘의 차이는 극명했다.

한 명은 내가 잘못을 하면 티를 내지 않았고, 한 명은 내가 잘못을 하면 그 자리에서 벌을 줬다.
나에게는 역시 후자가 더 좋았다.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면 바로 반영할  있었다.

그에 비례해 나의 정신은 점점 갉아 먹히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교관이 싫어지기 시작했다.
바로 앞에서 나에 대한 싫은 말을 하는 사람이 좋을 텐데, 이상하게도 그녀가 말하는 것이 듣기 싫어졌다.

오히려 김세연이 낫다고 해야 할까?

언제는 후자가  낫다면서 지금은 김세연을 찾는 나의 모습에 토가 나올 지경이었다.

인간은 약할까?
인간은 약하다.

주위에 사람이 없다면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나약하다.

눈을 감고 주위에 나밖에 없는 세상을 상상해보자.
머리가 어지러워지며심장 박동 소리가 내 귀로 들리기 시작한다.

끝내 세상의 구현이 끝날 때는 죽을 것 같은 공포를 느낀다.
세상에는 아무 건물도 없이 나 혼자만이 세상에  있었고, 나에게 말을 거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
귀에는 바람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고, 사람의 말소리는 들리지도 않는다.

극심한 공포와 함께 찾아오는 것은 목을 조르는 느낌이었다.
질식할 것처럼 숨이 막혀오며 이명이 함께 찾아온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고, 주위 사람에게 웃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사람들이 나를 싫어함에도 나는 그들을 원했다.

모순적인 말이지만, 결국 관심을 갈구하는 쪽은 나였다.
손해를 보는 쪽도 나였고, 상처를 입는 쪽도 나였다.

늘 인간관계에 최선을 다했지만, 상대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상대는 내 행동에 상처를 받았고, 나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교관이 꺼려진다고 해도 멀리하지 않았다.
그녀는 아픔을 가지고 있었다.

좋아하는 남자를 세 번 뺏겨서 힘들다고 했다.
근데 내가 그런 트라우마를 건드렸다고 했다.

그렇다면 내가 잘못한 것이 분명했다.
의도치 않은 행동에 그녀가 상처를 받은 것이 결과이기 때문이다.

 생각은 틀리지 않았고, 옳았다.

그럼에도 그녀가 꺼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를 때려서?
맞을 만했기에 이것은 아닌 것 같았다.

나에게 폭언을 해서?
아마 이것이 맞을 수도 있다.

20개의 칼이 준비되어있다.
20개의 칼을 내 몸에 한 번에 꽂는 것과 하나씩 꽂는 것에 차이가 뭘까.

오히려 한 번에 맞는 것이 아프지 않을까?

모르겠다. 이 질문에 대해서는 정확한 답변을 내리지 못하겠다.
둘 다 아프기에 정의를 내릴  없었다.

칼을 꽂는 사람은 잘못되지 않았다.
내가 잘못한 만큼의 칼이 되돌아오는 것이다.
‘업보’라고 해야 할까.

내가 던지지 않았다고 생각한 칼도 어느새  사람의 손에 들려있었고, 나에게 꽂히면 그 이유를 알  있었다.

이미 많이 지친 걸까.
아직 끝의 4분의 1도 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내 정신은 약하기만 했다.
원래부터  멘탈은 본드로 붙여져 있었다.

원래 세상에서 망치로 여러 번 맞은 덕분에 단단했던 멘탈은 금이 가기 시작했고, 부서져 버렸다.
부서짐과 동시에 집에 들어가고 나오지 않았다.
집에서는 부서진 조각을 하나하나 본드로 붙이기 시작했다.

본드로 붙인다고 처음처럼 강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약해졌다고 볼 수 있다. 여러  견디는 충격도 한 번을 버티기 힘들었다.

이 세상에 와서 여러 번 충격을 받았고, 나는 그것을 수습해 다시 붙였다.
몇 번의 부서짐 끝에 사라진 조각들이 생기기 시작하고 구멍이 생겼다.

그 사이로는 여러 개의 폭언이 들어오며 안에서부터 갉아먹었고, 여러 번의 폭행은 겉에서 망치질하기 시작했다.

“설화야. 이제 들어가야지.”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네.”

김세연이 옆에서 말했다.
나한테 친절하게 대해주는 그녀는 과연 뭘까.
내가 그녀에게 무슨 가치가 있을까.

사실나에게 실망한 점이 없던 것이 사실이 아닐까?
나에 대해서 좋은 쪽으로 생각하지만, 금세 생각을 멈췄다.

긍정적인 생각은 나에게 해만 될 뿐이었다.
어떤 여자가 나에게 말을 건다면, 그 여자는 나를 좋아하는 걸까?
 여자는 나를 싫어하지만, 어쩔  없이 말을  것뿐이다.

내기했든, 누군가에게 부탁을 받았든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좋게 생각한다면 그녀가 나를 좋아한다는 결론이겠지만, 그것은 자신에게 독이 될 뿐이었다.

혼자서 독이 든 성배를 마실 필요가 있을까?
긍정적인 생각은 나에게 그런 존재였다.

 사람이 나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며 친하게 지내면 돌아오는 것은 뒷담화 뿐이었다.

중학교 때도 그랬고,고등학교 때도 그랬다.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은 뒤돌아서면 나를 싫어하는 사람으로 돌변했다.
말을 걸어줘서 그 사람에게 집착하기 시작한다면, 그 사람은 나에게 좋게 대해주지 않는다.

나도 사람의 온기가 고픈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사람을 만나고 싶고 나를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사람을 바랐다.
그렇지만 사람은 늘 끝까지 있을 수 없었다.

결국은 헤어져야 했다.
부모님처럼 나에게 애정을 주는 사람도 언젠가는 세상을 떠난다.
그렇기에 더 다가가지 못했다.

내가 애정을 주는 순간 그 사람은 나의 중요한 사람이 되니까.
그것이 무서웠다.
중요한 사람이 나를 떠나는 순간에는 버틸 수 없을  같으니까.

그러니 나라는 집종이 생겨난 것이다.
애정을 갈구하며, 애정을 꺼리는 이상한 사람.

나는 주위에 모여있는 수많은 사람을 봤다.
나에게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각자 서로 떠들기 바빴고 나에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시선을 주는 사람은 4명뿐이었다.

팀원들과 교관뿐이었다.

그런 시선들을 받으니 좋았지만, 과도한 관심은 부담스러울 뿐이었다.

‘좋다고?’

모르겠다. 나의 기분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사실은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으면 하는 사람들이 말을 걸어줬으면 하는 바람일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이 좋은  아닐까?
관심을 갈구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같았다. 사람을 만나기 무섭지만, 관심을 갈구하는 모순에 역겨움만이 올라왔다.

그런 역겨움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을 다르게 해석했다.
어쩌면 나를 보고 있는 팀원들은 나를 싫어하지 않을까?
나만 빼고 따로 모여서 나를 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사실은 나만 빼고 훈련을 하며, 매일매일의 일과에 나를 욕하는 시간이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자 소름이 돋았다.
째려보고 있는 이하늘, 유은설, 김세연까지 내가  파티에 낄 자리가 있을까 궁금했다.

과연 이 사람들은 나를 원하고 있을까?

세상은 궁금증으로 이루어져 있다.
답을 내리지 못하는 질문도 있다.
그렇지만 나에게 답을 내리지 못하는 질문은 너무 많았다.

“들어가자.”

실습 훈련을 하기 위해서 게이트 속으로 들어갔다.

어쩌면 그들을 보조하기 위해서.
어쩌면 그들을 살리기 위해서.

오늘따라 미래를 안다는 사실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부담감으로 되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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