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8화 〉시연회 (48/120)



〈 48화 〉시연회

김세연은 한설화를 껴안았다.
그리고 귀에다 위로의 말을 전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럴 생각이 아니었다.

그냥 멀리서 지켜볼 생각이었다.
자신에게 심한 말을 하고, 어떻게 행동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김세연은 기숙사 앞에서 한설화가 했던 말에 대해 고민했었다.

처음에 한설화의 입에서 나온 부담스럽다는 말이 단순히 숲에 오는 거에 대해서 말하는  알았었다.

한설화는 부담스럽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었기에 이번에도 똑같은 말을 할 줄 알았다.

그렇지만 그 뒤에 들려온 말은 김세연의 정신을 뒤흔들기에 충분했다.

김세연은 뒤늦게 기숙사로 들어가는 한설화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붙잡기에는 너무 늦었다.

그리고 기숙사 앞에서 멍하니 있다가 부정하기 시작했다.
사실 한설화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고, 자신이 오해한 것이라며 착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현실을 직시하고, 한설화에게 화를 내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신경 써준 자신을 이렇게 말 몇 마디로 내친 것에 대해 화를 냈다.
그때의 김세연은 한설화에게 서운한 일을 모두 생각하기 시작했다.
 주 동안 웃지 않은 것을 포함해서 매일같이 숲에 들어간 것까지 서운한 일을 모두 토해냈다.

모든 화를 내뱉자, 김세연은 한설화에게 다가가고 싶었다.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기에 그런 심한 말을 내뱉으려고 하는 건지 알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기숙사에 들어가 한설화를 앞에 앉혀두고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
그리고 고칠 수 있는 점을 듣고, 다시 관계를 회복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김세연이 그렇게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남자 기숙사에 들어가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이었으며, 말을 끝까지 하지 않고 들어간 한설화가 이야기를 해줄 것이라는 보장조차도 없었다.

멍하니 한설화가 들어간 방의 창문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이해가  갔고, 당장 한설화에게 다가갈 수 없는 자신이 너무 미웠다.
한설화의 탓을 했던 방금과는 달리, 자신의 탓을 하며 자신을 깎아내리기 시작했다.

극도의 우울감 이후에 찾아온 것은 현실에 대한 수용이었다.

한설화와의 관계는 이미 끝났고, 되돌아올 수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파탄  관계였다면, 무릎을 꿇으며 사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상대가 싫어한다면 무릎을 꿇어도 변하는 것은 없었다.

그렇기에 정신을 차리고 김세연은 자신의 기숙사로 돌아갔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본 한설화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마치 한숨도    평소보다 얼굴이 더 피폐해 보였다.

김세연은 그것을 알아차렸다.

평소의 가까이서 보던 얼굴의 달라진 점을 못 찾는다면 그것이  이상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고 싶었다.

그렇지만 김세연은 다가가지 않았다.
오히려 관심도 주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 가서 앉았다.

다가가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어제의 한설화의 말이 기억에 남았기에 자신이 한설화에게 다가갈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녀는 하루 동안 한설화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평소에 자주 찾아가던 치료실 주위에 발걸음을 옮기지도 않았고, 단련실에 박혀 훈련하기에 바빴다.

단련실에서 김세연의 친구였던 이유진이 다가와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지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유진은 그 반응에 의아해하며 장난을 쳤지만, 김세연은 반응도 없었다.

김세연은 정오까지 훈련하고, 내일을 위해 휴식을 취하러 기숙사로 갈려고 했다.

단지 그녀의 몸에 익어있던 습관이 자연스럽게 그녀의 발걸음을 숲으로 이끌었다.
김세연이 정신을 차릴 때쯤에 이미 그녀의 몸은 숲의 입구까지 와있었다.

김세연은 기숙사로 돌아갈까 생각했지만, 숲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었다.

‘혹시 아직까지 한설화가 남아있을까?’
‘있다면 무엇을 하고 있을까?’

두 가지 질문에 궁금증을풀기 위해 숲속 깊숙이 들어갔다.
하지만 혹시 있을 한설화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발소리를 죽이고 들어갔다.

그리고 김세연은 들어가서 한설화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멀리서 들었을 때는 중얼거림이었지만, 가까이 다가가니 그 말의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한설화는 바닥에 엎드려  손으로 귀를 막고 있었다.

귀에 들어오는 모든 소리가 싫은 듯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은 채로 웅크려있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들려오는 말은 김세연이 다가갈 수 있는 동기가 되었다.

‘쓰레기’
‘정신병자’
‘병신’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욕설들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처음에는 갑자기 튀어나온 욕설에 한설화가 김세연에게 하는 줄 알고 도망가려 했었다.

하지만, 김세연은 곧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자신을 향하는 것이 아님을 알았다.

오히려 그 말이 한설화를 뜻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단어만을 내뱉는 그의 입에서 제대로 된 문장이 나왔다.

‘쓰레기 같은 놈. 상처나 주고 인생을 살 가치가 없어.’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녀에게 충격이었다.
전부터 한설화에게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었다.

한설화에 대한 김세연의 평가는 날이갈수록 갱신되어갔다.

그리고 김세연은 그 말을 듣고 천천히 다가갔다.
전처럼 발소리를 죽이지 않고 다가갔음에도 한설화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바닥에  벌레처럼 웅크려있는 그의 앞에 가서 섰지만, 한설화는 여전히 욕설만을 하고 있었다.

김세연은 쭈그려 앉아 한설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어쩌면 본능적으로 그의 머리에 손이 나갔다.

그런 다음에는 거부하는 그에게 점점 다가갔고, 지금 상태가 되었다.

한쪽 손으로는 움직이려는 두 손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손으로는 그의 눈에서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기 바빴다.

한설화의 입에서는 계속해서 말이 나왔다.
예쁜 말은 아니었지만, 진심이 담긴 말도 아니었다.

“꼴도 보기 싫다고.”
“괜찮아.”

한설화의 머리를 자신의 가슴으로 끌어당겨 소리가 더 이상 안 나오게 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얼굴을 박고 있음에도 그의 입은 끊임없이 움직였다.

“꺼져. 죽어버려.”

김세연은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더 이상 상처받지 않았다.
그 말이 한설화의 진심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방어를 위해 자동적으로 튀어나오는 말이었다.

김세연은 남은 손으로 그의 머리를 가슴에 박았다.
 분 동안 입이 움직였지만, 이내 움직임을 멈췄다.

김세연의 가슴에서 더 이상 움직임이 느껴지지 않자, 그녀는 한설화의 머리 뒤에 있는 손을 천천히 뗐다.

올라오려고 힘을 주던 머리는 이제는 올라오지 않았다.
그녀를 밀치려던 손은 어느새 움직임을 멈췄었다.

그녀의  손이 자유가 되고, 그제야 그녀는 두 손으로 그의 어깨를 끌어안을 수 있었다.

김세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한설화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일 분 정도가 지나고, 한설화는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김세연은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놀라서 아무 대응도 못 했고, 한설화는 그대로 김세연을 밀치고  밖으로 달려나갔다.

김세연은 땅바닥에 넘어져 웃기만 했다.
당장 한설화를 쫓아가지도 않고, 바닥에 앉아서 웃음만을 터트렸다.

그녀의 눈에는 마지막 얼굴과 귀가 빨개진 한설화의 모습이 보였다.
자신이 싫어서가 아니라 부끄러워서 그런 행동을 하고 나간 한설화가 귀여워 보이기만 했다.

김세연도 자리에서 일어나 숲 밖으로 향했다.

그러면서도 한설화에 대한 생각을 멈추지 않았다.

“누가 그런 거지.”

한설화가 갑자기 그런 행동을 한다면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일이 하랑 내부에서 일어났을 확률이 높았다.

한설화가 최근에 밖으로 나갔다 온 것은 아니었기에 그녀의 추측은 합당했다.

그렇게 그녀는 나가면서 주위를 한 번 돌기 시작했다.
원래대로라면 기숙사로 향하는 것이 맞았지만, 왜인지 모를 불안함에 평소에 다니지 않던 골목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골목 사이사이를 다니던 도중 그녀의 눈에는 정확하게 보였다.
어둠 속에 있어 얼굴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그 위로 올라오는 담배 연기가 그녀의 눈에 보였다.

김세연은 살금살금 다가가 벽 뒤에서 담배를 피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었다.

“걘 대체 어디  거야.”
“몰라. 치료실 앞은 저번에 교관 때문에 있지도 못하고.”
“언제 한 번 구석으로 몰아야 하는데.”
“걔 오늘 표정 봤냐? 내가 말했잖아. 들었다니까?”
“맞아.”

그러고 남자 둘이서 웃기 시작했다.

김세연은 둘이 누구의 이야기를 하는지 정확하게 듣고 싶었다.
마음속으로는 둘이 말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말하고 있었지만, 심증만으로는 둘을 밀어붙일 수는 없었다.

“우리 언제까지 이래야 하냐.”
“새벽까지 감시 존나 빡빡하잖아. 성인인데 담배 정도는 봐줘야 하는  아니냐?”
“그러니까.”

둘이 시답잖은 이야기를 나누며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몇 십 분 동안 이어지는 지루한 이야기에 지칠 만도 했지만, 둘은 자잘한 이야기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김세연은 포기할 법도 했지만, 뒤에 숨어 둘의 이야기를 계속해서 엿들었다.

“근데, 종현이가 갑자기  한설화를 괴롭히는 거냐?”
“몰라. 걔가 갑자기 그러는 게 한두 번이냐? 우리 같은 애들은 그냥 따라야지. 그래야 콩고물 하나라도 떨어지지.”
“그렇긴 하지. 내용 보니 윤예진이랑 관계된 것도 같은데.”
“윤예진……”

김세연은 그 세 명의 이름까지 듣고 골목을 빠져나왔다.
끝까지 들을 수도 있었지만, 둘은 골목을 나오고 있었기에 그렇다면 마주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김세연은 둘이 골목을 돌기 전에 빠져나왔고,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 기숙사로향했다.

‘설화가 맞았어.’

‘근데… 종현이면, 김종현? 윤예진?’

김세연은 한설화와 마지막으로 들린 종현이라는 이름과 윤예진의 이름에 집중했다.

방금 둘만이 관계되어 있다면, 앞에 나가서 말을 하지 못하게 온종일 때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둘의 이름이 들리자 윤예진은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윤예진과 김종현이 관계되어 있다고?’

김세연은 천천히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결국, 둘은 시키는 것을 하는 부하였고, 그 위에서 시키고 있는 사람은 두 명이라는 소리가 되었다.
김세연이 뒤의 이야기를 끝까지 못 들었지만, 듣지 않아도 충분했다.



**





“다음 주에 시연회가 있을 예정입니다.”

교관은 아침에 들어와 시연회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면 대진은 어떻게 되나요?”

한 생도가 대진에 대해 질문했다.
다들 티는 내지 않고 있지만, 모두가 궁금해하는 질문이었다.

“교관한테 짝을 지어서 가져오면 됩니다. 그러면 한 명이 대표로 해서 가져오시면  것 같습니다. 그럼 이상으로 아침 조회를 마치겠습니다.”

교관은 그렇게 말하고 밖으로 나갔다.

김세연은 이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합법적으로 사람을 팰 수 있는 기회였다.

그녀는 윤예진에게 다가갔다.

“윤예진, 너 대련 상대 아직 안 정했지?”
“응. 그런데.”

김세연은 태연하게 대답하는 윤예진을 보며 말했다.

“나가서 얘기할까?”

죄책감에 빠져든 표정도 아니었고, 평소와 똑같은 표정에 당장이라도 욕을 내뱉을 뻔했다.
그녀는윤예진을 밖으로 불러얘기하기로 마음먹었고, 윤예진이 밖으로 나오자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갑자기 나오라고 한 이유가 너랑 나랑 대련하자고?”
“응.”
“근데 그걸 왜 나와서 이야기해?”

윤예진은 교실 내부에서 시끄럽게 짝을 정하고 있는사람들을 보고 말했다.
다 같이 대련할 상대를 찾는 곳에서 나올 필요가 없었다.

김세연은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너 조금만 맞자.”

김세연은 싱긋 웃으며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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