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유은설
하랑으로 돌아가서 교관에게 향했다.
선물을 사느라 고민하는 시간이 길어 늦을 뻔했다.
중간에 기숙사까지 들렀다가 오느라 약간 시간이 지체됐다.
“어디 갔다 왔어?”
“네? 아 그냥 여기저기.”
“땀이 많이 흘리네.”
그녀의 말에 약간 찔렸지만, 들킬 일은 없었다.
“오늘도 가는 거지?”
“네…네.”
“그래야지.”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런 다음에 허리를 손으로 붙잡으며 밖으로 나갔다.
갑작스러운 손길에 놀랐지만, 늘 있었던 일이라 그냥 받아드리고 있었다.
숲으로 가는 길에 사람들이 전부 없어지고 나서 그녀에게 질문했다.
전부터 늘 질문하고 싶었던것이었다.
“교관님.”
“…”
“누나. 누나는 혹시 저 좋아하세요?”
그녀의 눈총에 호칭을 바꿔 질문했다.
그녀는 과연 나를 좋아하는 걸까?
좋아해서 성관계를 맺는 걸까?
이런물음이 생각나자 그녀에게 꼭 물어보고 싶었다.
“뭐라고?”
“아니에요. 잘못 들은 거로 해주세요.”
그녀의 얼굴을 보니 질문할 마음이 쏙 들어갔다.
성관계에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것에 관해서 고민하는 사람도 많이 봤고, 하고 싶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고민하는 사람은 중에는 여자도 있었고, 남자도 있었다.
기억나는 고민은 그것이었다.
‘성관계를 가지는 남자가 나를 사랑하는 걸까요 내 몸을 사랑하는 걸까요?’
이런 형식의 고민이었다.
그때는 이 고민을 이해하지 못했다.
당연히 나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고, 약을 먹으며 성욕이 없다시피 했기 때문이다.
지금에서야 떠오른 것은 교관의 행동 때문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폭력을 서슴없이 저지르고 있었다.
그럼, 교관은 오직나를 성관계하기 위한 도구로 생각하고 있을까?
폭행과 폭언을 저지르는 교관에게 벗어나지 않는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어쨌든 성관계를 했으니까 끝까지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성관계는 그만큼 사람과의 교감의 끝 단계였다.
“그래. 말해줄게.”
교관은 나에게 말해준다고 했다.
교관은 과연 나를 사랑할까?
아니면 그저 도구로 여길까?
전자라면 약간 기분이 좋아질 것 같다.
상상만 해도 약간 입꼬리가 올라갔다.
성관계를 맺었으면 그녀도 나를 좋아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주류였다.
어쩌면 나를대용품이라고 여길지라도, 나를 사랑한다면 좋지 않을까?
그만큼 나에게 성관계는 중요한 일이었다.
그녀는 나의 귀로 입을 갖다 대며 말했다.
“너는 그냥 내 딜도일뿐이야. 선 넘지 말라고. 그냥 나에게만 몸만 대주면 돼.”
“그럼 꼭 제가 아니어도 돼요?”
“그렇지. 너는 그냥 도구일 뿐이라고. 자위용 도구. 내가 울분을 토할 수 있는 쓰레기통. 그 이상 이하도 아니야.”
내 상상은 철저하게 붕괴했다.
기대감이 크면 상실감이 더 크다고 했던가?
지금이 딱 그 상황처럼 다가왔다.
“그러면 저랑 지금까지 한 거는 뭐예요?”
“그냥 내 자기만족이지.”
상상은 상상일 뿐이었다.
그것이 현실로 재현될 확률은 극히 드물었다.
인간의 상상은 긍정적인 쪽으로 나아간다고 했다.
나와는 달리 다른 사람들은 긍정적인 희망을 품고 살아간다.
그러면 나는 긍정적인 희망을 품으면 안 되는 걸까?
한 번쯤은 괜찮지 않았을까?
그녀가 나에게 사랑을속삭여주면 좋았을 텐데.
몇 년 만에 처음으로 품어본 희망이었다.
성관계도 처음이었고, 교관만큼 많이 대화해본 사람도 적었다.
그녀만은 나를 이해해줄 것이라 믿었다.
서로가 상처를 받은 사람인만큼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사람은 이기적이었다.
잠시동안 잊고 있었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상처를 치료하기 바빴다.
자신의 상처를 치료할 동안 남에게 상처를 주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자신의 상처만큼 남에게 상처를 주고 나서야 극복했다.
교관도 똑같았다.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다.
나에게 속삭였던 말들은 전부 거짓이었다.
나에게 자기 것이라며 속삭이던 말들은 모두 그녀의 자기만족수단일 뿐이었다.
나는 그녀의 감정 쓰레기통이었고, 그저 생체 딜도였다.
“왜 싫어?”
그녀의 말에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아니요. 괜찮아요.”
어느 때보다 싱긋 웃었다.
누구한테도 보여주지 않은 웃음이었던 것 같다.
이 세상의 여자는 다 그녀와 같을 것이다.
여자들에게 좋아한다는 말은 없을 것이다.
그저 따먹고 싶다는 성욕만이 남아있을 것 같다.
남자는 그녀들의 밑에 깔려야 되고 애정은 주지 않았다.
나의 성관계와 그녀의 성관계는 개념이 달랐다.
내가 너무 편하게 살아온 걸까.
한번 올라갔던 입꼬리는 내려가지 않았다.
마치 내 얼굴이 아닌 듯 제어가 되지 않았다.
고장 난 것처럼 계속 웃는 얼굴로 고정되어있었다.
‘이상하다.’
어느새 숲으로 들어왔고, 그녀는 늘 그렇듯내 옷을 벗게 시키고, 아래를 빨게 시켰다.
“설화야. 내가 재밌는 걸 봤는데. 네가 내 밑에서 나온 걸 다 먹는 거야.”
지금까지 애액을 먹지 않았다.
얼굴에 튄 적은 있었지만, 먹게 시킨 적도 없었다.
내가 고개를 양옆으로 흔들어 거부를 표했다.
“안해줄 거야?”
그녀가 한쪽 팔을 들고 명령하듯 물었다.
하지만 나는 다시 고개를 흔들며 부정을 표했다.
그녀의 손이 몇 번이고 내려오고 내 뺨에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그래도 고개를 흔드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래. 너도 이럴 때가 있어야지. 내가 봐줄게.”
그녀의 성관계에는 배려가 없었다.
그게 어떤지는 모르겠다.
그냥 나는 그녀의 도구였을 뿐이었다.
성관계를 통한 감정의 교류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도 언젠가는 폭력을 멈추리라 생각했다.
그만큼 정신이 힘드니까 폭력을 저지르는 것으로 생각했다.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내 생각을 깨부쉈고, 다시금 상상은 이어지지 않았다.
그녀가 나를 쓰다듬으며 정상적으로성관계를 하는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다.
후에도 나를 때리고 막말하며 밑에 깔고 뭉개는 그런 성관계만이 상상됐다.
그렇지만 그녀에게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흐읏… 좀 더 열심히 빨아.”
어쩌면 알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배려가 없고, 그녀가 반성하지 않으리라는 것이 무의식에 있었을지도 몰랐다.
최근에 좋은 사람만을 만났던 것 때문일까.
감각이 좋아져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이 내게 속속 들리기 시작했다.
그런 뒤로도 내 얘기는 몇 번 들어보지 못했다.
그 얘기도 나쁜 얘기가 아니었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약간씩 기분이 좋았다.
내가 싸가지 없다는 소리는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들과도 같다고 생각하며 내 욕을 하는 망상에 반박했다.
마음이 많이 약해진 것 같았다.
“가슴.. 가슴도 만져줘.”
교관은 윗옷도 벗고 나에게 가슴을 만지라고 시켰다.
자세가 흉해졌지만, 지금 당장 볼 사람은 없었다.
“하아…”
“설화야 그거 알아? 네가 업고 온 유은설 퇴원했데.”
나는 그녀의 말에 입을 떼고 쳐다봤다.
“내가 말했는데 왜 입을 떼?”
“유은설 일어났어요?”
“왜 섹스 중에 다른 여자에게 관심을 가져?”
그녀는 무릎을구부리고 앉았다.
그러고 나서 내 복부를 힘껏 쳤다.
“우웁..”
“그러면 안 되지. 넌 내 도구잖아.”
“죄송해요.”
그녀에게 사과했다.
그런 다음에 다시 일어서 내 얼굴을 그녀의 아래쪽에 박았다.
“잘못했으면 다시 빨아.”
즐거운 생각을 한 것이 잘못일까.
나의 잘못은 무엇일까.
‘헛된 희망을 품은 것?’
그녀의 상처를 치료하고, 나의 상처도 보여줄 생각이었다.
마음속 깊은 상처를 그녀가 치료하는 상상도 해봤다.
긍정적인 상상은 내가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되게 해줬다.
“흐읏.. 흐읏! 하아앙!”
그녀가 절정에 달하고, 아래쪽에서 물이 튀어 나왔다.
나는 입을 닫고 들어오는 것을 거부했다.
그녀는 자신의 아래쪽을 닦은 뒤 옷을 입었다.
“오늘은 할 일이 있어서 먼저 갈게.”
내 얼굴은 그녀의 애액이 튀어있음에도 안중에도 없었다.
익숙했다.
어쩌면 안 익숙할지도 몰랐다.
내가 익숙하다고 착각하는 걸까.
나는 가져온 휴지를 꺼내 얼굴을 닦았다.
복부와 뺨에 빨개진 부분은 마력을 넣어 치유했다.
아팠던 부분이 하나도 안 아프게 됐다.
교관은 이미 숲 밖으로 나가 있었다.
“진정해.”
처음부터 내 편은 하나도 없었다.
잠시 희망이 생긴 것 가지고 착각하지 말자.
“착각하지 마.”
나에게 잘하는 것도 그들이 얻고 싶은 것이 있어서 그런 것이다.
나의 어떤 것을 원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에게 원하는 것을 줘야 한다.
“너는 그냥 도구라고.”
“맞아. 처음부터 세상을 위한 도구였어.”
“사실 너도 좋았잖아. 처음 소설 속으로 들어왔을 때, 유은설을 봤을 때, 김세연이 말 걸어줬을 때.”
좋았다. 사실 약간 흥미롭기도 했다.
흥미롭지 않으면 사람이 아닐 것이다. 세 가지 일 모두 원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작가는 나에게 주인공을 구해달라고 했고, 유은설에게는 병원비를 갚아야 했고, 김세연은 무슨 꿍꿍이가 있을 것이다.
김세연이 호의로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교관이 나를 좋아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런 적은 없었다.
나는 늘 누군가의 도구였다.
착각은 착각으로만 남을 뿐이었으니까.
착각이 현실이 되는 일은 없었다.
세상이 뒤틀렸다.
나무의 뿌리 부분은 내 눈의 왼쪽으로 있었다.
땅이 90도로 돌아간 상태였다.
그렇지만 나는 발을 내디뎠다.
눈에는 보였다.
제대로 된 길이 보였다.
“환청만큼 환각도 익숙하니까.”
세상은 뒤틀려있었다.
마치 내 마음과 같이 뒤틀렸다.
정상적으로 보이는 것이 없었다.
정상적으로 들리는 것도 없었다.
“이런 놈이 정상인처럼 살아가려고 한 것이 역겹네.”
환청이 아니라 내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다른 사람들과 보는 관점도 다르고, 듣는 것도 다른 사람이었다.
이미 그들과 나는 서 있는 곳이 달랐다.
“너는 이런 세상이 익숙해.”
“맞아. 익숙해.”
삐이이이익-
환청은 들리지 않고 이명이 들렸다.
사이렌 소리였다.
쓰러질 것 같은 어지러움에도 쓰러지지 않고 길을 걸었다.
90도로 꺾인 땅은 아예 180도로 점점 돌아가고 있었다.
“세상이 반전되네.”
잠시 눈을 감고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이 상태에서는 못 걸을 것 같았다.
눈을 감자 어둠이 찾아왔다.
어쩌면 세상보다 어둠이 반가웠다.
손으로 눈을 덮자 방금보다 더한 어둠이 다가왔다.
내 마음속에는 한 가지의 벽이 더 세워졌다.
수천 개의벽 중의 하나가 더 세워졌다고 다를 것은 없었다.
그렇지만 어떤 것보다 단단한 벽이었다.
나를 더 깊고 좁은 곳으로 내몰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