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미로형 던전
활에 마력을 불어넣자, 활의 부피가 커지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부피가 늘어났다고 해서 무겁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활에 화살을 하나 걸고, 마력을 불어 넣었다.
눈을 감고, 감각에 내 몸을 맡겼다.
─탁 탁 탁 탁
점점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여러 개의 발소리가 내귀를 간지럽혔지만, 눈은 뜨지 않았다.
오히려 활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활과 화살에 들어가는 마력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두렵지만,떨지는 않았다.
어둠 속에서 푸르게 빛나는 화살이 앞을 뚫어줄 것이라 믿고 있었다.
─캬아아악!
괴성이 바로 앞에서 들렸다.
나는 그 소리와 함께 화살을 놓을 수 있었다.
─콰직
눈앞에서 가죽을 꿰뚫는 소리가 들리고, 몸에 무언가가 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지금까지 시끄럽게 울리던 발소리와 괴성은 들리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눈을 떠 상황을 살폈다.
눈에 보이는 곳까지 화살이 지나간 곳에 서 있는 괴수는 모두 반으로 갈라져서 죽어있었다.
그리고 그 옆을 지나가는 괴수는 풍압때문인지 벽에 날아가 박혀있었다.
정확히는 죽어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대단하네.”
내가 했음에도 이 광경이 믿기지 않았다.
물론, 내 몸의 상태도 그렇게 좋은 것이 아니었다.
마력의 7할이 빠져나간 느낌이 났다.
아마 방금과 같은 공격을 하려면 꽤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일단 앞으로 걷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상황을 파악하려면 다른 사람을 만나야 했다.
소설 속에서 없던 내용이라 머릿속에서 혼란이 왔지만, 금방 생각을 정리했다.
“던전 속이라면… 마왕이겠지.”
현재의빌런 집단은 악마와 계약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나중이라면 모르겠지만, 현재는 악마의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은 상태였다.
던전에 간섭할 수 있는 것은 마왕뿐이었다.
저번의 상황도 그렇고, 이번에도 마왕의 계략이 분명했다.
“그렇지만… 갑자기?”
마왕은 이렇게 급하게 행동하지 않는다.
내 화살에 한 방에 나가떨어질 정도의 괴수라면, 당연히 유은설도 분명히 살아남을 것이다.
저번 동아리 때 게이트라면, 분명히 내 개입이 없었다면 유은설은 죽었다.
소설 속에서도 검이 없었다면 죽었을 것이다.
“마왕은 ‘미래를 보는 걸 엿보았다’라고 했나.”
소설 속에서 마왕이 어떻게 등장인물이 나오는 곳마다 간섭하는 지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었다.
유은설은 당연히 그것을 물어봤다.
그리고 마왕은 저렇게 대답했다.
‘미래를 ‘본다’도 아닌 ‘엿본다’였다.’
그렇기에 이번 습격은 더더욱 말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미래가 바뀌었다?’
이렇게까지 급하게 나오는 것이 이해가 되었다.
미래가 바뀌었고, 마왕이 경각심을 느낄 만큼 급해졌다.
그렇게까지 생각나자 천천히 걷는 것을 멈추고,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결국, 예언의 마지막에 보이는 것은 유은설임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유은설에게 당연히 더 강한 적이 갈 것이다.
‘유은설이 위험하다.’
여기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태평하게 걷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두 갈래의 갈림길이 나오고, 가장 먼저 오른쪽으로 갔다.
최대한 빨리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칼로 피육이 갈라지는 소리와 괴수의 괴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그쪽으로 달려가자 운이 좋게도 유은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운이 좋네.’
유은설이 서 있는 곳은 나와 비슷했다.
뒤는 막혀있는 상태였고, 앞에는 괴수가 가득 차 있었다.
그녀는 구석에 자신의 몸을 들이밀고, 최소한의 공간만을 확보하고 있었다.
구석에 있자 그녀와 싸울 수 있는 적은 한정되어 있었다.
한 번에 세 마리 정도만 그녀에게 달려들 수 있었다.
숨을 고르는 것을 보니, 대부분의 괴수를 물리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 번의 칼질로 두 마리의 괴수를 썰고 있었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것은 큰 놈 한 마리뿐이었다.
외견은 오크였지만, 저번에 만난 놈보다 한치수는 더 커 보였다.
아마 모종의 계략으로 진화된 것이 분명했다.
오크는 아직 나를 알아차리지못했고, 유은설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유은설도 그 오크에게 신경 쓸 시간은 없었다.
당장 앞의 괴수에게 집중하기 바빠 보였다.
나는 활을 오크에게 겨냥하고, 활의 능력을 사용했다.
손잡이 부분의 나무가 나의 손을묶었고 끝부분에서 길게 뻗어져 나온 나무는 바닥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
오크가 유은설에 중간쯤 도착했을 때, 나무는 더 이상의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유은설은 오크가 다가온 것을 그림자로 눈치챈 것 같았다.
갑자기 커다란 그림자가 그녀를 덮치자 그녀는 칼질을 한 번 하고 약간 위를 쳐다봤다.
오크와 눈이 마주침과 동시에 나와도 눈을 마주쳤다.
내가 보낼 수 있는 신호는 끄덕임밖에 없었다.
그녀는 오크와 나를 번갈아 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내 활에 뭉쳐있는 마력을 보고 가능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될지는 모르겠지만, 내 모든 마력을 활에게 쏟아부었다.
처음에서 쓰고 남은 3할의 마력과 오면서 약간 충전된 마력을 쏟아부었다.
그리고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처음과 비슷한 위력이 되겠다.’
처음의 화살은 최대한 주위에도 영향을 끼쳤다면, 지금은 한 마리에게 일점사격을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유은설은 더 이상 오크에게 시선을 주지 않고 당장 앞의 괴수만을 베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크가 들고 있는 배틀 액스가 크게 들어 올려지기 시작했다.
배틀 액스가 오크의 어깨쯤 갔을 때 나는 화살을 놓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눈을 뜨고 있어 화살의 궤적을 정확하게 볼 수 있었다.
“대박…”
마력은 궤적을 따라 파란색의 흔적을 남겼고, 날아가면서 있는 적들을 관통하고 있었다.
그 옆을 걸어가고 있는 괴수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
그저 화살의 궤적에 서 있는 적에게만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정확하게 오크의 머리를 꿰뚫었다.
높게 들어 올렸던 배틀 액스는 뒤를 향해 떨어져 뒤에 서 있는 괴수들을 죽였고, 괴수의 몸도 뒤로 넘어지기 시작했다.
파랑 색의 흔적은 없어지지 않고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린 듯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유은설은 자신의 머리 위에 화살이 꽂히는 것을 보고 순간 움찔거렸다.
오크가 죽으며 잠시동안의 틈에 오른손으로 나에게 엄지를 치켜세워줬다.
그다음부터는 일방적이었다.
나는 소량의 마나를 담은 화살을 날리며 뒤의 괴수를 정리하기 시작했고, 유은설은 구석에서 나와 괴수를 죽이고 있었다.
대부분의 정리가 끝나고 나는 활의 능력을 해제했다.
해제하는 시간이 조금 걸리는 동안 유은설이 나를 향해 다가왔다.
“여기서 또 보네요.”
유은설의 말에 끄덕임으로 대응했다.
말은 하지 않았다.
가면을 쓴 나와 쓰지 않은 한설화와는 철저하게 분리해야 했다.
“고마워요.”
유은설은 그렇게 말하고, 나를 지나쳐 앞으로 향했다.
뒤를 돌아 그녀를 따라가려고 했다.
갑자기다리에 힘이 풀린 것처럼 유은설은 넘어지려고 했다.
활은 이미 바닥과 분리되어 있었기에 활을 내려놓고 그녀를 붙잡을 수 있었다.
“아아… 죄송해요.”
그녀는 지나가던 중 다리의 힘이 풀린 것이 부끄러운 것 같았다.
얼굴이 빨개진 상태로 나를 향해 말하고 있었다.
“저기, 저 좀 도와주실래요?”
유은설의 도움 요청에 나는 끄덕였다.
어차피 그녀를 따라가게 된다면, 다른 생도들도 만날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최대한 빠르게 가야 했다.
나와 똑같은 물량의 괴수들을 만났다면, 지금 버티고 있는 사람들이 곧 무너질 수도 있었다.
오크는 유은설한테만 간 것처럼 보였다.
만약, 다른 생도들한테도 오크가 갔다면 이미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오크까지 본 입장에서 확신할 수 있었다.
‘미래가 바뀌었다.’
나의 행동이 유의미한 결과를 불러일으켰고, 그것이 미래를 바꾼 것이 분명했다.
“고마워요. 그나저나 정체가 뭐에요?”
“……”
“안 알려줄 거 알고 있었어요. 활은 바뀌었네요? 저번에는 생도용 활이더니.”
그녀의 말에그냥 앞으로 걷기만 했다.
그녀의 옷에는 칼과 이빨로 긁혀 구멍이 나 있었다.
“그거 유물이죠? 저도 유물이 있는데.”
그녀의 유물은 당연히 출입할 수 없었다.
동아리라면 몰라도, 실습에서는 입장 단계에서 막혔다.
아마 사인검이 있었다면, 내가 도와주지 않았어도 됐을 것이다.
“하하… 저만 말하니까 기분이 묘하네요.”
“그쪽은 저만 따라다니는 거예요? 위험할 때마다 꼭 등장하네요.”
“말 한마디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니에요?”
그녀는 끝없이 나를 향해 말을 걸었다.
“사실 저지금 되게 불안하거든요.”
지금까지 반응하지 않고 있었다.
반응을 해봤자 그녀의 의심만을 증폭시킬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녀가 불안하다는 말에 그녀를 쳐다봤다.
유은설은 나를 보면서 걷고 있었기에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그저 가면의 눈을 쳐다본 것뿐이겠지만, 나에게는 그녀의 눈이 정확하게 보였다.
“사실 지금 저 다리 때문에 걷고 있는 건데, 같은 팀에 힐러가 한 명 있어요.”
“……”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내 얘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전투 능력이 없다고 볼 수는없지만, 뛰어나다고 볼 수 없어요. 아마 저한테 온 것의 반 정도만 왔어도 죽었을 거예요.”
“……”
“알고 있어요. 던전에 들어온 이상 목숨을 걸어야 하겠죠.”
그녀는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남의 입에서 나에 대해 나오는 것은 처음이었다.
늘상 생각하곤 했다.
투명인간이 되어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나의이야기를 듣는 것에대해 상상했다.
나쁜 말도 듣고 싶었고, 좋은 말도 듣고 싶었다.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온 나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다.
나쁜 말이라면 그 모습의 반대로 할 것이었고, 좋은 말이라면 기분 좋게 받을 것이다.
지금 눈앞에서 나의 상상이벌어지고 있었다.
유은설은 내가 한설화인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걔는 조금 달라요.”
다르다는 말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평생 상처만을 받고 살아온 것 같아요.”
“……”
“그래도 저는 옆에 하늘이가 있었는데, 걔는 조금 더 불행해 보였어요.”
잠시 말을 쉬고, 그녀는 계속해서말을 이어나갔다.
“사실 처음에는 손목에 있는 흉터가 뭔지 궁금했거든요.”
“흉터의 정체를 알고는 계속 신경 쓰였고요.”
“그래서 죽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금 죽는다면 인생의 좋은 점을 알지 못할 것 아니에요.”
그녀의 말에 나는 망치로 머리를 세게 한 대 맞은 것만 같았다.
그녀가 내게 가지고 있는 감정은 ‘동정’이었다.
싫은 감정은 아니었다. 동정도 결국은 위로의 일종이라고 볼 수도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그녀가 나에게 느끼는 것은 다른 것처럼 보였다.
그저 길바닥에 앉아있는 노숙자처럼 보인 것이었다.
그런 노숙자에게 오백원짜리 동전 하나를 던져주는 것과 같았다.
그러고 나서 자신의 친구들에게 말할 것이다.
그것도 자랑스럽게.
‘내가 불쌍해 보이는 아저씨에게 오백 원이나 줬어.’
그녀에게 나는 그런 존재였다.
그녀의 트로피 중 하나가 되는 것이었다.
‘쓰레기에게 인생을 알려주다.’
그녀에게는 이렇게 적힐 것이다.
나와 그녀는 동일 선상에 서 있지 않았다.
유은설의 밑에는 내가 있었고, 나는 그녀가 던지는 오백 원을 받아먹으며 희망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그녀와 나를 동일하게 놓고 있었다.
‘나랑 유은설이 동일하게 서 있을 수가 없겠지.’
되뇌일수록 나의 마음은 초라해져만 갔다.
알고 있었음에도 마음은 아파져 오기만 했다.
가면을 쓰고 있지 않았다면, 내 눈이 정확하게 보였을 것이다.
이런 추한모습을그녀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가면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