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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화 〉유은설 (33/120)



〈 33화 〉유은설

“몇몇 신화급 유물은 자체적으로 아공간 능력이 달린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갑자기 기습도 될 수 있지 않나요?”
“좋은 지적입니다.”

앞에서 교관이 강의하고 있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하룻밤을 자고 난 뒤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여느 때와 같은 평소의 나였다.
겉으로  내지 않았다.

“하지만, 신화급 유물은 흔하지 않죠. 더군다나 아공간 능력이 천계와 관련 있어야 한다고 추측 중입니다.”

유물 탐구 동아리에서 여러 정보를 알려줬다.
곧 있으면 사건이 시작될 것이기에 꾸준히 출석하고 있었다.

나를 제외한 대부분이 강의에 열중하고 있었다.

“다음 동아리 수업에서는 유물을 가지고 올 예정이에요. 많은 사람이 구경할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교관의 말에 많은 생도들이 환호했다.
유물을 화면 속으로나 보던 생도들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혹시 유물 능력도 사용하나요?”
“네 그렇습니다.”

교관의 말에 방금 전보다 더 큰 환호성이 들렸다.

옆의 친구를 쳐다보며 얘기하는 사람도 있었고, 휘파람을 불며 교관의 말에 호응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전자에 해당하는 사람이  옆에도 앉아있었다.

“설화야. 너는 유물  적 있어?”
“아니. 없어.”
“이번이 처음이겠네? 나도 처음이야.”

김세연은 여전히 내 옆에 붙어있었다.
사람을 내치기에는 힘들었다.

오히려 내가 말을 막 하고 내쳐지는 쪽이 익숙했다.
나만 상처받으면 된다.

결국, 그 사람도 나한테는 소중한 사람일 것이다.
그 사람에게 그만 만나자는 말을 하는 것은 할 수 없었다.

상대 쪽에서 먼저 연락을 끊으면, 연락하지 않았다.

그런 편이 익숙했다.

상대가 연락을 끊은 이유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한 적도 있었다.

‘왜 나한테 연락을 안 해주지?’
‘왜 쟤는 놀  불렀으면서 안 불렀지?’

 번 관심을 받으면 끝없이 받고 싶어 했다.
어쩌면 나는 관심종자일 것이다.

관심을 받지 않고 싶다는 특이한 행동으로 남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그런 사람일 것이다.

‘미친놈이네. 나.’

자아 성찰을 하며 속으로 웃었다.
내가 보기에도 정상이 아닌 사고방식으로 살고 있었다.

정상인이라면 그냥 친하게 지내고, 자신이 먼저 연락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것이  됐다.
연락이 끊기면 상대가 나를 싫어한다고 확정 지었고, 연락하지도 않았다.

“그럼 오늘 동아리는 이걸로 끝입니다.”

 말과 함께 생도들이 우르르 빠져나갔고, 나와 김세연도 빠져나왔다.

“설화야 오늘도 치료실 가는 거야?”
“응.”

김세연과의 얘기를 끝마치고 치료실로 향했다.

**

가자마자 치료실 교관은 가방을 챙기고 퇴근했고, 나는 그 자리에 가서 앉았다.

유자차를 타서 종이컵에 홀짝거리면서 마셨다.
차를 마시면 가슴이 따뜻해졌다.

치유되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지만, 느낌이 좋아서 따뜻한 차나 커피를 입에 달고 산 적도 있었다.

따뜻함이 목을 타고 내려가가슴에 머무는 느낌이 좋았다.

“그나저나  시계는 어떻게 주지?”

어쩌다 보니 고가의 시계를 사게 됐다.
이것을 그냥 가서 주면 유은설이 난감해할 것이다.

주위 사람들이 나와 같이 유은설을 욕할 것이고, 그러면 유은설도 같이 욕을 먹게 된다.
그렇기에 사람이 없을  줄 생각이었다.

시계가 담겨있는 상자를 만지작거리며 타이밍을 생각했다.

“치료실에  번 와주면 좋을 텐데.”

여기는나의 공간이라고 해도 무방했다.
누가 보고 있겠다는 불안감도 들지 않았다.

노크 소리가 들리며 들어온 얼굴은 내가 기다리던 사람이 아니었다.

“설화야 안녕.”
“안녕하세요. 여긴 어쩐 일로?”

이미경 교관이 문을 닫고 문 앞에 서 있었다.

“그야 우리 설화 보러왔지.”
“차라도 드릴까요?”

그녀의 어이없는 말에 일단 화제를 돌렸다.

웃는 가면은 여전히 쓰고 있었다.
늘 그렇듯 웃는 얼굴을 유지하며 교관과 말을 했다.

“차? 그래 하나 줘.”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내 의자 앞에 앉았다.

나는 자리에 일어서서 차를 내어서 그녀의 앞에 갖다 놓았다.

“음… 맛있네. 자주 와야겠다.”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의자를 앞으로 끌어서 나와 밀착했다.
나는 의자를 살짝 뒤로 움직여 그녀와 떨어졌다.

“왜? 우리 항상 몸을 맞대어왔잖아.”
“여기는 치료실이에요.”
“어차피 교관은 퇴근했잖아.”
“그래도 지금은 아니에요.”

그녀의 의자는 나를 향해 다가왔고, 나는 그 반대편으로 향했다.
곧 나의 의자 다리는 벽을 만나 움직이지 않았고, 그녀는 결국 나와 만나게 됐다.

얼마 되지 않는 거리여서 그녀의 숨소리가 충분히 들렸다.
 숨소리는 그녀가 흥분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안 돼요.”
“내가 된다고 하면 되는 거야.”

그녀는 내 다리를 벌리고 손으로 중요 부위가 있는 곳을 쓸었다.
찌릿한 느낌이 들며 나도 모르게 신음이 나왔다.

“흐읏..”
“너도 좋잖아. 이렇게 섰잖아.”
“아니에요.”

그녀의 손을 잡고 떼어내려고 했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힘을 주며위아래로 손을 움직였고, 나는 무력하게 신음을 내는 수밖에 없었다.

구석에 몰려 이런 짓을 하는 것이 싫었다.
내가 싫다고 했는데도 그녀는 굴하지 않고 다가왔다.
그녀의 장난감과 같이 굴려지며 이런 치욕감은 처음이었다.

“좋지? 좋잖아.”
“하아…”

그녀는 내가 싸기 전에 손을 멈추고 말했다.

“그러면 오늘도 똑같이 만나는 거로 하자. 이만 갈게.”

대답하지 않고 그녀를 쳐다봤다.

“내가 강제로 했다고 그래? 이따가 봐.”

그녀의 눈빛에는 나를 굴리겠다는 의지가 가득했다.
여기서 때리다가 걸리면 힘드니까 나중에 때리겠다는 것이었다.

교관이 나가고 들어온 사람은 유은설이었다.
나는 환하게 웃으며 반기려다가 금방 표정 관리를 했다.

“방금 교관님 아니야?”
“맞아.”
“둘이서 무슨 얘기 했어?”
“어…? 아, 그냥 훈련 얘기.”
“아… 그 숲에서 하는 거?”

유은설이 숲에 따라온 적이 있었기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따라올 일은 없었기에 그냥 대답을 해주었다.

“그냥 고맙다고 인사하려고 왔어.”
“응?”
“네가  업고 왔다며, 동아리 때.”
“아… 맞아. 그냥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데.”
“그래도.. 근데 혹시 그때 이상한 사람 못 봤어?”

나는 그녀가 말하는 이상한 사람이 누군지 알고 있었다.

‘당연히 나겠지.’

“이상한 사람?”
“아… 모르면 됐어.”

그녀는 그때내가 생도용 활을 쓰고 있는 것을 알아봤다.
그럼에도 나를 지목하지 않는 이유는 유물의 행방 때문일 것이다.

“그래?”
“그나저나 나 꽤 무거웠을 텐데…”
“괜찮아. 가벼웠어.”

어차피 힘이 세진 이상 사람의 무게 정도는 부담이 되지 않았다.
그녀도 알고서 그냥 내숭을 부리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녀는  눈을 피하며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이 타이밍이라고 생각하고, 주머니에서 상자를 하나 꺼냈다.
그리고 그녀가 부담받지 않게 얘기했다.

“여기 이거.”
“응? 이게 뭔데?”
“그냥 아는 사람에게 선물 받은 건데, 나는 별로여서.”

그녀는 상자를 받고, 개봉해서 내용물을 확인했다.

“시계네?”
“남자한테 시계는 별로  어울리잖아.”
“그래도 선물 받은 건데, 네가 차는 게 낫지 않아?”
“그 사람도 그냥 어울리는 사람 주랬어.”

“어.. 어?”

그녀는 눈을 크게 뜨며 나를 쳐다봤다.
그런 다음에 곧  눈을 피하고,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어울리나?”
“별로 비싼 것도 아니야. 그냥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받아.”
“그… 그래?”
“응.”

그녀는 그제야  선물을 주머니에 넣었다.

“정말이지?  사람이 줘도 된다는 거.”
“정말이야. 어울리는 사람 주랬어.”

그녀는 고개를 들지 않고, 손을 흔들며 밖으로 나갔다.

“시계는 아니었던 걸까?”

전의 세상에서 남자 선물은 시계로 주면 좋다고 했는데, 여자와 남자가 뒤바뀐  세상에서 시계를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

시계를 받자마자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을 보니 유은설은 시계를 좋아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다음에는 조금 더 신중하게 골라야겠다.”

다음에도 그녀에게 미안할 일이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선물은 시계는 안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나가고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았고, 나는 조금 이른 시각에 치료실 문을 닫고 교관에게로 향했다.

**

유은설은 치료실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생각했다.

“어울려?”

한설화가 자신에게 어울린다며 시계를 선물해준 일은 전에 있었던 일과 겹쳐지고 있었다.

그녀는 핸드폰으로 인터넷을  인터넷에 검색했다.

‘남자가 여자에게 주는 선물의 의미.’

대부분은 쓸모없는 글이었지만, 곧 그녀가 원하는 정보가 보였다.

“호감을 드러내는 거라고?”

‘그냥 좋아서.’

전에 한설화가 했던 말과 같이 생각나자 그녀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러면 나는 남자가 그렇게 관심을 표하는데, 무시하고 있는 거라고?”

유은설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진정시키며, 길을 걸었다.
서늘한 바람이 얼굴에 닿으며 열을 식혀주고 있었다.

그녀의 핸드폰으로 연락이 왔고, 그녀는 알 수 없는 번호로 온 연락이었음에도 수락을 눌러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유은설 맞으시죠?]
“네. 맞는데, 혹시 누구세요?”
[그때 병원에 실려 왔을 때 연락처 받았던 간호사인데요.]

유은설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금세 기억을 떠올렸다.

“아…! 혹시 그분 찾으셨어요?”
[네. 오셔서 병원비 물어보셔서 알려줬어요.]
“그래요?”

유은설은 병원비를 물어봤다는 소리에 의아하며 물었다.

[그분이 알리시지 말라고 하셨는데, 알리는 게 나은  같아서.]
“아…”
[저도 이런 적 있었거든요. 누가 도와줬는데 은인을 찾는데 정체를 알려주지 않는다고해서…]

전화 통화를 하는 남자는 말이 많았다.
알고 싶지도 않았던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간호사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얘기를 자르며 들어갔다.

“하하… 그래서 누구신지 알려주신다고요?”
[아… 네네. 제가 메시지로 보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유은설은 그의 말이 끝나고 메시지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곧 도착한 메시지에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는 내용이 쓰여 있었다.

[한설화 010-XXXX-XXXX]

“한설화?”

유은설은 자신이 알고 있는 한설화와 동일 인물인지 확인하기 위해 전화번호부를 들어갔다.

“똑같네?”

‘정말 한설화라고? 그때도 나를 업어온 게?’

유은설은 믿을 수 없는 문자 내용에 당사자에게 진위를 확인하고 싶었다.

“숲에서 훈련하고 있다고 했지?”

유은설은 한설화와 교관이 숲에서 훈련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확한 위치까지 알고 있었기에 숲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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