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화 〉시연회
아침부터 고개를 들지 못했다.
어제 있었던 일이 떠오르며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 난리를 쳐놓고 사람 얼굴을 똑바로 볼 수 있는 것도 이상했다.
반은 한참 시끄러워 나한테 집중하는 사람이 없었다.
시연회 때 누구랑 붙느니 마느니 하는 중이었다.
길드에 잘 보이려고 하는 사람은 자신의 기량을 충분히 뽐낼 수 있는 상대를 찾아 말을 걸고 있었다.
나에게 다가올 사람은 아무도 없는 줄 알았지만, 나를 향해 오는 사람이 한 명이 있었다.
다가오는 발의 주인을보고 황급히 일어나 도망치려고 했지만.
“앉아.”
늦었네.
내가 일어나려는 것을 보고 유은설은 황급히 달려와 책상을 내리치며 말했다.
그 소리에 나는 일어나려는 무릎을 다시 굽히며, 의자에 엉덩이를 붙였다.
“나랑 하자.”
“어?”
“붙자고.”
그녀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시연회 말하는 거야?”
“응.”
“왜… 나랑?”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얘기했다.
“길드에 잘 보이기 위해서.”
그녀의 기량을 전부 보여주기 위해서는 옆에 앉아있는 이하늘이나 다른 사람이 더 나을 것이다.
나와 그녀의 상성은 당연히 내가 불리했다.
저번에 했던 대련에 설욕전을 하려는 걸까.
아니면 그녀에게 뱉은 말에 대한 업보를 받는 걸까.
무엇이 되었든 그녀가 나를 죽도록 패기를 원한다는 것이었고, 나는 승낙할 수밖에 없었다.
“응.”
그녀가 나를 때리고 싶으면 맞아주는 것이 맞았다.
사과는 하지 못할지라도 이 정도쯤은 해줄 수 있었다.
그녀는 내가 승낙하자 밖으로 나갔다.
아마 교관한테 말하러 가는 거겠지.
속으로 한숨을 푹 내쉬면서 책상에 엎드렸다.
벌써부터 맞을 생각을 하니 갈비뼈가 시렸다.
곧 교관이 한 명 들어오며, 소란을 중단시키고 수업을 시작했다.
**
수업이 끝나고, 약간 이른 시간임에도 치료실로 향했다.
어차피 치료실 교관은 내가 일찍 가면 좋아할 것이 분명했다.
퇴근하기를 오매불망 기다리는 사람이니까.
그러던 중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내가 늦게 나왔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나보다 일찍 도착해있는 김세연이 보였다.
그녀랑 마주치고 싶은 마음이 없어, 한 바퀴를 돌아 멀리 돌아가려고 했다.
“잠깐만!”
뒤를 돈 상태로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고, 나는 앞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렸다.
그녀의 얼굴을 마주 볼 자신이 없었다.
내가 열심히 달려 도망쳐도 그녀가 나보다 빨랐다.
그녀가 나를 따라잡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김세연은 달리고 있는 나를 잡아 멈춰 세우고 벽으로 몰았다.
그런 다음에 손으로 내 움직임을 봉쇄했다.
내가 고개를 숙여 밑으로 도망가려고 하자, 허벅지를 들이밀며 내가 못 나가게 막았다.
고개를 옆으로 돌린 상태로 그녀의 눈을 쳐다보지 않았다.
“여기서는 길게 말 안 할게. 지금부터 숲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꼭 와줘.”
김세연은 그렇게 말하고 나를 가두고 있는 팔과 허벅지를 치우고 물러갔다.
내가 왜 그녀를 만나러 숲에 갈 거라 생각하는 거지?
김세연은 나를 쉽게 여기는 것 같았다.
나쁜 말을 했음에도 내가 그녀의 말을 듣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그녀가 하는 행동은 이기적이었다. 남의 기분을 신경 쓰지 않는 행위였다.
그녀가 나에게 신경 쓰는 이유는 한가지였다.
그저 착한 사람임을 보여주는 행동을 함으로써 자신을 높이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자기를 욕했던 나를 품어주는 그런 착한 심성을 보유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녀를 떼어놓기 위해서는 숲에 가지 않으면 된다.
그렇게 되면 그녀는 자연스럽게 나와 얘기조차도 하지 않을 것이다.
저번과도 같은 일도 없을 것이고.
“왔어?”
어느새 치료실에 도착하고 교관이 나를 반겼다.
그리고 싱숭생숭한 기분이 계속해서 들었다.
김세연의 ‘지금부터’라는 말의 뜻은 무엇일까.
말한 시점부터 계속해서 숲에 있을 거라는 얘기일까.
“교관님. 혹시 오늘도 다른 곳 좀 다녀와도 될까요?”
“또?”
그의 신경질적인 말투에 내가 이번 달에 일을 몇 번을 안 했는지 세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그냥 일할게요.”
“아니야. 됐어. 어차피 요즘은 사람도 안 오지? 그리고 너는 다른 애들과 비교해서 잘 안 빠지는 편이라서 상관없어.”
그는 나를 내보내며 치료실의 문을 잠갔다.
“제가요?”
“응. 한 달 정도 하고 나면, 온갖 이유를 다 대가며 빠진다니까. 일주일에 나오는 날이 더 적을걸?”
“그런가요…”
그의 말에 처음으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일했는지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그는 그렇게 말하고 나를 문 앞에 두고 먼저 가버렸다.
열쇠는 교관이 가져갔기에 내가 치료실 문을 열 방도는존재하지 않았다.
“근데, 내가 왜 그랬지.”
정말 생각이 많아서 홧김에 말한 것이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숲으로 향했다.
김세연이 정말 지금부터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숲으로 가는 내 발걸음은 점점 빨라지며, 곧 도착할 수 있었다.
숲에 정말로 김세연이 있을까.
나는 바로 들어가지 않고 거리를 뒀다.
가면을 착용해 그녀가 인지하지 못할 범위에 안착하고 공터를 바라봤다.
훨씬 좋아진 내 시력은 그녀가 공터에 가만히 앉아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김세연은 공터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멍하니 서 있거나, 가끔씩은 나무를 더듬기도 했다.
조금더 자세하게 보니 내가 화살을 쐈던 자국이 남아있는 나무였다.
그녀는 나무를 더듬으며 입을 움직여 말을 하기 시작했다.
너무 멀리 있어서 들리지는 않았지만, 분명한 건 내 욕은 아닐 것 같았다.
지금 시간은 아직 내가 치료실에서 일하는 시간이었다.
김세연도 그것을충분히알고 있는 상태였고, 나는 그녀가 왜 여기 있는지 궁금했다.
대체 왜 지금 이 시간에 여기에 있는 건지 달려가서 물어보고 싶었다.
나를 기다리는 것이 목적이라면 치료실이 끝날 때 숲에 나와도 될 텐데 왜 지금부터 있는 걸까.
대체 나한테 원하는 것이 뭐길래 이렇게까지 나오는 걸까.
시간의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한 시간이 지나가도 그녀는 지치지 않고 주위를 돌아다녔다.
두 시간째.
김세연은 드디어 지친 것인지 나무에 기대어 앉아서 눈을 감았다.
자는 줄 알았지만, 계속해서 입은 중얼거리고 있었다.
세 시간째.
나무에서 일어나 입구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원래 오는 시간임을 알고 있었기에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 자리에 있기에 입구에서 내가 나오는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이때 그녀가 돌아갈 줄 알았다.
당사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약속이 취소됐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상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다시 공터로 돌아가 주위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지치지도 않은지, 시간이 아깝지도 않은지 나를 계속해서 기다렸다.
네 시간째.
내가 오지 않는 것을 보고 한숨을 크게 내쉬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입구를 바라보는 시선은 변하지 않았다.
대체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그녀가 너무 부담스러웠다.
그냥 나가줬으면 좋겠다.
이제는 마음을 여는 것조차 두려웠다.
마음을 열면, 분명히 좋지않은 영향을 끼칠 것이다.
아침이 오면 밤이 오는 것같이, 아침이 되면 해가 뜨는 것같이 당연한 명제였다.
나에게 그녀는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돌멩이처럼 느껴질 것이었다.
그런데 나한테 왜 신경 써주는 거야.
이렇게까지 기다릴 가치조차 없는 나를 몇 시간째 기다리고 있는 거야?
그녀에게 당장 다가가서 묻고 싶었다.
아직도 공터를 돌아다니며 중얼거리고 있는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말하고 싶었다.
나도 지치기 시작했다.
그녀가 걷는 발걸음을 세기 시작했다.
한걸음, 두 걸음 세기 시작하며, 그녀의 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많은 시간이 우리 사이를 지나가고, 결국 하루의 끝을 알리는 시간이 다가왔다.
그럼에도 그녀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나갈 생각은 없어 보였다.
다시 나무에 기대어 앉았다.
그리고 눈을 올려 하늘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저 자리에서는 별과 달도 잘 보이지 않을 텐데, 그녀는 꾸준히 쳐다보고 있었다.
곧 그녀가 나갈 것 같았다.
이제 그녀도 지쳐 보였기에 몇 분만 있으면, 그녀가 들어왔던곳을 통해 나갈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내 예상은 완벽하게도 틀렸다.
아무 말이 없는 우리 사이에 한 시간이 더 지나고 나서야 나는 그녀 앞에 나올 수 있었다.
“왜 지금까지 기다린 거야.”
“안녕? 왔네.”
“대답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김세연은 나한테 손을 흔들며 반겼다.
“그거야 약속했으니까. 숲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했잖아.”
“멍청하게 누가 이 시간까지 기다려.”
“멍청한 게 아니라…”
김세연은 천천히 나한테 다가오기 시작했다.
“걱정되니까.”
“거짓말.”
그녀가 하는 말은 전부 거짓말이었다.
내가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사람들의 칭찬에 절반 이상은 거짓말이었다.
그저 호감을 표시하는 장치일 뿐이다. 김세연의 말도 걱정이 하나도 들어있지 않은 말이었다.
“너한테 나같은 사람이 걱정될 리가 없잖아.”
“‘나같은’이라니. 너는 자신이 얼마나 가치 있는 줄 알아야 해.”
“아니야. 대체 뭐야. 원하는 게 뭐냐고.”
다가오는 그녀를 밀치고 뒷걸음질 쳤다.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 난 아직도 네가 웃는 게 선명하게 기억나.”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나도 기억에 남아있었다.
내가실수한 날이기에 기억에 박혀있었다.
그녀에게도 내가 까칠하게 말했던 날로 기억되고 있을 것이다.
“그때도 네가 잘못했다면서 먼저 사과를 해왔잖아.”
“내가 잘못한 게 맞으니까.”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렇게 생각 안 하고 있어. 사실 기억에 남는 이유도 네 미소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어서야. 나를 보고 환하게 웃던 그 웃음 말이야.”
“전부 거짓이었어. 너한테 짓던 그 웃음마저도.”
“상관없어.”
상관없을 리가 없었다.
자신한테 짓는 미소가 거짓임을 알게 되면 다들 똑같은 반응이었다.
거짓된 미소를 혐오했고, 당사자에게 심한 말을 내뱉었다.
‘그러면 나한테 지었던 미소도 다 꾸며낸 거였어?’
‘역겨워. 나는 너한테 진심이었는데.’
‘절교야.’
“거짓말.”
그런데, 너는 대체 뭐길래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을 깨부수고 있는 거야.
그녀는 내가 세운 벽을 하나하나 부수고 들어오고 있었다.
내가 문을 열어서 받아들인 것도 아니었다.
그녀 혼자서 복구할 수 없을 정도로 부수고 있었다.
완파된 벽은 다시 세울 수 없었다.
누구보다 깊숙이 나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진정해.”
“원하는 게 뭐야. 나에게 다가오는 이유가 있을 거 아니야. 몸? 아니면 웃음?”
“말 함부로 하지 마. 그저 네가 힘들어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아.”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나를무시해. 다가오지 마.”
무서웠다.
누구보다 가깝게 다가오는 그녀에게 공포심을 느꼈다.
여태껏 스스로 문을 열어서 나에게 다가오는 사람을 받아들였다.
그 사람들이 나를 향해 다가오면 문을 하나씩 열었고, 그들은 그 문을 통해 들어왔다.
김세연은 그렇지 않았다.
그녀 혼자서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오고 있었다.
내가 거부함에도 내 마음에 강제로 들어오고 있었다.
“네가 느끼는 아픔을 모두 말해줬으면 좋겠지만, 욕심이겠지?”
그녀는 가만히 서서 말하고 있었다.
호기심은 더 이상 사라지고 당장 도망치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힘든 시기가 있어. 단지 너는 그게 지금일 뿐이야.”
“뭘 안다고 말하는 거야.”
나에게는 태어날 때부터 모든 순간이 힘들었다.
어릴 때는 느끼지 못했지만, 날 때부터 여자의 이름을 먹고 태어났다.
초등학교 때는 여동생을 죽였고, 중학교 때는 나 자신을 죽였다.
그녀가 말하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갔다.
“너는 나랑은 다르게 늘 빛났잖아. 대체 네가 뭘 이해한다고 지껄여.”
“괜찮아.”
그녀는 단숨에 달려와 나의 어깨를 붙잡았다.
내칠 타이밍도 잡지 못했고, 그녀의 팔에 힘은 점점 더해갔다.
“놔.”
“어떻게 잡은 건데. 너라면 놓겠어?”
“나를 그만 놔줘.”
너의 욕심에 나를 이용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어.
너한테 속박되어있는 나를 놓아줬으면 좋겠어.
나에게 그만 다가와 줘.
“괜찮아. 단지 기회를 한 번만 줘. 너를 도울 수 있는 기회를 한 번만.”
“필요 없어. 누가 도와달래? 내가 도움을 요청한 것도 아닌데 무슨 오지랖이야.”
너한테 나는 대체 뭐야?
이제는 모르겠어.
“원하는 게 뭐야. 네 말을 잘 듣는 인형이 필요한 거야? 너의 위상을 높여줄 사람이 필요한 거야? 아니면 다른사람들처럼 내 몸을 취하려는 거야? 다 들어줄게. 대답해.”
김세연은 그제야 충격받은 듯 손이 덜덜 떨렸다.
“나는 이런 애야. 네가 생각하던 실없는 미소를 지으며 대응하는 그런 애가 아니라고. 이렇게 역겨운 생각을 품고 다니는 놈이야.”
“설화야. 나는 다른 건 필요 없어. 네가 말했던 것 아무것도 해당하지 않아. 그저 네가 행복하길 바랄 뿐이야.”
“거짓말. 그런 사람은 없어.”
유일하게 나를 이해해주던 부모님도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들마저도 내가 행복하기를 바라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네가 뭔데 그런 말을 쉽게 하는 거야?
다른 사람들이랑 너랑 다를 리가 없잖아.
‘더러워.’
‘정신병자.’
‘병신.’
나의 모든 걸 알고 있는 부모님도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모든 걸 알고 있지도 않은 네가 왜?
“혼자 고통을 감내하는 건 정답이 아니야.”
“그런 적 없어.”
늘 그렇게 살아왔고, 다른 사람이 간섭할 사안이 아니었다.
“거짓말.”
“……”
“설화야 그거 알아? 여기에 네가 훈련했던 자국들이 많이 남아있어. 단련장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흔적들이야.일찍 와서 보니까 알겠더라.”
뭘 알겠는데.
그녀가 나무를 더듬는 것을 봤다. 그렇지만 그것을 통해서 알아낼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나 자신의 강함을 늘리기 위해 쏜 것뿐이었다.
“네가 힘들었다는 걸. 위태롭게 혼자서 길을 걷고 있다는 걸. 너 말대로 나는 너보다 강하고 높은 사람일 수도 있어. 그렇지만, 나도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 있어.”
“그런 사람이 나는 아니야…”
“너일 수도 있지. 어떤 사람은 길을 가다가 해가 뜨는 일출에 의지할 수도 있고, 밤하늘에 뜨는 별에 의지할 수도 있어. 왜 너는 아닐 거라 생각해?”
“못나니까. 나같은 사람을 좋아해 줄 사람은 없으니까.”
“정말?”
힘들었다.
몇 년째 외줄을 타는 것 같은 인생을 살아왔다.
서당 개도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했다.
이제는 이 외줄 타기 인생도 익숙해졌다.
그런데, 그런데 너는 갑자기 왜 간섭하려는 거야.
“이해할게.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알았으니까. 이제 그만 놔줘.”
힘겹게 다리에 힘을 불어넣으며 바깥으로 가려고 했다.
김세연은 나에게 더욱 가까이 붙으며 말했다.
“거짓말.”
내가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고 있었다.
내가 타고 있는 외줄을 뒤에서 따라오고 있었다.
혼자 타고 있는 줄은 심하게 흔들리며 나도 떨어질 것 같았다.
그렇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고 앞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대체 왜…”
다리에 힘이 빠져 땅바닥에 무릎이 닿았다.
어깨에 손이 잡혀있어 내려가지 않을 줄 알았지만, 쉽게 내려갔다.
그녀도 무릎을 꿇고 나를 마주 봤다.
“괜찮아.”
“무서워.”
다른 사람을 받아들인다는 사실 자체가 무서웠다.
방어 준비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들어오는 사람이 무서웠다.
김세연같은 사람은 처음이기에 두려웠다.
“괜찮아.”
“두려워.”
그런 그녀가 두려웠다.
나를 원한다는 그녀의 말에 궁금증을 느낄 새도 없이 두려움만이 느껴졌다.
“울어도 괜찮아.”
“… 너 대체 뭐야.”
앞에 쭈그려 앉아있는그녀를 쳐다봤다.
그녀는 평소 내가 짓던 환한 미소를 나에게 보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