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화 〉미로형 던전
“그러면 너랑 유은설이랑 똑같은 줄 알았어?”
나의목소리였다.
고개를 돌려 유은설을 쳐다봤지만, 그녀는 천천히 길을 걷고 있었다.
나는 유은설에게 다가갔다.
정확히는 하나를 묻고 싶었다.
가면을 벗은 한설화라면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녀의 손을 잡고 손바닥에 글자를 써 내려갔다.
“갑자기…”
그녀는 말을 멈추고 내가 쓰는 것을 천천히읽었다.
“돔정?… 아. 걔한테 느끼는 감정이 동정이냐고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내가 개같이 써도 찰떡같이 알아먹었다.
이상하게도 이럴 경우의 눈치는 빨랐다.
“어쩌면 그랬겠네요.”
그녀의 말을 듣고, 울적한 기분이 올라왔다.
“근데 지금은 아니에요.”
내가 고개를 갸웃하자, 그녀는 계속해서 이야기를 풀어냈다.
“처음에는 그냥 같은 팀이어서 챙겨줬어요. 나와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걔가 지금은 너무 저에게 깊게 들어와 버린 것있죠?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의 손을 잡고 다시 하나를 써 내려갔다.
“친구? 친구냐고요? 저는 친구라고 생각해요. 근데 걔는 저를 친구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녀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듣고 싶어서 고개를 갸웃했다.
“저에게 거리를 둔다고 해야 하나? 사실은 걔가 안 좋은 일을 당하고 있거든요.”
“아…! 이 말은 다른 곳에 가서 하지 마세요.”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다음 이야기를 들었다.
“막을 수 있음에도 걔는 자꾸 억지를 부려요. 그것도 제가 다칠 수 있다면서.”
나는 그녀의 손에 새로운 단어를 써나갔다.
“그런 점이 싫냐고요? 음… 약간 어렵네요. 질문이.”
“싫지는 않은 것 같아요. 사실은 듣고 싶어요. 걔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어떤 길을 걷고 있는지.”
“그리고 제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어요. 지금은 너무 힘들어 보이거든요.”
그녀는 상상하며 약간 우울한 분위기를 풍겼다.
“걔가 제 이야기를 들어주면 좋을 텐데…”
“근데 저희 좀 많이 걸은 것 같은데, 이제 좀 뛸까요? 여기까지 오면서 사람도 한 명도 안 만났고, 제가 말한 애를 빨리 찾아야 할 것 같아요.”
유은설은 발목을 돌리며 나에게 얘기했다.
끄덕이며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여러 번의 갈림길을 만났지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달리면서도 나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저기 있잖아요. 제가 이런 말 한 건 비밀이에요.”
“밖에서는 이런 얘기를 말할 사람이 없어서 그래요.”
“당신이라면 뭔가 믿을 만한 것 같아서 그랬어요.”
뛰어다니면서 그녀의 말에 대해 생각했다.
나의 머리는 그 어느 때보다 맑았다.
맑다기보다다른 생각 없이 그녀의 말만이 맴돌았다.
그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었다.
그녀는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에게 나는 다른 의미였다.
어쩌면 자신을 투영한 사람으로서.
어쩌면 친구로서.
어쩌면 불쌍한 애로서.
일단 괴성이 들리기 시작하고,우리는 그쪽으로 달려갔다.
오래 달리는 동안 처음 들은 사람의 목소리와 괴성이었다.
─탕! 탕!
총에서 나오는 발포 음이었다.
그리고 던전에 들어온 생도 중에 총기를 쓰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우리는 그쪽으로 달려가니 윤예진과 싸우고 있는 괴수를 볼 수 있었다.
윤예진과 싸우고 있는 괴수는 평범해 보이지 않았다.
“저거 저한테 온 오크랑 똑같은 애 맞죠?”
그 오크보다 약간 더 커다래 보였다.
윤예진은 거리를 유지하며 사격하고 있지만, 별다른 상처를 입히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씨. 총탄만 제대로 된 거였어도.”
우리는 그녀보다 한참을 뒤에 서 있었다.
“혹시 저한테 쏜 거랑 똑같은 위력으로 쏠 수 있어요?”
나는 그 말에 몸속의 마력을 확인했다.
그리고 1할에서 약간 넘는 마력만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고개를 양옆으로 저으며 부정의 표시를 했다.
“흐음… 그러면 어느 정도에요?”
“반?”
다시 부정을 표했고, 그녀의 표정에는 당혹감이 보였다.
“반의반…?”
그제야 나는 끄덕일 수 있었다.
“혹시 거리가 더 가까워지면, 아까보다는 세겠죠?”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러면 최대한 다가가서 한 방에 끝내도록 하죠. 어차피 저희 무기로는 하루 종일 쳐야 죽일 수 있을 것 같아요.”
분명히 오크의 몸에는 상처가 많았다.
그 상처만 집요하게 공격한다면, 쓰러질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 상처를 파기 전에 체력이 떨어질 것이다.
그렇기에 나에게 기대를 거는 것이다.
“윤예진!”
유은설이 윤예진을 크게 부르고, 윤예진은 거리를 벌리며 우리 쪽을 쳐다봤다.
“유은설…? 그리고 옆에는?”
“알려 하지 말고, 저 사람을 가까이 붙여야 해.”
“저거 흠집도 안 나. 탄만 제대로 된 거였어도. 쓰레기 같은 탄만 보급해주네.”
윤예진은 총탄을 원망하며, 나를 쳐다봤다.
“저 사람이면 달라.”
“그렇긴 하겠네. 무기가 뭔가 달라 보이잖아.”
윤예진은 내 무기를 가지고 자신감을 가지는 것처럼 보였다.
말하는 도중에도 그녀의 머리 위에는 배틀 액스가 휘둘러지고 있었다.
그녀는 유연하게 피하며, 우리에게 말했다.
“그래서 계획이 그게 끝이야?”
“저 사람이 쏘는 동안 못 움직이는데 그사이에 지키기만 하면 돼.”
“뭐?”
윤예진은 유은설을 미친 사람을 보는 것처럼 쳐다봤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조금 힘든 소리긴 했다.
당장 움직이지 않으면 머리 위로 날이 꽂혀도 이상하지 않은 싸움터에서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을 지키라는 소리였다.
“멀리서 쏘면 안 돼?”
“그러면 안 죽어.”
“더럽게 약하네.”
윤예진은 나를 한 번 째려보며 얘기했다.
“이미 한 놈 잡고왔거든.”
“저런 놈이 또 있었어?”
“응.”
유은설은 어느새 앞으로 달려나가 시선을 분산시키고 있었다.
나도 뒤에서 자리를 잡았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자리였다.
오크가 당장 열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닿을수 있는거리였다.
그 자리에서 나는 활의 능력을 사용했다.
전과 똑같은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단지 자세를 잡을 때까지 시간이 조금 걸릴 뿐이었다.
“야 저거 맞아?”
“맞아.”
“나무에서나오는 것만 한 세월이네.”
“입으로 싸워?”
윤예진은 나에게 뭐라 했지만, 유은설의 말에 다시 전투에 집중했다.
나무가 다 연결되고 마력을 불어넣기 시작했다.
전과는 달리 적은 양의 마력이었기에, 금방 준비가 끝나려고 했다.
“장난 아니네.”
윤예진은 천근 활 주위에 둘러진마력을 보고 감탄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을 본 것은 윤예진뿐만이 아니었다.
오크도 나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전과는 달리 가까운 거리였기에 오크가 알아차리고 다가오기 시작했다.
“큰일 난 거 아니야?”
윤예진은 그렇게 말하고 오크의 얼굴에 총알을 마구 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급소에 쏘는 총알은무기로 막거나, 피했던 오크였다.
그렇지만 지금만큼은 전부 무시하고 나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
오크의배틀 액스가 나를 향해 내려왔다.
그렇지만 도망가지는 않았다.
애초에 도망갈 수도 없었고, 도망칠 필요도 없었다.
“야!”
윤예진의 말과 함께 유은설의 검이 배틀액스와 맞닿았다.
유은설은 검을 비틀어 궤적을 변경했고, 그 결과 날이맞닿으면서 오크의 공격은 내 옆을 향해 내려 찍혔다.
─끼기긱긱
─쿵
굉음이 울리며, 바닥에 큰 소리가 울렸다.
오크가 다시 들며 가로로 다시 공격하려 했지만, 준비는 이미 끝난 상태였다.
내 앞에 서 있는 유은설이 무릎을 구부렸다.
눈앞 시야를 가리고 있던 유은설이 비키고, 오크의 머리가 정확하게 보였다.
그리고 활시위를 놨다.
화살이 날아가 오크의 머리통을 꿰뚫고 지나갔다.
“대박이네.”
윤예진은 옆에서 감탄을 내뱉었다.
오크는 옆을 향해 쓰러지고, 나는 천천히 능력을 풀었다.
유은설도 어깨가 나갔는지, 바로 주저앉아 휴식을 취했다.
윤예진은 유은설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물었다.
자기 딴에는 조심스럽게 물은 것 같았지만, 내 귀에는 전부 들렸다.
“저기 뒤에 있는 사람 누구야?”
“나도 몰라.”
유은설은 크게 대답했다.
“크게 말하면 어떡해.”
“우리 안 해쳐. 오히려 우리 편일걸.”
“사람을 너무 쉽게 믿는 것 아니야?”
윤예진은 의심의 눈빛을 못 지우고 있었다.
사실은 이게 정상이었다.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유은설이 비정상이었다.
능력이 풀리는 동안, 유은설은 오크가 지키는 돌에 다가가 탈출용 게이트를 열었다.
이제는 누가 오든 탈출할 수 있을 것이다.
“저기당신! 고마워요.”
윤예진은 나에게 거리를 두고 감사 인사를전했다.
물론, 자신의 무기에는 손을 놓지 않았다.
활의 능력이 풀리고 자유로운 운신이 가능했다.
고개를 끄덕임으로 그녀의 인사를 받았다.
“알겠다고 말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됐어. 나랑 몇 번 만난 적 있는데 말 절대 안 해.”
유은설이 윤예진을 말렸다.
“아니 뭐 저런 사람이.”
“저런 사람도 있어야지.”
“너도 나갈 거지?”
윤예진의 말에 유은설은 고개를 저었다.
“왜?”
“구해야 할 애가 있어서.”
아마도 나를 찾는 것이 분명했다.
“하아… 네가 그렇게 말하면 나도 못 나가겠잖아.”
“나 혼자서도 충분해.”
“다리나 떨지 말고 말해.”
연속된 전투에 유은설의 몸은 정상이 아니었다.
뒤에서 활만 깔짝깔짝 쏜 나와는 달리 몸의 피곤이 축적되었을 것이다.
나는 유은설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다.
정말로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었다.
“왜 그러세요?”
그녀의 손에한 글자씩 써 내려갔다.
지금까지와는 달리꽤 긴 문장이었다.
“그 아이가… 신고해도… 괜찮?”
“…”
“아…”
“왜 뭔데?”
윤예진이 옆으로 와서 물었다.
나의 허벅지에 이상한 금속이 닿았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아마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보호 본능일 것이다.
“우리 둘이 이야기좀 하게 떨어져 줘.”
“재미없게…”
윤예진은 유은설의 말에 얌전히 멀리 떨어졌다.
“음… 사실 걔만의 걱정이에요. 저는 신고해줬으면 좋겠고…”
“피해라고 말해봤자, 저에게는 아무 피해도 없을 거예요. 사건이 알려진다면 저보다는 걔가 문제겠죠.”
손바닥에 두 글자를 적었다.
“정말이에요.킥킥… 당신한테 이런 말을 하는 게 웃기네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일텐데.만약 나중에 만나게 되면 전해주세요.”
그녀는 중간에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다시 던전 속으로 들어가려는 그녀를 들쳐업었다.
“잠시만요!”
힘이 빠진 그녀는 나에게 반항을 했지만, 지금으로써는 내가 더 힘이 강했다.
그리고 게이트 속으로 몸을 던졌다.
“당신 뭐예요.”
그러자옆에 가만히 서 있던 윤예진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사실 저는 대충 알고 있거든요.”
그녀는 방금 허벅지와는 달리 내 명치에 총구를 가져다 댔다.
이 정도 가까움이라면 무조건 몸에 구멍이 하나 생길 것이다.
“당신 최근에 이상 현상이 일어날 때, 던전에 들어간 사람이죠?”
아마 내가 밀친 헌터가 길드에 말했고, 그것이 윤예진의 귀에도 들어간 것 같았다.
“아마 활이 그 보상인 것 같은데.”
부정할 생각도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이번에 나가도 안 들킬 자신이 있겠죠.”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에 가득 찬 얼굴로 말했다.
“그렇지? 한설화?”
순간 놀랐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당장 몸을 밀착한 윤예진이 알아차릴 것이 분명했다.
그녀가 몸을 갖다 댄 이유도 내 놀람을 알아차리기 위해서가 분명했다.
“흐음… 반응을 보니 또 아닌 것 같고… 어쨌든 내가 의심을 하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으면 좋겠어.”
윤예진은 반쯤 한설화임을 확신하는 것 같았다.
저번 엘프 사건 이후로 그녀의 의심이 많이 늘어났다.
그것이 이런 식으로 결과가 나올 줄은 몰랐다.
“그러면 나도 들어가야겠지? 유은설한테는 잘 전해줄게.”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 게이트 속으로 들어갔다.
나는 뒤를 돌아 다시 던전 속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