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화 〉시연회
“하 씨… 뭐라 말해야 되냐.”
IV의 길드장은 멍하니 서서 대련을 구경하고 있었다.
오늘 그녀는 누구를 찾으러 온 것은 맞았지만, 그 사람이 여기 없다는 소리와 똑같은 소리를 들었다.
‘죄송하지만, 아공간 능력자는 저희 1학년 중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인맥을 동원해 1학년들의 신상을 들었다.
하지만, 그 중에 아공간 능력자가 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아니 그때 본건 분명히 아공간이었는데.’
분명히 손에서 단검이 생성되었다. 무기 생성이라는 능력은 들어본 적도 없으니 그녀가 생각하는 바가 맞을 것이다.
‘그런데없다고?’
길드장은 지금 불안감에 가득 차 있었다.
길드에 전화해서 꼭 찾아오겠다고 난리를 쳤기에 흔적이라도 잡아야 했다.
그냥 돌아가게 된다면 그녀에게 뭐라고 할 사람이 산더미처럼 많았다.
주머니에 넣어놓은 핸드폰이 진동하기 시작하고,핸드폰에는 그녀가 보기 싫은 이름이 적혀있었다.
진동이 끝날 때까지 받지 않고 기다리며, 전화가 자동적으로 끊어지기를 기다렸다. 끊어진 후에야 그녀는 안심하고 핸드폰을 내려놓을수 있었다.
그녀를 반긴 건 단발성으로 울린 진동이었다.
[보고 있는 거 아니까. 전화 받아.]
메시지가 한 번 오고 전화가 다시 왔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받을 수밖에 없었다.
“여…여보세요?”
[찾았어?]
“어? 조금만 기다려.”
[못 찾았네.]
전화를 하는 상대방은 확신에 찬 어투로 말을 했다.
“아니라니까? 금방 찾을 수 있어.”
[됐어. 적당히 하고 돌아와.]
“지 맘대로 끊네.”
원래대로라면 호기심에 찾을 생각이었지만, 몇 주 전 생각이 바뀌었다.
모두 다 같이 입을 모아 가면 쓴 남자를 찾으라는 말에 어쩔 수 없이 떠밀려 온 것은 길드장이었다.
길드장이라고 권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남자를 유일하게 본 사람은 길드장밖에 없었다.
길드장이 이렇게까지 나온 것은 한 가지였다. 그들이 무슨짓을 해도 바뀌지 않는 것이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사람이 찾으라고 난리를 친 것이다.
“일단 구경이라도 하고 가야겠다.”
지금 상황에 못 찾는 것은 거의 확실했다. 자신을 숨기며 시연회에 나올 수도 있었기에 대련을 조금 더 유심하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
대기실에는 나와 유은설이 앉아있었다.
당연히 대련을 같이 해야 하는 입장에서 같은 대기실을 쓰는 것은 당연했다.
그렇지만 분위기가 너무 가라앉아있었다.
누구 하나 말 꺼내기 힘들 정도의 분위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유은설이었다.
“왜 그랬어.”
“…어?”
“왜 나한테 그렇게 말했어?”
“네가… 싫어서.”
침을 꿀꺽 삼키고, 거짓말을 했다.
“거짓말.”
요즘 따라 많이 듣는 말이었다.
내 거짓말이 그렇게 티가 나는 걸까. 다들 금방 알아보는 경향이 있었다.
예전에는 많이 속아 넘겼는데, 이제는 많이 녹슨걸까.
유은설은 나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내기 하나 할까?”
“…내기?”
“이기는 사람이 원하는 걸 전부 말해주는 거야.”
말하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그런 압박을 무시하고, 대답했다.
“싫어.”
“그럴 줄 알았어. 상관없어. 네 입으로 말하던, 내 입으로 말하던 둘 중 하나는 끝나고 나올 거니까.”
그녀의 말은 내가 그때 왜 말했는지 안다는 듯한 뉘앙스였다.
정말 그녀가 알고 있는 걸까?
어쩌면 그녀의 귀에도 내가 들은 말이 들어간 것일 수도 있었다.
그리고 유은설이 그것을 듣고 나를 싫어할 확률이 몇이나 될까.
아마도 백에 수렴하지않을까.
그러니 나한테 어떤 것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닐까.
“두 분 나오세요. 곧 시작합니다.”
진행하는 교관이 와서 시합의 시작을 알렸고, 나와 그녀는 대련장으로 나갔다.
나가니 평소보다 큰 대련장이 보였다.
여러 지물들이 놓여있는 것을 보니 원거리에게 유리한 지형을 마련해준 것 같았다.
내가 이길 수 있다고 생각은 안 하지만, 최대한으로 기량을 발휘한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삑!
우리 둘 사이에서 대련의 시작 음이 들리고, 나는 그와 동시에 뒤를 향해 뛰었다.
유은설도 나를 향해달렸지만, 지금은 내가 그녀보다 더 빨랐다. 저번의 대련과는 상반된 결과였다.
“대화는 안 들리는 거 알지?”
사람들은 전부 카메라를 통해 보고 있을 것이다.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를 이용해 구경할 것이다. 대회장을 쳐다보는 방법도 있었지만, 지물로 가려져 있기에 화면을 보는 것이 더 편할 것이다.
왜 유은설이 저런 말을 하는 거지.
“대답해봐. 나한테 한마디 하는 게 그렇게 힘들었어?”
검을 휘두르며 다가오는그녀의 기세는 매섭기만 했다.
나는 나무를 통해 숨으며 거리를 더 벌리기 시작했다.
나무를 등지고 선 채로 그녀의 검이 옆을 향해 날아오면, 나무를 통해 막고 화살을 하나 날렸다.
시위를 거는 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은 예전의 일이었다. 그녀의 검이 날아옴과 동시에 화살이 하나 나갔다.
“대답 안 해?”
눈앞에서 화살을 날렸지만, 눈 하나 깜빡이지도 않고 몸을 돌려 화살을 피했다.
동체 시력 하나는 장난 아니네.
몸을 그대로 돌려 뒤를 향해 도망치기 시작하고, 유은설은 나무에 꽤 깊게 박혀있는 검을 꺼내 다시 나를 향해 달려왔다.
그 짓을 몇 번 반복하고 나서는 그녀와 거리가 꽤 벌려진 상태였다.
자세를 제대로 잡으며 그녀를 향해 화살을 하나 쏘았다. 일직선으로 빠른 속도로 날아간 화살은 그녀의 어깨를 스치며 지나갔다.
“윽-”
“왜 제대로 안 하는 거야.”
유은설의 실력은 이 정도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지만, 지금은 확실하게 수상하게 여길만 했다.
“정말 모르겠어?”
“응.”
말하면서도 그녀의 검은 나를 향해 베어지고 있었고, 나는 화살을 연속해서 쏘고 있었다.
“대답.”
“……끝나고 해줄게.”
여기서 시간을 더 끌면 안 됐다. 활을 상대로 너무 시간을 끌었다, 내가 원하는 그림이 아니었다.
최대한 고군분투하지만, 그녀의 화려한 검술에 광탈하는 것이 내 계획이었다.
유은설은 내 말과 함께 전과는 다른 속도로 나를 향해 뛰쳐나왔다.
나를 상회하는 속도였다.
아까는 장난이었네. 내 앞으로 불어오는 바람은 그녀의 접근을 알리고 있었다. 머릿속의 경종이 울리기 시작하며, 당장 도망치라고 명령하고 있었다.
내 옆을 향해 베어오는 검을 활로 막았다.
유은설은 내가 공격할 수단을 잃었다고 생각하며 힘을 주며 천천히 활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허벅지에 숨겨 놓은 단검을 꺼내 그녀의 복부를 향해 찔렀다.
지금까지는 마력을 쓰지 않았다면, 나의단검에는 마력이 실려있었다. 그와 동시에 그녀의 검도 마력이 실려 내 활을 반토막을 내며 들어오기 시작했고, 복부에 마력을 둘러 그녀의 공격을 대비했다.
“어?”
내가 이상함을 느낀 것은 이때였다.
그녀의 검이 내 마력으로 감싼 옆구리를 쉽게 뚫고 들어왔고, 나의 단검은 마력에 막힌 듯 그녀의 복부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만!”
적당한 타이밍에 교관이 들어와 제지했다.
그녀의 검신에는 내 피가 남아있었고, 급하게 마력을 사용해 치료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걸 익혔다고?’
마지막에 본 것은 분명히 그녀의 능력이었다.
분명히 내 마력은 두 군데에 정확히 들어가 있었고, 집중도 흩어지지 않았다.
마력이 사라질 일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한가지인데…
‘그녀의 마력 제어 특성이 진화했다?’
남의 마력까지 간섭할 수 있는 수준까지 이르렀다는 말과 똑같았다.
대단하네.
그렇게 생각함과 동시에 나는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
피를 너무 많이 흘리지도 않았는데, 갑작스러운 상처에 많이 놀라 기절한 것뿐이었다.
정말로 칼이 깊숙이 들어갔을 때는 많이 놀랐었다.
몇 분밖에 기절을 안 했기에 애매한 상황에서 일어나 버렸다.
“저기…”
“어? 일어났어?”
유은설의 등에 업혀있는 모습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내 기준에서 남자가 여자의 등에업혀있는 것은 이상한 것이었다.
“내려줄래?”
“응.”
그녀는 순순히 나의 허벅지에 있는 손을 풀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알고 있었어?”
“그 일?”
유은설은 그 일이라고 둘러대면서 말했다.
“뭔지 정확하게 알아?”
“소문말하는 거 아니야?”
고개를 숙이며, 그녀가 알고있다는 생각에 안좋은 생각만이 들었다.
“알고 있구나. 나 싫지?”
“그럴 리가 없잖아. 그냥…”
“싫지? 그냥 내 생각대로 해야 했는데…”
“그런 말 하지 마. 대체 왜 그러는 거야.”
이 장소는 치료실 가기 전 의자가 놓여있는 장소였다.
나와 유은설이 자주 만났던 장소였기에 기억에 남아있었다.
“교관한테 말하지 않았더라면…”
“그거랑은 다른 일이지.”
“그렇지 않아.”
“너무 결과론적인 말 아니야?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 우연으로 일어났을 뿐이야.”
결과론적이라.
사람은 결과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과정은 안중에도 없었다. 결국 사람들은 과정보다는 결과에 중점을 둔다.
이번 일도 똑같은 것이다. 내 뒷담화가 교관의 일과 상관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런 헛소문이 퍼지기 시작한다면 어떻게든 엮일 수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유은설과 김세연이 엮이는 것도 당연했다.
나는 더 이상 나로 인해 피해를 입는 사람을 만들어내기 싫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렇지. 둘은 별개의 사건이야.”
“그렇구나.”
유은설은 나에게 상관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러면 그렇게 생각해.”
“그러면 우리 다시…”
“근데, 다시는 만나지 말자는 건 똑같아.”
그녀에게 나는 악영향을 끼칠 뿐이었다.
그녀의 옆에 있는 남자는 이하늘로충분했다.
그녀의 실력향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만 모아둬도 끝에는 결국 지게 된다.
유은설의 실력향상에내 도움이 있을까 생각해도, 좋은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어?”
“그래도… 이번에는 좀 놀랐어. 언제 그런 능력을…”
남의 마력까지 간섭하는 것은 지금 이 시기에 익히는 것이 아니었다.
이 놀라운 결과는단지 며칠을 떨어졌을 뿐임에도 나온 것이었다.
내가 붙어있을 때는 성장을 방해했다면, 떨어진다면 도움이 된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이야.”
“이번에는 정말 아무 일도 없어. 내가 너한테는 쓸모없을 뿐이야.”
“쓸모가 없다니… 그럴 리가 없잖아.”
그녀의 마음은 그렇지 않을지라도, 결과는 그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대체 무엇이 그녀의 성장을 도운 것인지 모르겠다. 내가 알 수 없는 변수가 작용한 것이 분명했다. 나와의 헤어짐이 그녀의 각성에 도움이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좋아할만한 일이었다.
“설화야!”
그녀와 헤어지려고 하던 찰나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 나를 부른 사람이 김세연임을 확인했다.
내가 도망치려고 하자 그녀는 나를 붙잡고, 치료실로 끌고 갔다.
“어디 가게.”
여전히 그녀에게 대응하기에는 어려웠다.
그때의 일로 더욱 뭐라 하기도 그런 사이가 되어버렸다.
“같이 가자.”
멍하니 있던 유은설은 치료실로 끌려가는 나를 보고만 있었다.
“쟤는 왜 저러고 있어?”
“있어… 그런 일이.”
“그래. 뭐 그렇겠지.”
“근데 뒤에는?”
김세연의 뒤에 업혀있는 사람은 윤예진이었다.
그녀의 대련 상대임을 알고 있었지만, 윤예진의 머리에는 붕대가 칭칭 감겨 있었다.
“조금 열심히 팼어.”
웃으며 말하는 그녀의 얼굴은 약간 섬뜩해 보였다.
중요 부위에는 방어구를 두르고 있어, 화살이 관통할만한 상처가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머리에 상처가 났다는 것은 타박상이라는 이야기와 같았다.
그러고 나서 뒤에 매달려있는 김세연의 활의 윗부분이 조금 닳아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활 가지고 머리를 때린 거야?’
그녀의 웃음이 오늘따라 약간 꺼림칙했다.
유은설을 그자리에 내비두고 김세연과 같이 치료실로 들어갔다.
나에게 먼저 화해의 손길을 건넨 유은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나쁜 사람으로 남아있는 것이 맞았다. 그렇게 나를 짓밟고 그녀가 자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촉진제로 남아있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