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새로운 무기
유은설은 끝없이 나를 설득했고, 나는 완강히 거부했다.
나의 마음이 흔들리는 일은 없었다.
그만큼 마음을 굳혔었다.
교관은 여전히 숲에서 나를 탐했다. 하지만, 전과는 달리 폭력을 심하게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잘했다며 머리를 쓰다듬는경우가 많았다.
그녀의 행동이 정당화될 수 없었지만, 일 년만 참자고 생각하며 버텼다.
지금 시각은 정오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해가 머리 위에서 나를 강하게 내리쬐고있을 시간이었다.
보통 이 시간에는 교실에서 수업을 듣고 있어야 했다.
빠져나온 이유는 간단했다.
‘무기를 바꿔야 해.’
내가 들키게 된다면 이유는 간단할 것이다.
생도용 활을 사용하는 것.
이미 본 사람이 두 명이나 있었지만, 앞으로 볼 사람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수업은 아프다고 하면서 빠져나왔다.
김세연과 유은설이 부축해준다면서 나오려고 했지만, 내가 거부했다.
지금 내가 할 짓은 당당히 할 수 있는 짓이 아니었다.
가면과 옷의 능력을 사용할 곳은다 정해져 있었다.
옷의 순간 이동 능력은 하랑의 벽을 넘을 때와 게이트로 들어갈 때.
가면의 투명 능력은 게이트에서 나올 때 사용해야 했다.
본래 소설에서 다른 사람이 들어갔기에 그녀를 제쳐야 했다.
설화형 던전이 열리는 곳을 알고 있는 것은 많지 않았다.
정말 유은설과 그 조연들이 같이 겪는 던전이 아닌 이상 알지 못했다.
그럼에도 내가 정확히 이 활을 아는 이유는 하나였다.
유물 탐구 동아리에서 박물관에 갔을 때 정확히 설명했었다.
‘이 활이 천근 활이래.’
‘이게 한국 최초의 신화 등급 유물이구나.’
‘우리가 하랑에 있을 때 열렸지?’
‘그랬지. 우리도 느꼈잖아.’
천근 활은 등장부터 심상치 않았다.
인적이 없는 산속에서 게이트가 생겼다면 모르겠지만, 시내 한복판에 생겨 모든 사람이 알아봤다.
전조 현상은 간단했다.
마치 해가 두 개가 뜬 것처럼 날씨가 더워졌다.
늙고 병든 사람뿐만 아니라 멀쩡한 젊은 사람마저 화상에 걸릴 만큼 뜨거운 햇빛이 내렸다.
이상 현상이 나타난 후 정부는 바로 외출 금지를 내렸고, 그 이상 현상은 한 시간이 약간 넘은 시점에서 막을 내리게 됐다.
‘그때는 정말 무슨 일 나는 줄 알았다니까.’
‘아마 이 활이 나타난 이상 현상이겠지.’
가끔 던전이 등장하면서 이상 현상을 동반하는 경우도 있었다.
대부분 게이트가 그렇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소수의 경우는 그랬다.
위치가 소설에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누가 이 던전에 들어가는지 알고 있었다.
A급 헌터가 사람들을 몰며 도시를 탐방하고 있던 중에 생긴 일이었다.
아마 지금쯤 시내에 가장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을 찾으면 될 것이다.
“누나 멋져요!”
“누나 잘생겼어요!”
주위에서 중저음의 남자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한둘이 아니라 대다수 남자들이 여자를 따라다니고 있었다.
아마 앞장서서 걷고 있는 사람이 던전에 들어갔다가 나온 사람일 것이다.
내가 엄한 사람의 물건을 뺏는 것이 아니다.
‘내가 들어가지 않으면죽겠지.’
그녀는 던전에 들어가고 나온 모습은 정확히 소설에 쓰여있었다.
‘온몸에 창을 꽃은 상태로 나왔다.’
‘그런 다음에 유물의 이름과 던전 속에서 있었던 일을 얘기하고 죽었다고?’
‘배신이라니…’
그녀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아마 정보라도 남기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내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세 가지였다.
그녀가 게이트에 나오고 나서 치유를 해 살리는 방법.
그녀가 게이트에 나오고 나서 활을 양도받는 방법.
주위에 각성자가 없어 양도하지 못해 박물관에 보관되어있던 것이다.
그렇다면 주위에 각성자가 있다면, 그녀는 당연하게도 유물을 양도하고 죽을 것이다.
남은 한 방법은 직접 던전에 들어가는 방법이다.
A급 헌터가 그런 이유로 나온 것에는 모두 이유가 있었다.
박물관에 남아있던 대로만 한다면, 목숨이 위험할 이유도 없을 것이다.
이미 마음은 굳혔다.
나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따라갔다.
다른 시민들에게 정신이 팔려서 눈치를 못 채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냥 나를 위험 요소로도 생각하지 않은 걸까?
던전이 열리는 시간은 생각보다 금방 왔다.
가장 먼저 시작된 것은 참을 수 없는 더위였다.
모두 들 몸이 가려운 듯 긁고 있었고, 어르신들은 이미 쓰러져 호흡 곤란이 오고 있었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나는 맨 앞에 있는 여자한테로 달려갔다.
그리고 옷의 능력을 사용하며 그녀의 앞으로 이동했다.
“어?”
그녀의 어깨를 밀치며, 나는 뒤쪽부터천천히 던전으로 진입했다.
넘어지지 않고, 그 자리에서 중심을 잡은 것까지보자 나는 편안히 던전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
들어오자마자 보이는 것은 아무 건물도 없는 평지였다.
주위에 사람도 보이지 않았고, 그저 이 거대한평지에 나만이 온전히 서 있었다.
하늘을 바라보니 원래 세상과는 다르게 한 개의 해가 아니라 두 개의 해가 떠 있었다.
많이 덥기는 했지만, 버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조금 걸어 절벽으로 도착하니 파도 소리가 들렸다.
파도가 바위와 부딪쳐 찰싹찰싹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제법 듣기 좋은 소리라 그 소리를 들으며 기다렸다.
아마 내가 이곳으로 온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설화형 던전이 나를 이상한 곳으로 보낼 리는 없으니 당연했다.
그런 파도 소리를 들으며 기다리고 있자원래 들리던 소리 말고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약간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며, 곧이어 수많은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쓰고 있던 가면과 옷을 벗어서 인벤토리에 넣어놨다.
지금 만날 사람은 이것을 쓰고 만나면그 자리에서 목이 썰릴 수도 있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네.’
많은 사람을 이끌고 몇 명은 가마를 지고 이곳으로 오고 있었다.
주위에 있는 바위 뒤에 숨으며 그 광경을 구경했다.
요란한 등장과 함께 가마에서 나온 것은 한 여자였다.
“짐이 하늘 위에 떠 있는 두 개의 해 중 하나를 바다로 떨어트릴 것이다.”
그녀는 가마에서 나오고 나서 하늘을 바라보더니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치고, 주위에 그녀를 보좌하고 있는 신하들은 표정이 좋지 못했다.
그녀는 절벽에서서 가만히 하늘을 응시했다.
“천근 활과 천근 살을 대령했습니다.”
나는 그 말에 뒤에 있는 활과 화살을 쳐다봤다.
가면을 잠시 끼니 시야가 확대되며 활의 모습이 보였다.
활은 평범한 활처럼 금속으로 되어있지 않았다.
천근 활의 묘사는 거의 없다시피 했으니 아마 여러 신화가 섞여 완성된 모습일 것이다.
나무가 마치 유전자 모양처럼 엮여활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무라…’
신단수?
우리나라 신화와 관련된 나무를 생각하니 신단수밖에 생각나지 않았다.
단군신화에 등장했음에도, 소별왕 신화와 섞인 것처럼 보였다.
화살도 평범한 철 화살이 아니라 나무 화살이었다.
끝이 뾰족하게 되어있음에도 별로 살상 능력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저거로 해를 뚫을 수 있을까?’
소설의 내용을 생각하면, 저 화살만 있으면 훨씬 편하게 해를 떨굴 수 있다고 했다.
실제로 아무 능력이 없는 소별왕이 쏴도 해에 닿을 정도라고 했다.
그녀는 소별왕이 천근 살 세 개를 전부 쏘고 나서 시도해볼 수 있었다고 했다.
내가 할 일은 그녀가 한 개의 천근 살을 소비하고, 나머지 두 개의 천근 살은 내가 쏴야 했다.
“느낌이 좋구나.”
그녀는 활을 들고, 몇 번 흔들어보더니 말했다.
활을 쥐어본 적이 없어 보였다.
그렇기에 해를 떨구지 못한 것이 분명했다.
“잘 봐라!”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천근 살 하나를 활시위에 걸고 해를 향해 쏘았다.
엄청난 속도로 해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물론, 현대의 사고방식으로 접근한다면, 무슨 짓을 해도 해는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곳의 사고방식은 달랐기에 화살로 해를 떨어트릴 수 있었다.
이 설화는 창세신화로, 활로 태양을 쏘는 사양(射陽) 설화이다.
대별왕과 소별왕의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 속에서 대별왕은 성품이 좋고, 소별왕은 그녀와 반대의 성품을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자만이 넘치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성격이었다.
지금쯤이면 결과가 나왔을 것이다.
모두 한마음 한뜻으로 해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해는 갈라지는 흔적조차 없었다.
“그… 그럴 리 없다!”
소별왕은 부정하며 천근 살을 하나 더 꺼내오라고 명령했다.
이제 내가 나설 때가 됐음을 알리는 소리였다.
나는 그녀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주위 신하들이 많이 있어서 접근이 힘들었지만, 그 밖에서 나는 큰소리로 외쳤다.
“소별왕 폐하, 소신이 저 해를 떨어트릴 수 있습니다!”
소신이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내가 아는 말은 그뿐이었다.
내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주위에 신하들은 전부 나를 쳐다봤다.
대부분의 시선이 말하는 바는 똑같았다.
‘미친놈인가?’
대충 이런 뜻일 것이다.
소별왕은 성군이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다.
아마 폭군이라는 칭호가 어울릴 것이다.
그녀의 앞에서 대놓고 의견을 낼 수 있는 신하는 몇 없을 것이다.
“방금 말한 자가 누구냐! 당장 짐의 앞으로 데리고 오너라!”
그녀는 화난 듯 나를데리고 오라고 명령했다.
여기까지는 성공이었다.
어차피 그녀가 나를 좋게 봐줄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주위에 갑옷을 입은 사람이 나의 양어깨를 부여잡고 소별왕의 앞으로 데려갔다.
“흐음, 그대인가?”
나는 바닥에 머리를 박고 그녀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예. 맞습니다.”
“얼굴을 들거라.”
나보고 얼굴을 들라고 명한 뒤 머리를 들어 그녀의 얼굴을 확인했다.
“흐음… 미가 뛰어나구나.”
그녀는 나를 보고 말했다.
“남자의 몸으로 해를 떨어트릴 수 있다고 말한 건가? 이 활이나 들을 수 있을고.”
그녀는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마 활조차 들지 못할 것이라생각하는 것 같았다.
실제로 저 활을 들고 해를 향해 쏘는 것은 힘들 것이다.
한 번 정도 쏠 수있다고 해도 전투에서는 사용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유물은 그렇게 만들어지지 않았다.
“소신이 활을 들 기회를 한 번만 주십시오.”
활을 들어서 증명하기만 하면 됐다.
아마 여기서 활을 들 수 있는 사람은 그녀밖에 없을 것이다.
“흐음… 그대가 들지 못하면 어쩔 생각이지?”
“들 수 있습니다.”
“좋다!”
그녀의 말을 듣고 속으로 환호성을 외쳤다.
천근 살 두 개를 내가 온전히 쏘아 해와 달을 맞추기만 하면 됐다.
“대신 들지 못한다면 내 밤 시중을 들어야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폐하.”
들지 못한다는 가정은 없었다.
그녀는 활을 바닥에 내려놓고, 나보고 들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일어서서 나는 가볍게 활을 들었다.
주위에 신하들의경악이 들렸고, 앞에 서 있는 소별왕도 놀란 듯 나를 쳐다봤다.
“이럴 수가.”
“이제 해를 쏘아도…”
“짐도 힘들게 들어 올린 것을 어찌 남자가 그리도 쉽게 들 수 있는가.”
그녀의 말에나는 침묵을 지켰다.
혼자 신나서 천근 살을 들어 올려서 해를 쏠 뻔했다.
천근 활을 손에 넣었다고 당장 게이트가 열리는것은 아니었다.
그럴 수 있다면 진작에 활을 갈취해서 게이트로 나갔을 것이다.
소별왕의 입에서 나에게 천근 활을 수여한다는 말이 나와야 했다.
“짐이 그대에게 천근 살을 쏠 기회를 주겠다. 한 번 기대에 부흥해보거라!”
“황송하옵니다. 폐하.”
내가 본 것은 사극이 전부였다.
이런 말투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별 마디를 하지 않는 것을 보니 대충 맞는 것으로 보였다.
천근 살이 나에게 가져와 주었고, 가볍게 들어 활시위에 걸었다.
그리고 장담할 수 있었다.
천근 살은 내 마력을 끝없이 빨아들이며 기존보다 더 단단한 화살이 완성되었다.
한눈에 봐도 느낄 수 있었다.
바닥이 약간 패인 상태에서활시위를 놓자 약간 뒤로 밀리며 화살이 해로 날아갔다.
그리고 정확하게 해는 바다를 향해 떨어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