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화 〉유은설
“설화야. 너도 데리고가고 싶은데 쟤랑 잘 정리하고 와.”
“……”
“둘이서 하면 죽을 줄 알아.”
그녀의 마지막 말은 나한테만 들리도록 귓속말로 했다.
교관이 곧 떠나고 숲의 공터에는 유은설과 나만이 남아있었다.
“둘이서 언제부터 한 거야?”
“…”
나는 그녀에게 뭐라고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지금 해야 할 건 사과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감사도 아니었다.
“예전에 나 병원에 데려다준 것도 너였어?”
“어디서 들었어?”
“간호사가 알려줬어.”
그가 내 이름과 번호를 받고 알려준 것 같았다.
알려주지 말라고 했는데, 사람을 믿은 게 잘못이었다.
“맞아. 그거 나야.”
부정하기엔 이미 늦었고 그냥 인정했다.
그리고 속으로 지금이라고 소리쳤다.
그녀가 끊기 전에 내가 끊을 것이다.
처음이자 마지막 절교가 될 것이었다.
“그냥 처음부터 알려주지.”
“됐어.”
그녀와얘기할수록 마음속에서 소리치기 시작했다.
“우리 같이 신고하자.”
“신고?”
“응. 교관 같이 신고하면 될 거야.”
“그러면 결국 우리 둘은 하랑에 정상적으로 다니지 못할 거야.”
“어?”
“결국은 피해자도 피해를 보는 것이 사회니까.”
“아니야. 그렇지 않아. 요즘은 세상이 좋아졌데, 피해자의 신분이 철저히 보장된다고 하던데.”
“그걸 믿어?”
세상이 호의로만 굴러간다면 좋은 세상이 이루어질 것이다.
어떻게든 이야기는 퍼져나갈 수밖에 없고, 어떻게든 들킬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믿어야지. 어떡하겠어.”
“유은설.”
유은설.
“지금 하는 말이 마지막 말이 될 거야.”
내 진심은 이게 아니야.
“응? 갑자기? 우리 같이 신고하러 가자. 내가 증인이 돼줄게.”
“네가 뭔데 자꾸 나한테 참견하는 거야?”
사실 네가 나한테 말을 걸어줬을 때 좋았어.
오랜만에 느껴본 사람의 온기에 좋았고, 처음 만났을 때도 반가웠어.
“갑자기… 왜 그래?”
“네가 참견해서 일이 이렇게 된 거잖아.”
사실은 네가 숲에서 나왔을 때 반가운 마음이 더 컸어.
내가너를 이런 곳으로 오게 만든 걸 수도 있겠지.
“너 때문에 다치고,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하고.”
이렇게 심한 말도 하고 싶지 않았고, 사실은 모두 나 때문이야.
“그냥 도움이 안 된다.”
존재만으로도 도움이 됐어.
“너도 그냥 나를 따먹고 싶은 거 아니야?”
너는 교관가 다른 마음인 것 알아.
그녀와 다르게 나를 하나의 인격체로 봐주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어.
“따먹고 싶으면 말해. 한 번 대줄게.”
사실 너와는 해도 상관이 없어.
그런데 그러면 이하늘이 슬퍼할 거야. 그러니까 이건 그냥 못들은 셈으로 쳐줘.
“그러니까.”
그러니까
“더 이상 내 일에 참견하지 말고, 서로 갈 길가자.”
나를 한 번만 구해주면 안 될까?
“그럼 잘 있어.”
돌아가는 나를 잡아줘.
나를 잡아주기 바라는 마음이 있었지만, 그녀는 끝끝내 나를 붙잡지 않았다.
사실은 나를 부르는 것이 이상했다.
누가 그런 말을 듣고 사람을 좋아할 수 있겠는가.
“존나… 존나 병신같네 나.”
숲에서 다 나오기도 전에 고개를 들어서 하늘을 확인했다.
밤하늘에는 별이 떠 있었다.
어느 누구도 잡을 수 없는 물체였다.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존재를 내뿜는 별이었다.
빛을 내며 모든 사람의 관심을 받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음에도 미움받는 일이 없었다.
사실 나는 별이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예쁘네.”
별은 많은 의미를 갖고 있다.
여러 사람이 보면서 각자 다른 의미를 찾을 것이다.
길을 잃을 때, 길을 찾아주는 별도 있었다.
그 별을 보고 사람들은희망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나침반이 없던 시대에는 그 별이 희망의 상징이었을 테니까.
소중한 임을 잃은 사람은 별을 보며 임을 생각할 것이다.
그런 사람에게 별은 그리움을 뜻할 것이다.
“나에게는 뭘까.”
내가 되고 싶은 것?
이제는 사실 잘 모르겠다.
별은 나와는 달리 많은 사랑을 받는 물체였다.
한 번 학교에서 별에 대해서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친구들은 모두 각자의 생각을 발표했고, 나는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 생각을 말하자 모두 웃었다.
분위기를 망치기 싫어서 나도 같이 웃었다.
나만 안 웃으면 이상한 사람이 되는 거니까.
그리고 친구들에게 말했다.
‘장난이었어.’
“진심이 아니었어.”
고등학교 때도, 지금도 혼자 있을 때 그렇게 말했다.
주위의 시선 때문에 내 의견을 똑바로 내지 못했다.
나는 그렇게 우유부단한 성격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걸으며 숲을 나가는 것뿐이었다.
“미안해.”
당장 달려가서 내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전해주고 싶었다.
“미안해.”
그녀에게 똑바로 사과하고 싶었다.
치유했음에도 화살이 관통되었던 손이 욱신거리며 아프기 시작했다.
나의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냥 혼자 걸어갈 뿐이었다.
부모님이 죽은 후 내가 걸어가는 길을 지켜보는 사람은 없었다.
친구들을 한 명씩 내치며 걸어가는 길은 더 이상의 길이 보이지 않았고, 나는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그리고 지금까지 걸어왔던 과거를 후회하며, 돌아가려고할 때 깨달았다.
내가 걸어온 길은 어느덧 보이지 않았고, 나는 좁은 평수의 길에 혼자만 서 있었다.
그렇기에 돌아갈 수도,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는 길에 갇혀 혼자 지내왔다.
지금 걸어가고 있는 숲도 똑같았다.
뒤에는 유은설이 기다리고 있었고, 앞에는 내가 무서워하는 사람들이기다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예 길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앞을 향해 걸어갔다. 그것이 내가 걸어가야 할 길이니까.
내 눈에서는 눈물이 나왔다.
아마 중학교 2학년 때부터였을 것이다.
왼쪽 눈에서는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심각한 충격을 받아 메마른 것처럼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때는 많이 충격받았다.
혼자 침대에 누워 눈물을 흘리던날이 반복되던 하루였기에 체감은 크게 느껴졌다.
매일같이 나오던 두 눈의 눈물이었다.
한쪽 눈의 눈물이 멈춘 것은 나에게 놀랄만한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증세가 이어지고 있었다.
오른쪽 눈에서만 눈물이 나와 볼을 타고 흘러내려 갔다.
유은설에게 심한 말을 한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나와 엮이면 결국은 안 좋을 테니까.
그녀는 그렇게 온전히 자신의 길을 걸어야 했다.
나 따위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앞을 향해 걸어가야 했다.
그만큼 적은 강하니까.
주위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그녀가 조금 더 강력해지기를 바랐다.
그 과정에서 나는 필요 없었다.
언젠가 내가 쓸모가 없어진다면, 주위 사람들을 위해 목숨을 희생하고 죽을 것이다.
그게 나의 존재 이유니까 당연했다.
“나도 사실은 그런 말 하고 싶지 않았는데.”
“잘 지내보고 싶었는데.”
그렇게 되지가 않네.
오른쪽 눈에서 나온 눈물은 계속해서 볼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멈출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마치 고장난 스프링클러같이 물을 내뿜고 있었다.
달빛은 나뭇잎 사이로 내려와 나를 비추고 있었다.
그런 몽환적인 분위기를 내는 숲 안에서 나는 벗어났다.
**
유은설은 나무에 기대어 앉았다.
당장 나가지도 못했다.
“근데 말이지.”
한설화가 나갈 때까지 여기서 기다릴 생각이었다.
“그런 표정을 지으며 말하면 누가 믿겠냐고.”
한설화는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유은설에게 말했다.
유은설은 그런 표정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설화가 말하는 것을 곰곰이 들었을 뿐이었다.
“진심이 아닐 거야.”
그녀는 손에 차고 있는 시계를 봤다.
유은설은 그것이 누가 선물해준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만큼 한설화의 교우 관계는 좁았기에 시계를 선물해줄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내가 구해줄게.”
유은설은 생각 정리가 끝나고, 엉덩이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숲에서 나가던 도중 아는 얼굴을 만났다.
“유은설? 네가 왜 여기서 나와?”
“김세연?”
김세연과 유은설은 만나서 얘기를 했다.
유은설과 김세연의 공통된 궁금증은 하나였다.
‘왜 얘가 여기 있지?’
그리고 김세연이 먼저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니까 네가 맨날 한설화를 데리러 왔다, 이거지?”
유은설은 김세연의 말을 듣고 화를 감출 수 없었다.
김세연이 조금만 일찍 왔더라면?
그래서 둘의 현장을 목격했더라면?
유은설이 생각하기에 가장 쓸모없는 사람은 김세연이었다.
맨날 데리러 왔음에도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이상했다.
“너는 그래서 왜 왔는데.”
유은설은 김세연이 그렇게 말하자 고민하기 시작했다.
‘말해야 할까? 근데 얘는 알아차리지도 못한 애인데?’
두 가지 선택 중에 고민하다가, 결국 유은설은 하나를 선택했다.
“그냥 한설화가 있나 보러왔는데, 안에 없던데?”
“설화가 안에 없다고?”
“응.”
“또 어디 갔나 보네.”
유은설은 이래도 김세연이 의심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잘했다고 생각했다.
굳이, 비밀을 퍼트릴 이유조차 없고, 유은설은 자신이 한설화를 구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자신의 욕심 때문에 상대방을 견제하는 것이었지만, 온갖 이유를 다 붙여가며 자기합리화를 했다.
“그럼 같이 나갈까?”
“그래.”
유은설이 김세연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고, 김세연은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김세연이 보기에 한설화는 가끔 숲에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은설은 기숙사에 들어가고 나서 가장 먼저 생각한일은 교관에 대해서였다.
“무력은 안 되고, 권력도 안 되는데.”
유은설이 할 수 있는 일은 적었다.
당장 강간을 당한 한설화조차 신고할 마음이 없다고 한 것을 보면, 자신 스스로 일을 해내야 했다.
“결국, 만나야 되는 건 교관인데.”
교관에 대해서 생각하자, 생각나는 것은 미친년처럼 한설화의 위에서 허리를 흔드는 것뿐이었다.
“으으…”
“내일 교관을 만나봐야겠다.”
어제처럼 고립된 공간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는 공간이라면 쉽게 해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유은설은 그렇게 생각하고 교관과의 만남을 상상하며 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