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시연회
다음 날 아침까지 뜬눈으로 밤을 보냈다.
기숙사에는 들어가지 않고, 그냥 밖을 멍하니 돌아다니기만 했다.
김종현에 대한 생각이 잠을 이겨냈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아침까지 돌아다니다가 교실에 처음으로 들어왔다.
유은설도 오지 않은 이른 시각이었다.
자리에 앉아 멍하니 앞을 바라봤다.
어제 있었던 일이 신기루 같았다.
교실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주위에는 아무도 남아있지않았다.
잘한 일이라면서 나를 다독여도, 심장에 텅 빈 공허함은 떠나가지 않았다.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에 이끌려 고개를 돌리자, 당연히 처음 들어온 사람은 유은설이었다.
허리를 굽히고, 의자를 당겨 고개를 책상에 박고, 잠을 자는 척을 했다.
눈을 감았지만, 온 신경은 주위의 소리에 집중되어 있었다.
─드르륵
의자가 땅에 끌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유은설이 자리에 앉는 소리가 들리고, 안심할 수 있었다.
이 기분이 안도인지, 슬픔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계속 엎드려 있는 것도 이상한 것 같아서 살짝 허리를 움직여 고개를 들었다.
유은설은 앞자리에 앉아있었기에 그녀의 손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이 시간에 와서 공부하는 것을 알고 있기에 다시 원래 자세로 돌아갔다.
그녀는 내가 없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가 공부하는 것을 멍하게 쳐다봤다.
유은설이 뒤를 돌아보는 불상사는 벌어지지 않았다.
곧이어 한 명씩 교실로 들어오기 시작하고, 나는 고개를 숙였다.
나머지 사람들이 들어올 때까지 계속해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누구를 쳐다보면, 그 사람과 엮일 것만 같았다.
모르는 사람을 쳐다보면 그 사람이 싫어할 수도 있었다.
고개를 숙여 내 의자를 만지작거렸다.
문이 열릴 때마다 들어오는 사람이누구인지만 확인했다.
김세연이 들어오고 그녀는 나를 지나치고 뒤로 향했다.
전처럼 나를 부르거나 하지 않았다.
내가 선택한 결과가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수업이 시작했음에도 나는 멍하니 앞만을 쳐다봤다.
오늘은 정신을 차리기 힘들 것 같았다.
**
수업이 끝나고, 약간 시간이 남았다.
원래 이 시간에는 뭘 했더라.
요즘에는 유은설과 대화했다.
교관의 일로 유은설과 이야기를 했다.
다들 단련실로 가는 분위기였다.
내가 단련실로 가면 원하지 않는 일이 나타날 것 같았다.
이미 다른 사람 눈에는 안 좋게 보일 텐데, 단련실은 그런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분명했다.
내가 갈 수 있는 공간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나는 평소대로 하기로 했다.
기숙사에 들어가서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는 유익한 활동을 할 예정이었다.
그렇게 기숙사로 가는 도중에 윤예진을 만났다.
그녀도 나를 발견하고는 나에게 다가왔다.
“뭐하러 가는 거야? 가면 쓰고뭐 얻으러 가나?”
윤예진은 여전히 나를 의심하고 있었다.
그냥 나를 가만히 뒀으면 좋겠지만, 이것마저도 내 업보였다.
“아니.”
“으음… 그래?”
나는 간단하게 대답하고, 다시 기숙사로 들어가려고 했다.
“근데 혹시 무슨 소리 못 들었어?”
“어?”
그녀가 갑자기 말한 말에 깜짝 놀라며 돌아봤다.
“내가 김종현한테 부탁했는데…”
“뭐…?”
그녀의 말에 망치로 세게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길드에 대해서 말이야.”
그녀는 급하게 뒷말을 이어 말했지만, 나의 모든 정신은 그녀에 대해 나쁜 말만을 토해냈다.
‘윤예진이 원인이었네.’
‘지금 너의 앞에 서 있는 애가 문제야.’
“그러면 김종현한테 길드에 대해서….”
“응… 그렇지? 혹시 무슨 말 못 들었어?”
윤예진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 김종현한테부탁했고, 김종현은 나를 괴롭히라고 말한 것 같았다.
김종현은 순순히 길드 가입을 권유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간 지 알 수 있었다.
“그렇구나… 그랬어.”
“응? 뭐가 갑자기?”
윤예진을 무시하고 그냥 앞을 향해 걸어갔다.
그녀와 별로 말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사건의 시작은 나였고, 그다음 시작은 윤예진임을 알았으니까.
누구의 잘못이 더 크냐고 말한다면, 당연히 내 잘못이 클 것이다.
다리에 힘이 풀려 비틀비틀 걸어서 내 방에 도착할 수 있었다.
침대에 몸을 던져 얼굴을 이불에 박아 넣었다.
그리고 그 자세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
학교에서 나는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쫓아오는 이상한 사람 세 명이 있었다.
내가 빨리 올라가면, 셋도 빠르게 계단을 올랐다.
내가 겁에 질려 옥상까지 도망쳐왔다.
옥상의 문을 잠그고 물러났지만, 어느새 세 명은 문을 뚫고 내 앞에 서 있었다.
“왜 그랬어?”
한 명에 이상한 목소리가 들렸다.
마치 날카로운 물체를 쇠에 긁는 듯한 목소리였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그 말을 듣고 난 뒤 그 사람은 칼을 들어 내 가슴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말했어?”
그다음 사람은 내 얼굴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가슴을 찌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모두 겪은 뒤 나는 눈을 뜰 수 있었다.
“허억!”
고개를 들어 숨을 쉬었고, 온몸은 땀투성이였다.
주머니에 넣어놓은 핸드폰을 들어 시간을확인했다.
“다행이다.”
치료실에 가는시간까지 늦은 시간은 아니었다.
알람을 맞춘 것처럼 침대에 일어나서 몸에 땀을 닦아낸 뒤 치료실로 향했다.
**
치료실은 아무도 오지 않았다.
가끔 찾아오던 사람의 발길도 이제는 없어졌다.
처음에는 단련실의 기구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쳐서 오는 사람이 많았다.
학기가 시작되고 몇 달이 지난 지금 기구를 사용하다가 다쳐서 오는 사람은 없었다.
조금 전에 꾸었던 꿈은 이미 가루가 되어 날아갔다.
다시 떠올리려고 해도, 별로 기억도 나지 않았다.
오늘은 끝날 때까지 한 명도 오지 않았다.
사실 요즘에 오는 사람이라고 해봐야 내가 아는 사람밖에 없었다.
이제는 아는 사람이라고 칭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치료실에 오는 사람은 없었다.
치료실의 문을 닫고, 습관처럼 숲으로 향했다.
오늘은 꼭 연습할 거라 마음을 먹고, 숲으로 향했다.
숲으로 향한 뒤 예전처럼 가면을 쓰고 활을 쏘기 시작했다.
마력을 실어서 쏘기도 했고, 마력을 사용하지 않고 연습하기도 했다.
이제는 나 혼자만이 들어오는 숲이라 생각하니 쓸쓸하기만 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는 시간이 다가오고, 습관처럼 가면을 벗고 화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오지 않음에도 누가 오기를바라는 것처럼 화살을 정리했다.
그리고 정리하고 나서 바닥에 누웠다.
바닥에 귀를 대고 발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바랬지만, 들려오는 것은 바람과 나뭇잎이만나는 소리밖에 없었다.
바닥에 대자로 누워 눈을 감았다.
“잘한 걸까.”
“잘한 거겠지.”
내가 처음에 원했던 상황이 실현되었다.
주요 인물들은 한 명을 제외하고, 나한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곧, 한 명도 나한테 실망하고 떠나갈 것이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윤예진이 너한테 잘못한 건데?”
“내가 잘못한 거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
그렇게 생각하냐는 환청에 대답하지 못했다.
평소라면 당연히 긍정의 대답을 내놓았겠지만, 지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윤예진의 잘못이 더 큰 게 아닐까? 너는 그냥 피해자일 뿐이야.”
“아니야.”
“너도 알고 있잖아. 사실은 원망하고 있잖아. 두 명과 멀어진 이유도다 윤예진 때문이잖아.”
윤예진은 원인 제공자가 아니었다.
내가 원인 제공자였다.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됐다.
“닥쳐.”
남과 똑같아지고 싶지 않았다.
자기혐오를 하는 것이 나에게 맞았다.
남을 헐뜯는 것은 내가 혐오하는 사람의 유형과 똑같아지는 것이었다.
귀를 막고, 듣지 않으려 해봤지만, 환청은 머릿속에서 울렸다.
계속해서 똑같은 내용을 내뱉고 있었다.
윤예진의 탓이다.
내가 할수 있는 말은 하나뿐이었다.
“닥쳐. 제발. 내가 잘못했잖아.”
“사실 너도 나처럼 생각하고 있잖아.”
“윤예진은 잘못하지 않았어. 내가 전부 문제야. 모든 문제의 원인은 나라고.”
“맞아. 네가 잘못했어. 쓰레기야.”
“그렇지?”
환청도 나의 잘못을 인정했다.
이제는 이중주로 자기혐오를 연주하고 있었다.
한쪽은 자해하고, 한쪽은 말리는 것이 되지 않았다.
양 귀로 들려오는 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은 전부 맞는 말뿐이었다.
쓰레기, 정신병자, 병신, 찐따 모두 나를 설명하는 단어였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났을까, 내 머리에는 익숙하지 않은 감촉이 느껴졌다.
쓰다듬는 손길에 눈을 떠 바라봤다.
“설화야…”
여길 올 리가 없는 김세연이었다.
“꺼져.”
내 입에는지금까지 말했던 것보다 심한 말이 나오고 있었다.
“동정하지 말란 말이야.”
“설화야…”
“닥쳐!”
나는손을 뒤로 짚으며 그녀에게서 물러섰다.
“설화야 그거 알아?”
“닥쳐줘. 제발. 더 이상 듣기 싫어.”
“너 지금 어떤 눈을 하고 있는 줄 알아?”
“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김세연은 일어서서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내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손을 들어 내 얼굴로 향했다.
나는 그 손을 쳐내려고 손을 들었다.
김세연의 반대쪽 손으로 내 손을 붙잡았다.
“차갑네… 따뜻하지?”
“싫어. 오지마.”
내 팔에 힘을 줘도 그녀의 힘을 이기지 못했다.
그녀의 손은 내 얼굴로 다가오고, 오른쪽 볼을 닦아냈다.
“이런 얼굴을 하고 말하면 설득력이 없어.”
그녀의 손에는 보이지 않았던 물 자국이 남아있었다.
“저리 가.”
그녀는 점점 다가오기 시작했다.
나의 말이 무색하게도 그녀의 발걸음이 멈추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진정해.”
그녀의 따뜻한 말이 내 귀 옆에서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