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화 〉중간 평가
유은설은 달라진 한설화에 적응하지 못했다.
저번과는 달랐다. 그저 불안해 보이는 한설화를 가서 안았을 뿐이었다.
그랬더니 그가 울면서 안겨 온 것이었다. 그때 한설화는 어느 정도 안정되어 있었다.
유은설이 알아차릴 만큼 상태가 좋아졌었고, 그런 한설화를 보는 것이 좋았다.
지금 김세연과 함께 가는 한설화를 보고 있었다.
끌려가는 모양새처럼 보였지만, 한설화가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런 한설화를 보며 유은설은 생각했다.
저번에 교관과 똑같은 일인가?
왜 이번에는 다른 거야?
유은설이생각하기에 그에게 달라진 점이라고는 김세연의 개입밖에 없었다.
한설화는 자신한테 아무 눈길도 주지 않고 가버리고 있었다.
마치 자신의 대체재가 생긴 것처럼김세연의 옆에 붙어 다니면서.
“한설화….”
한설화는 정신적으로 나약한 사람이었다.
꽤 심한 고집과는 다르게 정신은 매우 여렸고, 그것이 그의 태도와 말로 나타났다.
그만큼 한설화를 이해하는 것은 자신밖에 없다고 유은설은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과 한설화는 서로 떼놓을 수 없는 사이라고 생각했다.
어떤 고난이 중간에 있을지라도, 언제는 사이가 회복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번에도 자신이 도와준다면 한설화가 눈물을 흘리며 다가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것이 유은설에게는 당연하다고 여겨질만큼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지금 자신을 떠나 치료실로 들어가는 한설화를 이상하게 여기고 있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바꿔놓았는지.
유은설이 알아내야 할 과제가 하나 늘어났을뿐이다.
**
시연회는 그렇게 끝났다.
많은 생도가 자신의 대련에 아쉬움을 느끼거나, 잘했다고 서로를 칭찬하는 경우도 있었다.
시연회 다음 날부터는 정상적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다친 사람들도 그렇게 심한 상처도 아니었고, 금방 상처를 치료하고 금방 일어났다.
“설화야. 어디가? 오늘 동아리 있잖아.”
“동아리…?”
동아리라는 소리를 듣지도 못했다.
나를 제외하고 모인 적이 있는 걸까.
왜 김세연은 알고 있고, 나는 모르고 있을까.
“응. 저번에 말했잖아. 오늘 있다고. 아… 맞다. 너 저번에 안 왔지?”
“아…”
그녀의 말에 의문은 금방 풀렸다.
저번에 빠졌기 때문에공지사항을 듣지 못했다.
여러 가지로 혼란스러웠기에 동아리를 몇 번 빠진 적이 있었다.
생태 탐사는 되도록 따라가는 편이었지만, 유물 탐구는 자주 빠졌다.
그만큼 지금은 중요도가 낮았기에 상관없었다.
그녀의 손에 내 팔이 잡힌 만큼 도망갈 수는 없었다.
김세연은 나를 끌고, 유물 탐구 동아리로 향했다.
가지 말까 생각도 했지만, 금방 중간 평가에 대한 생각이 떠올랐다.
“근데 우리 중간 평가까지 얼마나 남았지?”
“어… 며칠 안 남지 않았어?”
“그래?”
김세연의 말에 유물 탐구 동아리에 가기로 마음먹었다.
중간 평가는 말만 평가였지, 사건의 연속이었다.
하랑은 속수무책으로 보안이 뚫리고, 생도들 대다수가 다치고, 몇몇이 죽는 경우가 벌어진다.
이번이 그 전조였다.
하랑에 흔들림을 유발하는 계기가 되는 사건이었다.
내가 이 사건을 막는다고 얼마나 달라질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한 번 막아보기는 해야겠지.
김세연과 나는 가는 도중 반갑지는 않은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설화가 불편해하는 것 같은데.”
“불편해?”
유은설이 우리 앞을 가로막고, 김세연에게 말했다.
그녀에게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이렇게 대담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
김세연은 유은설을 한 번 훑어보더니 나를보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으며 불편하지 않다는 표시를 내었다.
“불편하지 않다는데?”
“너는 제대로 몰라서 그래.”
유은설이 김세연을 무시하는 기색을 드러내자,김세연도 그냥 듣고 있을 수만은 없는 것 같았다.
주먹을 꽉 쥐는 모습을 보자, 내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유은설이 저러는 이유는 아마 어제 있었던 일 때문이 분명했다.
그 일이 그녀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갑자기 달라진 이유는 그것 말고는 없으니까.
“가자.”
내가 김세연의 팔을 쥐고 앞으로 달리자, 김세연도 주먹을 풀고 나의 힘에 몸을 맡겼다.
유은설의 옆을 지나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어차피 같은 동아리였기에 같은 교실로 들어가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교실에서 어색한 분위기가 맴돌았다. 유은설은 나를 쳐다보고 있었고, 마찬가지로 김세연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 분위기에 죽어 나가는 것은 나밖에 없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구세주가 나타났다.
“다들 조용! 오늘 동아리 시작하겠습니다.”
교관이 타이밍 좋게 등장하고, 그의 뒤를 따라 들어온 것은 장식된 바늘 한 개였다.
“내가 이것을 가져올 수 있는 이유는 한가지다. 누구나 만지기만 한다면, 바늘의 정보를 알 수 있을것이다.”
교관이 가져온 것은 유물이었다. 등급도 낮고, 능력도 그렇게 효율성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교관이 설명하는 바늘의 능력은, 3m 정도의 거리에 던진다면 반드시 맞출 수 있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로 활용한다면 좋아 보이지만, 그럴 바에는 화살을 하나 더 쏘는 것이 나았다.
빠르게 움직인다면, 필중의 효과가 사라졌고, 바늘에는 독을 바를 수도 없었다.
여러 가지로 까다로운 조건 덕에 이렇게 하랑에 제공되어 교보재가 되는 것이었다.
교관의 말이 끝나고, 다들 자유롭게 나와서 바늘의 정보를 열며 읽고 있었다.
자신의 유물이 없는 사람들은 신비롭게 쳐다봤고, 유물이있는 사람은 가까이 가지 않고 멀리서 쳐다보고 있었다.
나의 눈은 다른 사람에게 향해있었다. 그 사람은 아직 눈치채지 못한 것 같지만, 곧 알게 될 것이었다.
“설화야. 너는 안 가봐도 돼?”
“응.”
김세연도 신기해서 앞으로 나아가서 바늘을 보고 온 모양이었다.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한 치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됐다.
그렇게 동아리가 끝나고 평소처럼 일과를 시작했다.
단지 마지막에 숲에서 훈련하는 것은 오늘은 빼기로 했다.
**
새벽 2시.
어둡고, 조용한 이 시간에 돌아다니는 사람은 나 말고 없어 보였다.
검은 가면을 쓰고, 검은 옷을 입은 나는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보았지만, 쉽게 상상되지는 않았다.
밤거리를 대놓고 활보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상관없었다.
오늘은 어차피 들킬 것이 확실했다.
나는 천천히 건물 내부로 들어가기 시작했고, 출구에 의자를 찾아 앉았다.
출구는 하나밖에 없었기에 이곳으로 사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터벅 터벅
발소리가 천천히 들리기 시작했다.
발소리의 주인은 조심스럽게 걷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고요한 건물 내부에서 발소리는 크게 울려 퍼질 수밖에 없었다.
곧, 내 앞에 한 사람의 인영이 보이기 시작했다.
먼저 알아차린 것은 그 사람이었다.
“으악!”
나를 보고 균형을 잃고 엉덩방아를 찟는 모습이었다.
“깜짝이야. 근데 누구세요?”
윤예진의 얼굴과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윤예진은 아니었다.
“안녕?”
“이 시간에 여기는무슨 일로…”
내 목소리가 들렸음에도 의심조차 하지 않는 것이 첫 번째 증거였다.
그녀는 곧 총을 꺼내 나한테 겨누었다.
나의 복장이 어지간히 수상해 보였나 보다.
총까지 가지고 있는 줄은 몰랐지만, 그녀는 여기서 싸울 생각은 없어 보였다.
“손들어. 지금 당장 손 들고 나가면 봐 드릴게요.”
수상한 사람이 있으면 신고하는 게 정상이었다. 봐준다는 말은 비정상적인 반응이었다.
이것이 두 번째 증거였다.
나는 더 이상 들을 가치조차도 없다고 생각했다.
활을 들어 그녀에게로겨눴다.
이것이 내 첫 번째 살인이 될지도 모르겠다.
“지금 싸우겠다는 소리죠? 그러면…”
그녀는 그 말과 함께 밖으로 뛰쳐나갔다. 재빠른 몸놀림이었지만, 금방 나에게 붙잡혔다.
그녀가 가는 곳은 뻔했다. 카메라가 없는 곳.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고도 충분히 싸울 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그녀의 발에 맞추어주기로 했다. 어차피 달리는 입장에서 죽이지도 못할 것 같고.
그녀가 멈춰선 곳은 내가 정확하게 예측한 장소였다.
“이제 정체를 밝히지? 나를 감시하러 온 거야?”
그녀의 목소리는 윤예진의 목소리에서 원래의 목소리로 돌아온 것처럼 보였다.
“송소희.”
내가 이름을 부르자 흠칫 어깨를 떨며 반응을 보였다.
빌런 집단에서 하랑으로 침투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녀가 들어올 수 있는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그녀의 신기한 능력. 다른 사람의 능력을 한 번 보고 효율이 떨어진 상태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벗어난 것은 사용하지 못하지만, 스파이로써는 완벽한 능력이었다.
목소리도 그녀의 능력 중 일부분이었다.
“그래. 처음부터 무기를 든 것을 보면 나를 죽일생각인가 보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 줄 알아?”
“모르지.”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그냥 단발적으로 출현하고 금방 사라진 엑스트라같은 존재인데.
“난 안 죽어.”
“그렇겠지.”
송소희가 숨기고 있는 패가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나도 예상하는 바였고.
그녀의 품에서 나온 것은 총이 아닌 단검이었다.
자세를 잡고 나에게 쇄도했다. 그녀를 봐줄 필요는 없었다. 확실하게 죽여야 했다.
지금은 그녀를 인간이라고 보면 안 됐다.
괴수였다. 인간의 탈을 쓴 괴수.
옷의 능력을 발동해 그녀의 뒤로 이동하고, 활을 조준해 그녀에게로 쏘았다.
당연히 꽤 많은 양의 마나가 실려있었고, 빠른 속도로 그녀에게 쏘아졌다.
“칫.”
혀를 한 번 차고 그녀도 아주 짧은 거리로 옆으로 이동했다.
나의 옷과 비슷한 능력이었다.
당황하지는 않았다. 그녀가 무슨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은 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수많은 능력이 그녀에게 저장되어 있을 수도 있었다.
“그게 능력은 아닌가 봐?”
“말이 많네.”
말을 무시하고 그녀에게 화살을 쏘았다. 그녀는 전과는 달리 매우 빠른 속도로 나에게 돌진했다.
이것도 능력의 하나로 보였다. 날라오는 화살을 몸으로 맞고도 타격이 없어 보였고, 그녀의 뒤로 점멸해 다시 화살을 쏘았다.
‘1번.’
송소희는 만만한 적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 대부분의 생도를 압도할 수도 있었다. 카피한 능력을 모두 소모하게 된다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지만.
그녀는 능력을 사용해 불, 얼음을 소환했다.
작은 얼음송곳과 파이어볼이 나에게로 쏘아졌고, 그녀는 단검 하나를 나에게 던졌다.
단검의 모습은 여러 개로 나뉘었고, 옷의 능력을 하나 더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은 소모전이었다.
그녀의 능력이 먼저 소모되는 건지. 나의 능력이 사용되는 건지.
“그거 대체 몇 번이야.”
“너야말로 남은 능력은 몇 개지?”
“그것까지 알아?”
옷에서 새로운 단검을 꺼내 나에게로 겨눴다.
“이것까지는 안 쓰고 싶었는데.”
“풉…”
나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나왔다.
“그거 사망 플래그야.”
“닥쳐.”
나는 곧 그녀에게 포위되었다.
일대일 싸움에서 포위가 말이나 싶겠지만, 정말 말 그대로였다.
그녀의 형체는 하나가 아니라 수십 개로 나뉘어졌고, 모두 나를 향해 단검을 겨누고 있었다.
그녀가 말하는 것만큼 꽤 중요한 능력처럼 보였다.
생도 수준의 능력이 아닌, 빌런 집단에서도 꽤 높은 사람의 능력처럼 보였다.
모든 것들이 하나하나 형체를 띄며 나에게로 다가왔다.
“죽어.”
수십 개의 송소희가 나에게 말하는 느낌은 이상했다.
마치 환청이 들리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머리부터 발끝까지 단검이 달려들자 내가 피할 수 있는 공간은 없어 보였다. 내가 점멸을 사용할 것을 대비해 몇 개의 분신은 바깥으로 단검을 겨누고 있었다.
내 몸을 통과해 단검들이 지나가고, 서로의 단검이 서로를 찔렀다.
“끄아아아악!”
의미 없는 공격은 아니었는지 나의 귀에 비명이 합창하듯 들려왔다.
영체화를 사용함과 동시에 가면의 능력을 사용했고, 활을 겨눠 밖에 서 있는 분신에게로 쏘았다.
“사망 플래그라고 했지.”
고통을 공유하는 것처럼 보였다.
몇 개의 화살이 더 박히고 나서야, 여러 개의 분신이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그녀는 서 있을 힘도 없는지 바닥에 누워있었다.
입에서는 피를 토하고 있는 모습이 주인공이 마지막에 죽는 모습 같았다.
“바늘은 어딨어?”
내 말에 그녀는 가운데 있는 손가락을 펼치며 대답을 대신했다.
그것을 내가 찾을 것은 아니었다. 아마 이 시체를 발견한 교관들이 알아서 찾아주겠지.
화살통에서 화살 하나를 꺼내 그녀의 가슴에 깊게 찔렀다.
“쿨럭”
입에서 나오는 피가 한 번에 많아지고, 곧 그녀의 숨이 멈춘 것을 확인했다.
내가 이 세상에 와서 처음으로 저지른 살인이었다.
전부터 이 괴리감을 느끼고 있었다.
가면을 쓴 나와, 쓰지 않은 나의 인격 차이는 심각할 정도로 차이가 났다.
엘프의 대가리를 후려칠 때부터 생각했어야 했다. 살인에도 무덤덤한 모습에 스스로가 역겨워졌다.
가면을 쓰지 않을 때도 간간히 드러나곤 했다. 엘프 사태 때는 가면을 쓰지 않았던 때가 더 많았던 것을 생각해보면 그랬다.
가면을 쓰고나서는 유독 심해졌을 뿐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자각하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었다. 내가 인정하기 싫은 걸 수도 있었다.
“이렇게까지 망가진걸까.”
가면을 쓰지 않을 때도 이런 것은 아닐까.
어쩌면 가면을 쓴 내가 본성일지도 모르겠다. 남을 죽이며 아무 감흥도 느끼지 못하는 이 상태가.
나는 구석에서 돌아가고 있는 카메라를 그녀의 심장에 두었다.
그녀의 능력은 사라져 자신의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바늘을 훔친 것은 그녀였지만, 죽인 것은 나였다.
누가 더 나쁘냐고 물어본다면, 모르겠다.
그런 철학적인 질문은 알 수가 없었다. 나조차도 정의를 못 내리고 있는 마당에 남을 생각할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길고 길었던 새벽이 끝나가고 있었다.
그녀가 어떤 것을 사용했는지 주위의 소음이 하나씩 들리기 시작했다.
새소리, 바람이 부는 소리, 바람에 나뭇잎이 쓸리는 소리.
지금까지 싸웠던 소리가 하나도 밖에 퍼져나가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다른 사람이 찾아오기 전에 이 자리를 벗어났다.