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5화 〉헤어짐 (45/120)



〈 45화 〉헤어짐

“이상하지 않아?”

가장 먼저 이상함을 느낀 건 유은설이었다.

그녀는 교관이 한순간에 관둔 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있었다.

교관이라는 직업이 끊는다고 바로 끊을 수 있는 직업이 아니었다.

“이제 나갔잖아.”
“너무 편안하게 나갔잖아.”

유은설은 교관이 죄의 값을 정당하게 치르지 않고 나간 것을 분하게 여기고 있었다.

신고할 수는 있었지만, 이번에는 내가 말렸다.
그녀는 당연히 반대했지만, 내 의견이 더 강했다.

그녀가 죗값을 치르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아마 자신의 죄를 스스로 고백하고 나갔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느껴졌다.
마지막 뒷모습이 그렇게 보였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교관이 바뀐 것에 불만을 가진 몇몇이 나타났다.

오히려 그쪽이 더 불안했다.
나의 탓이  것을 알면 그들이 어떤 식으로돌변할지 몰랐다.

되도록 나 혼자서만 욕먹으면 좋을 것이다.
지금 옆에 붙어있는 김세연과 유은설도 같이 욕을 먹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유은설과 나만 알고 있는 사건일지라도, 어디선가 구멍이 있을 수도 있었다.

우리 둘 다 눈치채지 못한 아주 작은 구멍 사이로 소문이 퍼져나갈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내가 그녀들을 멀리할 것이다.
소문의 당사자와 붙으면 안 좋은 소문은  친구에게도 옮겨 간다.

마치 감기와도 같은 감염성이었다.

“하아… 그래 말해서 뭐하겠어. 이미 당사자는 하랑을 떠났는데.”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 치료실로 향할 준비를 했다.

그녀와 교실에서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은 꿈같은 일이었다.
그저 치료실에 가기  이런 식으로 대화하는 것이었다.

유은설이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다가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나는 치료실로  수 있었다.

그리고 치료실 앞에서 별로 듣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들었다.

당연히 그들도내가 오는 것을 알고 있을것이다.
마치 나를 기다리는  보였다.

그러면서도 말은 멈추지 않았다.

“한설화싸가지 없지 않냐?”
“그러니까. 자기가 뭐라도 되는 듯 행동하잖아.”

여자의 목소리도 아니었다.
남자 둘이서 치료실 앞에서 얘기하고 있었다.

그 둘은 계속해서 이야기를 해나가기 시작했다.
그것이 나에게 좋은 내용은 아니었다.

“얼굴 좀 된다고, 나대는 것 보니까 금방 떨어져 나가겠네.”
“알고 보면 원조교제 하는  아니야?”
“그럴 수도 있겠네. 알고 보니 교관도 걔가 신고해서 보낸  아니야?”
“그러면 완전 창남이네.”

 둘은 웃으면서얘기하고 있었다.
내가 오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둘이 웃음꽃을 피워내고 있었다.

둘의 말에는 사실이 하나도 담겨있지 않았다.
그저 추측뿐으로 얘기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저 남을 까기 위한 수단이 중요했고, 자신들을 위해 희생할 인형이 필요할 뿐이었다.

조건에 부합한 인형은 나로 선택되었고, 내가 부정한들 저 소문이 곧 사실로 퍼져나가게  것이다.

“능력도 변변찮은 놈이 여자 좀 꼬시겠다고 하잖아.”
“벤츠녀라도 오길 바라는 거지. 김치남이지 완전히.”
“그러고 보니  주위에 여자  명 붙어 다니지 않아?”
“유은설과 김세연이었던가?”

그 둘의 이름이 들리자마자 내 가슴에 큰 질량을 가진 추가 떨어진 느낌이 났다.

제일 싫어하는 상황이 다가왔다.

당장 달려가서 그 둘은 상관없다고 말하고싶었다.
그렇지만, 한 발자국도 움직여지지 않았다.
다리는 얼어붙은   자리에 고정되어있었고, 가슴은 그와 반대로 열정적으로 두근거리고 있었다.

“알고 보면 양다리 걸치는 거 아니야?”
“진짜 개 쓰레기네.”

둘은 웃으며 얘기하고 있었다.

벽 뒤에서 얘기를 숨어 듣는 나와는 달리 둘은 즐거워 보였다.

남을 깎아내리며 자신을 치켜세우고 있었다.

그것이 자신과 꼭 동등한 존재가 아니었어도 됐다.

어떤 부자는 힘들게 사는 사람을 욕하는 경우도 있었다.

힘들게 사는 사람들한테 열심히 살지 않는다고 충고를 한다.
하지만 그들 중에는 열심히 사는 사람도 있었다.

그저 기회를 잡지 못해 그 자리에 남아있는 사람도 있었다.

부자는 그들에게 충고 아닌충고를 해주면서 자신을 치켜세운다.
그들과는 달리 자신은 열심히 해서 이 자리에 올라올  있었다고 얘기한다.

나는 잘났고, 너네는 못났다.

이 한마디를 하지 못해 돌려 말하는 것이 현대인들의 일상이었다.

치료실의 문이 열리며, 내가 아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네 뒷담화 할 거면  들리는 곳에서 해라.”

치료실 교관은 나와서 그 둘을 내쫓았고, 나는 좀 더 깊숙한 곳으로 가서 그 둘이 보지 못하게 숨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다르게 행동했을까.
당당하게 나와서 그 둘에게 하지 말라고 얘기했을까?

그 둘이 불평불만을 하면서 복도에서 나왔다.
그 둘이 보이지 않을 때쯤에 나는 치료실로 들어갈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것은 치료실 교관이었다.

교관은 내 얘기를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교관도 나에 대해 나쁘게 생각할지도 몰랐다.

“너도 들었지?”

교관의 입에서 나온 얘기는  상상과 달랐다.

마치 내가 들은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내용이었다.

“정시에 오는 네가 둘의 이야기를 안 들었을 리가 없지.”
“……”
“걔네 때문에 안 들어오는 것 같아서 내쫓았어.”

교관은 알고 있다는 듯 얘기했다.

“원래 저런 건 사실 하나도 없는 거 알지? 너는 딱 사실만을 말하면 되는 거고.”

그는 조언을 해주고 밖으로 나갔다.

사실만을 말하라고했지만, 말할 자신이 없었다.

내가 그처럼 당당하게 살아간다면 몰라도, 지금은 자신이 없었다.

평소라면 다른 생각을 하며 시간을 때웠겠지만, 지금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천장의 구석을 바라보며, 그곳의 하얀 벽지의 무늬만을 보고 있었다.

“내가 잘못한 걸까.”

입을 벌리고 무늬를 살폈다.
아무것도 새겨져 있지 않은 하얀 벽지는 중간중간 주름만이 잡혀있을 뿐이었다.

둘의 이야기는 내 생각을 맴돌았고, 안 좋은 생각만이  뿐이었다.

인생사 새옹지마.

흔히 사람들이 많이 쓰는 용어였다.
주로 위로해줄 때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쁜 일이 있을 경우 다음에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반대로 해석할 수도 있었다.

좋은 일 다음에는 나쁜 일이 찾아온다.

인생은 늘 그랬다.

하나의 혹을 떨쳐내니, 다음 문제가 생겼다.

나에게는 강간보다 커다란 문제였다.

치료실 교관의 말처럼 해명하지 않으면 더 크게 자라난다.

“나대지 말걸.”

그냥 평범하게 교관과의 관계를 유지했으면, 상황이 달라졌을까.

“괜히 말해서 이런 상황이 벌어진 걸까.”

손은 점점 떨리기 시작했다.
종이컵을 잡은 손은 주체할 수 없이 떨리기 시작했다.

종이컵 안에 담겨있는 차에는 파동이 일어나 벽을 치고 있었다.

‘속이 안 좋네.’

당장이라도 토할 것 같았다.

밥을먹지도 않았는데, 위액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내려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난 다시 혼자가 되어야 하는 걸까.’
“분수에 맞지 않게 왜 그랬어.”

사람은 자신에게 맞는 곳을 찾아가야 했다.

자신의 분수에 넘치는 곳에 도달하게 되면 그 사람은 금방 내려오게 된다.
적응하지 못해서 금방 다른 사람들과 차이가 난다.

그 사이에서 도태되고, 결국은 자신의 원래 자리를 찾아가게 된다.

‘내 주제에 친구가 생긴 것이 기적이겠지.’
“당연하지.”

환청은 내 생각에 대답해주고 있었다.

“너는 누구야?”

허공을 보고 대답했다.
누가 봐도 미친놈 소리를 들을만한 행태였다.

그렇지만 그렇게 물어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이런 것에는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정말로 나를 상상 속에 가뒀을 때 나타나는 것이 환청이었다.

평상시에는 이명은 들렸지만, 환청은  들리지 않았다.

“결국, 상황이 이렇게 된다면 하나밖에 없겠지.”

모든 상황을 생각해봤다.
당연히 사건이 떠벌려지는 일도 생각했었다.

지금은 그와 달랐지만, 어쩌면 유사한 것일 수도 있었다.

“다시 혼자가 돼야겠지.”

그동안 즐거움을 맛봤다.

어쩌면 년 동안 맛보지 못한 즐거움을 단시간에 모두 느꼈다고  수 있었다.

다시 나는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

오르지 못할 산을 잠깐이라도 올라간 것뿐이었다.
내려가는 것은 쉬웠다.

꼭대기에서 달콤함을 맛봤으니 다시 쓴맛을 볼 때가 됐다.

“싫어?”
“아니.”
“그럴 줄 알았어. 염치가 있어야지.”

환청은 모두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이었다.
결국은, 내 의견이 포함된 소리였다.

“두렵다.”
“몇 번 관심을 맛보더니 배가 불렀네.”
“그렇지?”

그러고 나서 발소리가 들리고 나는 조용히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는 얼굴이 들어왔다.
어쩌면 반가운 얼굴일 수도 있었고, 어쩌면 오늘은 보기 싫었던 얼굴일 수도 있었다.

그런 혼합된 감정이 내 속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안녕. 심심해서 와봤어.”

유은설이었다.

정말 말 그대로 받아들여도 되는 걸까.
소문을 듣고 온 게 아닐까.

그녀가 삽시간에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나를 매도하는 모습이 상상됐다.

 자기한테 붙어서 안 좋은 소문을 붙게 하냐는 모습이었다.

다시 눈을 감았다가 뜨자, 환각임을 알려주듯 그녀는 웃으며 내 앞자리에 앉았다.

“무슨 안 좋은  있어? 손 좀 그만 떨어.”
“여긴 무슨 일이야?”
“그냥 차나 얻어마시려고.”

그녀의 말에는 거짓이 없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차를 타서 그녀의 앞에 내놨다.

그녀의 얼굴을 볼수록 죄책감이 불쑥불쑥 고개를 들었다.

‘지금 이 상황을 유지해도 되는 걸까?’

방금 전까지 마음을 먹어놓고 지금은 흔들리고 있는 내가 미웠다.

“차 맛있다.”
“그래?”

서로에게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옳았다.

지금은 아무렇지 않은 척 얘기하고 있지만, 나갈 때 말할 것이다.

이것이  마지막 욕심이었다.

그녀가 나갈 때까지만 이 사치를 누리자고.

“그러고 보니 나도 선물을 하나 줘야 할 텐데.”
“응? 갑자기?”
“이 시계 말이야.”
“아…그럴 필요 없어.”

그녀는 시계를 쳐다봤다가  얼굴을 쳐다봤다.

“근데 훈련은 어쩌고?”
“하하… 그냥 오늘은 집중이  돼서.”

그녀가 집중이 안 된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
 단련실에 시간 대부분을 소비하는 줄 알았다.

그녀에게 달라진 점이라면 나였다.
과대망상일 수도 있지만, 소설 속에서도 이 시간대에 밖을 나돌아다닌 적도 없었다.

그녀에게 나는 장애물이었다.
훈련도 방해하는 그저 거치적거리는 장애물이었다.

 무엇도도움이 되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며칠간 그녀의 훈련 시간을 방해한 것이었다.

지금이것을 깨달았다는 점이 문제였다.

“차 마셨으니까 다시 훈련하러 가볼게.”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은설아. 아니 유은설.”

나는 그녀를 불러 세웠다.

어쩌면 그녀의 얼굴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었다.

“응?”
“이제 우리 교관 일도해결했으니까. 그만 만나자. 부담스러워.”

그녀에게 말했고, 나는 끝까지 표정을 숨겼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