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6화 〉유은설 (36/120)



〈 36화 〉유은설

유은설은 일어난 뒤 교실로 향했다.
한설화와 마주한다는 사실이 불편하기만 했지만, 어쩔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한설화를 구하기로 마음먹었기에 거리낄 것이 없었다.
유은설은 어젯밤 일로 잠을 설쳐 약간 늦게 교실에 도착했다.

매일 같이 아침 일찍 도착하는 그녀의 평소 행실과는 다른 행보였다.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보인 것은 한설화였다.
그녀의 눈에는 어젯밤의 울먹거리던 모습이 겹쳐 보이기 시작했다.

유은설이 자리에 앉자 옆에 앉는 이하늘이 말을 걸어왔다.

“유은설, 네가 웬일로 늦게 왔냐?”
“응? 아… 일이 조금 있어서.”

유은설의 시선은 한설화에게로 향해있었다.
그는 해맑게 웃으며 김세연과 얘기하고 있었다.

이하늘이 얘기했던 것과는 달리 김세연에게도 웃고 있었다.

유은설은 그 모습을 보며 이상한 감정이 느껴졌다.

‘뭔가 이상해.’

지금까지는 전혀 작위적이지 않아 보였던 웃음이 오늘따라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마치 행복하지 않음에도 행복하게 웃는 연기를 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고장  기계처럼 입꼬리와 눈꼬리를 조절하는 것 같았다.

“하늘아, 지금 한설화 봐. 재밌는 같지?”
“그렇네. 김세연이랑 재밌는 얘기를 하나 보지.”
“그렇지?”

유은설은 이하늘에게도 물어봤지만, 그는 전혀 이상한 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한설화의 자세는 늘 여전했다.
오른손으로  손목을 잡고 있는 모습이었다.

팔의 흔적을 감추는 듯한 그의 모습은 그녀의 생각에 확신을 불어넣었다.

“갑자기? 내가 말했던 게 신경 쓰이는 거야? 너 혹시…”
“아니야. 됐어.”

조금 기다리자, 이미경 교관이들어왔다.
그녀는 반을 슬쩍 훑어보더니 유은설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단순한 미소가 아니라 한쪽 입꼬리만 올려 조소에 가까워 보였다.

“오늘은 특별히 전달할 상황은 없다. 그럼 집중해서 수업 듣도록.”

유은설은 교관이 말하고 나가는 것을 따라 나갔다.
그리고 복도에서 그녀와 마주했다.

이미경 교관은 유은설이 나올 것을 알고 있는  기다리고 있었다.

“유은설 생도 무슨 할 말 있습니까?”
“정말 웃기시네요.”
“할 말 없으시면 교관은 이만…”

교관이  말이 없다고 받아들이며, 뒤를 돌아보자 유은설이 교관을 불렀다.

“교관님!”
“할 말 있으시면 따라서 와.”

교관은 아까와는 다르게 반말로 유은설에게 따라오라고 말했다.
유은설은 따라가서 그녀가 해를 입힐까 두려웠지만, 숲과는 달리 주위가 녹화되고 있었다.

그 점 하나로 유은설은 교관을 의심 없이 따라갔다.

교관이 감시되고 있는 공간 밖으로 나간다면 뒤를 돌아 도망갈 것이었다.

“안심해. 그냥 둘만 얘기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니까.”
“어제 그런 일을 해놓고 안심하라는 말이 나오세요?”
“풉… 진짜 모르는구나.”

유은설은 교관이 하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당장 교관이 자신을 비웃는 이유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교관을 따라가니 방 하나가 있었다.
당연히 하랑 내부에 있는 장소였고, 그녀는 안심하고 들어갔다.

안에는 마치 꾸민 것처럼 의자 두 개가 놓여있었고, 교관은 안쪽의 의자에 가서 앉았다.

“앉아.”

교관의 말에 유은설도 가만히 앉았다.

“일단 해명부터 해야겠지.”
“무슨 해명을…”
“조용히 해. 일단 첫 번째 나는 너를 죽일 생각이 없었어.”
“그러면 어제 활부터가 문제 아닌가요?”

유은설은 어제 교관이 아무 망설임도 없이 활시위를 놓는 모습을 보고 소름이 끼쳤다.
생도를 죽인다는 거부감조차 없어 보였던 그녀였다.

“그건 한설화가 막았잖아.”
“한설화가 아니었으면…”
“한설화가조금씩 다가오는 것 못 봤어? 애초에 걔가 막을 수 있었던 것도 속도가 그렇게 빠르지 않아서였어.”

유은설은 교관의 말에 놀라서 눈이커졌다.
한설화가 막을 것을 알고 화살을 쏘았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었다.

“한설화가 그런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한설화는 그럴 거니까.”
“그런 애를강간하신 거예요?”
“강간?”

이미경 교관은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듯 어깨를 으쓱하며 유은설의 말을 부정했다.

“그게 강간이 아니라고요?”

유은설은 그런 교관의 움직임을 보고 기가 막혔다.

“설화가 그렇게 말했어?”
“그건…”
“아니지?”

유은설은 교관이 하는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유은설이 한설화에게 들은 말은 간섭하지 말라는 말뿐이었으니까.

“당사자가 아니라는데, 은설이 네가왜 참견일까?”
“그건, 누가 봐도 강간이잖아요. 뺨을 치며, 싫어하는 행동을 시키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세요?”
“걔가 먼저 날 유혹했어. 나는 잘못이 없는걸?”

교관의 말은 그저 자기합리화에 불과했다.

자신은 잘못한 것이 아니라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행동이었다.

유은설은 그런 교관을 노려봤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잘못이 없다고요?”
“여자랑 숲에 단둘이서들어갈 거면 그 정도는감수했어야지.”

교관은 자신이 아무 잘못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교관의 생각에서는 잘못되었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다.

강간이라는 행동은 잘못되었지만, 한설화와 성관계를 갖는것은 강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미 그녀의 생각에서는 한설화를 강간했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설화랑 처음 관계를 가진 다음 날 설화가 나한테 다가와서 한 말이 뭔 줄 알아?”

유은설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분명히 처음 관계도 정상적이지 않았을 것이다.

“‘심한 말 해서 죄송해요’였어.”
“죄송하다고?”
“설화도 자신이 먼저 잘못한 것을 알고 있는데, 제삼자가 와서 그러는 건 아니지 않아?”

유은설은 교관의 말을 듣고 정신이 혼란스러웠다.
그렇지만 금방 정신을 잡았다. 한설화는 그런 사람일 거니까.

자신이 잘못하지도 않았음에도 사과를 먼저 건네는 그런 바보 같은 사람이었으니까.

유은설은 자신의 팔목에 걸려있는 시계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이 진심이라고 생각하세요?”
“진심이던, 아니던 내가 상관할 필요가 있나?”

유은설이 생각하기에도 한설화의 성격은 등쳐먹기 딱 좋았다.

사과하지 않아도 될 일에 사과하고, 그에 대한 보상을 한다.

상대가 강하게 말하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일  같았다.

“제가 설화를 설득하고  거예요.”
“맘대로 해. 그때까지 내가 열심히 먹어줄게. 아마도 너한테 갈 때쯤에는 내 냄새가 진하게 배지 않았을까?”

교관의 말에 유은설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당장 들을 가치조차 필요 없는 말이었다.


**

정신은 점점 더 이상해져만 갔고, 의식은 이미 심해에 잠수해놓은 느낌이었다.

깊은 물 속에서 오랫동안 숨을 참고 있는 느낌이었다.
숨을 쉬고 싶어도, 어떤 힘이 내 머리를 짓누르고 있었다.

몸이 부력 때문에 자연스럽게 상승하려고 해도, 그 힘 때문에 상승하지 않았다.
나의 의지에 반하는 힘에 무력하게 숨을 참고 물속에 가만히 있었다.

숨이 막혀 코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고, 입은 자연스럽게 벌려져 기침하고 있음에도 짓누르는 힘은 더욱 커지기만 했다.

“설화야, 무슨 일 있어?”
“응? 아니 없어.”

옆에서 김세연이 나한테 말을 걸었다.
평소와는 달리 자연스럽게 웃음이 지어졌다.

이유는 간단하게 파악할  있었다.
평소에는 내 머리에서 외치는 목소리가 밖에 나와 있기 때문이다.

뒤에서  목을 조르고, 귓속에 목소리를 속삭이는 존재는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원래라면 잠을 자거나, 머리를 흔들면 없어질 것들이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유은설 때문인 걸까.’

심한 억측인 것 같다.
그녀에게 책임 전가를 하려는 내 생각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그리고 그 책임을 다시 나에게로 돌렸다.
내가 잘못한 일이었으니까 나에게 책임이 있었다.

“왜 나한테 심한 말 했어?”

책임을 나한테 돌리자 유은설의 목소리가 나한테 들렸다.
또한, 목을 조르는 느낌이 더 세졌다.
단순한 착각임을 알고 있음에도 실제로 목을 조르는 느낌이었다.

이 정도는 참을 만했다.
공부했을 때도 스스로 목을 졸라 정신을 차리곤 했다.

유은설과 교관이 같이 나가는 모습을 보고 따라가고 싶었다.

둘이서 무슨 얘기를 할지 궁금했다.

나에 관한 얘기일까?
어쩌면 유은설도 나를 같이 강간하자는 말을 할 수도 있었다.

내가 심한 말을 했으니 그럴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지만 따라가지 않았다.
나에게는 그럴 자신감도 없었고, 그런 말을 들으면 정말로 힘들 것만 같았다.

그래서 따라가지 않았다.

유은설과 엮이는 일이 되도록 없게 하고 싶었다.

목을 옥죄는 느낌은 그녀에 대한 나의 죄책감을 드러내는 것과 동일했으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그녀를 피했었다.

평소처럼 활동하니 유은설을 만날 일이 없었고, 나의 생활은 평소와 같이 흘러가려고 했었다.

“안녕.”

내 앞에 유은설이 나타났다.

풀숲에서 튀어나오는 몬스터마냥 갑작스럽게 나의 눈앞에 나타났다.

치료실에 가는 중이었다.

오늘은 치료실에서 일하기 힘들 것 같다고 말을 하러 가는 중이었다.

가는 길에 골목에서 그녀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그녀는 웃음기 하나 없는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맞이했다.

나는 그런 그녀를 못  척하고 지나가려고 했다.

“어디 가. 얘기  해.”
“어제 한 말은 미안해. 근데 진심이었어.”

나에게 더 이상 간섭하지 말라는 말은 진심이었다.

생각으로 되뇌인 말은 하룻밤 허상과 같았다.

이루어지지 않을 것을 알고 있으니, 그날로 머릿속을 비웠다.

“정말로 말  할 거야?”
“응.”
“그러면 시계는 왜 준 건데?”
“그건… 병원비 때문에.”
“검색해보니까 병원비가 훨씬 넘던데?”

그녀의 말이 맞았다.

시계의 값은 병원비를 훌쩍 넘었고, 나는 그 자리에서 안 사고 나올 수는 없어서 산 것뿐이었다.

“나머지 가격은 그냥 선물이라고 생각해.”
“선물? 너는 선물로 170만 원을 그냥 주는 거야?”
“그건…”
“네가 생각하기에도 말이  되지?”

그녀와 말할수록 내 죄책감은 커져만 갔다.

죄책감이 커져간다는 소리는 목을 조르는 힘이 더 커진다는 소리와 같았다.

“케흑- 콜록-”

나도 모르게 기침이 나왔다.
허리가 숙여지고 기침을 하자 유은설이 다가왔다.

“괜찮아?”

자연스럽게 어깨에 감싸여 오는 그녀의 손이 느껴졌다.

그런 손을 내 손으로 쳐냈다.

“아… 미안. 괜찮아.”
“정말?”
“미안…”
“내가 지금네 탓을 하는 게 아니잖아.”

그녀는 내 눈을 보고 정확하게 말했다.

자신의 말의 진심을 더하는 듯한 눈길에 고개를 돌려 눈을 피했다.

“왜 피해?”
“부담스러워.”
“내가?”
“응.대체 왜 나한테 관심을 가지는 거야?”

그녀는 내 말에 섣불리 대답을 못 했다.

아마 자신이 할 말을 생각 중인 것 같았다.

그녀는 나와는 달리 상대를 존중할 줄 알았다.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는 것은 좋은 습관이었다.

대부분 사람들도 알고 있는 상식과도 같았다.

그렇지만 그렇게 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

대부분은 속에서 나온 말을 뇌에 올려보내지 않고 입에서 내뱉는다.

“그냥 관심을 가지면 안 돼?”
“그런 사람은 세상에 없어.”

‘그냥’이라는 말만큼 거짓스러운 말이 없었다.

대부분의 ‘그냥’에는 숨겨진 의미가있었다.

좋은 의미가 숨겨져 있을 수도 있었고, 나쁜 의미가 숨겨져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나쁜 의미가 숨겨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좋은 의미라면 그저 입으로 말하면 되니까.

“왜 없다고 생각해?”
“……”

나한테 그냥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나를 싫어했으니까.

처음에는 그런 호의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되돌아오는 것은 싸가지가 없다는 말뿐이었고,  뒤로는 믿지 않았다.

“네 앞에 서 있는 나를 예외라고 생각해 주면 안 될까?”
“그러기엔…”
“알고 있어. 네가 할 말.”

내 뒤에 서 있는 것은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너무 오랫동안 그녀와 얘기했던 것이 문제가  걸까.

다시금 시작된 환청에 그녀와 그것의 목소리를 구분할 수가 없었다.

“나는 네가 싫어.”
“네가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도 알고 있어.”
“왜 나한테 그런 말을  거야?”
“아마 정신병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
“찐따주제에 감히 나를 내쳐?”
“주위에 도움이 있다면 조금 나아질  있지 않을까?”

“닥쳐.”

앞과 뒤에서 시끄럽게 들려오는 말에 구분할 수가 없었다.

어떤 누가 말하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정신병을 알고 있다는 말이 그것의 말인지, 유은설의 말인지 헷갈렸다.
나한테 나쁜 말을 하는 것도, 좋은 말을 하는 것도 헷갈렸다.

고개를 숙여 귀를 막았지만, 유은설의 발소리는 똑똑히 들렸다.
그리고 내 눈에 그녀의 신발이 보이고, 나를 안았다.

 번 느껴보지 못한 따뜻함에 그녀를 밀치지 못했다.

그리고 그녀의 입이  귀로 가까워져 숨이 내 귀를 따뜻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한마디뿐이었다.

“괜찮아.”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