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3화 〉미로형 던전 (43/120)



〈 43화 〉미로형 던전

던전 속으로 들어가서 멀리서 괴수와 싸우고 있는 생도가 보이면 구경했다.

간섭하지는 않았다. 멀리서 화살이 날아오고, 모르는 사람이나타나면 경계할 것이 뻔했다.

죽을 정도의 위기가 아니면 나타나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미 여러 명의 생도가 뭉쳐 집단을 만들어냈고, 그 집단은 안전하게 미로를 탐험하고 있었다.

내가 할 일은 하나였다. 천천히 오면서 하나하나 화살표를 새기는 것이었다.

화살에 마나를 실어 바닥에 화살표를 그었다.

─기이익

이상한 소리가 났지만, 참기로 했다.

“여기 화살표가 있는데?”
“앞에 먼저  사람 건가?”

화살표를 발견한 생도들이 화살표대로 가는 것을 보고, 다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가던 중 내가 아는 얼굴이 보였다.

단  걸음 차이지만,  있으면 그녀도 나를 볼 것이었다.

가면과 옷을 집어넣었다.
활은 진작에 넣었고, 인벤토리를 차지하고 있던 생도용 활을 꺼낸 상태였다.

가면을 벗자 원래 보이던 앞이 깜깜해지며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설화야!”

나의 시야에는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지만, 김세연의 시야에는 내가 보였다.

몇 발자국만 앞이었어도, 가면을 쓴 모습을 그녀가 봤을 것이다.

“어디?”

내가 말하자, 앞에서 김세연이 달려와 나를 안았다.

“걱정했어.”

그녀의 옷에는 여러 상처가 많았다.
남들과는 달리 안전하게 사냥을 해온 것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쳤잖아.”
“괜찮아. 너는 어디 안 다쳤네?”
“미안…”
“사과하라고  거 아니야. 무사해서 다행이야.”

김세연도 유은설과 똑같이 나를 걱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

‘걱정했어?’

목 끝까지 올라온 말이었지만, 참아냈다.
묻고 싶었지만, 하지 않았다.

“다른 생도는?”

내가 먼저 물었다.

“일단 지나가라고 했어. 무리에 네가 없어서, 따로 찾는 게 확률이 높잖아.”
“그럴 필요 없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니…”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어쩌면 인정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 마음을 내가 깊은 곳에 숨겨 잠갔기에 깨닫지 못했을 뿐.

그녀도 나를 걱정해주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남과는 다르게 나에게 많은 관심을 주고 있었다.

겉옷을 벗어 그녀에게 덮어줬다.

“응?”
“옷이 많이 해졌잖아.”
“괜찮아. 설화야 너 입어.”

그녀가 거절하려는 것을 막고, 내 옷을 벗지 못하게 붙잡았다.

“고마워.”

내가 그녀에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말이었다.

사실은 정말로 할 말이 많지만, 사족을 덧붙여서 말하고 싶지만, 이것밖에 말할 수 없었다.

“아니야. 그것보다 정말 다행이다.”

나한테 처음으로 인사해줘서.
나한테 꾸준히 말 걸어줘서.
나를 아껴줘서.

“고마워.”

앞의 말을 전부 붙이고 싶었다.

이런 내가 미웠다.
감사 인사도 제대로 못 전하는 사람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이제 됐어. 그만해.”

그녀는 얼굴이 빨개져서 나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근데 우리 이제 어떡하지?”
“여기 화살표가 있는데 누가 새겨놓은  아닐까?”
“그렇네?”

내가 새겨놓은 화살표를 가리키자 그녀는 신기한 듯 쳐다봤다.

우리는 화살표를 차례차례 따라가기 시작했고, 내가 새겨놓은 대로 탈출용 게이트에 잘 도착할 수 있었다.

“누가 여기 있는 괴수를 잡았나 보네.”
“그러게.”

내가 잡았지만, 평온하게 대답했다.

우리가게이트로 나오자,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였다.

이런 상황을 한마디로정리할 수 있었다.

‘개판이네.’

유은설은 교관에게 따지고 있었고, 나머지 사람들은 치유를 받고 있었다.

윤예진은 교관과 유은설의 중간에 서서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던전에 교관들이 미리 배치되어 있을 것이다.

전과는 달리 한눈에 볼 수 있는 던전이 아니다 보니, 미리 교관들이 들어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전부 내보낸 것이 마왕이었다.
당연히 처음 겪는 입장에서 그들이 무엇을 겪었는지 알 수 없었다.

윤예진은 나를 발견하고 유은설의 어깨를 톡톡 쳤다.
그리고 유은설이 뒤를 돌아 나를 발견하고, 달려왔다.

“어디 다친 건 아니지?”
“응.”

김세연과 똑같은 반응이었다.

유은설의 마지막 말이 생각났다.

잘못되어도 괜찮다는 그녀의 말이 생각났다.

지금까지는 믿지 않았지만, 남에게도 말할 정도라면 믿을 수 있지 않을까?

나에 대한 그녀의 생각을 들었더니, 더 믿음이 생긴 것만 같았다.

우리까지 나오고 나서  무리가 더 빠져나오니 게이트가 닫혔다.

아마 안에 더 이상 사람이 없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분명했다.

사람 수를 세어보니  인원수가 맞았다.

죽은 사람이 없다는 소리에 다들 안도의 한숨을내쉴 수 있었다.

사실 위험한 괴수 두 마리는 해치웠다.

“오늘은 빠르게 해산한다! 다들 기숙사에 가서 편히 쉬도록!”

이미경 교관은 그렇게 말하며, 우리를 되돌려보냈다.

메시지가 한  도착해, 내용을 보니 오늘은 오지 말라는 이미경 교관의 말이었다.

아마 교관끼리 상의할 것이 많아 보였다.

게이트에서 방출된 것은 그들에게도 중요한 일이었다.

**


침대에 누워 오늘 있었던 일들에 대해 생각했다.

“첫 번째, 미래가 바뀌었다.”

이건 확실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긍정적인 신호는 아니었다.

결국, 미래를 보는 사람을 찾아야 했다.
또한, 결국은 미래에 추가된 것은 나뿐인  같았다.

아마 유은설은 당연할 것이고, 마왕의 앞에 서 있는 것은 나 혼자인 것 같았다.

아마 김세연과 윤예진도 포함되어 있다면, 우리 둘한테만 괴수 무리를 보낼 리가 없었다.

교관과의 일에 대해서는 다시 생각해야 할 것 같았다.
사실, 신고에 마음이 거의 기울어 있는 상태였다.

유은설의 진심이 담긴 말에 내 마음은 이미 고개를 돌린 상태였다.

그렇지만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는 불안함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띠링!

핸드폰의 메시지 소리가 들렸다.
교관이 보낸 것인 줄 알았지만, 메시지의 주인은 의외였다.

“윤예진이 갑자기?”

생각해보니 갑자기는 아니었다.
그녀는 나를 가면  남자라고 확신을 짓고 있는 상태였다.

지금, 이 상황에서 안 나가면 더 의심을 받을것이 분명했다.

**

“자리에 앉아.”

약속 장소에 나가니 윤예진이 의자에 앉아있었다.
건너편의 의자를 빼 앉자 윤예진이 얘기를 꺼냈다.

“언제까지 숨길 거야?”
“응? 뭐가?”
“하…! 어디다 놨어. 가면, 옷, 활.”
“그게 무슨 소리야.”

엘프  데리고 다니는 것이 아니었다.

그때 무슨 생각으로 윤예진을 데리고 다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과거의 내가 미워지는 순간이었다.

아마 엘프를 데리고 호텔에 침투한 것이 그녀에게 빌미를 준 것이 분명했다.

“너밖에 없단 말이지. 사람을 시켜서 주위를 찾아봐도, 그런 건 찾을 수도 없고.”
“나는 네가 무슨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그녀의 계획성에 소름이 돋을 것 같았다.
아마 전에 엘프를 숨겨 놓은 것처럼 유물들을 주위에 숨겨 놓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인벤토리가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들켰겠네.’

그런 생각까지 들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소리 계속할 거면 이만 갈게.”

원래 이런 식으로 밀어붙이면, 나였다면 대답을 할 것이다.
그렇지만 가면은 정말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이었다.

윤예진은 내가 나갈 때까지 쳐다봤지만, 순전히 심증일 뿐이었다.

유물이 나온 것도 아니었고, 가면 속의 내용물을  것도 아니었다.

기숙사로 돌아가면서 생각을 정리했다.

소설 속에서 나오는 사건은 모두 정리했다.
대처법도 모두 깨달은 지 오래였다.

하지만, 소설과 다른 점이 문제였다.

저번에 유은설 앞에 나타난 두 마리의 괴수, 이번 던전의 변화.

앞으로 달라질 점은 충분히 많았다.

악마의 빠른 등장도 유심히 여겨야 했다.
전과는 달리 빠르게 나타날 수 있었다.

기숙사로 돌아가 이불을 머리끝까지올렸다.

안 좋은 생각만 나던 전과는 달리 기분 좋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이런 좋은 영향을 끼친 것은 김세연과 유은설의 영향이 클 것이다.

그렇지만 금방 기억을 지웠다.
혼자서 이렇게 붕 떠버리면  됐다.

기분이 좋아질 자격도 없는 쓰레기라고 되뇌며, 좋은 기분을 없애기 시작했다.

내가 기분이 좋으면 분명히 실수할 것이다.
전에 윤예진과 밖에 나갔을 때처럼 말도 실수할 것이다.

기분 좋은 티를 내면 안 됐다.
지금, 이 상태라면 잠도 제대로 못  것이다.

늘 하는 상상을 하며 잠을 청하기 시작했다.

내용은 간단했다.

내가 죽는 상상이었다.
죽고 나서 아무도 장례식에 오지 않는 꿈.
장례식이  열린 지조차 의문이  정도로 사람이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자 눈을 감고 있음에도 머리가 어지러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영정 사진 속에는 제대로  내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사진의 윗부분은 찢겨있었고, 어느새 장례식을 장식하는 장식품은 대부분은 엎어져 있었다.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늘 여동생의 모습이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녀의 모습은 똑똑히 보였다.

그녀는 불만이 있는 것처럼 미간이 찌푸려져 있었다.

그제야 잠을 청할  있었다.
여동생의 얼굴을 보자, 역시 나는 구제할 수 없는 쓰레기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기분 좋은 상상을  것이 죄책감으로되돌아왔다.

죄책감은 나를 잠에 빠져들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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