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7화 〉유은설 (37/120)



〈 37화 〉유은설

“괜찮아.”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에 그제야 고개를 들 수 있었다.

그녀와 나의 키는 비슷했다.
평소에 크다고 듣지도 못했고, 원래 세계에서도 평균 남자의 키보다 약간 낮았다.

키는 내 자신감을 갉아먹는 요소 중 하나가 되었다.

고개를 들자 그녀의 눈과 정확히 마주쳤다.

“정신을 차렸네.”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목을 조르는 느낌은 말끔히 사라졌다.

“아니야.”
“내 눈을 똑바로 마주하고있잖아.”

고개를 돌리려고 했지만, 그녀는  뺨을 잡고 나를 보게 했다.

“이건…”
“똑바로 쳐다봐. 내가거짓말을 하는 것 같아?”
“……”

그녀의 검은 눈동자는 나의 모습을 담고 있었다.
눈동자 속에는 나의 얼굴이 담겨있었다.

이상하게도 그녀의 눈에 비치는 나는 검은 형체가 아니었다.
어릴  봤던 나의 모습이었다.

성장한 나의 얼굴을 보지 못했었다.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했지만, 사진을 찍어도 보지 못했었다.

남의 입에서 듣는 평가는 정확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평가는 남의 기분을 상하지 않기 위한 말이었으니까  똑같았다.

‘잘생겼다.’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믿으면 기분이 이상하게 들떴으니까.

“이제 보여?”
“응.”

정확하게 보니 예전과 다를 것이 별로 없었다.
내 모습 그대로였다.

달라진 점을 찾자면 볼살이 약간 빠진 것뿐이었다.

“사실 너의 손목도 알고 있어.”

그녀가 내 손목을 언급하자, 자연스럽게 왼 손목으로 눈길이 갔다.

내 수치가 남아있는 장소였다.

“여길?”
“응.”
“언제부터?”
“예전부터.”

그녀의 말은 내게 혼란을 가져왔다.

자해의 흔적을 알고 있으면, 나를 이상하게 쳐다볼 것이 분명했다.

“이상하지 않아?”
“안 이상해.”
“이상할 텐데…”
“이제는 더 이상 하지 마.”

그녀의 말에 나는 손목을 내려다보는 중 걸리는 것이 느껴졌다.

유은설은 나를 껴안고 있는 상태였다.
우리 둘은 몇 센티미터 되지도 않는 거리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가장 신경 쓰이는 점은…’

“저기 이제 좀 멀어지는 게 어떨까.”
“왜?”
“그게… 그… 가슴…”

유은설의가슴이 나의 가슴을 짓누르고 있었다.
느낌이 이상했다. 그녀는 내 말을 듣고 약간 떨어졌다.

“아…”
“미안해.”
“아니야. 내가 더 미안하지.”

그녀와 약간 어색한 기류가 흐르고,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유은설이었다.

“그… 이제 나 믿는 거야?”

유은설의 말에 나는 섣불리 대답하지 못했다.
당장 뇌에서 여러 개의 대답을 내놨지만,  대답 중에서 섣불리 선택할 없었다.

나는 유은설을 믿고 있을까?
모든 것을 믿지 못했던 내가 그녀의 말을 믿을 있을까?

30초 이상의 정적이 흐르고, 대답을 내놓을 수 있었다.

고개를 양옆으로 흔들었다.
명백한 부정의 표시였다.

“미안.”
“아직은 힘들지?”

유은설은 나를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면 안 될까?”
“부탁?”
“교관과의 관계를 끝내자.”

그녀의 부탁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건…”
“너도 알고 있잖아. 교관은 지금 뭐가 잘못되고 있었는지도 몰라.”

교관과의 관계를 끝마치게 도와준다는 유은설의 말은 유혹적으로 들리기만 했다.
그렇지만,그러면서도 두려움이 느껴졌다.

그녀는 이제야 내가 세워놓은 벽을 하나씩 뚫기 시작했다.

몇 개정도 밖에 뚫지 못했을지라도, 지금 나에게 누구보다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두려움은 더욱 크기만 했다.

이렇게까지 가까운 사람을 위험에 처하게  수는 없었다.

그녀와 약간 가까워졌을 뿐이었다.
내 의견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신고해도 결국은 주위 사람들이 처벌받을 것이다.
그럴 바에는 나만 아픈 것이 나았다.

“미안.”
“왜?”

유은설은 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되물었다.

“네가 손해 입을 수도 있잖아.”
“그럴 일 없어. 요즘 정말로 피해자 신원이 보장된다니까?”
“믿을 수 없어서 그래.”

유은설의 말을 믿지 말라는 생각도 지금 억누르는 중이었다.
전보다 기세가 약해졌을 뿐이지, 끝없이 생각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나를 봐서라도  번만 더 믿어주면  될까?”
“응. 너 때문에 더.”

나에게 가깝게 다가온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다.
오히려 셀 수 없을만큼 많을 것이다.

외부의 벽은 그만큼 약했으니까.
칭찬 한마디로도 나는 금방 문을 열어 그들을 맞이했다.

하지만 그들은 언제까지고 나를 이해해주지 않았다.
금세 질려 밖으로 나가는 사람이 많았다.

유은설도 결국은 지칠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들어온 사람에게는 친절하게 대한다.

어쩌면 그 속에 있는 나를 찾아달라는 목소리를 내는  같았다.

그렇기에 교관을 신고한다는 선택지는 이제 아예 없어졌다.

교관을 신고한다면어떤 식으로 흘러가게 될까?
아마 교관은 끝까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게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유은설의 이름이 나올 것이고, 결국은 유은설도 피해를 볼 것이다.

“나때문에?”
“응.”
“나는 상관없어.”
“거짓말.”

자신을 희생하며, 남을 도와주고 싶은 사람은 없다.

자신의 전 재산을 기부하는 사람은 대부분 노인이었다.

노인은 왜 전 재산을 기부할까?

아마 그들 중 대부분의 본심은 하나일 것이다.

기부하면죽어서 좋은 곳에 갈 수 있지 않을까?

한국의 신화가 만든 헛소리를 믿고 싶을 것이다.

그러면 젊은 자산가 중에서 재산을 기부하는 사람은 어떤 심정일까?

그들은 그저 자신이 잘나간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내가 이 정도를 기부해도 이 정도가 남아있어.’

이런 식의 주장일 것이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권력욕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의 위에 군림하고 싶은 욕구였다.

그것이 사회를 만들었고, 지위를 만들었고, 왕을 만들었다.

그렇다면 기부하는 사람이 자신의 재산을 전부 잃으면 어떻게 될까.

위에 있다가 떨어지는 것만큼 비참한 일은 없었다.

기존에 하늘을 날던 새가 날개를 잃으면 자살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유은설도 이와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잃어본 경험이  없을 것이다.
실제로 잃어보면 나를 원망할 것이다.

나는 그런 상황을 만들기 싫었다.
그렇기에 교관을 신고하지 않을 것이다.

신고하지 않으면 불행한 건 나 혼자니까 상관없었다.

“거짓말이 아니야.”
“지금은 아닐 거야.”
“나중에도 아닐 거야.”

그녀는 천천히 다가오며 나의 감정에 호소했다.
그렇지만당황하지 않았다.

이렇게 그녀의 얼굴에 진심이 담겨있을 때가 가장 조심해야 할 때였다.

사람의 어제와 오늘은 달랐다.
나의 고집대로 밀고 나가야 했다.

“못 믿겠어?”
“응.”

나머지 말은 믿어도,  사건만큼은 아니었다.

답답해도 욕을 해도 좋았다.

“어떻게 하면 믿을 건데.”

그녀의 말에 혼란이 왔다.

“하란 대로  해줄게. 그러니까 같이 신고하자.”
“나를 뭘 믿고?”

그녀의 주장에는 증거가 없었다.
나를 왜 믿는지조차 증거가 부족했다.

내가 그녀를 믿는 이유는 이해가 갔지만, 그녀는 이해가 안 갔다.

“나도 그랬던 때가 있었으니까.”
“……”
“혼자서 자책하고, 채찍질하며 앞으로 나아가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그녀의 말을 듣자 생각났다.

알바와 공부를 병행해가며 힘든 일을 하는 그녀가 생각났다.
결국은 각성을 한 뒤에 학교에 입학한 것, 자신의 능력이 부족함을 느끼고 훈련을 하던 것도 다 알았다.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 낮에는훈련하고, 밤을 새워서공부하는 것이 그녀의 일상이었으니까.

그래서 더 느꼈다.
그녀는 나를 짓밟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마음 약하게 내가 그녀를 붙잡고 있으면 안 된다고 소리쳤다.
앞으로의 운명이 그녀에게 더욱 혹독하게 몰아칠 것이니까.

“혼자 길을 나아가는 것보다는 같이 나아가는 게 나을지도 몰라.”
“경우가 달라. 지금이랑은.”
“아니 같아. 결국은 자기를 갉아먹는 일이니까.”

“남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는 일이잖아.”
“내 말 좀 들으라니까. 요즘은 달라.”
“똑같아.”
“설화야…”
“미안. 역시 안 되겠어.”

나는 그렇게 말하고 치료실로 향했다.

유은설도 더 이상 나를 붙잡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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