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0화 〉시연회 (50/120)



〈 50화 〉시연회

“아… 머리 아프네.”

윤예진은 책상에 앉아 머리를 긁고 있었다.

며칠 사이에 그녀가 휘말린 일이 많아졌다.

“김세연은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김세연이 갑자기 자신한테 시연회를 신청할 줄은 몰랐다.

윤예진도 받아줄 의향은 있었지만, 그녀가 남긴 마지막 말이 마음에 걸렸다.

“한설화는 왜 그러는 거고.”

김종현한테 길드에 대해 말해달라고 부탁했지만, 한설화는 아예 듣지도 못한 모양이었다.

더군다나, 반응이 그렇게 좋은 반응이 아니었다.
싫어하고, 꺼림칙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에게 더 이상 말을 걸 수가 없었다.

한설화의 정체에 대해서는 아직 감도 못 잡고 있었고, 시연회까지 겹치니 그에게 신경 쓸 시간이 없었다.

윤예진은 핸드폰을 꺼내 김종현한테 전화를 걸었다.
한설화에게 말해달라고 한 것은 어떻게 된 것인지 묻고 싶었다.

그에게 말한다면 한설화의 말이 무엇인지 해석이 가능할 수도 있었다.

“여보세요.”
[갑자기, 왜?]
“저번에 말했던 건 어떻게 됐어?”

윤예진은 당연히 그가 말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일이 있고난 뒤로 꽤 많은 시간이 흘렀기에 김종현이 해결했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잠깐만 기다려줘.]
“그냥 가서 말하면 되는 거 아니야?”
[남자끼리의 대화는 달라.]
“하아…”

윤예진은 남자의 대화가 뭔지 궁금했다.
그냥 같은 성별이면, 달려가서 혹시 관심 있냐고 물어보면 되는 사안을가지고 질질 끌고 있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평소의 김종현같지 않았다.

“아직 말  한 거야?”
[있어. 상관 쓰지 마.]

‘어떻게 신경을 안 쓰는데’

한설화에게 들은 말과 김세연에게 들은 말이 어떤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지는 짐작 가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했다.

“됐어. 그냥 내가 말할게.”

김종현이 뭔가 숨기는 눈치인 것을 알아냈고, 윤예진은 그냥 직접 말하기로 했다.
어차피 남자던 여자던, 결국은 사람인 것은 똑같았다.

그냥 관심 없다고 하면 알겠다고 하고 넘어가면 되는 일이었다.
김종현이 무엇을 두려워해 말을 하지 않는 것인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아니야. 내가 할게.]

그리고 뒤이어 이어진 김종현의 말은 그녀의 의심을 더욱 부풀렸다.
마치 무언가 숨기는 듯한 말투에 윤예진은 끊자고 말한 뒤 책상을 두드리며 생각했다.

“얘가 나 몰래 이상한 걸 꾸미는 것 같은데.”

할 일은 많이 있었지만, 바로 앞의 상황이 닥쳐오자 일부터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김종현이 무슨 일을 꾸미는지가 가장 궁금했고, 그게 한설화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

유은설은 단련실에서 시연회를 대비한 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녀를 제외하고도 많은 생도가 모여 모의 대련을 하곤 했다.

시연회의 날짜가 점점 다가올수록 시연회에서 맞붙는 생도들끼리 다투는 경우가 많아졌다.

‘나도 얘기라도 해봤으면 좋겠는데.’

유은설은 혼자 앉아서 물을 마시고 있었다.
간간히 이하늘이 대련을 해주곤 했지만, 자신이 상대할 사람은 활을 주무기로 사용하는 사람이었다.

상대와 대련을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유은설은 자신의 짝을 단련실에서 찾지 못했다.
그녀가 생각하는 장소에 있을 것은 알고 있지만, 한설화가 한  때문에 다가가지 못하고 있었다.

한설화에게 무슨 일이 있는 것은 확실했다.
단지, 교관의 일처럼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고있는 것은 분명했다.

그것을 알아차릴 만큼 한설화의 분위기 변화는 극단적이었다.

사람에게 심한 말을 할 만큼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말을 하지 않기위해 말을 적게 하는 사람이었다.

유은설에게 한설화는 그런 이미지였다.
하지만, 한설화에게 들은 말은 그녀가 상처받기에 충분했다.
그가 겪었던 일을 말해주면, 도와줄 수 있음에도 유은설을 내친 것에 대해 실망했다.

그리고 전처럼 애달픈 눈빛이 아닌 확신에 찬 눈빛이었다.
눈에 흔들림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증거였다.

‘친구? 우리가 언제부터 친구였어?’

그 말이 유은설에게는 비수처럼 날아왔다.

진심이 아님을 암에도 그의 독설은 너무나도 아팠다.

“그냥 씨… 말해주면 어디 덧나나.”

유은설이 한설화에게 대련을 신청한 이유는 간단했다.
대련하는 날 그에게 내기를 걸 생각이었다.

아마 밀어붙인다면 한설화는 당연히 받아들일 것이다.

‘심한 말을 해놓고 내기 정도는 해줄 수 있는 거 아니야?’

“으… 미안하네.”

유은설이 생각하기에도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니었지만, 그녀에게 남은 방법은 그것 하나뿐이었다.
유은설이 한설화에게 얻어낼 것은 그때  그랬는지에 대해서였다.
자신에게 왜 심한 말을 했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한설화에게 남은 사람은 유은설 하나뿐이었다.
옆에 붙어있는 멍청한 김세연은 교관의 일도 신경 쓰지 못했고, 나머지 사람은 한설화에게 관심조차도 없었다.

한설화가 말도 못 걸게 도망가 관심의 근원을 끊어버린 점도 있었다.

“뭐가 그렇게 걱정인데.”

어느새 뒤로 와 유은설의 볼을 찌르고 있는 이하늘이었다.

이하늘도 한설화에게 꽤 관심을 가지는 사람 중  명이었다.
처음에는 좋게 보지 않았지만, 무슨 일이있었는지 어느 순간부터 좋게 평가하고 있었다.

‘말해도 되려나.’

이하늘은 아직 유은설과 한설화가 관계가 틀어진 것을 모르고 있었다.
애초에 수업할 때도 그렇게 붙어다니지 않았고, 친하게 지낸 것도 수업이 모두 끝나고 아무도없을 때의 일이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대충 얼버무렸지만, 이하늘이 보내는 의심의 눈초리를 지울 수는 없었다.

“나랑 본 지가 몇 년이 됐지?”
“어… 10년은 넘었지?”
“그런데 거짓말을 하면 들킬수 있겠다는 생각은 안 들어?”

그 말에 유은설은 입을  다물었다.
자신도 이하늘이 이상하게 다닌다면, 바로 눈치채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하늘이 자신을 못 알아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문제가 뭐야.”
“…알려줄  없어.”

유은설의 입안에까지 지금 상황에 대한 줄거리가 나왔지만, 침을 삼킴과 동시에 들어갔다.
이하늘에게 도움을 요청할 만큼 급하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그녀 혼자서 꼬인 매듭을 풀어보려고 다짐했다.

“…그래.  너도 혼자서 고민하는 일도 있겠지. 근데 그거 알아?”
“뭐?”

유은설은 당연히 이하늘이 일상적인 이야기를 할  알았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은 그녀가 알아내고 싶은 이야기  하나였다.

“요즘 남자애들 사이에서 한설화 평판이 어떤 줄 알아?”
“한설화…?”
“뭐. 쓰레기네. 몸을 팔고 다니는 남창이네. 여자 꼬시려고 하랑에 들어왔네.  같잖은 소리가 다 들려온다니까.”

이하늘은 친구가 많았다. 한정된 인간관계를 가진 유은설에게 유일한 정보망이었다.
그런 그의 입에서 나온 것은 한설화에 대한 소문이었다.

“잠시만…”
“근데, 그게 그렇게 유명하지는 않단 말이지. 그냥 누구한테 들었는지는 몰라도 꾸준히 퍼지는 중이야. 여자애들은 거의 모를걸?”

기본적으로 남자애들은 소문을 내기 좋아했다.
그것이 신빙성이 있는 증거가 있든 없든 상관이 없었다.

헛소문이 점점 부피를 늘려 퍼져나가는 것뿐이었다.
초장에 잡아내지 못한다면, 이미 늦었을 뿐이었다.

그런 소문은 시간이 해결해줄 뿐, 당사자가 말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유은설은 이하늘에게 중요한 정보를 들을 줄은 몰랐다.
한설화가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한 이유도 그 소문 때문일 거라고 확신했다.

‘남창… 설화가 아마  소문을 듣고 나를 멀리했을 거야. 평소에도 주위에 사람이 상처받지 않기를 원하니까.’

한설화를 설득할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자신이 신고하게 된다면 유은설까지 피해를 입을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거부했었다.

소문이 교관과의 일에서 퍼졌을 리는 없었다.
전혀 관계가 없었고, 누구도 알지 못하는 사건이었다.

신고까지 가지도 않고, 깔끔하게 해결되기도 했다.
그저 타이밍이 안 좋았을 뿐이었다.

“혹시 소문낸 사람은 누군지 알아?”
“모르지. 나도 들은 것뿐이니까.”

이하늘이 알고 있다면, 좋겠지만 그도 주동자가 누군지는 알아내지 못했었다.

혹시 도와줄  있냐고 물으려고 했지만, 금방 포기했다.

당장이라도 한설화에게 달려가서 이 일에 관해 묻고 싶었지만, 시연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멀지도 않은 날짜였고, 당장 만난다고 해도 일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유은설의 마음속에는 한설화에 대한 독점욕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자신만이 한설화를 보살필 수 있고, 모든 일을 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이번에도 전처럼 안아주며, 위로의 말을 속삭인다면 다시 마음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유은설의 얼굴에 웃음이 맴돌았다.

“으… 너 지금 표정 진짜 음습한 거 알고 있어?”
“어?”
“마치 40대 아줌마 같은 표정이었어.”
“하하… 그래?”

이하늘의 장난에 그저 그렇게 넘어가고, 한설화를 만날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설화에게는 자신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훈련에 집중했다.



**


시연회 당일이 다가오고 내 마음은 전과는 달리 평화로웠다.

평화로운 숲에서 토끼가 뛰어다니고, 나비가 날아다니는듯한 느낌이었다.

모든 것을 내려놓기로 했다.
김세연과 있었던 일은 내 치부와도 가까웠다.

그녀는 그 일이 있고 난 후에 평소처럼 들러붙었고, 나는 도망 다니기 바빴다.

그러면서도 그녀를 떼어놓지 못하고 있었다. 술래잡기를 반복했지만, 내가 그녀를 먼저 떼어놓는 일은 드물었다.

시연회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유은설을 길드에게 각인시키기 위한 작업일 뿐이었다.

그런데,그런 유은설의 상대가 나였기에 나도 진심을 다해 그녀를 상대해야 했다.
그녀가 충분한 기량을 뽐낼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었다.

김세연이 나와 유은설이 붙는 것이 불공평하다며 따지러 가자며 말했지만, 내가 결정한 거라고 둘러대면서 그녀의 제안을 거부했다.
그녀는 그런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툴툴거리며 걸었지만, 내가 할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하랑에는 좀처럼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상위권 길드의 관계자를 제외하고도 하위 길드의 관계자도 많이 있다 보니 전과는 달리 많이 북적거리기 시작했다.

대부분 생도들이 대련장 안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을 한 명씩 구경하며, 얘기하기 시작했다.

“저기 라온 길드다.”
“야. 저기는…”

다들 모아왔던 지식을 모두 뽐내며 얼굴만을 보고 길드를 알아맞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도들어오는 사람을 보면서 소설에 나왔던 사람들의얼굴을 하나하나 익혀가기 시작했다.

마지막 입구가 닫히기 전에 급하게 들어오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죄송합니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주위에 들리는 소리를 듣고 알아차릴 수 있었다.
내가 들어옴으로써 바뀐 사람 중 한 명이었다.

‘IV길드장이 여기에 왜 왔지?’

차사복을 얻을 때 만났던 인연으로 무언가 바뀐 것이 분명했다.

‘활을 알아봤구나.’

빨리 바꾸지 못한 것이 한이었다. 그녀가 나를 알아차릴 수도 있어 말은 적게 하기로 했다.
애초에 대화할 사람이 적었기에 입을 여는 경우가  적기도 했다.

그녀는 들어오고 나서 생도가 있는 곳을 쭉 훑어봤다.
아마 나를 찾는 것이 분명했다. 그녀가 무슨 착각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들킬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증거는 활과 목소리뿐이었다.
그것을 토대로 나를 찾을 확률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난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